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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1 ~ CD 2
요한 세바스찬 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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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은, 한국인 첼리스트 세계 최초, 바흐 무반주 전곡 음반
첼리스트 홍성은(단국대 교수)이 한국인 첼리스트로는 최초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음반을 내놓았다. 더욱이 그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배가된다. 19세기에는 여성이 첼로를 연주하는 것이 금기시 됐다. 두 무릎 사이에 악기를 끼우는 첼로 특유의 연주 자세가 여성들에게는 불경스럽고 숙녀답지 못한 것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20세기 여성 해방과 더불어 악기의 성구분이 무너지면서 자클린 뒤 프레, 나탈리아 구트만, 장한나 등 세계적인 여성첼리스트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난곡을 전곡으로 레코딩한 이는 없었다. 미국 줄리아드음대와 오스트리아 빈국립음대 유학을 마친 후 첫 귀국독주회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연주를 선보여 화제를 불러일으킨 주인공이다.
또, 많은 첼리스트가 평생의 화두로 삼을 만큼 첼로가 지니고 있는 표현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한 바로크 음악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다. 파블로 카잘스가 1889년 바르셀로나의 한 악기점에서 200년동안 잠자고 있던 악보를 발견해 첼리스트로는 최초로 전곡을 녹음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것도 평생 단 한번, 47년간 연구를 거듭한 끝에 60대에 이르러서야 전곡을 녹음했고 로스트로포비치도 칠순이 넘긴 후에야 전곡 음반을 내놓았다. 이 곡이 가지는 상징성이 그만큼 녹록치 않다는 것이다. 바흐가 1717년부터 6년에 걸쳐 완성한 이 작품은 작곡 당시에는 연습곡 정도로 평가절하됐다. 당시의 첼로 악기는 음색이 투박해 독주악기로는 충분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시기이기도 했다. 바흐 사후 200년만에 파블로 카잘스에 의해 재발견되면서 바흐 ‘건축물’ 가운데 최고의 명작이 되었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단 하나의 첼로로 연주하는 6곡의 춤곡으로 구성돼 있다. 1번부터 6 번까지 각곡은 ‘프렐류드-알르망드- 쿠랑트-사라방드-미뉴에트-지그’ 등 춤곡의 형식이지만 춤곡의 느낌은 좀처럼 나지 않는다. 윌프리드 멜러즈는 “무곡은 무곡이되 육체를 위한 무곡이 아니라 영혼의 무곡이다”라는 해석을 내렸다. 흐트러진 영혼을 위로해줄 수 있는 작품이라는 뜻이다. 월간 '객석', 'KBS 클래식 오디세이' 등 음악매체에서 뽑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클래식’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첼리스트 홍성은은 금호현악사중주단의 첼리스트로 활동했으며, 어린시절 장한나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세계적인 명기로 알려진 1707년산 아마티로 연주하고 있다. * 최초의 연주자 : 파블로 카잘스 (1936 ~ 39년 녹음) 1889년의 어느날, 카탈로니아의 수도 바르셀로나(스페인)의 한 악기점 으슥한 구석에서 먼지를 흠뻑 뒤집어쓴 채 200년 동안이나 잠자고 있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악보가 발견되었다. 이 놀라운 '신대륙 발견자'는 당시 13세의 소년- 파블로 카잘스였다. 카잘스는 그 후 12년 동안 집념어린 연구와 피나는 각고 끝에 비로소 첫 공개연주를 할 수 있었다. 당시의 일을 카잘스 자신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발견은 내 생애에 베풀어진 하늘의 커다란 계시였다. 연구를 해가면서 위대함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미지의 세계가 눈앞에 활짝 열리기 시작했다. 이 오랜 연구 과정을 거쳐 경험한 감동은 예술가로서 내 생애 가장 순수하고 강렬한 것이었다.’ 카잘스는 96세로 죽는 날까지 평생 매일같이 일과처럼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습했다고 한다. 47년동안 연구를 계속해 연주불가능한 부분을 수정 보완하고 나서야 녹음을 시작할 정도로 신중했다. 오늘날 모든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연주의 정점에 높이 솟아 있는 카잘스의 이 연주는 그 생명력과 기술적 완벽성, 내부적인 통일의 높이와 깊이, 논리성과 즉흥성의 혼연일치 등에서 비길 자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