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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성적표
강병철 교육 에세이
강병철
작은숲 201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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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저자 : 강병철
총각 선생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30여 년 세월이 쏜살처럼 흘러 이제 초로의 시점에 서 있다. ‘첫 제자들의 아들·딸’들과 티격태격 중이며 정년 퇴임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해직 교사와 안식년 교사 등 신산고초를 거쳤으나 아직도 제자에 대한 짝사랑이 뜨끈뜨끈하니 천상 훈장 체질이다.
한국작가회의 대전·충남 지회장을 역임했으며, 청소년잡지〈미루〉발행인으로 10여 년 동안 이름을 걸기도 했다.《닭니》《꽃 피는 부지깽이》《토메이토와 포테이토》등의 성장소설과《쓰뭉 선생의 좌충우돌기》《선생님이 먼저 때렸는데요》등의 교육 산문집까지 열 권 이상의 책을 발간했으나, 아직도 도서관 붙박이로 습작 시인처럼 글자판과 씨름중이다. ‘술과 글’이 주특기이며 거친 외모와 달리 속살이 뽀얀 순정파 스승이다. 지금은 서산 대산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10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282쪽 | 420g | 148*210*15mm
ISBN13
9788997581603

책 속으로

25년 만에 인문계 고등학교로 컴백하려는 시점이다. 돌아온 교단이 예상보다 만만치 않아서, 초로의 사내는 요즘 대학 도서관에서 EBS 문제집으로 몸을 푸는 중이다. 오랜만에 인문계 수능 문제를 접하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그래도 이상하다. 수십 종의 국어 교과서 중에서 유독 EBS에서만 수능 문제를 출제하는 입시 타법이라니, 정답과 해설판을 움켜쥔 채 감독관 자리에 서는 셈이다. 변화는 또 있다. 외우는 게 사라진 대신 독해력은 스피드 게임이다.
예전 총각 선생 때는 무조건 좔좔 외우기만 하면 해결되었었다. 때까치 여고생들 앞에서 신비스런 포즈를 보여 주기 위해 아예 국어 교과서를 덮은 채 강단에 서기도 했다. ‘불휘 기픈 남? 바라매’를 외우면서 ‘용비어천가 2 장에만 유독 중국 고사가 없으며, 순우리말을 상징적으로 사용했다.’부터 운을 띄웠다.
--- 본문(EBS 문제집을 풀며)


나는 스무 날이 넘도록 인터넷에 미쳐 일상을 잃었고.
‘카카오톡의 마지막 문장’들을 껴안으며 수도 없이 흐느꼈다. 부르르 떨리는 입술을 막느라 동료 교사들과 눈길 맞추기조차 고통스러웠던…… ‘2014년 4월 16일 08시 52 분’으로 마감된 그 시각 영상이 가장 아프다. 다급한 소식에 놀란 세월호 학생의 어느 형이 카카오톡 답변으로.
‘괜히 우왕좌왕 당황할 필요 없고 정신 차리고 천천히 하라는 대로만 하면 돼.’
침착하게 달래 줬으나 그 조언은 안타깝게도 현실이 되지 못했고,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아이들은 기가 막힌 죽음을 만나야 했다. 그랬다. 세월호 꿈나무들은 ‘기다리면 구조가 되리라’ 기도하면서도 하나씩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엄마, 말 못할까 봐 그냥 문자로 내보낸다.’
‘누나 사랑해. 그동안 못해 줘서 미안해.’
‘연극부 아이들아, 진짜 내가 잘못한 거 있으면 용서해 줘. 사랑한다.’
동아리 후배의 ‘형, 왜 그래. 보고 싶어요.’라고 불안하게 보낸 답장이 마지막 소통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유년의 나처럼 ‘미안해.’ 대신 ‘사랑해요.’를 작별 인사로 남겼다.

---본문(우리들은 나쁘고 힘이 없다)

출판사 리뷰

돌아와 다시 교문 앞에 서다
행복했던 ‘안식년’의 시간을 마감하고 고향 서산의 대산고등학교로 돌아간 감회는 말로 표현 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을 떠나 머물다 다시 현실의 삶에 적응하는 일은 생각만큼 녹록치 않았다. ‘첫 제자들의 이세쯤 되는’ 아이들의 발걸음에 맞춰 걷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돌아온 교단이 예상보다 만만치 않아서, 초로의 사내는 요즘 대학 도서관에서 EBS 문제집으로 몸을 푸는 중이다.’ 도서관에서 EBS문제집을 푸는 국어 교사의 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과 동시에 참 훌륭한 선생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문계 고등학교 복귀를 위해 문제집 500쪽 이상을 독파’한 그의 열정은 여느 젊은 선생님 못지않음을 느낄 수 있다. 오랜 세월 교단에 머물며 수많은 경험을 한 그도 빠르게 변하는 세월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벅차게 느껴진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세상의 속도만 탓하는 그런 선생님이 아니다. 조금 힘에 부치는 일이지만 아이들 옆에 머물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성적표(?)
책의 제목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아닌 우리들의 일그러진 ‘성적표’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엄석대는 강력한 주먹으로 교실을 제압했다. 아이들은 물론 담임 선생님도 엄석대에게 꼼짝 못 했다. 옛날 시골의 교실에서는 덩치 큰 아이가 교실을 지배했다면 오늘날 학교의 교실에서는 무엇을 가진 아이가 교실의 일인자가 되고 있을까? ‘훌륭한 성적표’를 받은 아이가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엄석대처럼 주먹을 사용하진 않지만 높은 점수의 성적표를 가진 아이는 선생님의 관심과 아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강병철 선생님은 초등학교 시절 6등 성적표를 받고 ‘윗방 이불더미에 쓰러져 흥건히 젖도록 울면서 전의를 다졌던’ 소년이었다. 아이들이 ‘성적’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와 부모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얼마나 큰 지 잘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지금 우리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성적표뿐만이 아니다. 끊임없는 경쟁과 줄 세우기 식 교육으로 고통 받고 있다. 경쟁에 내몰려 꿈조차 꾸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청소년기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빛나야 하는 시기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은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밤을 맞닥뜨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뿐이다.


벚꽃이 눈사태처럼 흐드러지게 쏟아지던 사월
지난 사월 대한민국은 혼란 그 자체였다. 전국 학교의 선생님들과 아이들도 패닉에 빠져버렸다. 수많은 청춘들이 어른들의 잘못으로 수학여행 길에서 되돌아오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들은 나쁘고 힘이 없다’는 제목을 붙여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슬픈 마음을 전했다.

벚꽃이 눈사태처럼 흐드러지게 쏟아지던 사월,
처음에는 그저 시간차로 가끔 벌어지던‘답답한 방송 사고’정도인 줄만 알았었다. 그날 아침, 수학여행 학생들을 태운 여객선 침몰 속보와 동시에 분명히‘학생 전원 구출’이라는 자막이 떴을 때에도 아니 뭐야.’ 하는 정도로 일상에 빠졌을 뿐이다.

학교 선생님들에게 2014년 4월은 유난히 잔인한 계절이었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고, 시간이 지나 그 마음은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의 간절한 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슬픔은 분노와 좌절이 되었다.

나는 입시 준비에 몰입하는 아이들의 숙인 고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용서하지 마라.’
그 고백을 짓누르는 중이다.
‘우리들은 나쁘고 힘이 없다.’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아이들에게 그가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마지막에 그는 아이들에게 용서 받을 수 없는 용서를 구하고 있다.
우리들은 나쁘고 힘이 없다.


운동장 후미진 구석에 그렇게 머물고 싶다
강병철 선생님은 여러 권의 책을 낸 작가이다. 글은 쓴다는 것은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일이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슬픔, 분노, 기쁨 등의 감정을 꺼내어 바라보는 일이다. ‘섬세한 속내보다는 문장의 무늬에 초점을 맞출 때가 많다.’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는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반성하고 아이들을 거울삼아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그런 선생님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솔직하게 아이들 곁에 머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지난 사월처럼 교사와 아이들 모두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남긴 일이 닥쳐도 아이들을 떠날 수 없다. 때로는 힘겹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삶에 지치기도 하지만 아이들을 등질 수 없다. 어떤 순간에도 항상 아이들 옆에 머물러 주는 그런 선생님으로 남아야하기 때문에 떠날 수 없다. 아이들만 생각하고 항상 곁에 머무르기 위해 노력하는 강병철 선생님과 같은 분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작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작가의 말

콩깍지 탯줄을 만나면서 전봉준과 전태일이 새롭게 등장 했던가.
번민의 사내는 날마다 반성의 늪에 빠지기 시작했다. 몇 해 전 모습이 부끄러웠고 몇 달 전, 아니 일주일 전의 몸짓도 설레설레 지우고 싶었던 청년 심장의 그 즈음이다. 번개처럼 흘러가는 청춘의 스크린을 까맣게 놓친 채 복종을 달게 받지 않으려 했던 지난날이다.

당연히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지구촌은 자본주의로 약진했고, 사람들은 조명발을 탐내다가 그늘의 의미를 잊었다. 유리 항아리 끌안고 얼음 동산 오르다 보면 자꾸만 거미줄이 얼굴로 쏟아지는 것이다. 착한 피들의 상용어였던 ‘유목의 깃발’ 이나 ‘녹색 벌판’으로도 예전의 구경꾼들이 치고 들어오더니 금세 우리들을 객석으로 몰아내었다. 그렇게 좁혀진 운신의 폭에서 벗들과 불안하게 다투면서 자꾸 감상적 체질로 바뀌는 것이다. 까만 논두렁으로 민들레 새순이 보이면 암울한 시국의 희망으로 은유하며 솜털을 바싹 세우기도 했으니 필경, 센티멘털이리라.

교실의 얄개들은 여전히 미루나무처럼 쭉쭉 뻗는 중이다.
첫 제자들의 이세쯤 되는, 그들이 터뜨리는 비늘 파편들이 여전히 내 삶의 자양분이지만 요즘은 교실에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부르는 것도 익숙하지 못하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섬세한 속내보다는 문장의 무늬에 초점을 맞출 때가 많다. 잘못을 감추는 버릇이 빈번해지면서 노여움도 많아졌다. 정년 퇴임을 목표로 삼는 나목의 평교사는 후배들의 사랑을 먹고 그늘을 드리워야 하는데 여전히 눈길을 맞추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이 내 삶의 가장 젊은 날’이라며 장판 속에서 숨 은 배추 잎 찾아내듯 낮은 기쁨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재작년의 학습연구년의 행운이 글 뒷부분의 절반쯤 차지한다. 북유럽과 토지문화관, 연희문학창작촌과 마라도까지 진출하는 행운의 기회, 특히 마라도 유배지의 망망대해는 내 생애 에서 특별한 흔적으로 남을 것 같다. 마지막 배가 떠나면 찾아올 사람이 전혀 없어, 미운 사람도 그리워지던 그 사연들이 지하철 손잡이처럼 온정으로 묻어나길 기대한다.
이 책의 지면과 사진 제공에 전폭적인 도움을 주신 충남교육 연구소 조성희 선생님과 작은숲 출판사 강봉구 사장님의 점차 진해지는 인연에 감사드린다. 벗들의 사랑을 먹으면서 고질병인 조급증을 덜어 낼 수 있어서 조금은 안도할 만하다.

2014년 여름 마른장마를 보내며
강병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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