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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그리움이 자라 희망이 되다
새해 첫날 - 18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공동체 - 18 실로암사람들과 함께한 30년은 은혜다 - 20 나에게 박필순 권사님은 선물이다 - 21 아름다운 것들은 천천히 온다 - 22 직원워크숍은 목마름이었다 - 23 실로암사람들과 신원벧엘교회는 형제다 - 25 우리 시대의 어머니를 보내며 - 26 순천장애인보호작업장은 실로암사람들의 자랑이다 - 27 조재형 감독을 응원하는 사람들 - 28 꿈을 향해 직진 중 - 29 한 사람이 안전하지 않으면 모두가 위험하다 - 31 예산 없이 권리 없다! - 32 그들은 물었고 우리는 답했다 - 35 별꽃 시인 김경원 - 36 하늘의 친구에게 - 37 전형도 님에 대한 감사와 기대 - 38 청캠은 설렘이고 눈물이고 그리움이다 - 39 함께 꿈을 꾼다 - 40 기독교와 무속 - 41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몸으로 안고 살다 - 42 들꽃시인 홍선영을 기억한다 - 43 강신석 목사님의 정신을 이어갈 것이다 - 45 65세가 장애인 삶의 데드라인(deadline)인가? - 46 블링크TV를 아는가? - 48 그녀는 농인 바리스타다 - 50 세계일주를 꿈꾸는 청년 - 51 그리움이 자라 희망이 되다 - 53 차별없는 장애인 평생교육권 보장하라 - 54 고주혁의 도전은 계속된다 - 55 정대 씨에게 자원봉사란? - 57 받아쓰기는 존재에 대한 재발견이다 - 58 정재숙이 돌아왔다 - 59 장애인 주거는 생존권적 기본권이다 - 61 안치환은 대체불가한 가수다 - 62 힘든 하루를 보내며 - 63 마음의 틈을 만든다는 것 - 64 방관하지 않고 주는 사랑 - 66 고마워요, 쫄리형! - 67 모두를 위한 광주 도시철도 2호선을 소망한다 - 69 평화와 미래를 위해 선택하자 - 71 저녁 산책의 즐거움 - 72 3월 10일 아침에 - 73 이번에는 김대덕 님 차례다 - 75 무진장애인장학회 장학금은 디딤돌이다 - 76 은선 자매랑 갈비 뜯을 사람? - 77 2부 그립고 미안하고 아프다 올해 꼭 하고 싶은 것들 - 80 새빛콜의 현황과 제안 - 81 문경희는 불사조다 - 82 그립고 미안하고 아프다 - 84 엄마다, 잘 가라 - 85 지금과 그때 - 87 도영에게 - 88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일 - 89 창경에게 꽃을 보낸다 - 90 가로등 아래서 만나는 사내 - 91 이준석 대표 발언을 규탄한다 - 92 이제는 검토가 아니라 결정하라 - 93 지애는 실로암에게 선물이다 - 94 장애인 접근성을 토론하는 곳에 장애인 접근이 불가능하다면? - 96 코로나19와 장애인 인권 - 97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 - 98 세월호의 진실은 팽목항에서 시작된다 - 99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100 10년 만의 삭발 - 102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하라! - 103 싸워서 지더라도 잊히지는 말자 - 103 똥 싸는 소리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 105 처가격리를 시작하다 - 106 컨디션이 회복되었다 - 107 나에게 자랑하고 싶은 책이 생겼다 - 108 ‘그냥, 사람’을 읽어야 하는 이유 - 110 문제를 문제라고 지적하지 않는 사회 - 111 7일간의 특별한 휴가 - 112 북구청의 결단을 촉구한다 - 113 학생기록부는 지적장애 판단의 필수사항이 아니다 - 114 566일 만의 자유 - 115 실로암사람들 행암동 시대가 열리다 - 116 교회는 믿음의 도서관이다 - 117 저항과 연대의 5·18 정신으로 투쟁하자 - 118 일권 씨는 목요모임을 기다린다 - 120 정 많은 미정 씨의 꿈 - 121 장클라의 도전은 진행형이다 - 122 실로암의 길잡이가 된 참된 스승 - 124 꽃보다 아름다운 당신 - 126 황신애 님의 빛나는 삶을 응원한다 - 127 우주의 중심에서 예배하다 - 129 공동체 고백이 삶에서 이루어 지기를 - 130 일상에서 낯섦을 발견하라 - 132 장애인의 이동권을 제한하지 마라 - 133 골목길음악회에서 옥상음악회로 - 134 박노해의 시는 울컥이다 - 137 임은정 검사와 함께 가보겠습니다 - 138 3부 당당하게 당연하게 예외 없이 헌법재판소도 법원도 인권도 무시하는 광주광역시 복지행정 각성하라 - 142 살아 주어서 고맙다 - 143 우영우 변호사에게 물어보라 - 145 2022 살아서는 존중을, 죽어서는 기억을 - 146 야구장에서 만난 사람들 - 148 새빛콜, 분리배차가 답이다 - 149 스위치온은 디딤돌이다 - 150 반창고로 부터 시작된 만남 - 151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 - 153 수어 공부는 즐겁다 - 154 오방 보치아대회는 감동이다 - 155 광주광역시는 장애인 공동생활가정 관련 - 156 약속을 이행하라! - 156 빈소도 없이 순자 씨를 보내다 - 158 주월산 정상에서 추석을 맞다 - 159 자립생활, 욕구에서 권리로! - 160 기용 씨가 응원하는 것? - 161 인권적인 인권기념관을 만들자 - 163 토요일이 준 선물 - 164 새빛콜 최저운행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 166 당당하게 당연하게 예외 없이 - 168 참사는 사람을 가려오지 않는다 - 169 하나된소리에 대한 기대와 감사 - 171 자립생활의 중심은 사람이다 - 172 성탄절 - 173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 173 새로운 한 해 - 176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람과 더불어 - 176 그녀는 탈시설 자립생활의 선구자였다 - 177 고 김종문 간사 4주기를 보내며 - 179 직원워크숍은 팀실로암의 작전타임이다 - 180 보조기가 부러지자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 181 고맙다는 말 - 182 유품을 정리하며 - 184 설연휴를 보내고 - 185 실로암센터에 강신석 목사님 부부 그림을 걸다 - 185 장애인 이동권은 인권 도시의 척도 - 187 봄날엔~ 희망나눔은 팀실로암의 꽃이다 - 189 아픔을 직시하는 힘이 아픔을 넘는다 - 190 역사정의를 위한 시민모금에 참여하다 - 193 루게릭 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 194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어서 다행이다 - 197 장애시민 투쟁은 만인의 투쟁이다 - 198 쫄지마! - 201 자립은 능력의 집합이 아니다 - 201 회갑 인사 - 203 모두에게 기쁜 소식 - 204 행복하십니까? 아니요 감사합니다! - 204 4부 삶은 과정 자체가 목표다 새해 인사 - 208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 208 다시 청캠이다 - 210 설레는 날 - 211 고마워요, 당당한 경희 씨! - 211 그 세월은 잊지 말자 - 213 2024 봄날엔~ 희망나눔 - 213 육남 씨의 묘에는 작약이 핀다 - 214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 215 당신의 교회에는 문턱이 있습니까? - 217 상호 형제를 묻다 - 219 관성이 아니라 비전이다 - 219 평화가 유일한 길이다 - 220 2024 살아서는 존엄을, 죽어서는 기억을! - 230 꽃잎이 떨어질 땐 어떤 소리가 나? - 233 광주와 복지에 진심인 사람 - 234 은혜로다 - 235 계급장이 없는 곳 - 237 카페홀더에는 ‘수달’이 있다 - 238 추석에 - 240 최저운행률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요구한다 - 240 10년을 이렇게 - 241 팽목 기억캠프에서 - 242 새빛콜 파행운행 교통국장 항의방문을 마치고 - 243 삶은 과정 자체가 목표다 - 246 1956년생, 文敬姬 - 247 문경희는 우리다 - 249 우리는 서로 기대어 산다 - 250 배우고 도전하며 산다 - 251 계엄의 밤을 기억할 것이다 - 253 기존 3급 장애인에 대한 - 254 장애인콜택시 이용을 허하라 - 254 탄핵커피는 맛있다 - 256 금남로에서 탄핵커피를 나누다 - 256 카페홀더 열세 살, 더 번창해라! - 258 메리 크리스마스! - 259 문경희가 온다 - 260 자립은 나의 장르다 - 261 나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장애인과 함께하는 것이다 - 262 글을 마치며 - 2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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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날이 밝았네요.
저는 올해 60이 되었습니다. 지난날은 감사하고 새로운 날은 소망을 갖게 합니다. 이순(耳順), 자신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게 익어가고 싶습니다. 변하지 않는 가치를 굳게 붙잡아야겠습니다. God bless you! (2022.01.01) --- 「새해 첫날」 중에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다이어리를 새로 구입하고, 달력을 넘기는 것은 마음의 자세를 새롭게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돌아보면 2년 여의 시간은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2022년이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해에는 실로암공동체의 아버지, 강신석 목사님이 별세하였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했던 강 목사님의 삶과 사역은 실로암사람들의 나침반이 되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강의준 목사님과 유가족들은 조의금으로 들어온 3천만 원을 후원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난다. 2021년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이팝너머 증축과 실로암센터 2호관 이전, 오방센터 구입 등 굵직한 일들이 있었다.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던 희망나눔은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였다. 또한 실로암공동체가 코로나 팬데믹 아래에서도 무탈하게 여기까지 온 것은 은혜요 감사다. 2022년은 실로암사람들 창립 46주년을 맞는 해이다. 해가 거듭될수록 고민은 어떻게 실로암공동체의 향기와 빛깔을 간직해 나갈 것인가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한다. 연약한 사람들과 함께한다. 모두를 위한 공동선을 추구한다.”라는 미션에 더욱 다가가는 해가 되기 바란다. 실로암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와 연약한 사람들과 공동선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갈 것이다. 2022년의 표어는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공동체’다. 공동체(community)는 함께(com)와 선물(munus)이 모인 말로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모임’이라는 의미다. 우리 모두가 선물이다. 로완 윌리엄스는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 다른 누군가에게 줄 선물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선물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2022년에 2% 나눔 운동을 제안한다. 1%는 실로암사람들 (부설)기관에 후원하고, 1%는 실로암센터 건립을 위해 후원하는 것이다. 실로암사람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실로암센터의 건립이 필요하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지금 심지 않으면 미래의 열매는 없다. 물이 기울어 파도가 되듯 마음이 기울면 실로암사람들의 기적을 만들어 낼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과 인도하심이 실로암사람들과 함께하시길 빈다. (2022.01.03) ---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공동체」 중에서 내 나이 60이 되었다. 한마디로 살만큼 살았다. 이순(耳順), 말 그대로 어떤 말을 들어도 귀에 거슬림이 없기를 바란다. 김기석 목사는 나이 든 사람이 경계해야 할 것으로 교만함, 시기심, 통제하려는 마음, 태만함을 꼽았다. 경계할 것은 경계하고 묻고 배우려는 열정은 늘 간직하고 싶다. 직원 단톡방에 30년 근속 축하의 글이 올라왔다. 1992년 1월 2일에 입사하여 30년을 실로암사람들과 함께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들어와 작고 가난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다. 그동안 신실한 직원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30년의 시간은 알고 갔던 길이 아니라 믿고 따라온 길이었다. 실로암사람들 초창기에 애쓰신 분들이 떠오른다. 설립자인 변귀숙 회장님, 2대 박정숙 회장님, 3대 김랑 회장님, 4대 곽정숙 회장님, 5대 박정수 회장님의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실로암사람들이 가능했다. 2022년이 되면서 가장 아쉬운 것이 있다. 강신석 목사님이나 곽정숙 의원님 등 존경하고 따르고 싶은 어른들이 곁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미아가 된 기분이다. 개인적으로 감사한 것은 부모님이 결혼 61주년을 맞이하기까지 비교적 건강하시다는 것이다. 아마 그것은 내 덕분일 것이다. 장애인 자식보다 하루라도 더 살려면 당신들은 더욱 강해져야 했을 것이다. 몸이 점점 무거워진다고 느껴질 때는 마음의 짐을 비워내야 한다. 2022년에는 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2022.01.03) --- 「실로암사람들과 함께한 30년은 은혜다」 중에서 2022년 실로암사람들 시무식을 마쳤다. 비록 비대면으로 함께하는 자리였지만 올 한 해 실로암사람들 사역의 방향과 에너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2022년 표어는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공동체’이다. 우리 회원들이 만나면 “나는 당신에게 선물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선물입니다.”라는 고백이 풍성해 지기를 바란다. 오후에는 나에게 선물이신 분을 찾아갔다. 실은 작년 말부터 만나고 싶었으나 해를 넘기고 말았다. 광주호와 가사문학관을 지나 반석마을로 가는 길은 광주 근교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저절로 힐링이 되는 코스다. 박필순 권사님은 집 나간 자식을 기다리듯 대문 앞에 서 계셨다. 곶감과 솔잎차를 내주셨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처럼 박필순 권사님은 곶감 장인이다. 필순표 곶감을 한 번 맛본 사람은 다른 곶감이 시시해진다. 고 김종문 간사도 필순표 곶감을 참 좋아했다. 박필순 권사님은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태어나 60여 년을 살았다. 그사이에 초가집에서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다가 2010년에 현 주택을 신축하였다. 반석마을의 풍경 사진을 찍어 실로암밴드에 올리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올해에는 더 가까이에서 함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필순 권사님은 나에게 행복한 선물이다.(2022.01.03) --- 「나에게 박필순 권사님은 선물이다」 중에서 나는 1963년 전남 벌교에서 태어나 네 살이 되었을 때 폴리오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소아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고향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1979년 고등학교 시절부터 광주에서 살게 되었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으나 구령의 열정으로 신학을 공부하였다. 1986년 대촌동초등학교에서 열린 장애인캠프에 참가한 것이 실로암사람들과의 첫 만남이었다. 이후 1991년 홍보부 차장으로 소식지 만드는 일을 조력하였다. 1992년 실로암사람들이 전임사역자 체제로 조직을 개편하면서 곽정숙 회장, 김효섭 총무, 곽정옥 간사, 육경애 간사와 함께 선교부 간사로 일하게 되었다. 지역교회에서 목회를 꿈꾸던 중 장애인 선교의 현장에서 받은 은혜를 통해 장애인 선교사역자로 헌신하였다. 1993년 김민선 자매와 결혼하면서 실로암사람들 커플이 되었다. 나는 실로암사람들 2세대로서 목요모임, 수화학교, 실로암문학회, 목요찬양단, 수화찬양단, 장애청소년 통합캠프, 대학실로암, 실로암문학상 등이 다양한 활동을 조직해 나갔다. 2001년에는 광주장애인이동권연대를 조직하여 상임대표를 맡았다. 이후 광주장애인인권연대,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통해 진보적 장애운동의 중심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2005년 도가니 사건으로 알려진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 활동은 삶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인화대책위 활동을 통해 지역에서 인권활동가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나에게 장애인 선교와 인권과 복지는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수없는 기자회견과 천막농성, 점거투쟁과 삭발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야 하니까’ 피하지 않고 감당해 왔다. 그동안 이동권 투쟁, 인화학교 대책위 활동, 사회복지사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검찰로부터 세 번의 기소유예를 받았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연약한 사람들이 주는 훈장이라 생각한다. 실로암사람들과 함께한 30년의 시간은 귀중한 선물이다.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었지만 곽정숙 의원님, 강신석 목사님, 곽명구 장로님과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은 행운이었다. 김안중 님, 권종대 님, 은혁상 님, 임기용 님, 정인호 님, 장성아 님, 이성민 님....은 보석 같은 분들이다. 실로암사람들과 함께하며 ‘아름다운 것들은 천천히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30년 + 1년에는 실로암사람들의 미래사역을 위해 실로암센터 건립을 꿈꾸고 있다. 대표로서 마지막 역할은 실로암센터의 건립이라 확신한다. 실로암센터는 실로암사람들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줄 문이 될 것이다.(2022.01.06) --- 「아름다운 것들은 천천히 온다」 중에서 참~ 좋다. 긴 목마름 끝에 만난 소나기였다. 조심스레 직원워크숍을 시작하면서도 긴장감을 떨칠 수 없었다. 물론 줌으로 참석하거나 업무 때문에 불참한 직원들이 있기는 했지만, 잊고 있었던 기억을 되살리기에는 충분했다. 작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으로 직원워크숍을 진행했다. 2년 동안 직원워크숍뿐 아니라 목요모임, 희망나눔, 골목길음악회 등 모든 모임을 비대면으로 해야 했다. ‘팀 실로암’이라는 말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신입직원은 기존 직원들의 얼굴은 물론 법인 내 기관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 역시나 기우였다. 그사이 실로암공동체 직원들의 내공은 단단해지고 성장해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며 현장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인성(character), 실력(competence), 헌신(commitment)을 갖춘 직원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이팝너머 김영미 간사님의 말을 빌리자면 “5년은 되어야” 길이 보인단다. 실로암사람들 46년의 역사를 돌아보며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꼈다. 기관별 사역 공유를 통해서 내밀한 부분을 들여다보며 공동체의 끈끈한 일체감과 역동성을 확인했다. 신입직원들의 자기소개를 통해 무한한 가능성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보았다. 역시 답은 현장에서 여럿이 함께 나누는 집단지성에 있다. 자신의 것을 나누면서 서로 배우고 성장한다. 직원워크숍은 입사한 지 일주일이 된 신입직원으로부터 30년이 된 직원까지 함께하는 자리다. 기관장이나 오래된 직원일수록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매너리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반면에 신입직원에게는 선임자들과의 소통이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실로암사람들은 직원워크숍을 통해서 에너지를 장전했다. 올해에는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공동체’로서 서로의 얼굴을 빛나게 하기를 원한다. 대표를 통해 직원들의 얼굴이 빛나고, 직원을 통해 회원들의 얼굴이 빛이 나서 모두가 자신의 빛을 발하며 살아가고 싶다. 10kg의 철이 단련되어 500g의 칼에 스미어 있듯이 서로 부대끼며 세워져 갈 것이다. 내년 직원워크숍 때는 또 얼마나 자라 있을까? (2022.01.08) --- 「직원워크숍은 목마름이었다」 중에서 오늘도 유튜브로 신원벧엘교회 주일예배에 참여했다. 목요모임을 통해서도 함께했던 주바라기 찬양단과 김양수 목사님을 뵈니 반갑고 감사하다. 인천에 사시는 김연숙 회원과 신소라, 김소라 회원도 온라인으로 함께했다. 예배 중 눈물이 핑글 돌았다. 대표 기도를 하신 임청화 권사님이 목요모임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였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실로암사람들 뿐 아니라 신원벧엘교회가 목요모임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1992년 광주무진교회당에서 시작한 목요모임은 광주월산교회당(1996년)을 거쳐서 2016년부터 신원벧엘교회당에서 모임을 갖고 있다. 사실 우리는 잠시 모였다가 돌아오지만 공간을 빌려주는 교회의 입장에서는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광주무진교회에서는 주승민 목사님, 광주월산교회에서는 조양희 집사님의 드러나지 않는 수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신원벧엘교회는 실로암사람들의 형제교회다. 성도들이 재활용품을 모으고 바자회를 개최하며 마음을 모아 특장차를 기증해 주었다. 지금도 특장차를 볼 때마다 성도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실로암공동체가 목요모임 공간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목요모임에 함께 참여하며 은혜를 나누고 있다. 목요모임은 실로암사람들의 심장과도 같은 사역이다. 흩어져 생활하던 공동체가 함께 모여 예배하며 삶과 사역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자리다. 요즘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으로 목요모임 라이브방송을 진행하며 언젠가 뜨겁게 함께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실로암사람들과 신원벧엘교회가 목요모임을 통해 신실하게 동역할 날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기도하자. (2022.01.09) --- 「실로암사람들과 신원벧엘교회는 형제다」 중에서 1987년 6.10 항쟁은 이한열 열사의 죽음이 도화선이 되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는 아들의 뒤를 이어 투사가 되었다. 전국 어디에서나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한 집회에는 어김없이 어머님이 계셨다. 자연스레 ‘6월의 어머니’로 ‘시대의 어머니’라 불렸다. 3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한결같았다. 어머니는 치열하면서도 부드러움을 간직하고 사셨다. 몇 차례 만났을 때마다 따뜻하게 손잡아 주시고 격려의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부모님들은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의 제정을 위해 활동을 해오고 있다. 우리 사회는 박종철, 이한열 열사 등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돌아가신 열사들께 큰 빚을 지고 있다. 민주유공자법 제정은 열사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이고, 나아가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고 전태일 열사의 이소선 어머니(2011년), 고 박종철 열사의 박정기 아버지(2018년),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도 떠났다. 우리 시대의 밀알이 되셨던 분들이다. 어머니의 장례는 2022년 1월 11일,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으로 치러진다. 임은정 검사는 “맡기신 몫을 다하겠습니다. 홀가분한 걸음으로 가십시오.”라는 말로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 이제 아들 곁에서 하늘의 안식을 누리시기를 빈다. (2022.01.10) --- 「우리 시대의 어머니를 보내며」 중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된 지 오래되었다. 가까이서 돌봄이나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의 사회적 고립이 심화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부러 둘러보지 않으면 장애인의 삶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작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응원하며 연대해 온 단체가 실로암사람들이다. 순천장애인보호작업장은 실로암사람들 법인 내에 있는 유일한 직업재활시설로 그동안 의미 있는 역할을 감당해 왔다. 직업재활시설은 갈수록 그 필요와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 새로운 장애인복지 패러다임과 지역사회의 특수성 그리고 장애인 당사자의 필요를 반영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순천장애인보호작업장은 끊임없이 이에 대한 답을 찾아왔다. 실로암사람들 순천지부가 운영하는 순천장애인보호작업장이 설립된 지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함께 동행해 온 자원봉사자와 후원자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처음으로 갖는 후원회 밤을 계기로 지역사회와 장애인에게 한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그동안 프런티어 정신으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온 권상진 원장님과 직원들에게 감사한다. 무엇보다 보호작업장을 통해 자신의 삶과 꿈을 세워온 장애인 당사자들과 가족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장애인에게 힘이 되어주신 ‘모두가 행복한 순천’ 허석 시장님과 너른 가슴으로 품어주신 순천 시민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좋은 이웃들이 계시기에 다가올 10년이 더욱 기대된다. (2022.01.13) --- 「순천장애인보호작업장은 실로암사람들의 자랑이다」 중에서 작년 4월, 조재형 감독과 팽목항을 찾았다. 매월 진행하는 팽목 순례길이었다. 여럿이 함께 다녀야 길이 만들어지고, 길이 있어야 뒤를 따라오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는 자리였다. 4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조감독이 휠체어를 타고 갔다는 것이다. 팽목항 가는 길목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유채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세월호 참사 이후 광주는 시민상주모임으로 답했다. 그동안 세월호의 진실 규명과 유가족과의 연대를 위해 마음을 모아 왔다. 그 가운데 한 사람, 조재형 감독이 있었다. 팽목항에서 안산으로, 광주에서 서울로 어디에나 카메라를 든 그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있으면 왠지 든든했다. 상주모임 활동뿐 아니라 자연스레 서로 기대며 살았다. 인화학교를 졸업한 청각장애인의 결혼식 야외촬영과 웨딩포토를 선물해 주기도 했다. 고 곽정숙 의원의 그림전시회나 카페홀더의 기록사진도 그의 손끝에서 이루어졌다. 아~~ 4년 전 불의의 사고로 척수손상을 입었다. 막막했던 3년의 시간을 견디며 병원 치료를 마치고 혼자서 생활한 지 1년이 되었다.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지만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작년 가을에는 영화 현장에 복귀하여 ‘똥 싸는 소리’ 촬영을 마쳤다. 다시 시작하리라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빨랐다. 일도 사랑도 당당하게 하고 싶은 장애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어쩌면 자신의 새로운 희망을 담은 이야기일 것이다. 작년은 조재형 감독에게 도전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자신에게 알맞은 집이 생겼고, 활동지원서비스도 받고 있다. 그의 몸상태는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327시간 활동지원서비스로는 턱없이 부족하여 자부담으로 간병서비스를 받고 있다. 올해에는 도전이 일상이 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든든하게 곁을 지켜온 사람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나이스한 임윤화와 좋은 친구들께 감사한다. 조 감독이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때까지 후원자들이 마음을 모아주시기를 바란다. 요즘엔 화요일에 조 감독과 점심을 같이 하고 커피 마시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그를 응원할 것이다. (2022.01.15) --- 「조재형 감독을 응원하는 사람들」 중에서 김승일 씨는 송원대학(야간)에 다니는 만학도다. 작년 가을 대면 수업이 시작되면서 큰 고민이 생겼다. 오후 10시 30분에 수업이 끝나면 장애인콜택시 잡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얼마 전에는 오후 9:50에 새빛콜에 접수할 때 대기 4번이었으나 10:40에 차량이 없어 배차가 안된다는 문자가 왔다. 연중무휴, 24시간 제로 운영하는 새빛콜이 운행을 안 한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노숙을 해야 하나, 집에까지 전동휠체어로 가야 하나? 황당하다 못해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김승일 씨는 1970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7살 즈음 광주로 오게 되었고, 초중고를 광주에서 다녔다. 키 크고 순진한 학생이던 그는 태권도, 씨름, 유도 등 운동을 꾸준히 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알바로 운전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이후 운전에 관련된 웬만한 자격증을 다 취득했다. 화물차 운전을 하면서 야간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기에 적성에도 맞아 천직이라 생각했다. 가끔씩 시간이 날 때면 카메라와 낚싯대를 들고 바다를 찾았다.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하다 보니 제법 사업도 잘 되었다. 화물차를 운전하고 경기도 용인에서 목포로 가다가 새벽 5시경 톨게이트 근처에 차를 대고 잠을 청했다. 1시간 반쯤 지나서 통행권을 잡으려는데 왼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119를 타고 목포에 있는 병원으로 갔다. 2014년 11월, 그의 나이 45살에 병원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과로와 스트레스가 쌓였고 뇌출혈로 인해 왼쪽 편마비가 온 것이다. 광주와 서울, 성남에서 4년 동안의 재활치료를 마치고 뇌병변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한동안 그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몸은 장애인인데 머릿속은 아직도 비장애인에 머물러 있었다. 걷다가 왼발목이 꺾이는 경험을 통해 장애인인 것을 알게 되었다. 병원 치료를 받으며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게 되어 2018년 동강대에 진학했다. 학업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희열을 경험하며 새삼 자신이 학구파 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방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의 만남은 그에게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난생처음 장애인 당사자들과 만나게 되었고 특유의 친화력으로 못난이 클럽의 막둥이가 되었다. 사회복지 실습도 오방에서 마치고 사회복지사 자격도 갖추었다. 승일 씨는 올해부터 오방센터에서 장애인 일자리로 함께하고 있다. 올해의 꿈을 묻자 “몸상태가 나빠지지 않는 것과 대학공부를 잘 마치는 것”이라 했다. 지금도 유튜브를 통해 낚시 영상을 즐겨본단다. 봄이 오면 바닷가에 낚시하러 가서 라면을 먹기로 했다. 머잖아 학업도 일도 사랑도 모두 이루기를 바란다. (2022.01.17) --- 「꿈을 향해 직진 중」 중에서 요즘 광주가 위험하다. 작년 6월 학동 붕괴 참사에 이어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 참사는 생명과 안전보다는 물질을 중시하는 세태를 민낯으로 보여주었다. 거기에다 코로나19 확진자는 오미크론 변이로 인해 연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최근 일주일은 200명 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선별진료소에 늘어선 긴 줄을 서면서 짜증을 낸 적이 있다. 하지만 새빛콜에서는 선별진료소까지 이동을 거부하기 때문에 오지 못하는 중증장애인들이 있다. 작년 말 선별진료소 운행과 관련하여 광주시에 대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한 바 있지만 새빛콜에서는 기존의 입장만 되풀이할 뿐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운행거부 사례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와 함께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추진하였다. 왜냐하면 특별교통수단 운행거부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고, 전국적인 사안이기 때문이다. 기자회견 날짜를 공지(1월 17일) 하자마자 새빛콜에서는 그동안 검토해오던 대안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주말에는 운행을 하지 않는 반쪽짜리 계획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기자회견 당일 새빛콜은 코로나19 검사 전담반을 연중무휴, 예약제로 운영하겠다고 공지했다. 하지만 운행시간이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다 보니 시청 선별진료소 운영시간인 오후 10시까지 검진하고 운행이 가능하도록 확대할 필요가 있다. 모두가 안전할 때까지는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이 말을 뒤집으면 한 사람이 안전하지 않으면 모두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지원하는 것이 인권의 원칙이다. 선제 검사는 K방역의 핵심이다. 코로나19 검사를 위한 특별교통수단의 지원이 대중교통의 연장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2022.01.19) --- 「한 사람이 안전하지 않으면 모두가 위험하다」 중에서 장애인계와 민주당 포용복지위원회와 정책 간담회가 열렸다.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에서 장애인정책 공약을 마련하기 위하여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였다. 나는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로서 몇 가지 정책제안을 했다. 첫째, 제4차 이동편의증진계획(2022-2026년)에 따른 국가계획과 지방계획의 실효성 담보 이동편의증진계획에 따른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장애인 콜택시) 법정 도입대수를 강제할 수 있도록 지원하라. 광주광역시는 저상버스를 2021년까지 45% 도입하도록 국가 계획과 광주시 계획에 명시하였다. 하지만 2021년 말 현재 25%인 261대가 운행되고 있다. 특별교통수단도 법정 도입대수는 129대인데 현재 116대를 운행하고 있다. 이를 지키지 않아도 강제할 수 있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 제4차 국가 이동편의증진계획에서는 저상버스를 60% 이상 도입하겠다고 하는데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강제할 수 있는 수단과 지원이 필요하다. 둘째, 활동지원서비스와 관련된 쟁점 1) 장기요양서비스와 활동지원서비스 전환 신청 이미 2020년 말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장애인 활동지원에 관한 법률 제5조 제2호에 대한 법률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전국적으로 3만 명이나 되는 장애인이 학수고대하고 있다. 특히 2022년에 65세가 되는 사람들은 연말이 되면 영구적으로 활동지원서비스 신청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나이에 상관없이 사회서비스를 선택적으로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 2) 65세 도래자 장애인의 사회활동에 정년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만 65세가 되면 활동지원서비스에서 장기요양서비스로 전환되거나 두 서비스를 나누어 받아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의 환경이나 욕구에 맞추어 선택적으로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 3) 24시간 국비지원 활동지원서비스 국비지원은 1구간 480시간이 최대다. 광주시에는 현재 24시간 지원을 받고 있는 중증장애인이 20명이다. 국비 시간을 빼면 나머지를 시비로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광주시는 2018년 하반기부터 신규 이용자에 대한 시비 추가시간을 지원하지 않고 있다. 동등한 시비 추가시간 지원과 국비로 24시간 지원이 가능하도록 확대해야 한다. 4) 활동지원서비스 수가 현실화 2022년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수가는 14,805원이다. 2021년 14,020원 대비 5.6% 인상되었다. 한자협 자료에 의하면 기본급, 주휴수당, 연차수당, 퇴직적립금 등을 빼면 수익률이 142원으로 0.95%에 불과하다. 이것으로 운영비와 전담인력 인건비를 충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6,000원 이상 활동지원서비스 수가 현실화가 필요하다. 셋째, 장애인 평생교육시설 운영비에 대한 국비 책임 당장 장애인 평생교육법을 제정해야 한다. 장애인 평생교육법 제정안이 현재 국회 교육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교육부가 마련한 학교 형태의 장애인 평생교육시설에 대한 매뉴얼을 시행해야 한다. 그런데 시도교육청은 매뉴얼에 따른 예산 편성을 하지 않고 있다. 평생교육기관 종사자에 대한 처우도 사회복지사 수준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날 정책 간담회에서는 장애연금을 소득과 상관없이 장애로 인한 추가 비용에 대한 보전을 위해 모든 장애인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3월 9일 대선을 앞두고 제대로 된 장애인 공약이 만들어 지기 바란다. 예산 없이 권리 없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서 장애인의 삶이 달라진다는 것은 분명하다.(2022.01.20) --- 「예산 없이 권리 없다!」 중에서 그리움과 미안함으로 그녀가 잠든 묘지를 찾았다. 무심하게 9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사랑의집 피해 생존자 두 분이 떠나고 두 분이 남았다. 그들은 심각한 질문을 던졌고, 우리는 답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 10년 전 여름, 그들을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 남녀 네 사람은 모두 까까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두려운 듯 허공을 향했다. 장애인과 함께 20년을 살아온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이미 그녀의 몸은 직장암 말기였다. 장성아 씨는 6개월 만에, 38세의 꽃다운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났다. 그녀의 임종을 지키면서 남겨진 분들과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녀는 남평 가는 언덕 양지바른 곳에 묻혔다. 평생을 억압 속에서 살다가 죽어서야 비로소 자유인이 되었다. 그들은 실로암 공동체의 길잡이다. 실로암사람들의 공동체 고백인 ‘우리는 장애인을 환대합니다. 장애인을 존중합니다. 장애인과 함께합니다.’는 그렇게 생겨났다. 이 땅에서 이름도 없고,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실로암사람들의 사명이다. 그립고 미안하다. 그녀가 삶과 죽음으로 우리에게 심어놓은 정신을 이어갈 것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엄한 삶을 가르쳐준 스승이다.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빗장을 열어준 SBS 배정훈 피디에게 감사한다. 한 방송인의 열정이 우리 사회와 개인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2022.01.24) --- 「그들은 물었고 우리는 답했다」 중에서 경원이가 한턱 쏘았다. 진작부터 경원이의 측근들과 식사하기로 했는데 오늘에야 얼굴을 마주했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이셨던 안봄 선생님과 손미숙 활동지원사 그리고 오방센터 권광미 국장이 함께했다. 나는 별 기여는 못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곁을 지켜온 덕분에 합석하게 되었다. 요즘 경원이는 잘 나가는 인싸다. 작년에 시작한 운동으로 전국체전에서 은메달 세 개를 따면서 기대주로 부상했다. 곧바로 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이어가면서 일약 광주선수단의 스타가 되었다. 덕분에 올해부터 실업팀에 스카우트되었고 우수선수 지원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오방 체험홈에서 생활했는데 2월 중순 자립할 예정이다. 경원이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최근 몇 년을 돌아보면 그렇게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 일들이 있다. 세 살 때부터 행복재활원에서 생활하며 특수학교를 다녔다. 광주시 사립 고등학교 가운데 유일하게 특수학급이 있는 조대부고로 진학했다. 고3 담임을 맡은 안봄 선생님은 경원이가 시를 쓰도록 격려해 주었고, 친구들은 시집 발행을 위해 스토리펀딩을 통해 1,150만 원을 모금했다. 2016년 인문계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일어난 기적 같은 일이었다. 경원의 첫 시집에 담긴 ‘뒷이야기’에는 함께한 이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볼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나태주 시인은 축하시와 서평으로 김경원 시인의 첫 시집을 축하해 주었다. 경원이의 시집 소식은 태평양을 건너갔다. 미국에서 와인가게를 하시는 엘리자벳 할머니는 경원이의 장학금을 지원해 주셨다. 기적의 고리는 또 다른 기적을 낳으며 이어지고 있다. 아직도 기적은 진행형이다. 앞으로 시인으로 체육인으로 어디까지 도달할지 아무도 모른다. 경원이는 별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어 한다. 분명한 것은 지금처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함께한다면 경원이는 꿈을 향해 순항해 갈 것이다.(2022.01.24) --- 「별꽃 시인 김경원」 중에서 벌써 1년이 흘렀구나. 친구의 빈자리가 여전히 낯설다. 오늘 같은 날에는 눈이라도 내리면 좋겠다. 언젠가 동창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했지, “눈이 녹으면 봄이 온다”라고. 그래, 친구는 좀 엉뚱하고 아재 개그를 곧잘 했지. 친구는 늘 한결같았지. 처음 만났던 고등학생 시절이나 치과의사가 되고 나서도 늘 소탈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한 교회를 출석한 것도 요즘같은 세태에서는 특별한 일이다. 선교의 열정이 남달랐던 친구는 의료봉사단으로 해외 선교현장을 자주 찾아갔지. 2013년부터 실로암사람들 이사로 장애인 선교의 동역자로 큰 힘이 되었다. 언제까지 함께할 것 같았던 친구가 떠나고 나의 무심함에 많이 아팠다.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아서 건강이 회복되는 줄만 알았는데… 아쉽고 안타깝고 미안하다. 오늘은 친구가 잠든 영락공원을 찾았다. 만남과 이별은 쉽고도 어려운 일인가 보다. 친구의 환한 미소가 그립다. “이별의 시간이 찾아올 때까지는 사랑의 깊이를 모른다”라는 정호승 시인의 말이 가슴에 맺힌다. 언젠가 만날 때까지 안녕히. (2022.01.27) --- 「하늘의 친구에게- 고 손관희 원장 1주기에」 중에서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더니 밥을 지을 때 뜸을 들이는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얼굴도 평화로워 보였다. 작년 말로 13년 동안 일했던 새빛콜에서 퇴직했다. 아직도 팔팔하게 일할 수 있는데 많이 아쉬운 대목이다. 전형도 님은 광주 계림동에서 6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중학생 시절 전교 일등을 다투던 그는 가세가 기울면서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마치고 일찍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막내 동생만 대학까지 가르쳤는데 지금은 성요한병원 의사로 일하고 있다. 스무 살 때 자원해서 군입대를 했다. 어린 시절부터 신앙생활을 해오던 그는 한동안 군종사병으로 일하기도 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몇 년간 번 돈으로 부모님의 빚을 갚았다. 1978년 12월에 제대하고 1년 4개월 만에 5·18을 맞았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아침부터 술을 먹여 취하게 해서 낮잠을 재웠지만, 저녁이면 시내로 나갔다. 광일택시에서 일하고 있었던 그는 5월 20일, 무등경기장에서 출발하여 터미널, 금남로 제일은행 앞까지 이른바 택시 시위에 참여하는 등 시민군으로 활동했으나 5·18 유공자 신청은 하지 않았다. 시민으로서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업용 택시를 운전하다 무사고로 1998년 개인택시를 받았다. 운전을 하면서부터 20여 년간 차량봉사대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었다. 2009년 1월에 새빛콜에 입사하여 13년을 일했다. 매년 운전원 가운데 최상위 콜수를 유지하며 일했다. 새빛콜을 이용하는 장애인들도 최고의 운전원으로 전형도 기사님을 꼽는 이들이 많다. 새빛콜에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용인이 있느냐고 물었다. “재미 교포로 한국에서 한방으로 말기암 치료를 받던 분이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참 따뜻했다’는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새빛콜을 이용하는 동안 이용인에게 편안한 쉼을 주기 위해 맞춤형 음악도 들려주고, VIP를 모시듯 안전하고 편안하게 운전해 왔다. 실로암사람들에게는 더욱 특별한 역할을 해 오셨다. 토요여행도 전형도 님께서 운전을 도맡아 해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희망나눔이나 김장나눔 등 장애인과 함께하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가장 앞장서서 일해 오셨다. 평생을 가장 연약한 사람들의 편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온 가슴 따뜻한 분이다.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인생 2막이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2.01.28) --- 「전형도 님에 대한 감사와 기대」 중에서 1월의 종착역에 왔다. 여기저기서 “왜 그렇게 세월이 빨리 가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들려온다. 어제는 23살 회원에게 그 말을 들으니 웃음이 났다. 1월을 돌아보니 아쉬움이 남은 대목이 하나 있다. 장애청소년 통합캠프다. 작년에 이어 2년이나 청캠을 열지 못하고 지나갔다. 청캠은 연초에 실로암사람들 사역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젊은이들이 만들어낸 역동적인 기운이 그립다. 내년에는 꼭 열리기를 바란다.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청소년에게 미래는 열려있는 것일까? 불확실하고 힘들었던 청소년기를 돌아보며 청캠을 시작했다. 장애를 가진 청소년들에게 꿈을 품게 하고 싶었다. 자신의 꿈이 아닌 하나님의 비전을 발견하고 도전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기도하고 싶었다. 그동안 청캠을 통해 수많은 청소년들이 새롭게 일어섰다. 장애 청소년뿐 아니라 비장애 청소년들도 함께 세워져 갔다. 눈 오는 날 무등산을 올랐던 2회(1998년), 온통 흰 눈으로 덮인 겨울왕국에서 진행된 5회(2001년), 300여 명이 함께한 7회(2003년) 청캠은 이미 전설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장흥 부활동산 컨테이너 숙소에서 자다가 감기에 걸려서 4월까지 고생했던 3회(1999년) 청캠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청캠의 아쉬움을 대신하고 싶은 것이 있다. 1997년부터 2020년까지 24년 동안의 청캠의 역사를 자료집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청캠을 준비하고 진행할 때는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감사의 기억만 남았다. 청캠에 한 번이라도 함께했던 이들은 알고 있다. 청캠은 여전히 설렘이고 눈물이고 그리움이라는 것을. (2022.01.31) --- 「청캠은 설렘이고 눈물이고 그리움이다」 중에서 설날은 ‘설레는 날’이다. 코로나19로 여전히 힘들고 어렵지만 마음을 다잡으며 힘을 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금 좋은 것이나 힘들고 어려운 것들도 결국 지나갈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물리적 거리는 멀어져도, 마음의 거리는 가까워지기를 원한다. 실로암사람들과 함께한 30년의 시간은 설렘이었다.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는 꺼지지 않는 기름부음이었다. 연약한 사람들을 통해 십자가의 도를 배우며 살아간다. 날마다 부대끼며 살아온 실로암사람들이 있어서 참 좋다. 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있다. 그래서 함께 꿈을 꾸며 기쁘게 살아간다. 찰리 채플린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처럼 긴 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는다. 2022년의 남은 날들을 치열하면서도 부드럽게 살아야겠다. (2022.02.01) --- 「함께 꿈을 꾼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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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받아쓰기다. 받아쓰기는 불러주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다. 다행히 내 주위에는 삶으로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다. 내게 복이 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자세히 보아야, 오래 보아야” 이야기가 들려온다. 자본과 속도와 경쟁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풀꽃 같은 삶이 드러난다.
이 책의 공동저자는 실로암사람들 회원과 직원이다. 이들이 있어서 내가 여기 있다. 산산조각이 난 삶도 자신만의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스승들이다. 이들의 이야기가 들려올 때가 내게는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받아쓰기는 나의 생각과 삶을 벼린다. 안주하려는 마음을 다잡아 벼랑에 세우고,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 삶의 이정표를 확인하게 한다. 시간이 지났지만 만났던 사람들의 향기가 그리워 책으로 묶었다. 물론 적잖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활자로 다시 태어난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돌아보니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루를 두 번 사는 느낌이다. 아쉽게도 점점 글쓰기가 힘에 부친다.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건져 올린 삶의 흔적이 고맙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연약한 사람들에 대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몇 번의 봄을 더 맞게 될지 모르지만 간절함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의 무기는 ‘간절함’이다. 격려와 사랑으로 용기를 주신 시와사람 강경호 선생님께 깊이 감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