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앤이라이자의 역사는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멀티 플레이어인 호리에 히로히사(Hirohisa Horie)와 디제잉 및 시퀀싱 능력이 탁월한 마츠다 가쿠지(Gakuji Matsuda)가 만나면서 새로운 시부야의 아침은 시작됐다. 시부야 팝이 갖고 있는 복고적인 사운드 패턴과 재기발랄한 클럽 뮤직에 조애가 깊은 뮤지션의 조합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애초부터 팀 내의 황금 분할은 이루어진 셈이다.
트라토리아를 비롯한 많은 레이블과 남다른 교류가 있던 에스컬레이터는 자신들의 레이블에 활력소가 될 새로운 얼굴을 상당히 원하는 상황이었고, 자연스레 음반 제작이 이루어졌다. 1996년 출사표 형식으로 발표된 데뷔 미니 앨범 "I Love NY"을 통해 닐앤이라이자는 뜻하지 않은 큰 성과를 거둔다. '초도나 다 팔리면 좋겠다'라는 심산에서 프레싱한 900장이 순식간에 동이 났고, 연이은 매진 행진은 2개월 만에 1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게 됐다(이는 지금도 일본 시부야 언더그라운드 씬의 전설로 회자된다). 많은 매장과 매체에서 강추하는 음반 대열에 오르면서 닐앤이라이자의 음반은 현재까지도 꾸준히 팔려나가는 스테디 셀러로 평가 받고 있다.
새로운 일본 인디팝의 간판스타로 발돋움한 닐앤이라이자의 소문은 멀리 유럽에도 흘러들어가, 몇몇 매체에서 취재 요청이 왔고, 결국 그들이 추구하는 유럽 성향의 사운드를 내기 위해 프랑스에서 녹음 작업을 펼쳤다. 프로듀서 길 마탄(Gill Martan)과 함께 작업한 1997년 정규 1집 앨범명은 "Johnny Marr?". 영국 모던록의 전설 스미스의 기타리스트를 앨범 명으로 택했다는 이유만으로도 화제를 모은 그들은 '인디팝의 수준을 뛰어넘었다'는 평가와 함께 영국 잡지 '멜로디 메이커'에 대서특필 됐다.
화려하게 신고식을 치룬 닐앤이라이자이었지만, 여기저기의 요청이 많다보니 그 이후의 팀 활동은 지지부진했다. 호리에 히로히사는 브릿지(Bridge) 출신의 명 뮤지션 카지 히데키(Hideki Kaji) 밴드의 멤버로 활동하며 조인트 작업물들을 발표했고, 이후 프로듀서로의 겸업을 선언하며 음악 채널 VJ로 활동한 초콜릿(Chocolat), 여성 뮤지션 가토 노리코(Noriko Kato) 등의 스웨디쉬팝, 시부야계 뮤지션 앨범을 작업했다. 그는 최근까지도 코넬리우스, 그레이트 3, 러브 싸이키델리코(얼마전에 펼쳐졌던 이들의 서울 공연에도 세션으로 내한) 등 굵직한 대형스타들의 앨범과 공연에 세션으로 참여하고 있다. 다른 멤버인 마츠다 가쿠지의 개인 행보 역시 숨 가쁘다. 쿠비스모 그라피코 화이브(Cubismo Grafico Five)라는 이름의 그룹 활동과 Five를 뺀 솔로 활동을 병행하며, 다수의 음반을 발표하였다(최근에는 FOGA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로 음반을 발표하였다). 게다가 영화음악에 까지 범주를 넓혀 활동하고 있는데, 특히 국내에도 개봉한 영화 'Water Boys'의 사운드트랙을 통해 'Japan Academy Award'의 음악상을 받은 경력도 있다.
'Juillet', 'Wasted time' 등 두 장의 싱글을 발표하며 자신들의 건재함을 보여준 닐앤이라이자는 무려 3년간 작업한 결과물을 모아 정규 2집 "New School"을 통해 다시금 화제를 만들었다. 보다 다양하고 실험적인 사운드가 집결된 "New School"은 세계 시장을 겨냥하고 만든 앨범. 전작들과는 다르게 싱글 커트가 용이한 다수의 작품들이 수록되었으며, 과거 소박했던 편곡 패턴에서 벗어나 다양한 악기 사용이 이목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