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EPUB
eBook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
대량학살자의 밝혀지지 않은 삶 EPUB
가격
36,000
36,000
YES포인트?
1,80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상세 이미지

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주요 등장인물
서론

1장 “제 이름은 상징이 됐죠”

1. 공적 삶으로의 길
2. 전후의 이력
3. 익명성 혐오

2장 막간극

근동으로의 가짜 흔적

3장 아르헨티나의 아이히만

1. “약속의 땅”에서의 삶
2. 고향 전선
3. 우정의 작업

4장 이른바 사선 인터뷰

1. 작가 아이히만
2. 대화하는 아이히만

5장 안전하다는 착각

6장 역할 변경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7장 막후극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 3

베티나 슈탕네트

관심작가 알림신청
 

Bettina Stangneth

1966년생의 독일 철학자이자 역사학자다. 함부르크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이마누엘 칸트와 근본적 사악함」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 논문은 『솔직함의 문화』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18세기의 반유대주의를 다룬 글을 쓰고, 계속 ‘거짓말’에 대하여 연구했다.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Eichmann vor Jerusalem, 2011)으로 독일 NDR 도서상(논픽션 부문)을 수상하고, 2015년 컨딜 역사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뉴욕 타임스』는 이 책을 2011년 최고의 책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최근 『사악한 생각』(2016), 『추악한 안목』(2018)
1966년생의 독일 철학자이자 역사학자다. 함부르크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이마누엘 칸트와 근본적 사악함」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 논문은 『솔직함의 문화』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18세기의 반유대주의를 다룬 글을 쓰고, 계속 ‘거짓말’에 대하여 연구했다.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Eichmann vor Jerusalem, 2011)으로 독일 NDR 도서상(논픽션 부문)을 수상하고, 2015년 컨딜 역사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뉴욕 타임스』는 이 책을 2011년 최고의 책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최근 『사악한 생각』(2016), 『추악한 안목』(2018)을 펴냈다. 2007년에 출간된 소설 『데카르트의 딸』(메에스터 형제 집필)에서는 칸트 책을 편집해 장미기사단의 비밀을 폭로하는 캐릭터의 실제 모델이 되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독일 예나대학교 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본대학교 아시아학부 초빙 연구원과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강릉원주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Option oder Illusion? Die Idee einer nationalen Konfoderation im geteilten Deutschland 1949-1990(선택가능한 길인가 망상인가? 1949-1990년 분단 독일의 국가연합안), 『20세기 평화텍스트 15선』이 있고, 논문으로는 「더 나은 통일안은 없었는가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독일 예나대학교 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본대학교 아시아학부 초빙 연구원과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강릉원주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Option oder Illusion? Die Idee einer nationalen Konfoderation im geteilten Deutschland 1949-1990(선택가능한 길인가 망상인가? 1949-1990년 분단 독일의 국가연합안), 『20세기 평화텍스트 15선』이 있고, 논문으로는 「더 나은 통일안은 없었는가?: 1989/90년 헬무트 콜, 국가연합 그리고 독일통일」, 「빌리 브란트, 민주사회주의와 평화의 정치가」 등이 있다.

이동기의 다른 상품

서울대 서양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과정을 마쳤다. 현재 베를린자유대학 역사문화학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독일제국 통일 무렵 바덴 가톨릭교도들의 정당 활동’ 등의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

관련 분류

카테고리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3월 19일
이용안내
  •  배송 없이 구매 후 바로 읽기
  •  이용기간 제한없음
  •   TTS 가능 ?
  •  저작권 보호를 위해 인쇄 기능 제공 안함
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42.10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59.7만자, 약 16.7만 단어, A4 약 374쪽 ?
ISBN13
9791169093712

출판사 리뷰

삼림감시원, 양계장 주인, 토끼 사육자, 벤츠 노동자로서의 아이히만

아이히만은 유대인 문제 담당관으로서 보안국을 운영했고, 1942년 반제회의 이후 독일의 유대인 말살 정책을 계획·실행했으며, 특히 헝가리 유대인 4분의 3이 사망한 데 대한 책임이 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그는 15년간 자유로운 삶을 누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전후에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정보가 아직 불충분했다. 이런 무지 덕분에 나치 인사들은 큰 처벌은 받지 않았고, 게다가 정보기관과 경찰의 무능, 무관심, 공모까지 더해졌다. 공모는 여러 수준에서 이뤄졌다. 이들은 정치적 전복 계획을 세웠고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연결망을 구축했으며, 나치의 찬란한 세계관을 옹호하기 위해 문서들을 위조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바로 아이히만이 있었다.

아이히만은 전직 나치 조직의 도움을 받아 오스트리아로 이주하면서 오토 헤닝거라는 새 이름과 집토끼 사육사라는 직업을 얻었다. 취미로 바이올린을 켰던 아이히만은 이 시기 악기 연주로 현지 여성들을 유혹하기도 했다. 또한 자신이 히틀러 아래에서 경력을 쌓은 것은 우연일 뿐, 사악한 것은 나치 정권하의 다른 사람들이었다고 주장했다. 1950년 오토 헤닝거는 돌연 유럽에서 종적을 감췄다. 대신 아르헨티나에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인물이 출현했다. 브로커들이 새로운 이름과 신분을 만들어준 것이다. 클레멘트는 수력발전소 프로젝트에 들어가 측량팀을 이끌었다. 또 그는 말을 타고 팜파스 지역을 유랑하며, 아콩카과산 등정을 할 만큼 여유로운 삶을 살았다. 아이히만의 사망신고를 했던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이쪽으로 건너와 남편과 재회했다. 헤어져 산 지 7년 만이었다. 부부는 금슬이 좋아 곧 넷째 아들을 얻었다. 그렇게 평생 클레멘트라는 이름으로 살면 아이히만은 꼬리가 밟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 문제 담당관으로 존재감을 발휘했던 그는 전원생활에 만족 못 하고 활동반경을 점점 넓혔다. 그리고 타국에서 나치 인사나 극우 언론인과 만나 자신의 신분을 드러냈다. 이 책에서 주요 자료가 되는 사선과의 대담은 1957년에 시작되는데, 두 사람이 언제 처음 만났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아르헨티나가 나치 전력을 가진 독일 이주민 사회와 깊이 연루된 사실을 숨기려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이히만은 언론인 사선에게 끌렸는데, 이유는 사선이 저술가이기 때문이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사선은 모던한 문체를 썼고, 독자를 사로잡는 비법을 갖고 있었다. 그는 극우 잡지 『길』을 통해 아르헨티나에서뿐만 아니라 전후 독일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고 있었다.

저자가 되려 하고 독자를 포섭하려는 욕망, 그리고 극우 사상에 대한 집념은 아이히만과 사선의 공통점이었다. 특히 사선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유대인들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는 책을 쓰는 데 필요한 자료와 증언을 아이히만에게서 얻어내려 했다.

하지만 1950년대 후반 홀로코스트 범죄의 윤곽이 점점 드러나면서 전 나치들의 은신처로 숨통이 조여오기 시작한다. 1959년 2월 먼저 요제프 멩겔레에 대한 체포 영장이 발부됐다. 그는 곧바로 파라과이로 숨었다. 대중이 대량학살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자 이제 신문에 아이히만의 이름이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해 3월 20일에도 아이히만은 옛 나치 동료의 도움으로 벤츠에서 창고 노동자 자리를 얻었다. 아이히만은 사교적이어서 벤츠에서도 친구들을 금세 사귀었다. 매일 왕복 네 시간 걸려 통근하던 그는 주말이면 아들들과 함께 본인 소유의 작은 땅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이 시기 아이히만은 많이 읽고, 종종 바이올린도 켰다.

가해자, 기록자, 저술가로서의 아이히만

전후 아이히만의 주 무대는 아르헨티나다. 이곳은 전후 나치 인사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나라 중 하나다. 이들이 향수에 젖을 수 있게 이곳에는 최신 신문과 책들이 갖춰져 있었고, 정치적 입장과 직위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회합을 가졌다. 아이히만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집을 구했는데, 나치의 핵심 인물들을 도피시키고, 직업을 알선하고, 부동산 중개까지 해주는 나치즘 신봉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전직 나치 정책의 실행자는 역사의 현장을 증언해줄 매우 소중한 존재였다.

아르헨티나에서 아이히만과 쌍벽을 이룬 사람은 빌럼 사선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친위대 종군 기자인 그는 고유의 문체를 가진 필자로 활약했다. 그는 이른바 ‘사선 서클’을 이끌면서 매주 아이히만을 초대해 이야기를 듣고 논쟁을 벌이며, 이 모든 내용을 녹음했다. 이 책의 후반부는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 머문 지 7년째인 1957년 4월경부터 시작해 10월 중순까지 이어진 레코딩 작업이 주를 이룬다. 거기서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이 독일의 이익을 위해 역사적으로 필요한 정책이었다면서 자신의 활약상을 자랑스레 떠벌인다.

사선은 아이히만과의 대화를 녹음함과 동시에 보조원들에게 타이핑하도록 했다. 오늘날 아이히만에 관한 주요 자료는 녹음 원본 파일, 타자화된 녹취록, 녹취록 사본, 아이히만의 저술, 그리고 아이히만의 방대한 메모들이다. 녹취록은 1300쪽 분량이고, 녹음테이프는 29시간 분량에 달해 신뢰할 만한 1차 사료가 되며, 이로써 우리는 사선의 집 거실을 들여다볼 수 있다.

여기 참석한 멤버들은 친위대 대원, 나치당 지구당 위원장, 나치 외무부 ‘유대인과’ 직원, 작가, 독일군 공군 조종사, 괴벨스 언론 담당 부관, 독일 외무부 장관 아들 등이었다. 집단 총살, 죽음으로 이끄는 강제노역, 굶주림과 가스실을 통한 살인 모두를 조망할 수 있는 인물로 아이히만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아이히만은 명성을 스스로 만들어내 이들의 시선을 끌면서 그에 소속되는 입장권을 얻어냈다.

모임의 분위기는 마치 세미나 같았다. 잡담은 일절 없고 종이 바스락대는 소리와 배려로 가득 찬 존중만 있었다. 참석자들은 매번 여러 시간 역사이론을 논하며, 문서와 전문 서적을 지칠 때까지 읽고 토론했다. 사선은 다음 모임 때까지 읽을 과제를 나눠주면서 준비를 잘해오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4년 후 예루살렘 법정에 선 아이히만은 사선 서클에서 드러낸 본모습을 은폐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는 자신이 더 이상 민족사회주의자가 아니고 지난 15년간 품행을 가다듬으며 정치와는 거리가 먼 조용한 시민으로 지내왔고, 또 반유대주의 같은 일체의 적개심을 버린 지 오래라는 방어 전략을 폈다.

그는 이스라엘 첩보 요원에게 납치돼 예루살렘 감옥에 수감되자 자기 변론을 준비하며 사선 서클에서 연습했던 토론과 대화 기술을 모두 활용하게 된다. 즉 그 대담은 결과적으로 아이히만에게 재판 예행연습이 되어준다.

아이히만은 감옥에서도 끊임없이 읽고 기록하면서 저자가 되려는 욕망을 버리지 않았다. “책의 장정과 표지는 진주색이나 비둘기색 한 가지로 유지되어야 하며, 명확하고 직선적이고 매력적인 서체가 사용되어야 한다.” 재판 후 평결을 기다리면서 그는 표지 색깔, 글꼴뿐 아니라 잠재적 편집자나 기증본에 대한 의견까지 덧붙였다.

아이히만의 심문 내용은 총 3564쪽에 달했다. 이 자료가 공개되리라는 것은 자명했기에 아이히만은 이때부터 최종 텍스트를 수정하는 데 몰두했다. 맞춤한 변명들이 보태졌기에, 이때의 진술을 1957년에 기록된 『아르헨티나 문서』와 비교해보면 미묘하게 모순되는 점들이 드러난다. 결국 예루살렘에서 아이히만이 남긴 기록은 원고, 진술 기록, 편지, 개인 서류, 이념적인 글, 개인적 메모, 여백에 적은 수천 개의 메모 등 총 8000쪽에 달한다.

***

아이히만은 자기 연출에 능했다. 따라서 슈탕네트는 아이히만의 진정한 광기가 1945년부터 시작됐다고 본다. 나치의 패배 이후 가면을 쓴 그는 예루살렘 법정에 서기 전 15년간 모두를 속일 만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1957년에 기록된 『아이히만 문서』의 저자는 아이히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슈탕네트는 이 문헌들을 읽으려는 이들에게 주의를 준다. 여기서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직접 얻길 기대해서는 안 되는데, 아이히만처럼 오로지 이해관계만 생각했던 사람이 신뢰할 만한 목격자인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문서에서 얻어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아이히만의 사고방식’이다. 왜냐하면 거짓말은 그 자신이 진실이라 여기는 심연 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은 바로 그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다.

리뷰/한줄평7

리뷰

10.0 리뷰 총점

한줄평

9.2 한줄평 총점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