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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이제는 옛사람이 된 엄마를 위해 해드릴 일
1 입원하신 엄마와 연애를 시작하다 묶인 손을 뻗쳐 내 손을 잡으실 때 같이 늙어간다고 너무 잔인했나 살면서 이런 장면까지 올 줄은 몰랐어 함께 읽고 싶은 책: 『천 일의 순이-치매 엄마의 죽음 맞이』 2 요양원 옆 모텔에서 열흘 살기 “엄마, 내일 또 올게”라고 말할 때 “둘째딸 학교 어디 나왔어?” 놀이 엄마의 삶을 맘껏 인정하고 칭송하기 함께 읽고 싶은 책: 『엄마의 마른 등을 만질 때』 3 요양원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사랑 늙은 어미가 피식 하고 세 번 웃을 때 엄마를 위한 색소폰 연주회 함께 읽고 싶은 책: 『엄마는 죽을 때 무슨 옷을 입고 싶어?』 4. 엄마, 죄송해요! 생애 마지막 노동을 우스워하다니 공연히 쌩까고 지랄하던 시절 “누군지 몰라도 나 좀 데려가” 함께 읽고 싶은 책: 『멀고도 가까운』, 『시즈코 상』, 『글 쓰는 딸들』, 『어머니를 돌보다』 5 엄마의 말을 들어드리다 서로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자 일어난 일 완벽한 대화 산다는 것은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함께 읽고 싶은 책: 『엄마의 마지막 말들』 6 그때가 마지막 순간인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아무렇지 않은 날, 문득 전화는 온다 엄마의 꺼져가는 숨결에서 받은 선물 죽음으로 생애가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함께 읽고 싶은 책: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북클럽』, 『작별 일기』 7. 엄마의 죽음이 슬프지 않다 인생의 바닥을 보고 나니 이 시대의 ‘피에타’, 급기야 엄마를 ‘울애기’라고 부르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수업 함께 읽고 싶은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어떻게 죽을 것인가』, 『숨결이 바람 될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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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을 먹고 쇼핑도 했다. 푹 쉬었다 가려고 다음날 아침거리까지 산다. 이게 전부인 것이다. 엄마가 하나도 하지 못하게 된 일, 내가 아직은 활개 치며 누릴 수 있는 모든 것. 이렇게 단순한 일상은 더이상 단순할 수가 없었다.
이제 아무것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리라.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그저 주어지면 감사하리라. 오직 살아 있음을 향유하리니, 미친년처럼 웃고 떠들며 뛰어다니리라. --- p.32 요양원 근처 모텔에서 머물며 집중적으로 면회를 하는 전략은 꽤 유효해서 나는 그야말로 ‘롱 굿바이’를 할 수 있었고, 그게 슬프다기보다 안온하고 따스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엄마, 내일 또 올게”의 위력이었다. “엄마, 내일 또 올게”라고 말할 때 엄마를 버렸다는 죄책감에서 면죄 받고, 편안함이 나를 적시던 경험은 꼭 마법 같았다. --- p.52 그러니 이제야말로 엄마의 인생을 맘껏 인정하고 칭송할 때였다. 나이가 얼마든 상황이 어떻든 다른 사람의 진심 어린 인정은 힘이 될 터였다. 정신이 살짝 없을 때도 누군가 자신을 존중하고 칭송하는 느낌은 전달될 것이었다. 게다가 청각은 끝까지 남는다고 하니 나는 다른 건 못해도 3년 내내 엄마의 인생을 인정하고 칭송하는 건 해드렸다. 부지런히 꽃다발을 만들어 갖고 다닌 것도 그래서였다. 꽃이 아니면 무엇으로 애틋함과 죄송함과 먹먹함이 뒤엉킨 심경을 전달하랴. 꽃이 아니면 무엇으로 이렇게 세상이 곱다고, 이 고운 세상에 좀 더 머물러 계셔달라고 기도할 수 있을까. 엄마의 인생 나쁘지 않았어요, 이렇게 말하는 심경으로 나는 장미와 영산홍, 모란과 백합, 으아리와 글라디올러스, 국화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곤 했다. --- p.60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말이 이런 뜻이리라. 살고 있는데도 더 벅차게 살아 있고 싶어진다. 유스호스텔 창밖으로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사람들. 간밤에 잘 때도 축구를 하더니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똑같이 하고 있어서 “꼭 컴퓨터 게임 화면 같네”라고 말하던 아침. 아들이 과일을 자르러 공용부엌으로 갔는데 오렌지를 딱 하나 들고 갔다 와서 웃는 아침. 오늘만 같아라, 더 바랄 것도 없이 지금을 가만히 껴안는다. 그 어렵다는 카르페디엠이 조금씩 되고 있다. --- p.84 지금 무언가로 골치를 썩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이의 어깨를 흔들며 마구 소리치고 싶었다. 산다는 건 그렇게 심각한 게 아니야. 끝이 분명한 연극 같은 거라고. 결국은 이렇게 끔찍한 농담이 기다리고 있다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웃으며 산다 해도 아까운 게 인생이란 말이야! --- p.119 몇 번을 제외하고는 주로 나를 알아보셨고, 속절없이 저물어가는 한 생애가 보여주는 속내에 내 가슴은 쿵쾅거렸다. 초반에는 “자고 가”라는 말씀을 잘하셨다. 면회시간 내내 별 반응이 없다가 내가 일어서자 “더 있다 가” 하실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기억을 못 하는 날에조차 “누군지 모르지만 나 좀 데려 가” 하실 때면 억장이 무너졌다. 한정된 공간에서 정기적인 그룹 활동을 빼고는 정지화면처럼 고여 있을 엄마의 일상에 잠시라도 틈을 만들어드리고 싶어 달려갔다. 날깃날깃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기억과 감정의 세포를 가지고 언뜻언뜻 보여주는 표현이 감사해서, 나는 남들이 치매 걸렸다고 말하는 엄마가 진심으로 보고 싶었다. --- p.171 해드린 것도 없이 지쳐가며 짜증이 늘고 내 속의 ‘화’를 키우는 것이 두려워 손을 놓고 싶을 때, 아기 키우듯 백 일만 더 돌봐드리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누워서 울기만 해도 이쁨을 받는 아기를 키우듯 그렇게 백 일만 보살펴드리자 …. 엄마의 평생에 걸친 헌신에는 어림도 없지만 ‘백 일’이라는 날짜의 상징성도 있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힘겹게 넘기던 무렵, 문득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가 떠올랐다. … 미켈란젤로라는 천재가 형상화해 놓은, 역사상 가장 성스러운 슬픔인 〈피에타〉는 인간이 인간에게 품을 수 있는 연민의 상징인 거고 나는 〈피에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마음이 가라앉았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갑갑하다가 나를 뛰어넘는 어떤 거대한 개념에 연결되었다고 느끼면서 숨통이 트인 것 같다. --- p.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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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 엄마의 마지막 5년을 함께한 딸의 애도 일기
“그때 알았더라면 한을 남기지 않을 수 있었을까?” 살림 잘하고 순하고 헌신적이던 엄마가 85세 무렵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다. 엄마는 1년 반을 작가인 딸의 집에서, 3년 반을 요양원에서 지내다가 구순 생신을 며칠 앞두고 세상을 떠난다. 이 책은 사위어가는 엄마의 마지막 5년을 함께한 딸의 애도 일기이자 노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과 지혜가 담긴 에세이다. 부모의 죽음을 애도하는 책은 많다. 이 책은 상실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어떻게 노년의 삶을 지혜롭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를 질문하고 대답을 찾아간다. 1년 반 동안 집에서 엄마를 돌보면서 작가는 온갖 감정의 파고를 맞는다. 같은 말을 무한 반복하는 엄마에게 공연히 짜증을 내고 나서 후회하기도 하고, 직립보행이 불가능해진 엄마가 기저귀를 거부해서 1시간마다 화장실을 기어서 다니는 모습을 봐야 할 때는 죽은 아들을 안고 우는 ‘피에타’를 떠올리기도 한다. 백세 시대에 환갑이 넘은 자식이 말년의 부모를 온전히 돌보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작가의 엄마도 마지막 3년을 시설에서 지내게 된다. 평생을 가족을 돌보는 데 최선을 다한 엄마는 “자식이 여럿이니 나 하나 건사 못하겠니?” 하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 하지만 이미 몸의 여러 기능이 쇠퇴해 음식을 삼키지도, 배설도 못하는 상노인을 어느 자식이 집에서 제대로 돌볼 수 있을 것인가. 요양원 침대에 누운 엄마가 딸도 못 알아보면서 “누군지 모르지만 나 좀 데려가”라고 애원할 때 딸은 억장이 무너진다. 어찌할 수 없는 결정이었지만 ‘엄마를 버렸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는 딸에게 “나 좀 데려가”라는 엄마의 말은 비수가 된다. “아아, 이 순간을 어찌 잊을까. 산다는 게 꼭 농담 같았다. 평생을 쓸고 닦고, 먹이고 키우고, 웃고 울고, 노심초사하고 베풀며 살아온 노고의 끝에 이런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니….” 시설에 계신 엄마를 자주 찾아뵙는다고 해도 4시간을 걸려 달려와서 30분 면회하고 돌아서 나올 때마다 가슴이 먹먹했다. 그러던 차에 ‘ㅇㅇ에서 한 달 살기’가 유행하는 것을 보고 작가는 아예 요양원 옆 모텔에서 며칠 살기를 두 차례 실행한다. 덕분에 작가는 엄마와 연애라도 하듯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며칠을 머물며 날마다 엄마를 만나다 보니 훨씬 편안해져서 이제 엄마를 보아도 슬프지 않았다. 죄송한 마음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났다. ‘엄마, 내일 또 올게’ 하고 말할 때의 안도감이 나를 사로잡은 덕분이다. 내일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한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다.” 꺼져가는 엄마의 숨결에서 받은 선물 “엄마를 보내며 내 마지막 이야기는 엄마와 다르게 쓰고 싶어졌다.” 엄마와 영영 이별을 하고 딸은 책부터 집어 든다. 엄마를 돌보면서 노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책을 읽으며 공부를 했지만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고 나니 그 느낌이 더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작가는 책을 읽으며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책의 각 장 끝에는 작가가 죽음에 대해 공부하면서 읽은 책 중에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을 소개하는 글이 나온다. 작가의 경험과 책 내용이 충실하게 버무려져 책 소개 글만 읽어도 노화와 죽음에 대한 공부로 충분하다. 아울러 작가는 엄마를 잃은 이들에게 글을 쓰기를 권한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애도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제가 그랬듯이 읽는 것은 고즈넉한 애도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한발 나아가 글로 쓴다면 의미가 더욱 깊어지지요. 글은 솜씨로 쓰는 것이 아니라 이 말을 꼭 하고 싶다는 간곡함으로 쓰는 것이기에 엄마에 대한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제가 위로를 받은 책들, 그리고 제 이야기를 통해 그대가 엄마에 대해 글을 쓰고 싶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에게로 와서 한없이 다정하게 스며드는 것을 느낄 때면, 나와 엄마의 시간도 그렇게 너울대며 달빛 속으로 흘러갈 것만 같네요. 어디로 영영 가버리는 게 아니라.” 60대 딸에게 죽음은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작가는 엄마를 돌보면서 말년을 선체험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한 번 가본 길이라 오래 살고 싶다는 욕심이 흐려졌고, 훨씬 담대해졌습니다. 인간의 마지막이 정해져 있다면 엄마처럼 순응적으로만 살 이유는 없지 않을지요. 저는 엄마를 보내며 내 마지막 이야기는 엄마와 다르게 쓰고 싶어졌습니다.” 엄마 이야기를 쓰고 나서 작가는 엄마와 다른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을 먹는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남은 이야기를 어떻게 쓰고 싶은지 고민하고 준비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