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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1부 이별도 연습해야 되나요 무신론자의 기도 이별 연습 1 이별 연습 2 늙어가는 법 이담에 야속하다 목숨 불안한 예감 이별 예감 나 웃을 수 있을까 병동 단풍 어떻게 이별의 순간 수의 장례식장에서 2부 이별은 보고 싶다 이별 뒤에 1 윤회 기약 없다 가신 뒤에 그 후 금잔디 무덤 앞에서 이별하는 법 아픈 희망 강변 찻집에서 한 사람 연습이 필요해 비원 이별의 미학 3부 그의 빈방 이별 반쪽 기다리다 늦가을 철들지 못했어 가을 수묵화 가을 엽서 이별 뒤에 2 우두커니 기다리고 있어요 미망인 1 이별 노래 11월의 바람 절집에서 또 하루를 4부 꿈에라도 이별 뒤에 3 유품 지키지 못한 약속 빈집 이별 뒤에 4 성묘 인연 죽음 하늘로 띄운 편지 사라진 가을 이별은 꿈처럼 덫이었을까 잊었을까요 별 하나 혹시나 만날 수 있을지도 5부 나비로나 훨훨 기일 이별 그 아픈 우체통 앞에 서면 미망인 2 11월의 하늘 전화 그대 잠든 땅 서툰 이별도 아프다 상가喪家 사모곡 이별기 이별한 사람은 안다 그런대로 살지요 떠나는 연습 삶이란 해설 | 이승하(시인, 중앙대 교수) 이별의 의식이 이렇게 슬프고 아름다울 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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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보내는 법 잊는 법을 난 아직 몰라요 어제처럼 오늘처럼 내일도 모레도 언제나 같이 사는 줄 함께 웃고 울 줄로 --- 「이별도 연습해야 하나요」 중에서 힘없는 눈빛만 봐도 가슴 한쪽 베이는 앓는 소리라도 듣고 싶어 귀 기울이다 그래도 같이 있으니 아직 같이 있으니 --- 「이별 연습 1」 중에서 긴 이별을 눈앞에 둔 시간은 새까맣다 잊을 수는 있을까 어떻게 이별할까 안개꽃 시들고 있는데 하현의 달이 뜬다 무섭게 다가오는 이별 앞에 바장이다 처연한 눈빛은 허공에 닿았는데 외롭게 별 하나 뜬다 공허한 나의 하늘 그의 하늘엔 어떤 별이 떠오를까요 이별을 준비하는 아픈 날들 속에서 허방에 발이 빠집니다 눈앞이 흐려 옵니다 --- 「이별 예감」 중에서 달려가는 운구차 저만치 가는 사람아 가더라도 다음 세상 날 잊지 마세요 간다고 아주 간다 말고 추억은 좀 남겨두고 뒤도 좀 돌아보세요 아주 끝났다 말고 잊지도 말고 그립다 한탄도 말고 뼈아픈 사람의 인연이 그렇게 쉽게 끝나나요 저만치 손을 들고 가는 사람아 그래도 한 번쯤은 꿈에서라도 찾아와 차라도 한잔 안부도 물어주고 때론 보고 싶었다 말도 하고 --- 「보고 싶다」 중에서 걸어도 주저앉아도 눈물이고 한숨이다 달이 떠도 달이 져도 눈물이고 회한뿐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죽어야 할까 --- 「이별 뒤에 1」 중에서 날 두고 먼저 간 당신이 더 슬플까요 외롭게 남겨진 내가 더 아픈가요 마지막 손잡고 울어준 내가 있어 다행이었나요 당신 따라갈 때는 난 슬프지 않을 거예요 날 잊지 않고 마중 나올 당신이 있기에 웃으며 손들고 갈 거예요 꼭 기다리고 있어요 --- 「기다리고 있어요」 중에서 좋은 시를 읽다가 꿈꾸듯 잠이 들 듯 그대 그리다 눈을 감고 떠난다면 조금은 행복하겠지 이별이란 먼 길도 졸려서 불은 끄고 생각 없이 누웠듯이 명이 다했다고 그런 생각조차 못 한 채 망설임 하나도 없이 두 눈 감을 수 있다면 나들이에 지친 채 집으로 돌아가듯 안식을 생각하며 자리 잡고 누웠다면 내 삶은 행복했다고 망설임 하나 없이 헤어짐의 아픔도 미처 생각하지 못해 하얗게 비워버린 머릿속은 꿈을 두고 조용히 떠나간다면 행복한 소풍일까 --- 「떠나는 연습」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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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점숙 시인의 새 시조집에 실린 80편의 시조를 읽으면서 해설자가 느낀 또 하나는 ‘경이로움’이었습니다. 단 한 편의 예외도 없이 이별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별가는 기원전 17년 작인 유리왕의 「황조가」에서부터 시작하여 소월의 시 「진달래꽃」와 「초혼」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가 2천년이 넘습니다. 시인들은 님과의 이별을 애달파하였고 서러워하였고 괴로워했습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서정주의 「귀촉도」 등 수많은 시인의 대표작이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것입니다.
해설자로서 감히 말하건대, 양점숙 시인은 부군이 함께한 세월이 있어서 “행복한 소풍”이기도 했겠지만 지난 36년 동안 시조의 밭을 일궈 왔기 때문에 행복한 소풍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람 이병기 선생의 애제자(수제자?)로서의 역할을 다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신의 온갖 아픔과 슬픔을, 그리움과 괴로움을 편편의 시조에 절제된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완성된 생’을 이룩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 이승하(시인, 중앙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