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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헬렌 켈러, 그 위대한 용기와 신념
2. 이 투명한 은혜로움 속에서
3. 나의 신앙과 스웨덴보리
4. 스웨덴보리에 대하여

저자 소개 1

헬렌 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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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 Adams Keller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를 이겨낸 미국의 사회사업가, 작가다. 1880년 6월 27일 미국 앨라배마 주의 터스컴비아에 있는 비교적 풍족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9개월 만에 열병을 앓고 난 후 시력과 모두 청력을 잃었다. 일곱 살 때인 1987년 가정교사 앤 설리번을 만나, 사물에 이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을 통해 헬렌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되었다. 설리반은 10살 이후 남동생과 함께 고아원에서 학대와 고통 속에서 성장했다. 뿐만 아니라 불결하고 빈약한 환경에서 남동생을 떠나 보내야만 했고, 그녀 본인은 눈병에 걸려 실명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다. 설리반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를 이겨낸 미국의 사회사업가, 작가다. 1880년 6월 27일 미국 앨라배마 주의 터스컴비아에 있는 비교적 풍족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9개월 만에 열병을 앓고 난 후 시력과 모두 청력을 잃었다. 일곱 살 때인 1987년 가정교사 앤 설리번을 만나, 사물에 이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을 통해 헬렌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되었다. 설리반은 10살 이후 남동생과 함께 고아원에서 학대와 고통 속에서 성장했다. 뿐만 아니라 불결하고 빈약한 환경에서 남동생을 떠나 보내야만 했고, 그녀 본인은 눈병에 걸려 실명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다. 설리반은 겨우 20살이었지만 헬렌 켈러의 고통을 이해해줄 수 있는 인내심과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설리반이 없었더라면 아마 위대한 사회사업가 헬렌 켈러는 존재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삼중 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헬렌은 난폭하고 거칠었으나 장애의 고통을 잘 이해해주는 훌륭한 스승 설리반 덕분에 그녀는 지적으로 큰 성장을 거둘 수 있었다. 그 해 7월부터 점자 공부를 시작한 헬렌 켈러는 1890년에는 보스턴의 농아 학교 플러 선생님으로부터 발성법을 배워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899년 하버드 부속 래드클리프 대학에 입학하였고 마침내 1904년 일반인도 입학하기 어렵다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바로 그 해 센트 힐 박람회에서 '헬렌 켈러의 날'이 제정되어 헬렌은 처음으로 강연을 하였다. 그 후 그녀는 처음으로 전세계의 장애인들을 위한 활동을 펼치게 되었으며 사람들에게 큰 희망과 복음을 심어 주었다. 그녀는 미국 본토가 아닌 해외에서도 강연 여행에 나섰으며 생전에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다(1937년). 1942년에는 제 2차 세계대전의 부상병 구제 운동을 전개하였다. 1952년에는 프랑스의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수상하였고 1964년에는 미국의 최고 훈장인 자유의 메달을 수여 받았다. 그녀는 풍부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뛰어난 문필가이기도 했다. 1968년 88세를 일기로 코네티컷에 있는 자택에서 영면했다.

그녀의 저서로는 『신앙의 권유』, 『나의 종교』, 『암흑 속에서 벗어나』, 『나의 생애』, 『사흘만 볼 수 있다면』 등이 있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은 헬렌 켈러가 22세에 쓴 아름다운 자서전 『내가 살아온 이야기』와 50대에 이른 그녀가 자신의 눈이 뜨여 3일간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는 상황을 가정하고 쓴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을 완역한 책이다. 53세에 쓴 수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선정한 작품이기도 하다. 시력과 청력 대신 풍부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던 헬렌 켈러의 작품은 정밀하고 섬세한 묘사가 특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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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1994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47쪽 | 크기확인중
ISBN10
XX00144433

책 속으로

드디어 1899년 6월 29일과 30일, 이틀에 걸쳐서 래드클리프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시험을 치렀다. 첫날에는 초급 그리스어와 고급 라틴어 시험을 치렀고, 다음날에는 기하학,대수학,고급 그리스어 시험을 치렀다.

대학의 당국자는 설리반 선생님이 나를 위해 시험문제를 읽어 주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대신 퍼킨스 맹아학교의 선생인 유진 바이닝씨에게 의뢰해서 시험문제를 미국식 점자로 고치게 했다. 어학시험은 점자로 충분히 치를 수 있었다. 그러나 기하학과 대수학의 경우엔 더욱 그러했다. 나는 낙심했다. 미국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는 문학적인 점자는 잘 알고 있었지만, 기하학과 대수학의 부호나 기호 등을 나타낼 때 쓰이는 세 가지 형식의 점자에는 숙달되어 있지 않았다.

--- p.79

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1890년 봄부터 였다.
나느 말을 하고 싶은 본능이 매우 강해서 언제나 한 손을 목에 대고 다른 손은 입에 대고 소리를 내곤 했다. 내게는 입으로 어떤 소리를 내는 것이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고양이가 '야옹야옹'하거나, 개가 '멍멍' 짖으면, 그 목에 손을 갖대 대고 혼자서 좋아하곤 했다.

시력과 청력을 잃어버리기 전에는 나도 말을 무척 빨리 외울 수 있었지만, 귀가 먹은 후로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종일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서 어머니의 얼굴에 손을 대고 있었다. 어머니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는 것이 매우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흉내내어 입술을 움직여서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을 지껄이곤 했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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