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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천하’ 갑신정변의 청년 주역ㆍ〈독립신문〉창간자,
한국 근현대 르네상스人 서재필의 치열한 삶! 우리에게 서재필은〈독립신문〉 창간자, 한국인 최초의 서양[洋方] 의사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생애를 깊이 캐면 ‘노다지’ 금맥 같은 스토리가 드러나 웅대한 스케일의 TV 대하드라마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가 우리 역사에 남긴 큼직한 족적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쿠데타 주역, 무인(武人), 연설가, 독립투사, 체육인, 기업인, 의학자, 문필가…. 일생에서 한 사람이 이렇게 다역(多役)을 맡을 수 있을까. 그가 지닌 ‘한국인 최초’ 타이틀만도 수두룩하다. 격동의 구한말에 태어난 서재필은 조국에서 세 번이나 쫓기듯 망명했다. 이토록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풍운아 서재필은 광복 이후 그를 존경하는 추종자들에 의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서재필은 1864년 동복(지금의 보성) 군수 서광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런 그가 개화사상을 접하게 된 것은 서울에 사는 외숙 김성근의 집에 기숙하면서부터였다. 김성근의 집에 드나들던 김옥균ㆍ박영효ㆍ홍영식ㆍ서광범 등 청년 개화파 지식인들과 자연스레 만나게 된 것이다.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된 서재필은 일본 토야마군사학교에서 한국인 최초로 서양식 군사교육을 받는다. 귀국 후 우정국 낙성식 축하연을 계기로 김옥균, 박영효 등과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비록 3일 천하로 막을 내렸으나, “그 필사적 운동의 동기는 다른 것이 아니고 단순히 최고형의 애국심뿐이었다”고 그의 회고록에서 밝혔다. 신변의 불안을 느낀 서재필은 미국으로 망명하였고, 콜롬비안대학교(현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수학하여 한국인 최초로 의학사(M. D.)를 받았다. 1895년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 서재필은 1896년 4월 7일, 최초의 한글신문〈독립신문〉을 창간했다. “우리 신문은 조선인을 위한 조선을 주장한다”는 비장함과, 선구자로서의 계몽의식을 담아 내딛은 큰 한 걸음이었다. 이후 독립협회, 독립문 준공, 만민공동회 등으로 개화운동에 힘쓰다가, 수구파와 일본ㆍ러시아 세력에 의해 다시 미국으로 쫓기듯 돌아갔다. 그가 다시 조국땅을 밟은 것은 1947년, 그의 나이 83세 때였다. 하지만 다음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는 감격을 지켜본 후 다시 미국으로 망명해 이국땅에서 생을 마친다. 조국애에 피가 끓었던 청년 서재필이 점차 원숙미를 더해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의 큰 재미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둘을 제외하고는 모두 실존인물이다. 기자 출신 저자의 치밀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또한 조선ㆍ일본ㆍ미국을 넘나드는 광대한 공간적 배경과, 임오군란ㆍ아관파천ㆍ을사늑약ㆍ한일합방 등, 굴곡진 근현대사를 대변하는 역사적 사건들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얽어냄으로써, 서재필의 파란만장한 삶을 잘 드러내는 효과를 거두었다. 사교계의 요정 손탁으로부터 “조선이 낳은 최고의 쾌남아”라는 감탄 섞인 극찬을 들었던 조선의 르네상스인 서재필. 탄생 150주년을 맞는 지금, 그의 격동적인 삶을 문학으로써 재조명하여, 지식인 서재필이 ‘세 번의 망명’이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근현대사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