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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4
장점과 단점을 모두 지닌 컴퓨터 혁명의 선구자 PART 1 자동화된 컴퓨팅 이전의 게이츠 게이츠의 유년 시절 | 15 유복한 가정의 게이츠 3세 골칫거리가 된 어린 아들 자선 활동의 씨앗 소프트웨어에 푹 빠지다 | 21 처음 경험한 프로그래밍 트래프-오-데이터와 첫 직장 적절한 시기에 태어나다 알테어 작업을 위해 하버드를 그만두다 대학 중퇴에 대한 가족의 반응 PART 2 마이크로소프트의 초창기 기대 이상의 성장 | 43 최고의 사업적 결정 민첩한 움직임과 성공 애호가들에게 보낸 공개편지 지적 재산을 지키기 위한 싸움 스타들은 최고가 모이는 곳에서 일하기 원한다 | 57 성장을 위한 인재 채용 운영 체제 판매를 위해 필요한 요소들 앨런의 심각한 질병 게이츠의 지적 재산권 승리 PART 3 오늘날 사용되는 제품의 개발 규모보다는 영리함이 중요하다 | 69 윈도우 1.0의 출시와 주식 상장 애플 대 마이크로소프트 큰 성공을 거둔 윈도우 3.0 해일처럼 밀려올 인터넷 최종 결정권자로서의 게이츠 | 84 마이크로소프트의 애플 투자 주주 총회에서의 게이츠 지적 재산권 보호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벗어나는 길 PART 4 마이크로소프트 재판 화해 조서, 그리고 소송 | 97 마이크로소프트와 게이츠는 왜 성공했는가 첫 번째 화해 조서 1997년 10월 20일 재판으로 향하다 이어지는 공방 | 114 게이츠의 증언 사실 인정 결과에 대한 게이츠의 대응 마이크로소프트의 새로운 공격 게이츠에 대한 공격으로 비난받은 잭슨 판사 두 번째 합의 조서에 따른 제재의 종료 PART 5 경쟁자 그리고 다른 활동 오랜 경쟁 관계, 잡스와 게이츠 | 141 제품 진화의 I시대 게이츠 및 잡스 감사 프로그램 친구들 간의 마지막 대화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난 후의 게이츠 | 151 다른 억만장자들에게 영감 주기 여성의 역량 강화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소유 지분 감소 회사 외부의 지분 코비스에 대한 소송 PART 6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 재산을 환원하기로 약속하다 | 165 대규모 기부 선례 게이츠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도서관 프로젝트와 소수자 교육 1998년 랠프 네이더의 운동 게이츠의 자선 활동 재단에 전념하기로 하다 | 183 기부의 우선순위를 바꾸다 게이츠 삶의 변곡점 게이츠가 참여한 프로젝트들 재단의 활동에 대한 비판 게이츠 부부의 연례 서한과 기부 서약 억만장자가 세상을 사랑하는 법 | 204 조급한 낙관주의자 인공 지능 시대에 열광하는 게이츠 에필로그 | 213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감사의 말씀 | 216 연표. 빌 게이츠의 삶에 일어난 사건들 | 218 |
Michael B. Becra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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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츠가 처음으로 프로그래밍을 경험한 것은 1968년 시애틀의 레이크사이드 학교 어머니회가 학교에 시간 공유 시스템을 도입했을 때였다. 그해 여름, 열두 살의 게이츠는 두 살 위인 친구 앨런과 함께 학교를 위한 학사 일정 시스템을 만들어 4,200달러를 벌었다. 학교용 학사 일정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게이츠는 배치될 반을 손쉽게 정할 수 있었다. 그는 앨런과 함께 만든 소프트웨어를 수정해 자신을 여학생만 있는 반에 배치할 수도 있었는데, 이는 고등학생에게 분명한 성공의 징표로 여겨졌다. 그는 훗날 “성공을 분명하게 보여 줄 수 있는 기계에서 내 자신을 떼어 놓기가 어려웠다. 완전히 꽂혔다”라고 말했다.
--- 「처음 경험한 프로그래밍」 중에서 앨런이 알테어 베이식 시연과 소프트웨어 구동에 성공하자 두 사람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게이츠는 알테어 베이식을 출시하고 회사가 성장하려면 하버드를 당장 그만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사건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칩이 어디로 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우리가 오랫동안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서 내가 하버드에서 학위를 마칠 때까지 산업계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았다.” (…) 게이츠는 매우 어렵지만 과감한 선택을 하기로 했다. 1975년, 열아홉 살의 나이에 하버드를 떠나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 창업한 그는 이듬해 학교를 완전히 그만두었다. --- 「알테어 작업을 위해 하버드를 그만두다」 중에서 게이츠는 회사의 의사 결정에 대한 확고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한 예로 엔지니어 팀이 개발한 전자책 단말기를 들 수 있다. 이 제품을 개발한 팀은 10년 뒤에 명백해진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이 제품을 CEO가 아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마이크로소프트 엔지니어들은 2007년 아마존Amazon에서 킨들Kindle이 처음 출시되기 9년 전에 사실상 킨들과 유사한 제품을 선보였다. 하지만 게이츠는 전자책 단말기 인터페이스가 윈도우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프로젝트를 폐기했다. --- 「주주 총회에서의 게이츠」 중에서 게이츠 재단은 기부금의 액수가 아니라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하고 가장 많은 개선을 이끌어 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 그는 하버드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을 때처럼 인생에서 중요한 날에 한 연설에서 재단의 사명과 모든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장 중요한 발전과 최고의 성과는 전 세계의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전 발견에 있는 게 아니라 그 발견을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어떻게 적용하는가에 있다. 민주주의, 강력한 공교육, 양질의 의료 서비스, 폭넓은 경제적 기회를 통해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인류가 이룬 최고의 업적이다. 모든 생명이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믿는다면, 어떤 생명은 구할 가치가 있는 반면 어떤 생명은 그렇지 않은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이 역겨울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그것이 우리의 기부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마땅하다.’” --- 「기부의 우선순위를 바꾸다」 중에서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게 되면 그 재산을 소유한 사람은 여러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마련이다. 세금 관련 법령만 준수한다면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재산의 최대 한도를 제한하는 정부 규정은 없다. 부유한 사람은 재산을 유지하면서 미래 세대의 가족이나 지인에게 물려주거나, 주요 사업에 자금을 지원하거나, 재산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자선 활동에 사용하는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2010년 게이츠 부부는 버핏과 함께 미국 최고 부호들에게 재산의 절반 이상을 자선 사업에 기부할 것을 촉구했다. “우리는 예상을 뛰어넘는 행운의 축복을 받았으며, 이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선물이 큰 만큼 잘 사용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기부 서약에 명시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 「게이츠 부부의 연례 서한과 기부 서약」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