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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소개

디스크

CD 1 ~ CD 2

  • 01 Bach : Cello Suite No.1 in G major BWV1007
  • 02 Bach : Cello Suite No.5 in C minor BWV1011
  • 03 Bach : Cello Suite No.6 in D major BWV1012
  • 04 Bach : Cello Suite No.2 in D minor BWV1008
  • 05 Bach : Cello Suite No.3 in C major BWV1009
  • 06 Bach : Cello Suite No.4 in E flat major BWV1010

아티스트 소개 2

작곡Johann Sebastian B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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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세바스찬 바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독일어: Johann Sebastian Bach, 1685년 3월 21일 ~ 1750년 7월 28일)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이며, 개신교회의 교회 음악가이다. 교회 성기사와 오케스트라, 듀오 악기를 위한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음악을 창작했고, 그의 작품은 바로크 시대의 종말과 궁극적인 성숙을 동시에 가져왔다. 그는 바로크 시대의 최후에 위치하는 대가로서, 일반적인 작품은 독일음악의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위에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양식을 채택하고 그것들을 융합하여 독자적 개성적인 음악을 창조하였다. 종교적 작품은 기존 구교 음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독일어: Johann Sebastian Bach, 1685년 3월 21일 ~ 1750년 7월 28일)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이며, 개신교회의 교회 음악가이다.

교회 성기사와 오케스트라, 듀오 악기를 위한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음악을 창작했고, 그의 작품은 바로크 시대의 종말과 궁극적인 성숙을 동시에 가져왔다. 그는 바로크 시대의 최후에 위치하는 대가로서, 일반적인 작품은 독일음악의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위에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양식을 채택하고 그것들을 융합하여 독자적 개성적인 음악을 창조하였다. 종교적 작품은 기존 구교 음악과 차별화하여 새로운 음악을 통해 개신교회 예배에 기여하고자 노력하였다.

바흐의 집안은 200년에 걸쳐서 50명 이상의 음악가를 배출한 일대 음악가계였다. 바흐 집안의 음악가들은 대대로 개신교회인 루터교회의 경건한 신자들이었고, 교회음악가로도 활동하였다. 또한 그들의 일에 강한 장인(匠人)적인 긍지를 품고 있었다. 이 '신앙'과 '장인기질(匠人氣質)'은 요한 제바스티안에게도 계승되어서, 마치 2개의 정선율(定旋律)과 같이 그의 일생을 관통하게 된다. 제바스티안 이전에도 17세기 초엽 이래 많은 유명한 작곡가를 배출했고, 일족의 중심지이었던 중부독일의 튀링겐 지방에서는 '바흐'가 '거리의 악사'를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을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제바스티안의 큰할아버지 하인리히 바흐(1615-1692), 그 아들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1642-1703)와 요한 미하엘 바흐(1648-94)는 음악사(史)에도 이름을 남긴 뛰어난 작곡가들이었다.

바흐는 사후 고전주의 음악사의 흐름에 밀려 완전히 잊혔으나 1802년 독일의 음악사학자인 포르켈이 바흐에 대한 최초의 연구서인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Uber Johann Sebastian Bachs Leben, Kunst und Kunstwerke)을 1802년에 발표함으로써 전 유럽적 바흐 광풍을 몰고 오게 하였으며 또한 사후 바흐에 대한 재평가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였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온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아주 훌륭한 곡을 많이 작곡 하였다.

바로크 음악에 있어서 바흐는 대위법 기술의 정수를 다한 사람이나, 그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당시에 이미 궁정문화에 침투했던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양식을 스스로 받아들여 칸타타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도 했다. 거기에는 그가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배운 여러 나라의 온갖 요소가 모두 투입되어 그만이 지닐 수 있는 최고로 천재적이게 융화되어 일치미를 이루고 있다. 콘티누오(통주저음)만으로 반주되거나 또는 여러 개의 악기로 반주되는 독창이나 중창에 의한 이탈리아식 다 카포 아리아, 오페라적인 아리오소와 레치타티보, 가장 초기의 가브리엘 형태에서 바흐 시대의 프랑스식 서곡에 이르기까지의 관현악 신포니아, 협주곡, 트럼펫의 팡파르, 풍요한 장식성을 지니고 성악성부에 얽혀드는 기악의 오블리가토 성부, 복합창형식, 때로는 성악에까지 적용되는 프랑스의 리드미컬한 춤곡, 이러한 것이 독일의 오랜 전통인 코랄과 결부되고 있다. 대체로 바흐만큼 코랄을 훌륭하게 활용하고 또 코랄을 창작의 중심으로 삼기에 정당함을 느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 나라 양식의 혼합은 기악 분야에서도 볼 수 있다. 프로베르거의 전통, 쿠프랭의 프랑스 모음곡형식, 쿠나우에 의하여 전해진 이탈리아의 소나타 다 카메라양식,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의 건반 텍스처(鍵盤書法), 푸가에 있어서도 클라비어 푸가는 이탈리아 협주양식의 영향을 나타내나 오르간 푸가는 북독일 오르간 악파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협주곡 분야에서는 끊임없이 비발디가 모범으로 숭앙되며, 가장 이탈리아의 특징을 나타낸다. 이와 같이 바흐의 작품은 매우 많은 여러 가지 양식을 포함하고, 또한 작곡한 분야도 넓으며 바흐 개인으로서도 시대에 따라 기술적, 내용적으로 현저하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개인양식을 간단히 종합하기란 곤란하다고 하겠다.

바흐는 생전에도 동시대의 음악가였던 비발디나 텔레만과 같이 국제적 지명도를 가진 음악가는 아니었다. 사후에는 당시 음악가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작곡가로서는 완전히 잊혀진다. 바흐 생애 후반부에 이미 고전파 음악의 전조가 시작되었고 바흐 음악은 낡은 것으로 취급되었다. 바흐는 비발디나 헨델과 같이 음악가의 프리랜서화를 선도하는 인물도 아니었고 끝까지 교회 음악가로 남았다. 고전파 시대에 바흐는 고전파의 문을 연 아들들의 아버지로서 오히려 유명하였다. 유명인 중에는 모차르트가 바흐의 악보를 찾아서 탐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모차르트 음악에 가끔 훌륭한 푸가가 보이는 것이 바흐의 영향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베토벤 또한 바흐를 연구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영향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바흐를 극찬하는 말을 남겼다고하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아닌 아들 바흐에 대한 찬사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그러나 1802년 독일의 음악사학자인 포르켈이 사후 완전히 잊혔던 바흐에 대한 최초의 연구서인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Uber Johann Sebastian Bachs Leben, Kunst und Kunstwerke"(1802)를 발표함으로써 바흐에 대한 인식의 전환점을 제공하였다. 근대 인문학으로서의 음악사학의 발전은 낭만주의 시대에 이전 시대의 음악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고 이들의 작품을 출판,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바흐는 그 핵심 레파토리로 떠오른다. 바흐 생존 시기나 고전파 시대의 지명도와는 달리 낭만주의 시대에 바흐는 이전 시기 어떠한 음악가보다 높이 평가되기 시작하여 멘델스존 이후 음악가들 중 바흐를 연구하지 않은 작곡가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바흐에 대한 관심은 바흐가 많이 참고하고 편곡을 했던 다른 음악가들, 특히 비발디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켜서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바로크 음악의 부활을 이끌기도 하였다. 오늘 날에도 바흐는-그의 음악이 바로크 음악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도 없고, 바로크 시대 가장 유명한 음악가도 아니었지만-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추앙받고 있다.

서양 음악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바흐의 가문에서는 약 200년 동안에 걸쳐 저명한 음악가가 많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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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홍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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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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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매일
2005년 01월 03일
시간/무게/크기
크기확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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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사 리뷰

홍성은, 한국인 첼리스트 세계 최초, 바흐 무반주 전곡 음반
첼리스트 홍성은(단국대 교수)이 한국인 첼리스트로는 최초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음반을 내놓았다. 더욱이 그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배가된다. 19세기에는 여성이 첼로를 연주하는 것이 금기시 됐다. 두 무릎 사이에 악기를 끼우는 첼로 특유의 연주 자세가 여성들에게는 불경스럽고 숙녀답지 못한 것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20세기 여성 해방과 더불어 악기의 성구분이 무너지면서 자클린 뒤 프레, 나탈리아 구트만, 장한나 등 세계적인 여성첼리스트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난곡을 전곡으로 레코딩한 이는 없었다. 미국 줄리아드음대와 오스트리아 빈국립음대 유학을 마친 후 첫 귀국독주회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연주를 선보여 화제를 불러일으킨 주인공이다.

또, 많은 첼리스트가 평생의 화두로 삼을 만큼 첼로가 지니고 있는 표현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한 바로크 음악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다. 파블로 카잘스가 1889년 바르셀로나의 한 악기점에서 200년동안 잠자고 있던 악보를 발견해 첼리스트로는 최초로 전곡을 녹음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것도 평생 단 한번, 47년간 연구를 거듭한 끝에 60대에 이르러서야 전곡을 녹음했고 로스트로포비치도 칠순이 넘긴 후에야 전곡 음반을 내놓았다. 이 곡이 가지는 상징성이 그만큼 녹록치 않다는 것이다.

바흐가 1717년부터 6년에 걸쳐 완성한 이 작품은 작곡 당시에는 연습곡 정도로 평가절하됐다. 당시의 첼로 악기는 음색이 투박해 독주악기로는 충분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시기이기도 했다. 바흐 사후 200년만에 파블로 카잘스에 의해 재발견되면서 바흐 ‘건축물’ 가운데 최고의 명작이 되었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단 하나의 첼로로 연주하는 6곡의 춤곡으로 구성돼 있다. 1번부터 6 번까지 각곡은 ‘프렐류드-알르망드- 쿠랑트-사라방드-미뉴에트-지그’ 등 춤곡의 형식이지만 춤곡의 느낌은 좀처럼 나지 않는다. 윌프리드 멜러즈는 “무곡은 무곡이되 육체를 위한 무곡이 아니라 영혼의 무곡이다”라는 해석을 내렸다. 흐트러진 영혼을 위로해줄 수 있는 작품이라는 뜻이다. 월간 '객석', 'KBS 클래식 오디세이' 등 음악매체에서 뽑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클래식’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첼리스트 홍성은은 금호현악사중주단의 첼리스트로 활동했으며, 어린시절 장한나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세계적인 명기로 알려진 1707년산 아마티로 연주하고 있다.

* 최초의 연주자 : 파블로 카잘스 (1936 ~ 39년 녹음) 1889년의 어느날, 카탈로니아의 수도 바르셀로나(스페인)의 한 악기점 으슥한 구석에서 먼지를 흠뻑 뒤집어쓴 채 200년 동안이나 잠자고 있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악보가 발견되었다. 이 놀라운 '신대륙 발견자'는 당시 13세의 소년- 파블로 카잘스였다. 카잘스는 그 후 12년 동안 집념어린 연구와 피나는 각고 끝에 비로소 첫 공개연주를 할 수 있었다. 당시의 일을 카잘스 자신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발견은 내 생애에 베풀어진 하늘의 커다란 계시였다. 연구를 해가면서 위대함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미지의 세계가 눈앞에 활짝 열리기 시작했다. 이 오랜 연구 과정을 거쳐 경험한 감동은 예술가로서 내 생애 가장 순수하고 강렬한 것이었다.’ 카잘스는 96세로 죽는 날까지 평생 매일같이 일과처럼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습했다고 한다. 47년동안 연구를 계속해 연주불가능한 부분을 수정 보완하고 나서야 녹음을 시작할 정도로 신중했다. 오늘날 모든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연주의 정점에 높이 솟아 있는 카잘스의 이 연주는 그 생명력과 기술적 완벽성, 내부적인 통일의 높이와 깊이, 논리성과 즉흥성의 혼연일치 등에서 비길 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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