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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자 연구
양장
김영원
일조각 2025.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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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제1부 한국 도자

한국 도자의 역사와 특징
Ⅰ. 머리말
Ⅱ. 시유 도기와 고화도 자기의 출현
1. 삼국시대의 녹유 도기 / 2. 통일신라 녹유의 유행과 자기의 발생
Ⅲ. 고려 청자의 세련미, 비색과 상형
1. 청자의 종류와 특징 / 2. 청자의 발달
Ⅳ. 조선 분청사기의 파격, 해학과 추상
1. 분청사기의 종류와 특징 / 2. 분청사기 가마터 / 3. 분청사기의 발달
Ⅴ. 조선 백자의 신경향, 우아함과 간결함
1. 백자의 종류와 특징 / 2. 분원 관요와 왕실백자
Ⅵ. 맺음말

제1장 한국 도자의 탄생
백제시대 중국 도자의 수입과 방제
Ⅰ. 머리말
Ⅱ. 중국 도자의 수입 경로
Ⅲ. 중국 도자의 수입
1. 한성시대 / 2. 웅진시대 / 3. 사비시대
Ⅳ. 중국 도자의 방제
1. 부여 정림사지 / 2. 부여 능산리사지 / 3. 익산 미륵사지 / 4. 부여 금성산사지
Ⅴ. 맺음말

통일신라시대 녹유의 발달과 자기의 출현
Ⅰ. 머리말
Ⅱ. 통일신라의 대중교섭
Ⅲ. 당삼채의 수입과 신라녹유의 발달
1. 당삼채 출토 유적 / 2. 신라녹유의 시원과 특징 / 3. 신라삼채
Ⅳ. 중국 자기의 수입과 신라 자기의 출현
1. 중국 자기의 형식과 특징 / 2. 신라 자기의 출현 배경과 가마터
Ⅴ. 맺음말

후백제 견훤과 진안 청자
Ⅰ. 머리말
Ⅱ. 진안 중평 청자 가마의 특징과 요업 시기
1. 가마터 개요 / 2. 가마의 특징과 요업 시기
Ⅲ. 중평 청자와 후백제 견훤
1. 중평 청자의 특징 / 2. 후백제 견훤 유적과의 관계
Ⅳ. 중평 가마의 역사적 배경과 국내외 가마와의 관계
1. 중평 가마와 후백제, 오월국 / 2. 중평 가마와 국내외 가마의 영향 관계
Ⅴ. 맺음말

제2장 고려 청자의 발달
고려시대 강진 청자
Ⅰ. 머리말
Ⅱ. 강진 청자의 초기 양식
Ⅲ. 강진 가마의 성격과 요업 시기
1. 강진 가마의 규모와 성격 / 2. 강진 가마의 요업 시기
Ⅳ. 고려의 왕실 청자와 강진
1. 고려의 왕실 청자 / 2. 왕실 청자의 대표 가마터, 강진
Ⅴ. 강진 가마와 부안 가마
Ⅵ. 강진 청자와 중국 자기
Ⅶ. 맺음말

고려시대 부안 청자
Ⅰ. 머리말
Ⅱ. 부안의 가마터
Ⅲ. 부안 가마터 출토 청자
1. 청자의 종류 / 2. 청자 양식의 특징
Ⅳ. 부안 청자의 수요
1. 왕실의 수요: 명종 지릉 출토 청자 / 2. 관료, 귀족의 수요: 문공유묘 출토 청자 / 3. 사찰의 수요: ‘청림사’명 청자화병
Ⅴ. 부안 가마의 운영 체제와 시기
Ⅵ. 맺음말

비안도 해저 출토 고려 청자
Ⅰ. 머리말
Ⅱ. 비안도 청자의 종류와 양식
1. 대접 / 2. 완 / 3. 접시 / 4. 잔 / 5. 합
Ⅲ. 비안도 청자와 왕실 청자
1. 인종 장릉 출토 청자와의 비교 / 2. 파주 혜음원지 출토 청자와의 비교 / 3. 명종 지릉 출토 청자와의 비교 / 4. 희종 석릉 출토 청자와의 비교 / 5. 원덕태후 곤릉 출토 청자와의 비교
Ⅳ. 비안도 청자와 중국 자기
1. 청자인각모란문: 요주요, 정요 자기와의 비교 / 2. 청자음각앵무문: 월주요 청자와의 비교 / 3. 청자음양각연판문: 월주요, 여요, 정요, 용천요, 경덕진요 자기와의 비교
Ⅴ. 비안도 청자의 제작지
Ⅵ. 비안도 청자의 성격
Ⅶ. 맺음말

제3장 조선 도자의 전개
조선시대 문헌 속의 도자 명칭
Ⅰ. 머리말
Ⅱ. 자기·사기
Ⅲ. 백자·백자기·백사기
Ⅳ. 청화백자·백자청화
Ⅴ. 맺음말

조선시대 도자 가마터 명칭
Ⅰ. 머리말
Ⅱ. 사옹원 분원 관요
Ⅲ. 사기소와 분원 관요
Ⅳ. 번조소와 분원 관요
Ⅴ. 자기소와 분원 관요
Ⅵ. 맺음말

분원 관요에 대한 연구사적 검토
Ⅰ. 머리말
Ⅱ. 학술적 성과
1. 1960년대 / 2. 1980년대 / 3. 1990년대 / 4. 2000년대 / 5. 2010년대
Ⅲ. 분원 관요의 개념과 명칭 검토
Ⅳ. 분원 관요의 설치시기 검토
Ⅴ. 맺음말

조선시대 요업 체제의 변천
Ⅰ. 머리말
Ⅱ. 도기소·자기소의 자기
1. 도기소·자기소 및 기타 요의 공납자기 / 2. 공납자기와 일반자기의 예
Ⅲ. 분원 관요의 자기
1. 관요의 설치와 운영 / 2. 문헌 속의 자기와 관요 출토 자기 / 3. 광주 관요의 자기 출토 양상과 특징 / 4. 관요의 진상자기와 지방요
Ⅳ. 맺음말

세종 연간의 도자
Ⅰ. 머리말
Ⅱ. 『세종실록』 「지리지」의 도기소·자기소와 공납자기
1. 도기소·자기소의 유래와 발달 / 2. 도기소·자기소와 공납자기의 관계
Ⅲ. 『세종실록』 「오례」 제기도설 속의 기명
1. 보 / 2. 궤 / 3. 산뢰 / 4. 백자청화주해
Ⅳ. 세종 연간의 도자 정책과 도자의 특징
1. 세종 연간의 도자 정책 / 2. 세종 연간의 백자 / 3. 세종 연간의 분청사기와 회청사기
Ⅴ. 맺음말

세조~성종 연간 분원의 설치와 도자의 변천
Ⅰ. 머리말
Ⅱ. 15세기 후반 세조~성종 연간의 시대 추이와 도자 상황
Ⅲ. 사옹원 광주 분원의 설치
1. 사옹원 분원의 규모와 역할 / 2. 분원 관요의 운영 개시와 배경 / 3. 분원 관요의 영향
Ⅳ. 세조 연간의 공납자기
1. 순백자 / 2. 청화백자 / 3. 상감백자 / 4. 분청사기
Ⅴ. 예종·성종 연간의 진상자기
1. 순백자 / 2. 청화백자 / 3. 상감백자 / 4. 분청사기
Ⅵ. 맺음말

조선시대 인화분청의 발달: 충효동 분청사기를 중심으로
Ⅰ. 머리말
Ⅱ. 충효동 가마의 환경과 역사, 그리고 분청사기
1. 지리적 환경과 역사적 배경 / 2. 충효동 분청사기 개관
Ⅲ. 인화분청의 발생
1. 충효동 가마의 여말선초 도자 양식 / 2. 다른 지역 가마의 여말선초 도자 양식
Ⅳ. 인화분청의 발달
1. 충효동 인화분청의 특징과 발달 / 2. 명문 예를 통해 본 인화분청의 특징과 발달
Ⅴ. 인화분청과 귀얄분청의 관계와 발달
1. 충효동 귀얄분청의 특징 / 2. 인화분청과 귀얄분청의 발달
Ⅵ. 충효동 가마의 성격과 운영 시기
1. 가마의 성격 / 2. 가마의 운영 시기
Ⅶ. 맺음말

조선시대 전북의 공납자기와 왕실
Ⅰ. 머리말
Ⅱ. 조선 초기의 공납자기
Ⅲ. 전북의 공납분청사기와 조선 왕실
1. 『세종실록』 「지리지」의 전북 도기소·자기소 / 2. 전북 도기소·자기소의 요업 전통
Ⅳ. 전북의 공납백자와 조선 왕실
1. 부안 보안면 우동리 가마터 출토 백자 / 2. 고창 부안면 용산리 가마터 출토 ‘현’명 백자
Ⅴ. 남원의 공납백자와 도기소·자기소
1. 남원의 공납백자와 사기장인 / 2. 남원의 도자기 가마터 / 3. 조선시대 남원의 도자사적 의의
Ⅵ. 맺음말

계룡산 학봉리 가마와 도자
Ⅰ. 머리말
Ⅱ. 가마의 분포와 구조
Ⅲ. 도자의 종류별 특징
1. 회청사기 / 2. 분청사기 / 3. 백자, 흑유
Ⅳ. 학봉리 가마의 도자 변천사
Ⅴ. 명문에 대한 검토
Ⅵ. 가마의 성격과 운영 시기
Ⅶ. 맺음말

조선 청자에 대한 고찰
Ⅰ. 머리말
Ⅱ.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선 청자
Ⅲ. ‘사옹’명 청자대접
Ⅳ. ‘사’, ‘사선’, ‘사옹’명에 대하여
Ⅴ. 경기도 광주 백자 가마터 출토 조선 청자
1. 15~16세기 가마터 출토 청자 / 2. 17세기 가마터 출토 청자 / 3. 지방 가마터 출토 청자
Ⅵ. 맺음말

조선 전기 분청과 상감백자의 전통 계승과 중국 도자의 영향
Ⅰ. 머리말
Ⅱ. 조선 전기 도자와 원, 명 초 도자의 관계
1. 분청과 중국 자기의 관련성 / 2. 분청과 상감백자에 보이는 중국 도자의 영향과 특징
Ⅲ. 분청과 상감백자의 고유성
1. 문양의 공통 요소와 특징 / 2. 기형의 공유와 특징
Ⅳ. 조선 전기 도자의 특징과 상호 관련성
1. 유태와 기형 / 2. 문양 소재와 구도
Ⅴ. 맺음말

왕실사찰 회암사지 출토 자기
Ⅰ. 머리말
Ⅱ. 회암사지 출토 자기의 특징
1. 고려 청자 / 2. 조선 분청사기 / 3. 조선 백자 / 4. 조선 청자와 흑유, 그리고 중국 청화백자
Ⅲ. 회암사지 출토 자기의 성격과 제작지
1. 회암사지 출토 자기와 고려 중기~조선 초기의 요업 상황 / 2. 회암사지 출토 자기와 도기소·자기소 / 3. 회암사지 출토 자기와 광주 관요
Ⅳ. 맺음말

조선시대 민요, 양구·청송 백자
Ⅰ. 머리말
Ⅱ. 이성계 발원 백자와 고려 말 양구 백자
1. 이성계 발원 백자발의 명문과 의의 / 2. 백자 일괄품에 대한 검토
Ⅲ. 양구 백자와 백토에 대한 문헌 기록과 양구의 요업
1. 양구의 도기소·자기소와 공납자기 / 2. 양구의 가마터와 출토 자기의 특징 / 3. 양구 백토와 분원 관요 / 4. 근대 양구 백자
Ⅳ. 청송 백자에 대한 문헌 기록과 청송의 요업
1. 청송의 도기소·자기소 / 2. 청송의 가마터와 출토 자기의 특징 / 3. 청송 가마와 분원 관요 / 4. 근대 청송 백자 / 5. 청송 백자의 전통 양식 계승
Ⅴ. 맺음말

제2부 동아시아 도자

한중일 도자 교류
Ⅰ. 머리말
Ⅱ. 한국과 중국의 도자 교류
1. 한국 유적 출토 중국 도자와 문헌 기록 / 2. 중국 문헌 속의 고려·조선 도자
Ⅲ. 한국과 일본의 도자 교류
1. 일본에 수출된 한국 도자, 고려다완의 기원 / 2. 고려다완 생산지
Ⅳ. 중국과 일본의 도자 교류
1. 일본 도자에 끼친 중국 도자의 영향 / 2. 일본에 수출된 중국 도자의 예
Ⅴ. 맺음말

제1장 한중 도자
고려 청자와 중국 자기의 비교
Ⅰ. 머리말
Ⅱ. 고려 청자의 발생과 중국 도자의 유입
1. 고려 청자의 발생에 관한 여러 견해 / 2. 한국에 유입된 중국 도자
Ⅲ. 고려 청자와 월주요 청자 비교
1. 월주요 개관 / 2. 고려 청자에 보이는 월주요 청자 양식
Ⅳ. 고려 청자와 요주요·여요 청자 비교
1. 요주요 개관 / 2. 여요 개관 / 3. 고려 청자에 보이는 요주요·여요 청자 양식
Ⅴ. 고려 청자와 정요·경덕진요 백자 비교
1. 정요 개관 / 2. 경덕진요 개관 / 3. 고려 청자에 보이는 정요·경덕진요 백자 양식
Ⅵ. 맺음말

한반도 출토 중국 도자
Ⅰ. 머리말
Ⅱ. 삼국시대의 한·육조 도자
1. 고구려 지역 / 2. 백제 지역 / 3. 신라 지역
Ⅲ. 통일신라시대의 당 도자
Ⅳ. 고려시대의 송·원 자기
Ⅴ. 조선시대의 명·청 자기
Ⅵ. 맺음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중국 도자
Ⅰ. 머리말
Ⅱ. 월주요 청자
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월주요 청자 / 2. 월주요 청자와 고려 청자
Ⅲ. 요주요 청자
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요주요 청자 / 2. 요주요 청자와 고려 청자
Ⅳ. 정요 도자
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정요 백자 및 흑유 / 2. 정요 백자와 한국 자기
Ⅴ. 자주요 도자
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자주요 도자 / 2. 자주요 도자와 한국 자기
Ⅵ. 용천요 청자
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용천요 청자 / 2. 용천요 청자와 고려 청자
Ⅶ. 경덕진요 백자
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경덕진요 백자 / 2. 경덕진요 백자와 한국 자기
Ⅷ. 건요·길주요 도자
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건요·길주요 도자 / 2. 건요·길주요 도자와 한국 자기
Ⅸ. 맺음말

신안 해저 출토 중국 도자
Ⅰ. 머리말
Ⅱ. 신안 해저 출토 중국 도자의 종류와 양식
1. 청자 / 2. 백자 / 3. 백탁유, 흑유, 백지흑화
Ⅲ. 신안 도자의 시기와 성격
1. 시기 문제 / 2. 신안 도자의 품질과 수요처 / 3. 도자사적 의의
Ⅳ. 맺음말

신안 자기와 고려 유적 출토 원대 자기
Ⅰ. 머리말
Ⅱ. 신안 자기 연구사
Ⅲ. 신안선의 원대 자기
Ⅳ. 고려와 원의 자기 교류
Ⅴ. 신안 자기와 고려 유적 출토 원 자기 비교
Ⅵ. 맺음말

제2장 한일 도자
조선 도자가 일본 도자에 끼친 영향
Ⅰ. 머리말
Ⅱ. 일본에 수출된 조선 도자
1. 일본 문헌 속의 조선 도자 / 2. 일본 유적 출토 조선 도자 / 3. 일본 내 전세된 조선 도자
Ⅲ. 일본에서 애용된 조선 도자
1. 조선의 식기류와 고려다완 / 2. 일본에서 주문한 조선 도자
Ⅳ. 일본에서 조선풍 도자의 등장
1. 도자 양식의 변화와 조선 장인의 가마구조 개선 / 2. 조선식 장식 문양의 등장
Ⅴ. 맺음말

일본 고려다완의 한국 가마터와 가마터별 도자의 특징
Ⅰ. 머리말
Ⅱ. 충청도 가마터: 공주 계룡산 학봉리 가마터
Ⅲ. 전라도 가마터
1. 고창 용산리 가마터와 도자의 특징 / 2. 광주 무등산 충효동 가마터와 도자의 특징 / 3. 고흥 운대리 가마터와 도자의 특징
Ⅳ. 경상도 가마터
1. 울주 하잠리 가마터와 도자의 특징 / 2. 울주 언양 태기리 가마터와 도자의 특징 / 3. 창원 진해 두동 가마터와 도자의 특징 / 4. 산청 방목리 가마터와 도자의 특징 / 5. 하동 백련리 가마터와 도자의 특징 / 6. 사천 송전리 가마터와 도자의 특징 / 7. 부산요
Ⅴ. 맺음말

조선 전기 고흥 운대리 가마와 대일 무역도자
Ⅰ. 머리말
Ⅱ. 운대리 가마터 개관
1. 가마의 역사와 분포, 구조 / 2. 자기의 종류와 특징
Ⅲ. 운대리 가마와 도기소·자기소
1. 운대리의 도기소·자기소 / 2. 운대리의 비도자기소
Ⅳ. 운대리 가마와 대일 무역도자
1. 운대리 도자 양식의 특징 / 2. 일본 소재 분청사기와 운대리 도자
Ⅴ. 운대리 가마터의 도자사적 의의
Ⅵ. 맺음말

일본민예관 소장 한국 명품 도자
Ⅰ. 머리말
Ⅱ. 고려 청자
Ⅲ. 조선 분청사기
Ⅳ. 조선 백자
Ⅴ. 조선 흑유
Ⅵ. 근대 도자
Ⅶ. 맺음말

맺음말
논문 전거
도판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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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분원 가마터 분포도
동아시아 가마터 분포도

저자 소개 1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역사부장, 국립광주박물관 실장, 국립공주박물관·국립제주박물관·국립전주박물관 관장을 역임했고, 국립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소장을 끝으로 37년 4개월 동안의 공직에서 정년 퇴임했다. 저서로는 『조선백자』(대원사, 1991), 『朝鮮前期 陶磁의 硏究』(學硏文化社, 1995), 『조선시대 도자기』(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제1회 고유섭 학술상 수상/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2), 『조선 전기 도자사』(일조각, 2011,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수상)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역사부장, 국립광주박물관 실장, 국립공주박물관·국립제주박물관·국립전주박물관 관장을 역임했고, 국립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소장을 끝으로 37년 4개월 동안의 공직에서 정년 퇴임했다.

저서로는 『조선백자』(대원사, 1991), 『朝鮮前期 陶磁의 硏究』(學硏文化社, 1995), 『조선시대 도자기』(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제1회 고유섭 학술상 수상/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2), 『조선 전기 도자사』(일조각, 2011,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수상) 등이, 번역서로는 『中國陶磁史』(열화당, 1986)가 있다.

공저로는 『장보고와 21세기』(도서출판 혜안, 1999), 『항해와 표류의 역사』(국립제주박물관, 솔, 2003), 『도자공예』(솔, 2005), 『조선 전반기 미술의 대외교섭』(예경, 2006),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용어: 미술사』(국립중앙박물관, 2006), 『동서의 예술과 미학』, 유라시아북방총서(2)(솔, 2007), 『계룡산 분청사기』(국립중앙박물관, 2007), 『한국미술 전시와 연구』(국립중앙박물관, 2007), 『中國陶磁』(국립중앙박물관, 예경, 2007), 『고려 왕실의 도자기』(국립중앙박물관, 통천문화사, 2008), Korea Ceramic (Stad Antwerpen: Snoeck-Ducaju & Zoon, 1993), Eleganz und Verzicht―Weiβe Keramik im Korea der Joseon-Dynastie (The Korean Organizing Committee for the Guest of Honour at the Frankfurt Book Fair, 2005), The Smile of Buddha (Brussel: Bozsr Books, 2008), The Asian Art Legacy [Alfonso Ojeda(Ed.), Madrid: Ibersaf Industrial, S.L. Spain, 2010]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3월 2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013쪽 | 170*238*60mm
ISBN13
9788933708514

책 속으로

한국에서 도자문화는 토기가 만들어진 신석기시대부터 싹트기 시작했는데, 유약이 입혀진 녹유綠釉는 백제 사비시대에 처음 제작되었다. 비록 저화도 도기에 속하지만 백제의 녹유는 신라가 통일한 후에도 전통이 그대로 이어져 각종 공예품과 조각품이 녹유로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통일신라 말에는 고화도 자기가 제작되면서 청자와 백자의 초기 유형이 등장했다. 이 초기의 자기가 고려시대에 비색翡色이 찬란한 청자와 유백색이 은은한 백자의 초석이 되었다. 이후 조선의 건국을 계기로 불교에서 유교로 종교와 이념이 바뀌면서 도자문화도 영향을 받았다. 추상적이며 다소 일탈적인 분청사기와 간소하면서도 우아한 백자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도자문화를 펼쳤다.
--- p.23~24

백제가 적극적으로 대중교섭을 펼쳐 일찍이 중국 도자를 수입하고 방제할 수 있었던 것은 서해안을 끼고 항로가 발달하여 대중 문물교류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중국 도자기는 일종의 선진문물이었고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한대 녹유에 연원을 둔 사비시대 ‘백제녹유’의 대표적인 예는 부여 정림사지 출토 녹유소조불상과 능산리 출토 녹유병편 등이다. 특히 전북 익산 미륵사지 출토 녹유와당은 사찰 기와로 사용되었으므로 백제녹유가 대량 생산 체제 속에서 생산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백제가 중국 연유를 방제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응용, 창의하는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 준다.
--- p.73~74

토기문화가 도기문화로 도약한 백제 사비시대의 저화도 ‘백제녹유’의 탄생, 그리고 통일신라 후기 고화도 ‘신라 자기’의 출현은 한국 도자사에 획을 긋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따라서 한국 도자사의 발달은 선사시대부터 내려오는 토기, 백제 사비시대에 형성된 저화도 연유도기(녹유와 갈유), 통일신라시대 녹유의 대유행, 통일신라 후기에 출현한 고화도 자기의 순으로 단계를 거친다. 이러한 도자의 발달 과정을 거쳐 한국 고유의 도자 역사가 형성되었다.
--- p.108

중평 청자 가마의 존재로 인해 한국 초기 자기 가마가 벽돌가마에서 진흙가마로 전환되었음이 확인되었고, 중국식 자기 양식과 벽돌가마의 축조 기술 등이 전북 진안 지역에까지 전파된 것도 분명해졌다. 전파 경로에 대해서는 전북 중평에서 용인과 시흥 등 경기도 지역으로 또는 그 반대 경로, 중국 오월국에서 도통리 중평으로 직접 전파 등의 경로를 추정해 보았다. 전국적으로 벽돌가마의 발굴 사례가 적기 때문에 희소성 면에서도 중평 가마의 학술적 의의는 매우 높다.
--- p.126

한국 청자 역사에서 강진 가마는 고려 청자를 대표한다. 그러나 고려 말 가마의 쇠락과 함께 청자는 고려 말 조선 초의 과도기를 거치면서 점차 변모했다. 예를 들면, 고려 말부터 청자에 장식된 인화문은 조선시대 분청사기의 중요한 문양 기법으로 계승되어 발전하면서 인화분청이라는 유형을 만들어냈다. 상감청자의 상감문도 조선시대의 분청사기와 백자에 그대로 계승되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고려 말 퇴락한 청자는 조선 건국 후 새롭게 부상한 사회적 이념과 함께 분청사기라는 새 도자 유형으로 거듭나는 대전환기를 맞이했다. 이 모든 궤적은 고려와 흥망성쇠를 함께한 강진 청자에서 뚜렷이 살필 수 있다.
--- p.155

부안 가마의 요업 시기는 강진보다 짧다. 호족세력이 쇠퇴하고 중부 지역의 가마가 쇠퇴한 10세기 말에서 11세기 전반 부안 가마의 요업이 시작되었다. 따라서 강진 청자와 같은 초기 양식 없이 비교적 세련된 양식의 청자와 백자를 제작했다. 부안 가마의 하한은 14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희종의 석릉과 최항의 무덤 등에서 나온 청자들을 근거로 한 것이다. 부안 청자에서는 강진 청자와 같이 완전히 퇴락한 고려 말 양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고려 멸망 이전에 이미 쇠락했을 것이다.
--- p.197

비안도 청자의 제작지를 추정하기 위해 강진, 부안 출토품과 비교를 시도했으나 확단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강진과 부안에서 문양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즉, 고려 청자의 보편화된 형식을 보면 문양 소재와 구성이 한번 정형화되면 2, 3백 년 정도로 오랜 기간 강진, 부안에서 공통적으로 애용한 것이다. 더욱이 시문 수법에서도 세부적인 차이만 발견되기 때문에 가마의 확인이 어렵다. 다만 발굴 측의 과학적 분석 결과를 토대로 하면, 현재로서는 다른 지역의 흙과 부안의 청자유 원료 및 부안 장인의 기술로 제작되었다는 가설을 세울 수밖에 없다. 비안도 청자의 제작 시기는 왕과 왕비의 능 및 혜음원지에서 출토된 왕실 청자와 비교한 결과 12세기부터 13세기 중엽까지로 추정된다.
--- p.252~253

학계에서 통용되는 자기는 ‘磁器, 瓷器, ?器’로, 백자는 조선시대에도 ‘백자白磁’라고 불렀고, ‘백사기白沙器’나 ‘백자기白磁器’라고도 했다. ‘砂器, 沙器’는 일반적인 도자기를 지칭했다. 청화백자는 ‘백자청화白磁靑花, 청화자기靑畵磁器’라고도 했다. 이 외에 ‘청화기靑畵器, 화자기畵磁器, 화기畵器’ 등도 대부분 청화백자를 가리킨다. 청화는 ‘靑畵, 靑花, 靑華’가 모두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도자기를 가리킬 때 한 가지 명칭으로 통일하지 않고 여러 명칭을 폭넓게 사용했음을 파악할 수 있다.
--- p.267

사옹원의 분원 관요는 관찬 기록에서 가장 빈번히 언급되었다. 다른 중앙관청의 분원도 있지만, 사옹원의 분원은 조정에서 중요한 논의 대상이었고 당시에 이미 널리 통용된 명칭이었다. 그리고 분원 관요와 다른 명칭들을 병용한 용례들이 산견된다. 엄밀히 말하면, 광주 관요는 ‘본원 사옹원의 분원 사기소’, ‘본원 사옹원의 분원 자기소’, ‘본원 사옹원의 분원 번조소’ 등인데, 축약해서 ‘분원’이라 불렀다. 지금도 분원은 본질적으로 조선 관요라는 개념으로 조선 전기부터 말기까지 시대를 관통하는 핵심 용어이다.
--- p.287

조선의 관찬 고문헌 가운데 특히 『승정원일기』에서는 기간 대비 등장 횟수로 보면 분원이라는 명칭의 용례가 상당히 빈번하게 등장했다. 특히 숙종 24년(1698) 8월에는 분원과 번조소가 합쳐져 ‘분원 번조소’라는 명칭으로도 사용되었다. 이 기사에서는 분원이 광주 관요를 대표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분원이란 ‘본원 사옹원’에 대응하는 말이므로 사옹원이 존재하는 한 광주 관요는 분원이다. 다만 사기소는 전국적으로 분포한 가마를 지칭할 때 두루두루 사용된 명칭이었고, 번조소와 자기소는 주로 광주 분원 관요에 한하여 지칭한 명칭이었다. 이러한 용례는 조선시대의 관찬 기록에서 확인된다.
--- p.317

분청사기의 사용이 만연한 가운데 백자를 선호하는 경향은 세종 연간부터 왕실에서 본격화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세조 12년경에는 조관과 일반 백성들에까지 확산되었으며 관요 중심 체제에서 지속되고 심화되어 중종中宗 4년(1509)에는 관요백자의 유출에 대한 개혁령이 선포되기에 이르렀다. 지방요는 1467년 4월경 경기도 광주에 사옹원의 분원을 설치한 후 본격화되었다. 분원 관요가 운영되면서 종래 도자기소였던 전국의 가마는 각 지역의 지방민들을 주 수요처로 삼는 지방요로 성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 p.356

세종 즉위 후 초기에는 도자 양식이 다소 혼란한 양상을 보였다. 상감청자인지 분청인지 분간이 애매한 혼합 양식 또는 과도기 양식에서부터 점차 각 종류별로 특징적 요소를 갖추는 시작 단계를 거친 후 도자 양식이 안정화되었다. 특히 백자가 안정된 양식을 갖춘 시기는 142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였으며 그 이전에는 품질이 조악했다. 그러한 예로 우산리에서 수습한 ‘내용內用’명 인각백자는 궁궐용 백자라 해도 양식적으로 거칠다. 유색이 옅은 녹색을 머금은 백자유이며, 받침은 태토비짐눈이다.

도자 양식이 안정되고 발달하게 된 계기는 세종 3년 그릇 밑바닥에 장인명을 써넣기로 한 시책이다. 아울러 세종 연간 문물의 발달에 힘입어 분청사기와 백자가 모두 세련된 양식을 갖추게 되었다. 조선 도자사에서 세종 연간은 세조 연간에 버금가는 발전, 세련기에 해당된다.
--- p.423

세조 연간의 조선 도자는 분청과 백자가 모두 질적·양적으로 전성기에 이르며, 특히 1460년대에는 절정에 달했다. 이에 비해 청화백자의 확보는 여전히 매우 어려워서 공무역을 통해 명으로부터 청료를 수입하여 어용 청화백자를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세조 말 예종 초, 즉 1467년 4월경 왕실용 백자와 청화백자를 1곳에서 집중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왕실용 백자의 공급을 전담하는 관영요장官營窯場으로 분원 관요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분원 관요 설치 후 관장에 대한 지원 부족 및 중국 백자에 대한 분별없는 애호 풍조로 인해 분원 관요의 운영은 위축되었다. 부연하면 분원 관요 백자는 본래 왕실 전용이었으나 우산리 9호 가마에서와 같이 고위 관리를 위한 사번까지 행해졌으며 일부 특수 서민층에까지도 유출되었다. 아울러 고관, 부호들은 관요 백자 외 밀수된 중국 청화백자를 대규모로 향유했다.
--- p.475~476

인화분청은 발달 단계에 따라 발생기(세분하면 태동기, 발생기), 발전기(세분하면 발전기, 전성기), 쇠퇴기(세분하면 쇠퇴기, 소멸기) 세 시기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인화분청의 세 시기는 ① 발생기 1300년대부터 1420년대까지, ② 발전기 1430년대부터 1467년경까지, ③ 쇠퇴기 1468년경부터 1500년대 중엽까지로 구분된다.
--- p.516

세종 연간 가장 확실한 왕실자기 가마는 상품 자기소이다. 그런데 『세종실록』 「지리지」 전북에는 상품 자기소가 없고 중품과 하품 자기소만 나오지만, 중하품 자기소인 완주 장파마을, 고창 평촌마을, 고창 수동리 등지의 가마터에서도 ‘내섬’, ‘장흥고’ 등의 궁궐과 관련된 관청명의 공납 분청사기들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중하품 자기소에서도 관청명 분청사기를 제작하여 국가에 공납했음을 파악할 수 있어 도자사적인 성과가 크다. 이 공납자기들은 왕실에서 사용되었을 것이다.
--- p.545

학봉리 가마의 특별한 번조 방법으로 주목할 것은 백토 받침이다. 백토를 항아리 굽 주위에 바르고 포개어 구운 것이다. 철화분청 항아리와 흑유 항아리를 포개 구울 때도 위에 놓이는 항아리 저부에 백토를 바르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렇게 백토를 저부에 원형으로 혹은 방사상으로 칠하는 받침 형식은 지금까지 다른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학봉리 가마에서 유일한 것이다.
--- p.56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청자들은 유약과 태토가 모두 고려 청자의 맥을 잇고 있다. 내저 중심의 변형화문變形花文, 측면의 고식 운문 등 문양의 소재와 배치가 고려 청자의 전통을 고수했다. 반면 일정하게 구획된 구도, 구연부의 외반 정도와 단정한 기형, 굽다리와 굽의 처리, 규사눈받침 등은 조선 초기 청자의 특징이다.
--- p.592

조선 전기의 분청과 상감백자는 고려 말 조선 초라는 격변기를 거쳐 조선이 안정화되는 변화의 시대에 제작되었다. 따라서 고려 도자의 전통 양식 계승, 중국 도자의 영향으로 인한 새 외래 양식의 수용, 동시대 도자의 상호 영향으로 인한 양식의 혼합, 조선 도자 고유의 양식 형성 등 다변화의 시대 상황을 반영한 양식이 분청과 상감백자에 공존했다. 이처럼 역동적인 시기인 조선 전기의 도자기는 다른 시기의 도자기와는 뚜렷이 차별화된 특징을 보인다.
--- p.624

고려 중기 12세기 중엽부터 조선 17세기 전반까지 회암사는 불교에 대한 왕실의 신념과 의지에 따라 특별한 후원을 받으면서 막강한 위세를 떨쳤다. 『조선왕조실록』 등에 따르면, 왕실부터 귀천을 불문하고 전국적으로 수많은 불자와 방문자들이 몰려 사찰이 인파로 가득하다고 했다. 조선 건국 당시에는 태조가 머물렀고 명나라 사신들이 방문했던 곳이었으니, 회암사에서 출토된 도자기는 품질 면에서도 최상품에서 중하품까지 다양하다. 왕실(왕족)과 관련된 도자기는 최상품이었고 일반 방문자나 기거하는 승려 등 기타 사용자의 도자기는 중하품이었다. 명문 자기도 다른 어떤 소비지 유적보다 많아서 당시 회암사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다.
--- p.659~660

분원 관요가 민영화되고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19세기 말~20세기 전반기는 한국 도자사에서 격변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격변기에 양구와 청송에서 조선시대 분원 관요 백자의 전통을 계승한 요업이 지속된 점이 높이 평가된다. 이는 일제강점기 함경도의 회령 자기가 신개념의 창의적인 양식으로 이목을 끌었으며, 황해도의 해주 자기가 전통과 창의적 기술을 복합적으로 응용하여 백자와 옹기를 접합한 독특한 양식을 이루었다는 점과는 뚜렷이 차별화된다. 즉, 분원 관요 설치 이후 양구와 청송의 가마는 지방요 또는 민요였다. 그럼에도 중앙에 백자 진상, 관요 백자 양식의 계승, 수요와 관련된 상관관계 등 분원 관요와 직간접적으로 긴밀하게 관련되었음이 가마터 조사와 양식 검토 등 다각적인 고찰 결과 확인된다.
--- p.688

중국 문헌에는 중국인이 매우 선호한 도자기로 고려 청자와 조선 도자기가 자주 등장한다. 고려 청자와 조선 도자기는 중국인뿐 아니라 일본인도 애용했고 일본 도자기 제작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일본 도자기에서 특히 조선 도자기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 시기는 14세기 말부터 17세기까지다. 이 시기에 일본에서는 중국 도자기의 사용이 위축될 정도로 조선 도자기를 애용하고 모방하는 추세를 보였다.
--- p.691

중국과 개방적으로 교류하면서 고려 청자는 발생기에 중국 자기의 영향을 받았으므로 초기의 한국 청자에서는 중국 자기와 기본적으로 유사한 양식을 흔히 접할 수 있다. 이러한 고려 전기의 개방성은 중기 이후 교류가 감소하는 경향으로 바뀌었고 이는 고려 후기 원의 부마국이 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따라서 고려 중기의 청자에는 중국 도자의 영향보다는 고려 고유의 특징이 확연히 드러났고 이 시기에 고려 청자는 세련미의 절정에 이르렀다.
--- p.742

통일신라 말부터 제작된 청자와 백자는 고려에서 세련을 거듭했다. 고려 전기에는 중국 북송의 요주요, 월주요, 용천요, 정요, 경덕진요의 자기가 다량 수입되어 북송 양식이 고려 전기 청자에 반영되었는데, 고려 청자가 세련된 유색과 기형을 갖추면서 중국 자기의 영향은 줄어들었다. 조선시대의 중국 자기는 세종~세조 연간 주로 왕실에 조공품으로 전래된 청화백자가 주목된다. 이렇게 전래된 중국 명의 청화백자는 조선에서 15세기 중엽 청화백자가 발생하는 데 촉매가 되었다.
--- p.777~77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중국 도자기는 시기적으로 한국의 고려와 조선 시대에 해당되는 오대, 송, 요, 금, 원, 명에 속하는 것이 주를 이루며, 개성 일대와 한반도 해저 출토품이 가장 많다. 소장 경위는 1909년 설립된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또는 이왕가박물관李王家博物館) 개관 이후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구입한 것, 일제강점기에 조사하여 수습한 것, 신안 해저 유물처럼 한국의 여러 기관에서 직접 발굴한 것, 기증받은 것 등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 p.839

신안 도자기는 중국에서 선적되어 일본을 목적지로 항해하던 중 한국 해역에서 침몰한 배에서 인양된 것이다. 인양품에는 각종 편년 자료들과 명문 자료들이 있어 신안 도자기의 양식과 품질, 신안선의 적재 시기와 출항 시기, 수요자와 수요처, 무역품의 종류와 수량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 p.855

『고려사』 등 문헌 기록에 의하면, 원은 고려 청자에 대한 애호와 구입 욕구가 강했고, 고려에서는 상인들이 활발한 교역 활동으로 부를 축적했으며 사기를 매매하는 상인의 딸을 왕의 후비로 삼는 등 상인의 신분이 상승했다. 고려와 원의 자기 교류 양상을 살펴보면, 고려는 원에서 주로 특수한 제기를 구했고, 고려 왕실에 원대 자기는 주로 원 공주에 의해 전래되었고 소량에 불과했다.
--- p.884

일본에 수출된 조선 도자기는 일본 도자 양식에 직접 영향을 주었으며 일본인의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다완으로 애용되었다. 일본에서는 이를 고려다완이라 불렀다. 임진왜란 직후 일본으로 납치된 조선의 장인들은 직접 가마 운영에 참여했다. 히젠 가마의 구조를 유단식 연실등요로 변경하여 도자기의 대량 생산을 가능케 했고 고화도 자기를 구워냈다. 특히 조선 장인 이삼평李參平이 아리타에서 발견한 백자광 덕분에 일본 도자기는 고화도 자기시대로 넘어가는 획기적인 계기를 맞이했다.
--- p.908

일본 문헌에 전하는 기록과 여러 유적 출토품, 전세품으로 미루어 고려, 조선의 일상용 도자기가 일본에 대량 수출되어 고려다완으로 애용되었음이 확인되었다. 고려다완이 대유행한 시기는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1336~1573), 모모야마시대桃山時代(1573~1603), 에도시대江戶時代(1603~1867) 초기, 즉 조선시대 전반기에 해당하는 14세기 말부터 17세기까지이다. 특히 센노리큐가 활동한 16세기 중후반기에 고려다완이 매우 성행했고, 이 시기의 한국 도자기가 일본 전역에서 대량 출토되어 조선 도자의 대일 수출이 매우 활발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p.930

운대리에서는 국가에 자기를 공납하지 않았으므로 공납자기로서의 질적 향상에 주력할 필요가 없었다. 즉, 당시 국내에서는 백자를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운대리의 귀얄 및 분장 분청은 국내용이라기보다는 일본의 고려다완 소비층을 위한 수출용이었다고 짐작된다. 운대리의 귀얄 및 분장 분청은 일본에서 애용된 다완과 매우 흡사하며, 다완 외 일본의 전세품과 발굴품에서도 운대리 분청 양식이 흔히 발견된다. 소박한 운대리 분청은 흙의 질감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기호에도 잘 맞아 다완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그릇이었을 것이다.
--- p.957

야나기 무네요시는 한국 도자기의 각 유형을 시대별로 빠짐없이 수집하려는 목적이나 의도보다는 본인의 미감과 취향에 들어맞는 작품을 위주로 수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고려 청자의 귀족적이고 세련된 아름다움에 대한 평가는 또 다른 미감으로 민예적인 것과는 다른 예외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조선 백자에서는 분원 관요와 지방 가마를 가리지 않았다. 관요 백자라도 유색이나 기형, 문양 등에서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자연친화적이고 그윽한 정취가 배어나오면 수집 대상이 되었다. 아울러 세련된 고려 청자에서 보듯이 반드시 자신의 민예적 미감만을 고집하여 수집한 것은 아니었다.

--- p.973~974

출판사 리뷰

오랜 연구를 기반으로 한국 도자사 집대성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릇’이라 극찬한 달항아리“, ”색깔이 푸른 옥과 같이 아름다워 남송대 태평노인이 그 색이 천하제일이라고 꼽은 고려 청자“, ”일본인의 일상생활과 의례에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물품으로 자리 잡은 고려다완“.

이렇듯 한국 도자는 세계적으로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한국 도자를 정의한다면 기능적인 면에서는 용도에 맞는 쓸모를, 미학적인 면에서는 한국의 풍토와 한국인의 성품에 어울리는 단정한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하겠다.

40여 년 동안 한국 도자를 연구해 온 저자는 방대한 문헌과 발굴 자료, 700여 점에 이르는 도판을 바탕으로,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한국 도자의 역사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과의 도자 교류까지 살피며 한국 도자사를 집대성했다. 먼저 제1부에서는 백제시대 연유도기의 출현, 통일신라시대 청자와 백자의 출현, 후백제 견훤과 관련된 진안 청자 등에 대해 살펴본다. 이어서 고려시대 강진과 부안의 가마터와 도자, 비안도 해저 출토 청자에 대해 분석한다. 조선시대 도자에 대해서는 도자와 가마터의 명칭을 비롯, 분원 관요의 설치 시기, 요업 체제의 변천, 도자의 종류, 시대와 지역에 따른 특징 등 핵심 주제를 다룬다. 제2부에서는 한반도 출토 중국 도자, 일본 출토 한국 도자, 신안 해저 출토 한중일 도자 등을 비교 분석한다.

뛰어난 아름다움과 고유성을 지닌 한국 도자

한국에서 도자문화는 토기가 만들어진 신석기시대부터 싹트기 시작했는데, 유약이 입혀진 녹유는 백제 사비시대에 처음 제작되었다. 저화도 도기인 백제의 녹유는 신라가 통일한 후에도 이어져 각종 공예품과 조각품이 녹유로 제작되었다. 통일신라 말에는 고화도 자기가 제작되면서 청자와 백자의 초기 유형이 등장했고, 고려시대 비색이 찬란한 청자와 유백색이 은은한 백자의 초석이 되었다. 특히 청자는 11세기에 고유의 특징을 보이기 시작하여 12세기에 절정기에 이르렀고, 최고급 청자는 강진과 부안을 중심으로 대량 생산되었다. 기품 있는 세련된 비색의 고려 청자는 오늘날까지 최고의 명품 도자기로 전 세계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청자는 14세기에 쇠퇴기로 접어들면서 조선 건국 전후로 분청사기라는 새로운 도자 양식으로 재탄생했다. 분청사기는 조선 초부터 왕실과 백성이 같이 사용한 자기로, 백자와 함께 조선 자기의 중요한 축을 형성했다. 비로소 왕실과 서민이 공유하는 도자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파격과 추상, 해학이 과감하게 표출된 분청사기는 당시로서는 매우 독특한 존재였다.

그러나 점차 단아한 백자를 선호하는 풍조가 유행하여 세조 연간에 분청사기는 왕실로부터 멀어졌고, 성종 연간부터는 백성들도 백자를 애용하면서 분청사기는 서민용으로도 점차 자리를 잃게 되었다. 더욱이 왕실과 중앙관청용 백자를 전담 제작하는 분원 관요의 운영이 1467년 4월경 제도화되면서 백자가 조선의 공식 자기로 정착되었다. 조선은 전국적으로 명실공히 백자의 시대로 접어들었고, 분청사기는 분원 관요 설치 후 급격히 쇠퇴했다.

조선 백자는 깨끗하고 우아한 도자기로, 명의 홍희제가 조선 왕실에 부탁할 정도로 중국 황실에서는 조선 백자를 애호했다. 한편으로 조선의 분청사기와 백자는 조잡한 품질일지라도 일본에 수출되어 ‘고려다완’으로 널리 애용되었다. 한국인이 일상생활에서 평범하게 사용하던 식기는 일본의 도자문화에 큰 영향을 끼쳐 오늘날까지도 일본인의 일상과 정신 속에 깊숙이 정착되어 있다.

조선 백자는 1884년 조선의 요업 체제가 관요에서 민요로 바뀌면서 품질이 조잡해지고 양산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중국과 러시아, 일본의 화려한 수입자기가 조선 말기에 밀려들어 왔고, 이는 조선의 요업을 위축시켰다.

상호 교류 속에서 발달한 동아시아 도자

한중일 동아시아의 도자 교류를 살펴보면, 한국과 중국 사이에는 중국이 한국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으나 양국이 상호 교류한 부분이 많다. 그런데 일본에 대해서는 한국과 중국이 영향을 주는 일방적인 관계였다.

한국 도자사에서 중국 도자의 영향을 찾는다면 백제 녹유, 통일신라 말 청자와 백자, 조선 청화백자의 발생에 촉매가 된 점이다. 이렇게 한국의 고려 청자, 조선의 분청사기와 백자는 초기에 중국 자기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고려 청자와 조선의 도자기는 사회가 안정되면서 한국 고유의 양식을 확립했다. 고려 청자는 11세기 중엽 이후 독특한 비색을 띠며 섬세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의 고려 고유의 형태와 문양 장식을 갖추었다. 조선의 분청사기에도 중국식 문양이 시문된 예가 있으나 대부분은 특유의 고유성을 갖추었다. 조선 백자 역시 1420년대부터 점차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면서 조선 특유의 단정하고 소박한 정취를 담고 있다. 고려 청자와 조선 백자는 중국인들에게는 중국 자기와는 전혀 다른 특징을 지닌 귀한 소장품, 고급 선물 등으로 인식되었다. 고려 청자의 경우 중국 문헌에서 세련된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했다.

이렇게 한국과 중국은 비교적 상호 교류 관계에 있었으나, 한국과 일본은 근대를 제외하면 대부분 한국 도자기가 일본 도자기에 영향을 미친 일방적인 관계였다. 한국 삼국시대의 경질 토기는 일본 경질 토기의 발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일본에서 선종 계통의 다도가 성행하면서는 고려 청자 및 조선 도자기의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한국 도자기가 대량으로 일본에 수출되었다.

17세기 이후 일본 도자기는 대변신을 꾀했는데, 결정적인 요인은 일본에 끌려간 조선 장인의 기술이었다. 일본은 조선 장인의 기술을 토대로 조선 도자기를 모방했고 중국 다채자기의 양식을 수용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일본의 색회자기는 유럽 시장으로 수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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