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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쇄원 서설
2. 양산보와 그의 가계 3. 소쇄원의 조영배경 4. 소쇄원의 영역과 공간분석 5. 소쇄원의 공간특성 6. 소쇄원의 구성요소 7. 소쇄원 관련자료 8. 김인후와 <소쇄원 48영> 9. 소쇄원 주변의 정자, 원림과 시가문학 10. 소쇄원 관련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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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월당은 정자라기 보다는 정사의 성격을 띠는 건물로, 주인이 거처하며 조용히 독서하는 곳이었다. 당호인 제월은 비갠 뒤 하늘의 상쾌한 달을 의미한다. 그러나 <소쇄원도>에 나타난 제월당이나 광풍각이 48영이나 <유서석록>에는 나타나지 않아 흥미롭다.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광풍각은 '소재'로 대체 할 수 있지만 제월당은 <유서석록>이 제작된 당시인 1574년에는 아직 건립되지 않은 것이 아니냐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p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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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들과 손자가 현명하여 그 당堂을 얽어 세운 뜻을 이해한다면, 나의 혼백이 영원히 간 뒤에도 거의 수 백년 동안을 보전하여 지킬 것이니 너희들은 힘쓸 것이다. 따라서 당의 벽 사이에 써서 자손에게 전해 보인다' 라고 한 사실에서 양산보가 단순히 이덕유나 김인후의 사례를 본뜨는 데에 그친 것이 아니고 양산보의 자연관이나 정원관을 살펴볼 수 있다. 즉 자연 속에 묻혀 혼연일체의 삶을 살고 자연 속으로 사라지는 도교적인 삶보다는 자연을 구획지어 자신만의 세계인 정원을 만들고 살기를 원했으며, 자신이 죽은 후에도 일종의 인공경관인 정원을 다시 자연 속으로 돌려 보내기 보다는 후손이 계속 가꾸고 소유하기를 원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상당히 현세적이고 어떻게 보면 서구적인 자연관을 가졌던 것이 아닐까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 p.61-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