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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_ 왜 우리는 근현대사를 제대로 수렴하지 못했는가
1장 울릉도로 가자 2장 조상의 섬 거문도 3장 할머니의 역사 4장 만선의 꿈 5장 외세의 각축장 6장 러시아의 남진 7장 일본 사무라이들 8장 음모 9장 조선의 왕비 10장 내 사랑 내 곁에 11장 아들의 혼인 12장 독도폭격사망자 합동위령제 13장 사랑의 밧줄, 생명의 밧줄 14장 내가 사랑하는 영국 수병 15장 수난 삼대 16장 굴절된 근현대사-회복의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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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찬 바람을 받은 돛폭이 만삭의 임산부 배처럼 불룩해지자 배는 살같이 빠르게 수면 위를 달렸다. 바람을 잔뜩 먹은 탓으로 돛폭이 찢어질 듯이 부풀면서 돛대가 기우뚱 옆으로 기울었다가 그 반동으로 다시 반대 방향으로 기울었지만, 속도의 탄력을 받은 탓으로 배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배 뒷머리 중앙부에 솟은 놋좆에 놋씹을 박아놓고 구릿빛 팔뚝의 청년 용대가 억세게 노를 젓고 있었다. 힘차게 노를 저으니 배는 더욱 삐거덕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간밤 향심이도 이런 그의 힘에 자지러졌다. 그것을 생각하니 용대는 저절로 팔뚝에 힘이 들어갔다.
“급하게 몰지 않아도 된깨 쉬엄쉬엄 저어라.” 선부船夫인 아비 김팔룡이 걱정했지만 젊은 아들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닐세. 영국에서 수십 년을 살고, 영국인 국적을 가졌어도 나는 늘 한국 사람이었어.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의 조국은 한국이야. 어찌 어머니를 잊을 것인가. 엄마를 생각하면….” 그가 말끝을 흐리더니 회상에 젖었다. 어머니가 시장통에서 어디선가 날아온 유탄을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고, 생선 좌판은 헝클어지고, 사람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엄마는 손을 내저으며 어서 도망가라고 절규하고, 그런 엄마를 뒤로 하고 울면서 뛰다가 보니 결국 엄마도 잃고, 손에 쥐고 있던 빵부스러기도 놓쳐버렸다. 주변의 집들이 순식간에 날아갔으니 빵덩어리를 놓친 것을 아까워할 경황이 아니었지만, 그것이 그로서는 가장 뼈아픈 실존의 무게감이었다. 빵조각을 놓치고, 엄마를 놓치고, 엉엉 울다가 어디론가 가고… 그 상황을 어찌 잊을 것인가. 멀리서 포성이 울리는 가운데 어느 집 추녀밑에서 울고 있을 때, 마을의 이장인가 되는 사람이 그를 거두어 고아원에 맡겼다. 그리고 아버지 고향이라는 거문도로 갔다가, 다시 여수 고아원으로 옮겨졌다가 어느날 영국으로 입양을 갔다. 하지만 평생동안 엄마와 헤어진 마지막 장면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선굵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늘 그의 뇌리에 선명하게 찍혀나왔다.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평생토록 그의 가슴을 지배했다. 김봉실이 숨을 헐떡이며 속삭였다. 이스트우드가 봉실의 볼을 만지며 달래듯이 말했다. “세상 끝까지 함께 갈 거요.” “정말이지요?” 김봉실이 그의 널따란 품안에서 행복해서 울었다. 이런 사랑이 언제 있었던가. 전 남편 오이남과는 얼굴 힌반 보지 못하고 결혼했고, 남들처럼 그렇게 산다고 하니 살았을 뿐 사랑이 무엇인지, 잠자리가 아름다운지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이 사람과는 전생에 이미 결정된 무엇인가 큰 인연이 닿은 것처럼 만나자마자 숨이 칵 막혔다. 가슴이 쿵쿵거리고, 몸을 받고 싶은 마음으로 샅의 불두덩이가 화끈거렸다. 마음씨가 콩고물처럼 부드럽고, 태도가 솜처럼 부드러우니 그녀는 더욱 그의 늪에 깊이 빠져들었다. “달링, 왜 이렇게 눈물이 많은가.” 이스트우드가 그녀 눈물을 훔쳐주며 말했다. “호사에는 다마가 있단 말이요. 너무 좋응깨 깨질까봐서 조마조마하단 말이요. 그런 것 생각하면 나가 미쳐불지요.” 이스트우드가 그녀의 눈물을 입으로 핥으며 그윽하게 안았다. “나의 여왕님. 절대로 당신을 울게 하지 않겠소. 희망만이 우리의 길이요 빛이라는 걸 알게 해주겠소.” “이스트우드씨. 아니 제랄드씨, 이름을 함부로 부르기도 아까운 분이요.” “조선의 국왕만 쥐어 잡으면 그만 아닌가?” “함장 각하가 보시는 눈이 정확합니다.” “러시아 공사관에 왕이란 자가 피신을 올 것이라고 하잖았나?”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마침내 우리에게 기회가 오는 것입니다.” 정보관은 아관파천을 첩보 사항으로 귀띔해주었다. 조선은 1884년 갑신정변 이후 청나라의 내정 간섭이 심해지자, 이를 견제할 목적으로 고종은 러시아와의 교류를 암암리에 추진했다. 남쪽으로 세력을 넓히고 싶었던 러시아는 고소원불감청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먼저 나서서 행동에 옮길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는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가 조선과 조약을 맺고 베베르를 조선 공사로 파견하는 등 선린 관계를 이어가자 눈여겨보던 외세가 끼어들었다. 청나라를 비롯해 러시아와 부딪치던 영국이 간섭했다. 특히 영국은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세력이 커지는 것에 위기의식을 느꼈다. 얼마 후의 일이지만, 고종과 왕자 순종은 일본의 무사 집단이 서울에 쳐들어와 명성왕후 민비를 처참하게 죽인 것을 보고, 건천궁(경복궁)을 버리고, 아라사(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 “아관파천이 있을 것이라고? 그게 무슨 뜻인가?” 러시아 함장이 다시 물었다. 김대영이 독도폭격사망자합동위령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열흘 전이었다. 그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한국을 찾을 결심을 했다. 칠십대를 바라보는 연령대였으므로 매년 먼 여행길에 오른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고국을 방문하겠다는 것은 어느 매체에서 보도한 다음과 같은 기사 때문이었다. -1948년 6월 8일 미 공군 폭격기가 독도에서 미역 채취와 고기잡이를 하던 우리 어부들을 무차별 폭격과 사격으로 수백 명을 살상, 영문도 모르고 억울하게 숨진 어부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위령제가 0월 0일 독도와 울릉도에서 열린다. 살아오는 동안 늘 그의 의식의 심연에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의문들이 남아있었다. 아버지와 독도는 동일선상에 있었다. 그 기사는 이어진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기 때문에 자아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알아간다는 뜻이다. 금수나 축생들은 그것이 없다. 소가 인간처럼 ‘내가 왜 저 인간을 위해서 밭을 갈지?’ 하면 우주 만물의 질서가 깨진다. 유일하게 인간만이 자아라는 걸 가져서, 그것을 이루려면 도리를 다해야 한다. 책무와 의무다. 영국인은 그런 기질을 가졌다…. “고것이 할아버지 모교의 교훈이랴. 배운 사람으로서 사람의 도리를 다한다는 것. 그래서 전쟁이 나도 선두에 서고, 싸운다고 하는 거랴. 불란서란 나라가 있는디, 그 나라도 그런 정신이 있다고 하더만. 영국과 불란서간에 수십년 전쟁이 있었는디, 불란서 군이 영국군에 대패해서 결국 항복했다는겨. 숭리한 영국 장수는 불란서 왕에게 항복조건으로 성문 열쇠를 내놓고, 주민 6명을 차례로 처형하면 나머지는 살려주겠다고 했디야. 왕은 지원자가 없을 줄 알고 당황했는디 일곱명이나 지원자가 나왔다는겨. 그것도 그 고을 읍장, 재판장, 경찰서장, 의회 의장, 시장번영회장, 학교 교장, 과자공장 사장, 이런 사람들이 자원했다는겨. 자기들이 많이 누렸승깨 시민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서도 대신 목을 내놓겠다는 거랴. 그때 영국의 왕비가 임신중이었는디 태어날 아이의 출생기념으로 왕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간청했더랴. 아이가 태어나는디 피를 보면 안되니께 그랬던 것이여. 그래서 모두 석방을 해주었댜. 역시 통하는 사람들은 통하는가비여. 그란디 일곱명 중 딱 한명이 나오들 못했어. 알아보니 그자는 전날밤 남의 손에 죽는 것보담 스스로 죽는 것이 낫다면서 자결해버렸댜. 성질 급해갖고 공연시 자기 목숨 하나 날려버린 것이여. 그러니 너는 어디 가서든지 성질 급하면 안된다. 이런 사실을 제랄드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면서 조선의 지배층이나 배운 자들은 어떠냐고 나한티 물었어. 나는 암것도 모릉깨 눈만 멀뚱거렸지. 그랬디말로 당신은 섬 여잔개로 모를 것이라고 하시면서, 자기가 알아보았다면서 조선 지배층은 군대 가라면 그들이 먼저 도망가뿔고, 군량미도 뒤로 빼돌리고, 대신 가마니에 모래를 잔뜩 집어넣어서 군사들에게 주고, 매맞을 일도 하인을 시켜서 맞게 했다는디, 그게 조선이란 나라라고 비웃더랑깨. 그 말 들응깨 부끄럽더만. 영국은 군대를 원하는 사람만 받아들인다는 모병제를 한다는디, 귀족이나 가진 자의 자제들은 의무적으로 군에 가도록 귀족 의무병 제도인가를 법조문에 담았다고 하더만. 누리는 만큼 귀족들이 나라를 지키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해서 그런다는 것이제. 하지만 조선은 매맞을 일도 하인을 시키고, 군대도 하인들을 몰래 대신 보내고, 전쟁 나면 가족들 데리고 먼저 도망가뿔고, 그래서 지저분한 한심한 새끼들이라고 욕하더랑깨. 종당에는 남의 나라에 먹히고 말 것이라고 걱정하더랑깨. 나는 그 말 듣고 솔찬히 기분 안좋았제. 자존심이 상했제. 그란디 모두 사실이여.”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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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야망이 충돌한 바다,
그 한가운데 놓인 섬, 거문도의 사람과 운명 -이계홍 장편소설 『제국의 섬』 출간 『제국의 섬』은 제국주의 시대의 동아시아를 새롭게 조명하는 역사소설이자, 역사의 파도에 휩쓸리면서도 끝내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헌사다. 이 책은 소설 『해인사를 폭격하라』로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이계홍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구한말 조선의 남해, 여수 앞바다의 작은 섬 거문도. 그러나 그 섬은 결코 작지 않았다. 19세기 말 세계를 뒤흔든 제국주의의 거대한 야망이 교차하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이계홍 작가의 장편소설 『제국의 섬』은 1887년 전후의 거문도를 무대로, 대영제국과 제정러시아, 일본제국, 청나라가 동아시아 패권을 둘러싸고 벌인 치열한 각축전 속에서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장대한 스케일로 그려낸 작품이다. 여수 앞바다의 고도(孤島) 거문도에 영국, 러시아, 일본, 중국이 제국의 확장을 위해 알게 모르게 각축전을 벌인다. 이런 사실을 간파하지 못한 조선 왕조는 잠자는 듯 조용하다. 국운이 쇠잔해 무엇 하나 세울 힘이 없이 산하는 허무감만 감돌고 있을 뿐이다. 이런 사실을 알 바 없는 거문도 사람들은 해마다 오뉴월이면 동남풍을 타고 울릉도와 독도로 원거리 고기잡이를 나간다. 옛적부터 ‘술비소리’라는 거문도 뱃노래를 부르며 황금어장인 울릉도·독도 어장으로 간다. 만선과 함께 울릉도의 울창한 숲에서 벌목한 나무를 싣고 돌아와 고향의 허물어진 집을 개보수하거나 신축한다. 김팔룡과 아들 김용대, 아랫집 사는 뱃사람 봉태봉은 어느해 봄 한 조를 이뤄 울릉도와 독도로 고기잡이를 나간다. 김팔룡은 영국 해군 제랄드 이스트우드 수병과 어머니 김봉실 여사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다. 제랄드 이스트우드는 영국 해군이 거문도를 점령할 때 함선(艦船)을 타고 입항한 수병이다. 영국 해군이 거문도를 점령하여 고도에 기지를 건설하면서 이스트우드 수병이 김봉실을 만난다. 김봉실은 어린 나이에 결혼했으나 남편이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하던 중 태풍을 만나 죽었다. 그녀는 섬 언덕에 올라 하염없이 남편을 기다리는데, 이때 우연히 이스트우드 수병을 만난다. 김봉실의 갓난아이를 보살펴주던 이스트우드와 김봉실은 어느새 사랑이 싹튼다. 스트우드는 거문도를 떠나는 함선을 따라 크림전쟁에 투입되고, 거기서 전사한다. 부계의 피를 물려받아 장골인 김팔룡은 혼혈인이란 편견에 부딪치며 전국을 떠돌지만 버림받는 신세가 된다. 결국 고향 거문도로 돌아와 선단을 이끌고 울릉도와 독도로 나가 어로작업을 펴는 어부가 된다. 그는 독도에서 일본 어선이 불법 어로작업을 하는 것을 막는 선봉에 선다. 그 아들 용대가 태어나 성장하자 독도 근해 어장에서 잡은 물고기들을 전국 판매망을 통해 공급하는 사업을 펴도록 꿈을 키워준다. 용대는 독도 골짜기에 보를 쌓고 물을 가둔 다음 터를 잡아 정주 계획을 세운다. 김팔룡은 어느날 일본인 어부들과 어로 작업 문제로 다투다 죽임을 당한다. 울릉도 처녀 신숙자와 결혼한 그 아들 김용대는 처가에서 살면서 독도 근해에서 어로작업 중 갑자기 나타난 미군 폭격기의 폭탄 투하로 죽는다. 김용대의 부인 신숙자는 6.25전쟁이 터지자 어린 아들 김대영을 데리고 포항으로 피난 갔다가 포탄을 맞고 죽는다. 삼대 수난이다. 고아가 된 김대영은 고향인 거문도로 갔다가 여수의 고아원을 전전하다가 6-7세 때 영국으로 입양을 간다. 수십 년 동안 영국에서 교사로 안정된 직장생활을 해온 김대영은 은퇴생활을 하던 어느날 독도에서 희생된 어부들의 합동위령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한다. 늘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의 죽음을 의문스럽게 여겨왔던 그는 부모의 죽음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고국을 방문한다. 조카 김상구를 만나 합동위령제에 참석하고, 아버지 고향인 거문도를 방문한다. 그러나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족적을 찾기란 힘들다. 기록과 증언자가 없어 애로를 겪지만, 그보다 현대사를 은폐한 구체제 때문에 더욱 사태 파악이 어렵다는 것을 안다. 정부는 미국이 저지른 사건은 무오류라는 인식으로 사건 자체를 외면한다. 미군정 시기는 물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어도 이런 문제를 거론하면 좌파, 용공으로 몰고 가 피해자 가족을 꼼짝 못하게 한다. 김대영은 진실을 캐기 위해 한국을 수시 방문한다. 감춰지고 잊혀진 비극을 복원하는 작업이야말로 현대사를 생환하는 일이라고 여기고 조상의 족적을 찾아헤맨다. 김대영은 영국인 할아버지의 진취적 기상과 거문도 사람들의 도전정신을 확인하며 조상이 묻힌 거문도에서 여생을 살아갈 계획을 세운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크로체의 말을 새기며 우리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기로 한다. 당시 거문도는 제국이 각축을 벌이는 이념투구장이었다. 대영제국이 거문도를 점령한 것은 제정 러시아가 부동항 건설을 위해 남진 정책을 펴는 것을 막고자 하는 데 있었다. 이때 일본 제국이 개입하고, 중국이 관여해 거문도는 국제분쟁의 도서가 된다. 일본은 영국 함대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거문도에 유곽으로 위장하여 정보기관을 운영한다. 낭인들이 왕비 민비를 시해하기 위해 훈련 본거지로 삼는다. 조선은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한 사실을 모르고, 일본이 왕조를 위협하는 거대 음모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열강의 해군력과 외교전략이 집중된 국제정치의 현장인 거문도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권력자의 기록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제국의 섬』은 제국들의 군함과 외교문서 뒤편에 가려졌던 거문도 사람들의 삶과 고통, 사랑과 희망을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소설은 제국들의 팽창주의가 한반도와 남해의 작은 섬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웠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거대한 역사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민초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어민들, 외세의 침탈 속에서 흔들리는 공동체, 그리고 시대의 격랑에 맞서 자신들의 삶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밀도 있게 펼쳐진다. 특히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 재현에 머물지 않는다. 거문도를 둘러싼 영국과 러시아, 일본, 청나라의 이해관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며 오늘날 국제정세를 되돌아보게 하는 통찰을 담고 있다. 한 섬을 둘러싼 제국의 욕망은 곧 한 나라의 운명이었고, 그 운명은 결국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사실을 소설은 묵직하게 증언한다. 이계홍 작가는 탄탄한 자료조사와 사실적인 묘사를 바탕으로 역사적 긴장감을 구축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서정성을 잃지 않는다. 거문도라는 작은 섬에 새겨진 세계사의 흔적,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낸 사람들의 숨결을 담아낸 『제국의 섬』은 독자들에게 역사와 인간,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다시 묻는 의미 있는 작품으로 다가갈 것이다. 저자의 말 필자는 울릉도 박물관에서 1948년 6월 미군정 시기, 독도에서 우리 어민들이 어로작업 중 미군 전투기의 폭격 훈련으로 수십 명이 죽고 백여 명이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 거문도 뱃사람들도 죽거나 다쳤다. 그것은 은폐된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 지역 사람들 이외에는 잘 몰랐다. 그렇다면 왜 은폐되었을까. 혈맹 미국이 하는 일은 모두 옳고, 그래서 미국은 무오류라고 여기는 80년 지배체제가 존속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시대적 모순은 사회지도층, 또는 지배층이 강대국을 뒷배로 하여 행패를 부릴 때 심화되었다. 지금도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우리가 과연 그동안 현실과 역사를 제대로 수렴했는가를 자문해본다. 이젠 객관화하여 그런 것을 돌아볼 때도 되었다.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질 때도 되었다. 남해의 거문도 사람들이 울릉도와 독도까지 진출해 어로작업을 폈다. 미비한 어로 장비, 예측할 수 없는 기후 상황, 자급자족 형태의 생업 환경, 이런 것들로 하여 멀리 나갈 수 없었는데도 파도가 드센 천수백 리 밖 뱃길을 헤쳐 울릉도·독도까지 진출했다. 그것은 본래의 끈질긴 도전정신과 한때 영국 해군이 거문도를 점령하여 2년여간 지배(?)하며 전승한 모험정신이 함께 결합하여 나타난 기질이 아닐까. 영국 수병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 3대의 기구한 가족사와 근현대사를 조명하고자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