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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4
제1장 문소리 9 명자꽃과 떡볶이 10 상과 상장 16 대인 기피증 20 미깡 아줌마 24 멀고도 깊었던 경무대 30 최 교수의 부음 36 아래층 목사님 43 행복 49 제2장 이 또한 지나가리라 57 시절인연 58 진희, 유경 그리고 지원에게 70 나의 60년 첫사랑 80 의미 있는 순간 89 이 또한 지나가리라 93 대륙 사람들의 기질과 나 100 우리 집 셋째 아들 103 두 어머니 108 제3장 마지막 선택 113 이런, 배신 114 인연인가, 악연인가 120 가마메 아저씨 127 줌 132 두 리디아 142 목욕탕집 아들 154 마지막 선택 164 70년 지기지우 169 제4장 노인과 어른 175 유럽 여행의 여적 176 요양 보호 185 회신이 없어도 좋다 191 당선 소감 196 노인과 어른 200 스트레스 205 입을 좀 벌리셔야죠 210 라이센스 216 제5장 그리운 마음 영원한 불꽃으로 221 일본을 제대로 알아가고 싶은 노년의 꿈 222 비밀 231 멋진 인생 마지막 옆지기 243 그리운 마음 영원한 불꽃으로 254 문명자라는 친구 266 시간의 가역반응, 존재인식의 가로지르기 271 에필로그 263 [발문] 문명자라는 친구|손공자 266 [작품 평설] 시간의 가역반응 존재인식의 가로지르기 - 한상렬 2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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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 미깡 아줌마도 돌아가셨겠지만 70년대 초반 나는 처음 일본으로 출장을 갈 때부터 할아버지께 들었던 주소 ‘신주쿠역 앞’이라는 것밖엔 아는 게 없으면서, 볼일을 제쳐놓고 시간만 되면 전철역 입구에 가서 지나가는 할머니들 얼굴을 한 사람 한 사람 뚫어지게 쳐다보며 오롯한 마음 하나로 미깡 아줌마를 찾아보려고 갖은 애를 썼다.
하지만 그런 경천동지할 우연은 내게 찾아오지 않았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그분을 혹시라도 만날까 해서 나는 몇 날 며칠을 일본 갈 때마다 시간만 나면 그곳에 갔었다. 어리석다고 해야 할까. 그냥 무턱대고 꼭 만나 보고 싶은 하나의 마음은 필연 같은 우연을 믿고만 싶었을 것이다 --- p.27 「미깡 아중마」 중에서 이제 이만큼 살아보니 행복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듯하다. 어릴 때 꽃반지를 만들어 끼고 기뻐했던 길가에 흔한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었다. 우린 그걸 알고 가느다란 손, 손가락 마디마다 끼고 다니며 좋아했을까. 지금도 축하 메시지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바로 ‘행복’이다. 행복이란 나를 중심으로 하는 말일 것이다. 복된 운수란 뜻의 이 단어는 수식어로 많이 쓰인다. 행복을 이야기할 때 남이 나를 배려해주는 건 그다지 중요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각각 자기 행복을 추구하는 일에 바쁘기 마련이어서다. 또 많은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줘서 행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나도 그들도 같지 아니한가. 어쩌면 욕심일 뿐이다. 그러니 세상 사람이 나를 위한다는 건 욕심이고, 저마다 다 자기를 위하여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찾아가는 것뿐이다.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부모가 돌아가셔서 슬피 우는 것도 사실은 내가 외로워서 “나는 어떻게 살라고?”를 외치며 하늘에 호소하는 게 아닐까. --- p.49 「행복」 중에서 얼마 전 그녀의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살던 집을 팔고 NY로 왔다고…. 아마도 그를 처음부터 아버지로 믿고 따랐던 막내 부부의 주선으로 Senior Town으로 들어간 것 같다. 그래요! 잘하셨어요. 당신은 그곳에서 편히 지내다가 친구가 자리 잡아 놓은 좋은 곳으로 갈 자격이 충분히 있는 사람이에요. “이제 친구는 잊어버리고” 그곳에서 다른 많은 사람과 사귀면서 즐겁게 여생을 보내세요. 지금 나는 그를 도와줄 게 하나도 없어 안타깝다. 세상이 텅 비어 있을 그 고마운 이에게. 그의 평안과 건강을 위한 기도밖엔. 그에게 건네줄 아무것도 내겐 없으니, 친구야! 미안하다. --- p.241 「비밀」 중에서 서리처럼 내린 하얀 머리칼엔 수많은 사연이 새겨져 있고, 이마랑 입가 등 깊은 주름 안엔 포기라는 걸 모르고 달려온 용감한 눈물의 인생사가 그려져 있다. 구부러져 휘어진 허리는 그토록 열심히 살아왔다는 증거를 낱낱이 다 보여주길 꺼려 애써 버티고 있음이 역력한데 누가 감히 나더러 선택을 잘못했노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매사에 신중하게, 힘든 역경이 가져다준 눈발을 헤쳐 가며 어려운 삶을 살아온 나에게 누가 나서서 돌을 던져 나무라겠냐고 다시 묻고 있다. 전등을 모두 끈 캄캄한 잠자리에 누워서 생각에 잠긴다. 젊은 시절 늘 잠이 부족해 아쉬웠던 나는 한숨도 못 자고 밤을 꼬박 밝혔다는 옛 노인들의 말이 부럽기도 하고 미덥지도 않던 일인데 난 요즘 그런 일을 거듭 겪고 있다. 기가 막혀 눈물이 앞을 가리는 일로 마음속에서 결론이 나지 않을 때는 요즘 나도 고스란히 밤을 밝히면서 시원한 해답을 찾아내려고 애를 쓰고 있으니 말이다 --- p.243 「멋진 인생 마지막 옆지기」 중에서 당신 몸 좋아지면 마신다고 넣어두었던 ‘Gold Label Hungary White Wine’은 이제 누구와 마셔야 할 것인가? 좋은 곳에 초대받아 갈 때 입자고 아껴두었던 멋쟁이 셔츠는 언제 어떻게 없애야 할 건지. 당신 생일마다 아이들에게 선물 받았던 지갑, 장갑, 혁대 그 숱한 소지품들. 사람은 기쁘거나 즐거운 일이 있어도 그때그때 즐기지 못하고 뭐라도 아끼고 다음으로 미루는 나쁜 습성들이 많이들 있다고 내가 가끔 말했었는데, 내가 지금 그 모두를 어렵고 수습하기 힘들게 당하고 있는 그런 모양새가 아닌가? 미래의 희망을 설계만 하다가 놓치고, 실망만 하는 나는 오늘만 설계하고 내일을 몰랐던 바보였다. 또 한 번의 인생이 온다면 아끼지도 말고 넣어두지도 말고 오늘 쓰고 오늘 입고 오늘 먹고 해야지. 귀한 그릇, 값비싼 옷, 왜 그렇게 아꼈을까? 현재보다 미래에 더 큰 행복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었었기 때문이겠지. 내일은 장담할 수 없고 오늘이 제일 행복한 날이라는 걸 왜 잊었을까. 더 기쁘고 더 행복한 날이 오려니 하고 내일로 미뤘더니 소리 없이 날 이리 혼자 버려두고 홀연히 그리 급하게 가버렸으니 이 얼마나 허망하고 황당한지 아무리 이해하고 적응하려고 해도 내 의지로는 정말 감당할 수 없다. 당신 무엇이 그리 바빠서 그렇게 급히 허둥대며 내 가슴 속에 돌덩이만 한 후회와 검게 타버린 큰 재 덩이만 덩그러니 남겨주고 사라져 버렸는지. 이렇게 같이하고 싶어 당신과의 끈을 놓지 못하고 이리도 크게 부르며 울부짖고 있는데. 태어날 때는 자기만 울고 가족 모두가 웃었는데 돌아갈 때는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슬피 울리고 떠나가는지. 당신은 왜? 정말 나 혼자만 적막강산에 눈물과 함께 남겨두고 훌쩍 가버렸는지? 날 얼마나 울리려 하는 것인지. --- p.258 「그리운 마음 영원한 불꽃으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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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작가들은 젊었을 때부터 글쓰기 공부하면서 작품집을 내고 작가의 길을 간다. 하지만 우리의 주변에는 매우 훌륭한 글 솜씨를 보이면서도 작가의 길을 가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문명자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다 살아내고 여든이 넘은 나이에 비로소 책을 내고 작가가 되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소설 같은 극적인 삶의 역정을 겪게 된다. 흔한 말로 “내 인생을 글로 쓰면 책 10권은 쓴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그만큼 누구에게나 소설 같은 스토리가 있다는 것이다. 문명자의 삶도 그러하다.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은 정말 책을 썼다는 것이다. 유년시절은 부자집에서 공주 같은 삶을 살았고, 청소년기에는 망가진 집안의 장녀 소녀가장이 되고, 결혼하고,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아이들 세 명을 키워내고, 사업에 성공하고, 아들딸 장가 시집보내고 나서야 뒤늦게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 사이 어릴적 첫사랑과 다시 만나 재혼을 하고, 재혼한 남편을 다시 먼저 보냈다. 문명자의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에 대해서는 이미 전에 낸 책 『명자꽃』에서 다뤘다. 전작이 문명자의 자서전적 에세이였다면, 이 책은 문명자의 본멱적인 에세이집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바뀐 삶의 변화와 재혼혼 남편과의 감동적인 삶이 녹아 있다. 특히 최근에 쓴 남편과의 사별 이후 쓴 작품은 깊은 감동을 준다. 뉘늦게 시작한 작가의 길이지만, 누구보다 할 얘기가 많은 문명자 작가의 도전을 응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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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는 사람은 저마다 작은 연못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 그 연못에 물이 고여 가득 차면 찰랑거리게 마련이다. 그럴 때 작가는 사색의 두레박으로 가슴에 고인 물을 퍼 올린다. 특히 수필가의 경우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 관념과 인간의 보편적 진리와 질서에 혼융混融하여 그 발효의 날을 기다리게 된다. 헤겔Hegel은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깃든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고 하였다. 뒤늦게 문단 데뷔를 이룬 작가의 수필집이건만 그에게서 평자는 이미 황혼이라는 시간적 추이를 본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문명자의 자전 에세이 『문소리』는 한 마디로 ‘시간의 가역반응可逆反應, 존재인식의 가로지르기’라 하겠다. 그의 자전은 작가의 ‘자기 얼굴 그리기요, 얽힘과 풀림을 통한 화해의 메시지’라 할 수 있다. 결국, 그의 수필은 존재의 문제를 천명하는 삶의 진정眞情성에 있어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화두에 답하고 있음을 보게 한다. 문명자의 자전적 에세이는 비록 일상의 자잘함에서 소재를 취택하고 있으나, 존재의 자각을 통해서 자기 얼굴을 그리고자 하는 창작 동기에서 그 세계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그의 수필에는 소박한 화자의 삶의 지향과 마음의 행로가 행간에 담겨있다. 특별할 것도 없는 그저 평범한 화소들이 생동감을 갖는 이유는 진실한 삶의 지향이요, 행로일 것이다.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 인의 모습을 우리는 그의 수필의 행간에서 읽어낼 수 있으며, 시간을 가로지르는 시간의 가역반응을 그의 수필에서 읽게 한다. 그리하여 그의 수필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절로 그의 마법의 성에 갇히게 된다. - 한상진 (에세이 작가,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