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작은 외침(김비)
하리수라는 트랜스젠더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트랜스젠더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트랜스젠더인 김비 씨는 그 관심을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트랜스젠더를 ‘변태’라거나 ‘게이’로 생각하는 오해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지만 트랜스젠더는 예뻐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당위(?)를 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김비 씨는 트랜스젠더에게는 물리적인 성 전환 수술 외에 우리 사회가 법적으로 인정해 주어야 할 사회적인 성 전환 수술이 필요하며, 사회 전체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넝마주이/ 여러분이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 우리는 실천하고 있습니다(윤팔병)
도시인의 하루 쓰레기 배출량은 얼마나 될까? 그 쓰레기를 마냥 더러워만 해서 ‘처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윤팔병 씨를 비롯한 넝마주이들은 더러운 쓰레기를 뒤적이지만 자신들이 결코 ‘더러운’ 존재가 아니며 생활의 방편이 다른 이웃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대학 교수이기를 거부하고 농부가 되기를 선택한 윤구병 씨의 형이기도 한 윤팔병 씨의 글에서 그의 다난했던 인생행로와 고단하기 짝이 없었던 1960~70년대의 서민들의 삶을 둘러볼 수 있다.
레즈비언/ 낯선 곳으로의 여행, 일상으로의 초대(김송혜숙)
레즈비언이라는 말을 들으면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는가? 동성애자, 특히 레즈비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상상은 대부분 포르노그래피를 통해 형성된 ‘망상’이라고 김송혜숙 씨는 꼬집는다. 김송혜숙 씨의 글은 인간이 인간에게 느끼는 애정이 반드시 이성에만 국한되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편협하며 위험한 생각인지를 깨닫게 한다.
장애인/ 장애인과 장애 여성의 목소리로(김효진)
소외 계층 중에서도 그 소외의 정도가 비교적 널리 알려진 장애인. 그렇지만 그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은 격리이다. 몸이 불편한데, 왜 나다니려고 하느냐 하는 추궁이다. 그렇다고 장애인들이 밖으로 나다니지 않고도 생활을 영위하거나 누릴 수 있는 복지 혜택을 베푸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장애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김효진 씨의 글은 장애인으로서 겪었던 가슴 아픈 일들과 장애인 단체에서 일을 하며 느꼈던 문제점과 지향점을 풀어 낸다.
외국인 노동자/ 제발 때리지 마세요!(김해성)
백인들이 유색 인종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차별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바로 그 편견과 차별을 우리 사회가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의 집/ 중국 동포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해성 목사의 글은 ‘불법 체류’라는 약점을 지니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갖가지 폭력의 실상을, 한국어 교본 첫 장에 “제발 때리지 마세요!”라는 처절한 애원이 나오는 ‘우리’라는 이름이 참으로 무색해지는 이 현실을 똑똑히 보라고 말한다.
소외된 어린이/ 누가 이 아이들의 작은 소망을 들어줄 수 있는가?(이주영)
소외당하면서도, 무슨 일을 당하는지 몰라 하소연마저 할 수 없는 아이들. 쌀이 남아돌아 동물용 사료로 쓰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발표되었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수두룩하다. 이주영 씨의 글은 가난과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진솔한 글을 보여 주면서 우리 사회가 굶주리지 않고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아이들의 작은 소망을 들어줄 수 있는 그날이 언제일지를 묻는다.
비전향 장기수/ 지옥 일기(정순택)
월드컵으로 ‘빨간 색’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없어졌다고들 이야기하지만 색깔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빨간 이념’에 대한 거부감도 그럴까? 아직은 아닐 것이다. 전쟁이 남긴 상처 때문에 이념에 대한 피해의식이 많이 쌓였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다양한 이념들이 공존하는 사회에 대한 상상이나 실천을 불온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순택 씨의 글은 자신의 삶의 등불이 될 한 이념을 선택하고, 끝내 그 이념을 고집했다는 이유 때문에 겪어야 했던 지옥(감옥) 생활이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처절한 것이었는지를 보여 준다.
사이버 코뮤니스트/ 나는 ‘사이버 코뮤니스트’다!(chora@hanmir.com)
사이버 코뮤니스트? 아마 생소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일상에서 인터넷(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앞으로 귀에 익게 될 말이 분명하다. 이 글을 쓴 ‘사이버 코뮤니스트’는 우리 사회의 비열한 어른들의 이율배반적인 작태를 통렬하게 꼬집는다. 그리고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우리 모두가 자유롭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