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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만화영화 속 작은 세계
세느강의 별, 내 모든 것의 원형 _『세느강의 별』 첫 번째 결혼기념일에 첫사랑을 재회했다 _『명탐정 셜록하운드』 나도 쌍둥이 자매가 있었으면 좋겠어 _『요술소녀』 황혼보다 어두운 자여 내 몸에 흐르는 피보다 붉은 자여 _『마법소녀 리나』 당신이 세일러 문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_『달의 요정 세일러 문』 평범한 사람에게는 평범한 사람만의 행복이 있지 _『빨간 머리 앤』 천사소녀 네티는 10만 원을 훔쳐 갔습니다 _『천사소녀 네티』 코끝에선 화 입안에선 후! 당신의 첫 민트는 무엇이었습니까? _『뾰로롱 꼬마 마녀』 다들 유체리처럼 롤러블레이드 신고 등교해본 적 있죠? _『카드캡터 체리』 2장. 남자아이의 로망? 아니, 모든 어린이의 로망! 로봇을 사랑하는 마음, 로봇과 사랑하는 마음 _『로봇수사대 K캅스』 그렇게 어른이 된다 _『절대무적 라이징오』 나는 당근이 싫어요! _『번개전사 그랑죠』 피구는 아무 잘못이 없다 _『피구왕 통키』 언젠가 나에게도 공룡 친구가 생길지 몰라 _『공룡대행진』과 『사우르스 팡팡』 공을 차는 공주는 어디든지 간다 _『쥐라기 월드컵』 어린이는 어른이 없는 사이에 자란다 _『공룡시대』 3장. 어린이는 만화영화를 통해 어른이 된다 요즘 아이들은 ‘자축인묘 진사오미 신유술해’를 어떻게 외우나요? _『꾸러기 수비대』 내 침대 밑 천사의 립스틱 _『웨딩피치』 그리고 마침내 2020년이 도래하고 말았습니다 _『2020 우주의 원더키디』 욕심쟁이 오리아저씨, 언제쯤 저도 금화의 바다에서 헤엄치게 될까요? _『디즈니 만화동산』 열한 명의 도플갱어가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_『시간탐험대』 기분이 ‘룬룬’한 날, 꽃의 천사 루루가 나타나기를 _『꽃천사 루루』 신데렐라는 계모와 언니들과 화해할 수 있을까? _『신데렐라 이야기』 우리 도깨비가 좋은 것이여 _『꼬비꼬비』 누가 우리의 눈물을 부정하는가 _『흙꼭두장군』 나는요 아직도 둘리가 좋은걸 _『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저자의 말: 와츄고나두(what you gonna do) |
박복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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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990년대에 태어난 오타쿠에게 최초의 이국(異國)은 어디일까? 역시 일본일까? 나의 경우는 의외로(!) 프랑스와 영국이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당시 우리나라 방송국에서 수입하여 틀어주었던 만화영화들이 대부분 프랑스와 영국을 배경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쌍둥이 줄루 줄리〉 〈쾌걸 조로〉 그리고 〈세느강의 별〉까지 그러했더랬다.
--- 「세느강의 별, 내 모든 것의 원형」 중에서 그 친구의 이름을 진이라고 하자. 진이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난 오타쿠였다. 사실 나의 ‘덕질’은 대부분 진이에게 빚지고 있다. --- 「황혼보다 어두운 자여 내 몸에 흐르는 피보다 붉은 자여」 중에서 〈세일러 문〉 1화를 봤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1997년의 만우절, 역사적인 그날. 반지하집의 안방 TV 앞에 무릎을 감싸 안고서 앉아 있는 나. 이윽고 유명한 ‘그 노래’가 TV에서 흘러나온다.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 --- 「당신이 세일러 문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중에서 앤은 말했다. “정말로 행복한 나날이란 멋지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날이 아니라 진주알들이 하나하나 한 줄로 꿰어지듯이 소박하고 자잘한 기쁨이 조용히 이어지는 날들인 것 같”다고. 물론 나의 일상에 진주알 같은 자잘한 기쁨이 늘 있지는 않다. 그래도 지나고 보면 나를 혼자 웃음 짓게 만드는 일이 잔뜩 있었다. 다들 그럴 것이다. 그래, 앤의 말처럼. --- 「평범한 사람에게는 평범한 사람만의 행복이 있지」 중에서 지난겨울에 〈빨간 망토 차차〉의 중고 완구(마법의 화살! 불사조의 검!)를 살까 말까 고민하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누군가가 먼저 구입해버리는 일을 겪은 이후로 고전 마법소녀물에 등장하는 완구를 향한 광기는 더욱 커져만 가는 중이다. 어차피 어릴 때처럼 갖고 놀지도 못할 거면서. --- 「천사소녀 네티는 10만 원을 훔쳐 갔습니다」 중에서 ‘내 인생 첫 민트’라고 쓰는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엄마가 반으로 찢어서 내밀던 ‘후라보노’ 껌이었다. 엄마를 따라서 은행에 간 어린 나. 1990년대에는 은행원들이 모두 창구에서 고객을 응대했다. ATM은 고사하고 컴퓨터조차 느릿하던 시절, 고객들은 용무를 보기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때가 많았다. 그런 그들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서 은행원들은 껌을 내밀곤 했다. 그때 초록색 후라보노 껌을 씹으면서 처음 민트 맛을 알았다. 그 오묘하고 화-한 맛이란. --- 「코끝에선 화 입안에선 후! 당신의 첫 민트는 무엇이었습니까?」 중에서 네 명의 여성으로 이루어진 작가 집단 클램프는 1980년대 중반에 급조한 동인지 서클로 시작했는데 그때만 해도 열한 명이나 되는 대인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흔히 그렇듯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 최종 멤버 네 명만이 남았다. 클램프의 모든 작품은 오오카와 나나세가 대부분 스토리를 짜고, 나머지 멤버들이 작화나 디자인 작업들을 나눠서 한다고. --- 「다들 유체리처럼 롤러블레이드 신고 등교해본 적 있죠?」 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봇과 인간이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이야기를 보면 ‘가능성’을 믿게 된다. 로봇과 인간에게 가능했듯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완전한 ‘사랑’이 가능할 거라고 말이다. 로봇강아지 아이보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평소에는 전원을 꺼두고 있다가, 정말 정말 보고 싶을 때에만 전원을 켠다는 어떤 오너처럼. --- 「세느강의 별, 내 모든 것의 원형」 중에서 못 먹는 음식을 억지로 먹으려고 애쓰지 말자. 마지막 화에서 민호는 지구로 돌아가는 우주 여객선의 기내식으로 나온 당근을 먹었지만, 나는 어린이 만화영화 속 주인공이 아니기에 영원히 당근을 골라내며 살 수 있다. 당근을 싫어하는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고, 당근을 좋아하는 척하지 않아도 된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 「나는 당근이 싫어요!」 중에서 그러니까 내 가설이란, 모든 아이는 이른바 ‘공룡기’를 거친다는 것이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 접어들면 갑자기 공룡의 포로가 된다. 온갖 공룡 물품을 수집하고, 공룡 관련 영상만을 보며, 공룡 이름을 줄줄 꿰고 다닌다. 흔히 남자아이들이나 공룡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만 봐도 그렇다. 그리고 여기 있는 S를 보시라. 참고로 공룡기라는 것은 내가 멋대로 붙인 이름이다. 공룡기가 지나면 자동차기, 로봇기, 포켓몬기(!), 공주기, 마법소녀기 등등이 따라온다. 아이의 성향에 따라 이 모든 것이 전부 올 수도 있고 몇 개는 빠질 수도 있지만, 적어도 하나는 꼭 온다는 것이 이 가설의 최종 결론(?)이다. --- 「언젠가 나에게도 공룡 친구가 생길지 몰라」 중에서 〈쥐라기 월드컵〉의 본래 제작 취지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는 공주는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준 만화영화다. 이제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공주는 그저 신분에 불과하기에 긴 치맛자락을 늘어뜨리지 않아도, 반짝이는 티아라를 쓰지 않아도 여전히 공주라는 것을. 그리고 공주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것을. 공을 찰 수 있고 몸싸움도 할 수 있다는 것을. --- 「공을 차는 공주는 어디든지 간다」 중에서 신데렐라만큼 어린 나이에 나도 부모님을 용서해야만 했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여야만 했다. 법정에 서서 나는 아빠를 용서했다고, 그러니 용서해달라고 재판관에게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비웃었다. 내가 시 외곽에 있는 가정법원까지 누구 차를 타고 왔게요? 사실 나뿐만 아니라 가정폭력을 겪은 모든 이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 「신데렐라는 계모와 언니들과 화해할 수 있을까?」 중에서 아, 난 〈흙꼭두장군〉을 볼 때나 맘 놓고 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맘 놓고 울 수 있었던 때는 그 정도로 어린 시절뿐이었던 것 같다. 내가 입학했던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뀐 뒤부터 나는 맘 놓고 우는 법을 잊어버렸다. 나뿐만 아니라, 〈흙꼭두장군〉을 보고 울었던 모든 이가 그랬을 것이다. --- 「누가 우리의 눈물을 부정하는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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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러 문〉 〈슬레이어즈〉 〈카드캡터 체리〉
〈피구왕 통키〉 〈아기 공룡 둘리〉 ‥·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만화영화가 이 책 속에 다 들어 있어요 저자는 말한다. 우리 세대는 만화영화의 황금기를 살았던 것이 틀림없다고. 실제로도 그런 듯하다. 1980년대 후반생인 저자가 어릴 적 즐겨 보던 만화영화들이 그로부터 한 세대를 훌쩍 넘긴 오늘날까지도 추억과 그리움이라는 태그를 달고 자주 회고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 책은 총 스물일곱 개의 만화영화 작품들을 다룬다. 그중에는 〈달의 요정 세일러문〉 〈아기공룡 둘리〉 〈천사소녀 네티〉처럼 누구나 이름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정도로 유명한 만화영화들도 있고, 〈흙꼭두장군〉 〈꽃천사 루루〉 〈공룡대행진〉처럼 알 만한 사람만 아는 마니아층 두터운 만화영화들도 섞여 있다. 하지만 누구든 이 책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책임져주었던 작품을 최소 하나 이상은 재회하게 될 것이다. 만화영화에 얽힌 기억들은 유쾌하고 달콤하기도, 고백적이면서 쌉싸름하기도 하다. 〈마법소녀 리나(슬레이어즈)〉를 좋아하는 친구 몰래 〈달의 요정 세일러문〉을 좋아하다가 한참 냉전을 벌였다는 귀여운 에피소드를 소개하는가 하면, 학자금 대출 상환에 허덕이던 사회 초년생 시절 문득 〈디즈니 만화동산〉의 ‘욕심쟁이 오리아저씨’를 다시 떠올렸던 일화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에는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도 씻겨 나가거나 깎여버리지 않고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반짝반짝한 무언가가. 각 만화영화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과 제작 비화 등도 알차게 담았다. 추억의 만화영화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기회도 주는 책이다. 내가 열렬히 사랑했던 것들이 나에 대해 말해줄 수 있을까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작품을 열심히 소개하는 작가의 모습은 만화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그 엉뚱함, 순수함, 재치,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까지. 어쩌면 어린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만화영화들은 그렇게 이미 우리의 삶에 완전히 용해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런 상태를 ‘오타쿠’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한 번쯤 생각해보자. 내가 지금 열렬히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러한 취향은 어디서 왔는가에 대하여. 어른이 되어서도 안경 쓴 사람을 보면 왠지 모르게 호감이 생긴다는 누군가는 자신의 취향을 되짚어 올라가는 과정에서 어릴 적 본 만화영화 속 안경을 쓰고 다정다감한 캐릭터를 만나기도 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은 언제나 그렇게 우리의 일부가 되는 듯하다. 이제 만화영화만으로 순전한 기쁨을 느끼기에는 너무 커버렸지만, 우리가 깊이 몸담아버린 현실은 상상 그 이상이라 만화영화 속 시련과 모험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지만, 그래도 이따금 힘들고 지칠 때는 떠올려보자.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할 추억의 만화영화 속 친구들을. 마법소녀처럼 사무실 책상 위로 날아올라 화려하게 변신하는 것까지는… 어렵겠지만, 이 또한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무적의 용기가 솟아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