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추천사
루이 드가의 편지 작가의 말 |
|
“야, 타잔!” 하고 트라콩이 날 불렀다. 트라콩 1973년 상영된 프랑스 애니메이션, [판타스틱 플래닛]에서 인간을 애완동물로 다루는 거인 종족의 이름이 트라그이다. 트라콩은 이 소설에서 새로 만들어진, 트라그와 콩의 합성어다. 트라콩은 인간의 눈으로 보면 킹콩처럼 거대하기만 하겠지만, 트라그족들 사회에서는 눈이 동그란, 한 젊고 예쁜 여성이다.
혹은, 줄여서 틀콩, 더 줄여서 콩이라고도 불리우는 그녀가 내게 말한다. “타잔, 너 나랑 이거 해볼래? 우리 서커스를 하자. 처음엔 칭찬받다가 축축해져서 혼자 정글로 돌아가는 게임. 우선 세 번만 콩콩 뛰어줘, 이 게임은 서커스니까. 그리고 말해라 타잔. 아니 아니, 내가 우선 관객들을 위해 간단한 노래를 하마. “타잔이 십원짜리 팬티를 입고, 이십 원짜리 칼을 차고 노래를 한다, 아아아-” 이건 고무줄 할 때 부르는 노래야. 난 뒷발로 내 키를 넘어서까지 고무줄을 감았었다. 노래를 부르며 말야. 타잔 팬티 얘기는 지금 막 내가 지어낸 거고, 음, 가사가... 실은, 이거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그리고 한참 더... 한참 더, 고무줄을 하면 얼굴이 고구마가 된다.” 그녀가, 그러니까 틀콩이 계속 말한다. “그때 난 초3 때야. 자다가 눈떴는데 언니들이 속닥거렸어. 고등학생인 둘째 언니가 말한 것 같아. 자긴 ‘옥보단’을 봤다고. 그래서 나도 엄마 아빠 없을 때 비디오로 ‘옥보단’을 봤어. 난 여자가 남자를 깨물다가 거의 먹어버리는 걸 봤지, 암 사마귀처럼...... 그랬어. 그래 됐다. 재밌는 얘기는 됐고, 이젠 타잔, 말 나온 김에 ‘옥보단’처럼 너를 묶어야겠다, 난 청개구리 심보야. 뒤틀리면 무서워지니까 조심하고.” 그렇다. 조심해야 한다. 틀콩이 한 다리만으로 무거운 몸을 들어 올리는 빡센 필라테스 수업을 막 끝냈던 며칠 전. 스피커에선, 다시 고무줄놀이 하기를 명하듯이,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가 울려 퍼졌다고 했다. 추억의 그 고무줄 노래 때문에 그날, 그녀는 같이 수업 듣는 거친 사나이들과의 술자리를 허락했다. 그날 소맥에 잔뜩 취해 노래를 부르다가 집에 돌아온 그녀는, 집에 돌아와서도 노래를 불렀다.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였다. ‘넌 콜롬비아로 가서 저널리즘이나 법을 공부해야지. 그런데 남친이 노를 젓는다고?’ 뭐 그런 노래였다. 노래를 마치자마자 그녀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 떠 올랐다고 했다. 아이템은 서귀포에서 자기 같은 뚱녀만을 위한, 뚱녀 전용 섹시 속옷 가게라고 했다. 속옷들은 말할 수 없이, 아주 아주 야해야 하며 매장은 커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서로 부딪치지 않고, 무엇보다 매장이 커야만 서로서로 눈치 보지 않으면서 구경이 가능하다는 거였다. 그러더니 겉옷도 벗지 않고 몸을 침대가 출렁이도록 휙 집어던진 후, 마치 그날의 유언처럼 중얼거렸다. “너네 같은 말라깽이들은 이 살의 기쁨을 몰라. 이것 봐. 침대에 옆으로 누워 이렇게 배를 쫙 깔면, 살들이 마치 빈 곳을 메우듯이 바닥으로 흘러내려 아주 편안해. 몸 전체가 바닥에 딱 붙는 것 같아. 평평한 큰 바위에 짝 달라붙은 전복처럼 말이야. 게다가 질감이 탱탱하기까지 해. 이 탄력 만점인 몸 위에 내가 올라탄 기분. 호호호. 내 배는, 내 배의 천연 베개야! 이 기분을 너네가 어찌 알겠니. 쯧쯧 불쌍한 것들.” 그리고 그녀는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의 가사처럼, 저널리즘을 공부하려다 말고 남친의 노 젓는 소리에 갑자기 흥이 올라오기나 한 여자이듯, 등대의 무적 같고, 뿔 나팔 소리 같은, 장중한 코골이를, 눈을 감자마자 시전하더니, 불과 몇 초 후에 머리를 다시 치켜들고 내게 “자기 우주선은 어떻게 생겼어?” 하고 말했다. 불과 5초 사이에 그녀는 먼 우주여행을 다녀온 듯했다. 그리고 배시시 웃으며 다시 순식간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본문 중에서 |
|
빠삐용은 어디 있는가
이 뜻깊고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 데 몇 날 며칠이 흘렀다. 이 소설을 읽어내자면 일단 인제 내린천부터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 아니, 그냥 여행이 아니라 탐험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탐험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간단히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탐험은 인문학까지도 계속되어야 하며 여기에 인류학이 곁들여지는 것이다. 드가라는 명칭이 빠삐용의 올가미라는 사실을 알면서부터 이 작가의 원대한 구도는 눈을 뜬다. 그러고 보면 이 작품은 끝없는 ‘눈뜨기’이기도 하다고, 수긍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소설이다! 하고 나는 내심 알기 시작한다. 하지만 결코 쉽지는 않은 수긍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구조 속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알게 되는 방법을 얻어야 한다. 그러므로 철학적 방법이다. 이것이 철학이 아니고 무엇이랴! 옆에서 20년 넘도록 보아왔지만 모르고 있었던 한 철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나는 말한다. 그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헤맸던 저 여행 속에 나는 나를 찾아 알기 시작한다. - 윤후명 (시인,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