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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_ 진실을 탐구하는 작업의 쾌미
순결한 여인 / 11 -1970년대 풍경화 해인사를 폭격하라 / 87 귀국선 우키시마호 / 153 인지 수사 / 263 -아직도 여전히 답답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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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안나는 말없이 맥주를 따라 마셨다. 말을 하고 보니 허전한 것이었다. 그녀가 담배를 물고 라이터 불을 켜 붙이더니 깊게 빨아 연기를 후 허공에 날렸다. 그녀 눈에 눈물이 어렸다.
“나가 누나의 사연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훨씬 더 잘해주었을틴디 시피보고(쉽게보고) 말았단 말이요. 미안합니다이. 정말로 미안합니다이. 이렇게 순결한 우리 누님을 누가 매정스럽게 했을까요이, 진실로 정성으로 모실랍니다. 충성을 다하겄습니다.” 송안나가 그를 빤히 건너다 보았다. “나는 갈 거야. 내려갈 거야.” “예? 출세해야 하는디요? 나가 여그서 누님 알뜰하게 모실라는디요?” 모처럼 출세하는 길이 열리고, 그녀 신분에 맞는 일이 주어졌는데 내려간다고? 모두들 출세를 위해 서울로 모여들고 있는데, 퇴락한 항구도시로 다시 돌아간다고? 믿어지지 않았다. “오야지 올려보내고 내가 삼학도를 지킬 거야. 거기서 다시 사랑을 만들 거야.”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이요? 좆되는 것 아니요?” “네 번째 사랑이 되는 거지.” 기후 따뜻하고 인심 넉넉한 곳, 사심없는 욕지거리가 오히려 다정한 곳, 거친 듯하나 모두가 명랑한 그곳이 이제 그녀의 안식처가 되었다. 그곳이라면 언젠가는 좋은 남자가 나타날 것 같다고 믿었다. 상처받고 외로운 사람이 성자처럼 나타날 것 같다. 송안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 「순결한 여인-1970년대 풍경화」 중에서 장지동이 부대로 돌아와 김영대에게 보고했다. “지금 당장 2개 편대를 편성해 해인사를 폭격하라고 합니다. 이머전시 콜입니다.” “미친 새끼들.” 그가 화를 내며 덧붙였다. “해인사라면 천년 고찰인데, 성냥갑 부수듯이 부수라고? 나라의 보물이자 세계적인 불교문화 유산이 보존돼 있는 곳을 때려부숴? 미친 새끼들…” 장지동도 같은 생각이었다. 김영대가 투덜거렸다. “장지동 너 불도(佛徒) 아니냐?” “그렇습니다. 형님은 기독교고요.” “기독교지만 실상은 잡교야. 좌우지간 기독교도든 불도든 이건 안돼. 지동이 너 프랑스 와이장 방위사령관 알고 있나?”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왜요?” “항복으로 파리를 지킨 장군이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 파리를 지키던 와이장 방위사령관이 독일군에게 포위를 당했다. 막강 독일군이 공격하면 파리가 완전 파괴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와이장은 파리가 독일군에 포위된 상태에서 항복이냐 항전이냐의 기로에 서 있었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항복을 택했다. “와이장 장군은 파리를 사랑했지. 그래서 오늘날 파리가 온전히 보존된 거야. 장군으로서는 최대 수치로 싸움 한번 해보지 못하고 항복했지만, 조국의 수도를 살린 영웅이야.” “그럼 우리도 폭격을 막자는 겁니까?” “두말하면 개소리지. 미군놈들은 생각보다 무식하잖나. 정신적 사유가 없어. 문명이 뭐고, 유물이 뭔지 모르고, 때려 부수려고만 해. 실적주의에만 빠져있어.” “하지만 미군도 태평양 전쟁 중 교토를 폭격하지 않았잖아요.” “규정으로서가 아니라 지휘관 퍼스낼리티에 따라 문화재가 보존되느냐 멸실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야. 전쟁은 개인적 선의만 믿을 수 없어.” 미국은 일본 본토를 공격하면서 고도 교토와 일왕이 살고 있는 도쿄의 궁성은 폭격 목표에서 제외했다. 유적·유물은 한 번 부서지면 재생시킬 수 없으며, 그것은 피아 구분을 떠나 인류 전체의 손실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미국 지성계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불행을 막은 것이다. “미국 문명인은 한국전쟁엔 없는 것 같아. 그러니 우리가 나서야지. 인민군이 해인사를 점령한 것은 식량 확보 차원일 뿐이야. 대신 다른 방법으로 그놈들을 격퇴할 계획을 생각해봐.” “인민군이 식량을 확보하면 지들 아지트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셨죠? 그때 우리가 그 루트를 뒤따라가서 밟아버리면 됩니다.” “그래, 그렇게 작전을 짜라. 그렇게 되면 너 역시 와이장 장군이 된다.” “아닙니다. 형님이 와이장 장군이죠.” 두 사람이 의기투합을 확인하고 라인으로 돌아오는데 미 고문단 대위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제복에 부착된 이름표에 6146부대 W. 윌슨이란 이름이 박혀있었다. 그가 김영대 앞에 서더니 따져물었다. “전대장인가?” “그렇다.” “왜 출격 명령을 따르지 않는가? 명령을 거부하나? 당신 군법회의 알간?” --- 「해인사를 폭격하라」 중에서 자칭 광야의 선지자 요시다 상이 일장 연설을 했다. “어린 소년 비행사들을 태평양 바다에 수장시켜 놓고, 그 뼈다귀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것을 주워다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놓고 허리 굽신거리는 모습을 보시오. 우습지 않소? 신풍이니 신화니 하며 머리 조아리는데 바로 사기지. 또 조선인 강제징용자나 종군위안부를 잡아간 자들을 칭송하디니... 전범 일왕은 자기 대신 아랫놈을 처벌하는 시늉을 하는데, 여러분은 속지 마시오, 그 원흉을 반드시 책임을 물으시오. 일본이 해야할 일은 전쟁광의 뼈를 야스쿠니에 보관할 것이 아니라 야만의 전쟁에 희생된 억울한 사람들을 모셔야 하오. 그것이 진정한 화해고 반성이고 평화지. 전쟁으로 희생된 일본군위안부나 강제 징용자를 야스쿠니 신사에 모시면 단 1달러의 배상금도 받을 필요가 없소.” 해룡호는 조선인 일본 육사생도들을 태우자 더 이상 지체할 것 없다는 듯 만을 빠져나갔다. 배가 힘차게 물살을 가르는데 비로소 자유인이 된 기분이었다. 돌아보니 요며칠 사이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 것 같았다. 비현실적 몽환 속에 빠져든 기분이었다. 하긴 일본 패전의 혼란상이 극에 달해 있었으니 어느 것하나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것이 없었다. 패망일로부터 한달 여의 기간이 마치 수십 년의 풍상을 겪은 것만 같았다. 그들은 갑판의 바닥에 둘러앉아 조국의 미래를 그렸다. 그런 그들을 바라본 광야의 선지자 요시다는 외톨이가 된 기분으로 선미 쪽으로 가 서서 우두커니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만에 그가 돌아와 말했다. “나는 저 앞에 보이는 섬에 내려주시오.” 숲이 무성하게 자란 조그만 무인도였다. “무인도입니다. 살기 힘듭니다.” “무인도니까 내 세상이오. 저곳에 묻혀 살겠소. 저곳이 내 이상향 같소. 세상 잡사 모두 잊고 사는 낙원 같소. 내려주시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일본인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나를 통해 말해주고 싶다는 거요. 조선 민족이 고통받은 것에 대해 내 개인적으로라도 사죄하고 싶소. 언젠가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날 거요. 돌아가서 좋은 나라 만드시오.” 작은 섬 기슭에 배를 접안시키자 그가 훌쩍 배에서 뛰어내렸다. 생도들이 닥치는대로물건을 챙겨서 그에게 던져주었다. 그리고 배는 곧 출발했다. 배가 가물가물 점이 될 때까지 요시다는 그 자리에 망연히 서있었다. --- 「귀국선 우키시마오」 중에서 “수사해봤더니 그들이 연고를 주장한 것이 타당해보이더라니까요.” 그는 테이블에 구둣발을 올려놓고 누운 듯이 몸을 뒤로 재낀 채 줄톱으로 손톱을 밀었다. 다분히 건방진 태도였다. 도대체 경찰이란 새끼가 이 모양인가? 그는 화가 났지만 아마도 먹물깨나 먹은 것 같은 너 같은 자들은 우습게 본다는 투여서 그는 그의 속물근성에 속으로 웃고 참았다. 이런 식으로 농촌 사람들한테 군림했겠지… 그런데 그가 다시 말했다. “그쪽도 만만치 않습디다. 옛날 윗대가 군청에 근무했고, 후손들 중엔 꽤 높은 공직에 있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내 처가가 그쪽 마을에 있어서 잘 압니다.” 묘와 그 집안의 지체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의 처가가 그쪽에 있다? 그러니 어쩔래 하는 투다. 모든 것이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과 이 사건과 무슨 인과관계가 있는가. 이성균은 어떤 피로감 때문에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수사관이 의도적으로 편파성을 드러내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나 맞설수록 불이익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패배감과 피해의식으로 나타났다. --- 「인지 수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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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여인-1970년대 풍경화」는 송안나(본명:송숙자)의 기구한 운명을 1970년대의 치열한 삶의 현장을 바탕으로 진한 남도 사투리와 거친 욕찌거리로 사람 냄새 짙게 풍기는 이야기다. 속칭 양갈보로 살아온 송안나라는 인물을 통해서 인간의 한 생애에서 암초를 만나는 주요한 원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러면서 상처받고 외로운 사람을 만나 따뜻하게 살아갈 날을 기다린다. 작가의 열망이 작품 제목 ‘순결한 여인’으로 승화되고 있다.
몸을 파는 여자로서 ‘고정간첩 공모자’로 찍혀 감당하기 힘든 고문과 육체적 고통을 겪게 되는 현장 묘사를 통해 작가는 시대의 야만에 눌려 불행이 오는 방식이 야속하상만, 우리 인생에서 불행은 그 사람만의 몫이 아니라 그가 살아가는 ‘시대의 초상’이라는 아픔을 전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는 불행이 불행을 위로하고 구원하는 삶의 방식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송안나의 삶을 통해 당대 정치사회적 상황과, 주변에까지 확대되는 불행이 여러 각도에서 해석하도록 조명하고 있다. 작가는 작품 소재의 리얼리티를 강조하기 위해 걸쭉한 남도 사투리와 욕찌거리를 의도적으로 대화에 끼워넣었다고 말하는데, 이런 것들이 당대의 서사구조에 가감없이 소화되는 매력도 지니고 있다.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으로 군인에 관한 인물전기를 많아 쓴 작가의 장점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6.25전쟁의 참화 속에서 미5공군의 폭격 명령을 거부하고 천년 고찰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지킨 한국 공군 전투조종사의 모습을 실제 전투를 하는 듯한 실감나는 표현과 긴장감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냉정한 리얼리스트의 눈]으로 가난한 나라의 당대 군대 모습을 그대로 소설 속으로 끌어들인 이 소설은 장지동과 김영대라는 두 주인공뿐만 아니라 균형 축을 이루는 주변 인물들을 개성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군인이라는 직분에 충실히 살아가는 인물들이 전쟁을 통해 ‘민족장교’로서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펼쳐나가는 웅혼한 기상도 살펴볼 수 있다. 미5공군이 북한군이 들어왔다는 첩보를 접하고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천년고찰 해인사에는 우리의 정신사가 응축된 ‘팔만대장경’이 소장돼있고, 이 문화재가 소실되면 안된다는 절박감으로 끝내 명령을 거부한 두 한국 공군 장교의 이야기는 우리 스스로를 가슴 여미게 한다. 그리고 한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조국의 아픈 현실과 이를 극복해가는 의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 나라의 전통적.문화적 인식없이 단순히 전투 승리의 목표달성주의에만 매몰된 외국군의 태도야말로 얼마나 해당국의 자존감을 모욕하는 것인가를 보여준다. 비정하고 잔혹한 전쟁 상황에서도 군인으로서의 소명과 우리 것을 지키려는 투철한 민족의식이 젊은 공군 장교들의 혈관에 관류하고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은 담대한 서사로 제시하고 있다. 청년 장교들의 애국정신과 생명력이 넘치는 작품이다. 군인으로서 ‘사나이’의 기질을 잘 드러낸 작품이지만, 동시에 가슴 따뜻한 휴매니티도 펼쳐져 헌걸찬 군인정신의 정수를 살펴볼 수 있게 한다. 한국 전투조종사들의 폭격 거부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고스란히 지켜졌으며, 이들의 뜻을 기리는 공적비가 해인사 경내에 세워져 있다. 「귀국선 우키시마호」는 해방 직후 한국으로 돌아오는 1호 귀국선인 우키시마호가 폭발해 침몰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8천 명이 넘은 사람이 승선했는데 생존자는 불과 이천여 명 밖에 안된다고 전해지는 이 사건을 다루면서 작가는 미군이 설치한 수중 기뢰 때문이든 패전한 일본의 방치와 외면으로 침몰했든, 수천 명이 수장된 사실과 진상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실정을 매서운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조선인 일본 육사생도들이 일본 패망과 함께 귀국하는 과정에서 귀국선 우키시마호가 마이스루 군항 앞바다에서 폭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난자를 구하러 가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소설적 허구에 논픽션 형식을 취해 현실감을 더해주는 구성 기법을 취하고 있다. 정확한 사망자 명부를 비롯한 구체적인 사고 실체에 대한 접근이 차단된 가운데, 작가는 생존자들의 입을 통해 퍼즐 맞추듯 진상을 맞춰가고 있다. 조국을 잃은 나라의 백성으로 점령국의 나라에서 징용자로, 종군위안부로 힘들게 살다가 해방이 되어 귀국하는 사람들의 죽음이 결코 헛되어서는 안 된다는 작가의 집념이 인물들의 성격이나 묘사를 통해 강렬하게 제시되고 있다. 그 인물들이 사건의 실체를 향해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는 모습은 시대를 초월하여 진실을 갈구하는 작가의 탐구정신이 잘 맞닿아있다. 승선자 중에는 북해도 강제 징용자, 해녀, 만주와 사할린에서 종군위안부로 살았던 조선인 처녀들이 있었으며, 작품 속에서 이들의 절절한 사연들이 펼쳐진다. 패전한 일본의 허무주의적 좌절과, 그로인한 전후 처리의 방임과 무책임으로 귀국선의 항행은 불안하고 위태롭다. 그런데 일본 연근해 마이쓰루 군항 앞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사고가 일어난다. 이때 희망을 품고 귀국하던 조선인들 수천명이 수장되고 만다. 조국은 무정부 상태의 진공상태로 조난자들을 구할 어떤 의지도, 대책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패전으로 폐교된 조선인 일본 육사 생도들이 귀국길에 현장 출동하여 사건 해결에 나선다. 그리고 복수극을 벌인다. 조난자들을 대변하는 과정이 실화적 요소와 함께 전쟁의 광기를 고발함으로써 한일 관계에 새로운 담론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지 수사」는 남의 문중 땅에 몰래 묘를 쓴 사람과의 소송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이 소설은 우리로 하여 비판과 냉소의 형태가 현실의 어떤 순응과 체념의 경로를 거치는가를 심도 있는 내면과 심리묘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남의 문중 땅을 무단으로 점령한 자의 묘를 해결하지 못하는 재판 앞에서 패배의식을 느껴야 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그리고 있다. 수사 과정과 재판 과정이 본인도 납득하지 못하게 결말없이 끝나는데, 그런 가운데 무단 묘는 그대로 주인공의 문중 땅에 그대로 존속된다는 점이다. 상황을 보면 누구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어렵게 이끌어가는 재판과, 수긍할 수 없는 법에 지배되는 과정, 법적 인과율의 억압적인 상황을 주인공의 ‘독백’으로 폭로하고 있다. 결국 ‘상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법과 제도라는 장치가 장애물이 되고 마는 윤리적 허무주의를 증폭시킨다는 점을 고발하고 있다. 이계홍 작가의 중편소설집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여러모로 문제적이다. 역사적 사실의 기반을 바탕으로 인간의 조건과 그 경계를 넘어서고 있는 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각도의 정신의 투영과 상처 입은 자들을 함께 보듬고 안아 더불어 고통의 바다를 건너려는 푯대로 우뚝하다. 그리고 고통의 현실 속으로 파고들어 그것을 허물고 그 속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길러내는 가쁜 숨결로 독자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작가의 말 필자는 십수년 동안 주로 대하 장편소설을 써왔다. 임진왜란 시 충무공 정충신 장군 일대기를 그린 역사소설 『깃발』 5권(범우사 간행)을 비롯해, 해방공간의 좌우 이념 대결을 그린 대하장편소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 4권(범우사 간행), 역사소설 『소설 장만』 3권(글로벌마인드) 등을 펴냈다. 그리고 틈틈이 중편소설을 썼다. 단편소설은 호흡이 짧아 내용을 다 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어서 주로 중편소설을 써왔다. 이번 중편집으로 묶은 「해인사를 폭격하라」 「순결한 여인-1970년대 풍경화」 「귀국선 우키시마호」 「인지 수사-아직도 여전히 답답하게」도 그 일환이다. 이들 작품은 특이한 소재와 중요한 사건을 만나 묵혀버리기엔 아깝다는 생각으로 등장인물들의 행적을 하나하나 추적하여 집필했다. 집필 과정에서 관련 인물 인터뷰, 도서관과 인터넷, 자료 수집을 위한 출장 등 ‘발품’을 팔았다. 역시 문학은 발품에 따라서 좋은 소재를 발굴할 수 있고, 작품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록된 작품들은 그동안 『월간문학』, 『문학저널』, 『소설문학』 등에 발표된 것들이다. 발표될 때마다 특이한 소재 때문인지 문학적 평가를 받았다. 작품 중 일부는 제목을 바꾸고, 내용도 수정해 새롭게 내놓는다. 필자는 현재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역사소설 ‘죽창’을 남도일보에 연재하고 있다. 이 작품도 대하소설로 완성될 것이다. 이미 다른 작가 선배들이 동학농민전쟁을 소재로 쓴 작품들이 있지만, 내 나름의 역사 해석으로 덤벼들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성이 기존의 기득권 구조하에서 편견과 왜곡으로 굴절된 부분이 많아 정당하게 평가받도록 진실을 복원하고 싶다. 조선조 말 병든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는 동학농민혁명 주도자 전봉준·김개남·손화중이 체포돼 처형되고, 그후에도 동학농민군이 온갖 탄압을 받으면서도 반외세, 반봉건, 민족자주 깃발을 높이 들었다. 그럼에도 운동 역량이 배제되었다. 유림의 항일투쟁은 정당화되면서 동학의 반외세 저항 운동은 부정된 것이다. 계급적 신분 질서 때문이다. 이 결과 에너지를 하나로 결집하지 못하고, 불필요한 내부적 대립과 배척의 양상이 결과적으로 식민지 역사를 불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득권 세력이 동학 세력과 함께 연대하여 반외세, 반봉건, 민족자주운동을 강화해왔다면 비극적인 망국은 불러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