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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시 한번, 당신에게 일기장을 건넵니다
2. 경치에 이끌려서 3. 붙박이 창문의 두꺼운 유리 4. 해피 버스데이 투 유 5. 투신자살, 익사, 화재 6. 그날 밤처럼 비가 내리다 7. 슬픔이 꿈의 틈새로 흘러넘치다 8. "둘, 함께" 9. 왜 모든 꽃은 희기만 할까? 10. 곤충학자가 되고 싶어 11. 끝이 변색된 흰 종이 12. 목숨 걸고 지키는 것 13. 빙글 빙글 빙글 빙글 14. 타인의 고통을 아파할 수는 없다 15. 이 아이를 처음으로 안은 사람은 16. 당신에게 이어지는 길 |
Miri Yuu,ゆう みり,柳 美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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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 아니었다. 34년 동안 살면서 네 번째다. 첫 번째는 고등학교에서 퇴학처분을 받았던 16세 때, 두 번째는 출판금지 가처분신청이 접수되어 그 후 지방재판소에 고소를 당한 26세 때, 세 번째는 당신이 내 앞에서 모습을 감춘 31세 때―.
정신과에 다니면서 카운슬링이나 투약치료를 받은 적도 있지만 나는 야나기 다케하루의 단 하나 뿐인 보호자다. 정신안정제나 수면제를 입에 넣을 수는 없다. 정신적 동요는 내 힘만으로 막지 않으면 안 된다. 아들이 차가운 타월을 손에 들고 침실에 들어왔다. … 기어서라도, 써 보이겠다! 쓰지 못한다면 구술필기로! … 아들 돌보는 일은 베이비시터 T씨한테 맡기고 Y씨가 준비해 준 죽을 매실장아찌와 먹는다. 지금 쓰러져서는 안 된다. 나는 작가로서, 부모로서,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쓸 의무를 짊어지고 있는 셈이다. 12월30일 청소업체 다스킨에 대청소를 맡겼기 때문에 베이비시터 T씨가 언니 부부의 집으로 아들을 데리고 가 주기로 했다. 나는 고마치 거리의 ‘밀크 홀’에서 저녁 무렵까지 시간을 보낸다.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독서를 하다니 이게 도대체 몇 년 만일까. <아버지는 하늘, 어머니는 땅>을 읽었는데 단어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1854년, 미국 정부는 3년 동안에 걸쳐서 원주민들과 싸운 끝에 그들의 토지를 사들여서 거주지를 내주라고 신청했다. 스쿼미시 족과 드와미시 족의 부족연합 대표인 시애틀 추장은 더 이상 싸울 수 없다고 판단, 이 조약에 서명하고 대통령에게 전해 달라면서 연설을 한다. <아버지는 하늘, 어머니는 땅>은 연설문을 발췌한 글이다. 아득하게 먼 하늘은 눈물을 닦고 오늘은 아름답게 개었다. 내일은 구름이 하늘을 덮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말은 별과 같이 변하지 않는다. 워싱턴의 대추장이 땅을 사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 땅을 사간다고 말하는가? 그리고 땅을. 나는 모르겠다. 바람의 냄새와 물의 반짝임을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사간다고 말하는가? (중략) 시애틀 추장은 태어나고 자라났던 땅을 잃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를 잃어버리고 언어를 잃어버리고 마침내 침묵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언어를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그 언어는 침묵에서 떠나가려 하지 않는다. 침묵 바로 그것처럼 멈추어 서 있을 뿐이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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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유미리의 아름다운 삶을 엿보다!
“인간의 머릿속을 쫙 갈라서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타인의 일기를 훔쳐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겠지? 일기를 보면 인간이라는 게 과연 얼마나 악마한테 사로잡힌 존재인지 알 수 있어. 그래서 일기는 재미있는 거야.”(일본 문예지 신초45 편집자)
일기는 개인에게 가장 소중한 삶의 기록이며 문학이다. 그래서 남의 일기를 보는 것은 흥미롭다. 특히나 유명 작가의 일기는 한 편의 정제된 문학작품처럼 많은 감동을 안겨준다. 유미리의 은밀한 일기는 아무 것도 거르지 않은 고해성사이며, 생명의 위대함을 예찬하는 찬가이며, 지친 영혼의 어깨를 다독이는 위로의 말이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삶에 긍정적인 여성의 발랄한 단면을 보여줬다면 유미리의 일기는 어둡고 덮어버리고 싶은 사적인 일들마저 온전히 공개하고 그것을 긍정하려는 삶의 자세를 보여주기 때문에 더욱 큰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작가 유미리는 일기에서 태어났다’ 일본의 대표적인 재일동포 작가 유미리의 일기가 출간됐다. 현실과 픽션이 엇갈리는 사소설 형식을 고집해왔던 유미리는 자신의 은밀한 사적 영역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기를 통해 다시 한번 글쓰기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일기는 2001년 11월부터 2002년 12월까지 1년 2개월동안의 기록으로, 일본 문예지 <신초 45> 2002년 1월호부터 2003년 5월호까지 연재됐던 내용이다. 유미리는 자신이 작가가 된 결정적 계기가 일기였다고 밝히고 있다. 작가가 되기 전 연극배우였던 그는 극단 도쿄 키즈 브라더스의 연구생으로 있을 때 연출가로부터 “당신은 쓰는 재능이 있습니다. 연기보다는 글을 쓰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네요.”라는 말을 듣는다. 당시는 작가보다는 훌륭한 배우가 되고 싶었던 그는 글을 쓰는 재능이 있다는 말보다 연기에 재능이 없다는 말 자체에 상처를 받고 말았다. 당시 연출가는 나중에 그의 연인이 된 히가시 유타카. 유타카는 “일기장 한 권을 극장이라고 생각하고 하루하루 (그 극장에) 빛을 비추어 드라마를 만들어 보세요.”라고 그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는 유타카와 교환일기를 쓴다는 마음으로 유타카에 대한 분노와 증오, 원망 따위를 적은 일기를 써서 제출했고, 결국 연기보다는 글재주가 더 있겠다는 말을 듣게 됐다. 그러나 그 일 이후 유미리는 정말 작가가 되었고, 유타카는 그의 연인이 됐으나 식도암에 걸려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번 일기에서 그는 유타카에게 다시 한번 교환일기를 건넸다. 유미리는 “이번에는 감상을 적어주세요.”라고 이 책의 서두에 밝히고 있지만 물론 저 세상 사람이 된 유타카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유미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 당신을 잃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기다리지도 않습니다. 당신이 떠나갔을 때, 나는 무너졌고 언어를 잃었습니다. 그렇지만 황무지 같은 내 안에서 기어나온 것 역시 언어였습니다. 나는 이 1년 동안 <교환일기>를 썼습니다. 당신의 언어는 되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써본들 당신에게 닿지 않는 건 아닐까, 나 자신을 향해서 당신이 없음을 애도하는 장례식의 종소리처럼 울리고 있지만은 않을까, 언어 자체를 의심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의심해 마지않는 동시에 믿어 마지않습니다. 만약 당신한테 이어지는 길이 있다면 이정표는 분명히 언어가 나타내 줄 것임을. 내 머릿속에는 언어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언어를 가지고, 당신을 잃었음을 나 자신에게 들이대고 있을 뿐이라 한들, 나는 쓰지 않고는 견디지 못합니다. 당신에게 향하는 언어를―.” 일기가 연재되기 전 유미리는 이미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아픔을 겪었다. 1999년 5월, 임신사실을 알다. 상대는 ‘모 방송국의 보도국 기자’로 ‘35세이며 유부남’. 7월, 스승이자 연인이었던 히가시 유타카, 식도암 판정을 받다. 9월, 히가시와 함께 살면서 투병생활과 출산준비를 병행. 아이 아버지와는 출산 전에 헤어지다. 2000년 1월, 아들 다케하루 출산. 4월, 히가시 사망. 2002년 9월, 처녀작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출판금지, 가처분에 대한 상고 기각. 그녀는 일련의 사건들을 전부 혼자 힘으로 견뎌왔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뛰어넘어 오늘 여기까지 닿은 셈이다. 처음이 아니었다. 34년 동안 살면서 네 번째다. 첫 번째는 고등학교에서 퇴학처분을 받았던 16세 때, 두 번째는 출판금지 가처분신청이 접수되어 그 후 지방재판소에 고소를 당한 26세 때, 세 번째는 당신이 내 앞에서 모습을 감춘 31세 때―. (2002.10.4) 유타카가 죽고 다케하루가 태어났다. 원치 않은 임신이었고 아기 아버지는 자기 부인한테 돌아갔지만 유타카가 낳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던 아기다. 처음부터 아빠가 없었던 아들. “지붕 위에 높이 뜬 장대잉어 커다란 잉어는―.” 다음 가사는 아빠, 였는데 그만 말문이막혀서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부른다. “지붕 위에 높이 뜬 장대잉어 커다란 잉어는 엄마.” “엄마!” 아들이 기쁜 듯이 내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찔렀다. (2002.5.5) 유미리(柳美里)와 아들 야나기 다케하루(柳丈陽), 두 모자의 생활은 때로는 귀엽고 예쁘고 때로는 안타깝고 시큰하다. 어제는 유리에 손이 찢기고 오늘은 머리를 부딪치고, 내가 붙어 있는데도―. 분해서 눈물이 솟아나왔다. 나는 울면서 아들을 업고 가마쿠라 역까지 걸어가 택시를 탔다. 우리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줄곧 울었다. (2001.12.26) 16세에 집을 나와 18세에 첫 희곡을 쓰고 19세에 첫 희곡을 무대에 올린 날부터 오늘까지, 그녀는 ‘쓰는 이외의 직업을 가진 일도 없고 아르바이트를 경험해 보지도 않았다.’ 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막상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 쓰는 일에 어떤 아픔이 수반된다고 해도 아프기 때문에 쓰지 않고 그냥 두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쓴다는 것은 살아가는 것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2002.3.18) 어쩌면 ‘쓰는 일’은 그녀에게 살아남기 위한, 많은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한 도구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유미리의 글쓰기를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곤 한다. ‘유미리는 사소설 작가야’‘주위에서 소재를 찾아내지 못하면 뭘 쓴다지?’.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다. 많은 코리언 재패니즈 작가들이 자기 이야기를 쓴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사를 탈탈 털어내어 마음속에 얽힌 것들을 푼 다음에야 참다운 자신의 필체를 갖게 될까? 자잘한 일상사를 속속들이 드러내는 것은 거기에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더욱 더 단단히 붙들어매야 할 일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