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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치
최규익
삼산책방 2025.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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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평 꿈꾸는 자의 미학_윤후명

크리스틴
해류
날치
봉화
신공생대
패면(貝面)
초록문
그레고르 잠자의 계산법
조슈아 트리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1957년 강릉 출생 1980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해류』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 시작 2015년 한국 산악 문학상, 2016년 문학나무 작품상 수상 국민대학교 문예창작 대학원 및 교양대학에서 줄곧 가르쳤으며 은퇴 후 제주도 중산간에서 살고 있다. 저서 - 문명사적시각에서 본 한국근현대문학의 의미 작품집 - 『날치』 『검은극장』 『루이드가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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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3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63쪽 | 468g | 130*195*22mm
ISBN13
9791198950109

책 속으로

크리스, 그녀는 나를 모른다. 우리는 이십 년 동안 거의 매해 겨울마다 두세 번씩. 아주 멀리. 혹은 가까이에서 서로 지나쳤지만 한 번도 그 흔한 눈인사조차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나는……. 어찌 됐든 우리는 70년대 중반에서 고니가 날아오기를 그친 9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근 이십 년에 걸친 경포호수의 새 관찰자이다.

그것도 고니가 날아오는 12월 초순에서 그들이 시베리아로 돌아가는 2월 말까지 크리스는 당연히 아무 약속도 없이 호수의 겨울 인간으로 나타난다. 얼음이 꽝꽝 얼기만을 기다리는 스케이트 꾼들이나, 얼음 낚시꾼들과는 달리 우리는 혹한으로 호수가 조그만 숨구멍만 남기고 다 얼어붙을 때면 오히려 시무룩해져 입을 꾹 다물고 그곳을 뜬다. 그렇게 되면 큰고니들은 얼지 않은 또 다른 호수나 소택지를 찾아 이곳보다도 더 아래쪽으로 남하하기 때문이다.

새들이 돌아올 12월 초순쯤 특히 북북동 방향에서 힘 있는 바람이 불어올 때쯤이면 나나 크리스 같은 이들은 벌써 마음이 설렌다.

11월 말이면 벌써 마음이 싱숭 거려 무슨 추운 밤 잡화점(당시에는 슈퍼가 없었으므로)으로 종종걸음을 치는 때에도 밤의 대기 속에서 이미 바뀌기 시작한 북쪽 바람의 동향을 이리저리 읽기 시작한다. 북만주 너머 동부 시베리아 쪽의 고니들도 길고, 강한 북북동향의 바람이 올 때쯤이면 그 바람을 타기 위해 블라디보스톡 인근의 해안으로 모여든다.

큰 비행을 앞둔 그들은 근 이백여 마리로 늘어난 무리가 된다.

그리고 천공을 집중하여 관찰하며 그들을 남으로 분명하게 실어줄 수 있는 바람을 찾는다. 중도에, 가령 38° 선 훨씬 이북의 원산이나 함흥 쪽으로 한반도가 잘록하게 파인 동해 깊숙한 곳을 나를 때 바람이 중도에 끊어진다면 날개의 힘만으로 내륙의 해안에 닿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강한 새이다. 날개 길이는 2미터에 이르고 큰놈은 초등학교 입학할 즈음의 애들 몸무게 같은 15kg 가까이 나가지만(실제로 70년대 초 나무지게 막대기로 무장하고 고니를 때려잡으려던 한 늙은 초부가 저항하는 고니의 날개에 맞아 팔이 부러진 일이 지역방송에 보도된 적도 있다).

또한 그 강력함을 받치는 무게를 제비처럼 가볍게 받쳐 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바람에 대한 헤아림은 그들 종족 자체의 생존이며 그 결과 얻게 된 앎은, 오! 감히 말하건대 신적이다. 그때 그들이 가늠하는 작고, 엷고, 길고, 큰바람은 다 각각의 의지체이다. 그것을 헤아리는 무리의 수장의 눈을 한 번만이라도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들여다본 적이 있다면 오! 그 깊은 주황색의 윤채가 감도는 그 시선의 명철함과 힘을 한 번만 바라보기라도 한다면…….

--- 「크리스틴」 중에서

추천평

꿈꾸는 자의 미학

외로움과 괴로움과 즐거움 등의 낱말이 와락 달겨든다. 근래의 소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원초적인 문학 생명과 맞닥뜨린 때문일 것이다. 더군다나 소설은 내 고향이기도 한 강릉을 무대로 하여 나를 끌어당긴다. 작품을 펼쳐보며, 인구 비례로 보아 퍽이나 많은 소설가들 가운데 강릉을 직접적으로 다룬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오래 전부터 이방인인 나는 고향 이미지에 동화되며, 한편 길항(推抗)한다. 고향은 자기 연민이며 또한 자기 혐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동화와 길항, 이 두 갈랫길에서 나는 이 소설들을 향한 이정표를 읽는다.

그러나 어느 편인가, 그는 소설에 의하면, 결코 고향을 떠나지 않는다. 그것은 겨울이면 어김없이 경포 호수에 날아오던 고니의 모습으로 강렬하게 표상된다. 주인공은 ‘경포 호수의 새 관찰자’로 ‘흰 새’를 살핀다. 그런 그의 옆에 크리스틴이 있다. 어느 해 겨울이 지나도 시베리아로 돌아가지 않은 수컷 고니를 발견한다. 수컷은 암컷의 주검을 맴돌며 떠나지를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이 사실을 이미 한국을 떠난 크리스틴과 교감하며 자연과 인간의 혼연으로 승화시킨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사랑은 ‘흰 새’의 운항처럼 강릉 호수를 떠나지 않는다. 아니, 그곳에 전부를 다 바친다.

크리스틴은 사막을 130km로 달리다 말고 텅 빈 평원 어디쯤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점점 더 그 소리는 크리스의 가슴을 스쳐 지나가는가 했더니 그 소리는 그녀의 심연의 안쪽에서부터 폭발하듯 터져 나와 순식간에 검은 문을 ‘쾅’ 소리 나게 터트리듯 열어젖힌다. 열주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검은 문 속이 그녀의 시야를 꽉 메운다. 무적(霧笛)이 그녀의 몸 전체를 ‘뚜우우’울리며 들이닥치고 있다. 그녀의 목숨을 경험하는 그 소리는 그녀를 싣고, 동시에 그녀를 통과하면서 대평원의 먼 곳까지 전속력으로 알 수 없이 거대한 빛의 바퀴처럼 질주하고 있다.

‘나’와 크리스와 백조가 번갈아 화자가 되어 결말에 이르는 과정은 앤티 클라이맥스에서 클라이맥스로 이르는 길의 ‘으아아아악’으로 표기되는 새 울음소리와 함께 읽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오염되지 않은 아름다운 언어의 시(詩)가 사랑의 울림을 읊는다. 서정과 서사가 합류하는, 흔치 않은 귀일은 읽는 이조차 자신이 사람인지 새인지 모를 혼융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이러한 합일 혹은 변용이라는 장자(莊子)적 미학의 발로는 여러 작품에서 핵심 사상으로 반추된다.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을 여기에 두고 결말을 에두르는 태도가 다소 철학적이지만, 그 힘듦이 소설 미학을 한결 순실(淳實)케 하는 미덕이 있다.

사내는 숨을 진정시키자마자 범나비처럼 그 꽃 위에 날아 올라가 가만히 앉았다. 그는 발가락으로 단단히 꽃의 수술을 움켜잡고 날개를 오므렸다 펴서 균형을 잡았다.〈신공생대〉

그의 소설을 읽으면 시종 ‘순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독처럼 그의 뼛속에 스며 있어서 남에게까지 ‘인(燐)불’을 옮겨 붙인다. 때묻지 않은 이 세계에 이제 당혹스럽지 않은 자 몇 있으랴.

오래전에 〈강원일보〉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온 그가 뒤늦게 내놓는 이 작품집에서 한 순정한 인간의 모습과 그가 인류적으로 고뇌해온 극복, 초월의 문제를 다시금 생각한다. 비상(飛翔)에의 의지가 순수결정(純粹結晶) 속에 살아 있는 풍경이다. 이 ‘막다른 골목’은 강릉 중앙시장에도 있고, 대관령에도 있고, 광화문에도 있다. 그래서 그의 신분이 수상 안전원이든 군인이든 노숙자든 무엇이든 그는 항상 꿈꾸는 자일 뿐이다.

이 소설들에서 그가 카일라스, 수미산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꿈을 완성시켜줄 길이기 때문에 그는 고행길에 서 있다. 고행길? 그러다가 나는 그만 고향길을 떠올린다. 고향길에 서 있는 그가 내게는 더한 아픔을 준다. 수미산으로 가던 발길은 멈추지 않았는데, 그가 아직도 가는 길은 내 고향 강릉길.

나 또한 강릉의 강문 바닷가 진또배기를 바라본다. 신성한 솟대가 서 있는 곳이다. 그도 나도 그곳을 저버리지 못하는 데서 우리의 운명은 묶여 있다. 그의 소설에서 동류항으로서의 연민을 느끼는 것이 내 몫인 것을 깨닫고, 나는 또 다른 그가 되어 대관령과 수미산을 향하여 새로운 길을 떠난다. 그의 소설이 내게 보내준 길라잡이를 앞에 세우고. - 윤후명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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