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백성을 사랑한 화가 윤두서
김해원 장경혜 그림
웅진주니어 2014.09.30.
가격
10,000
10 9,000
YES포인트?
50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변경
배송비?
유료 (도서 15,000원 이상 무료)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책마을 인물이야기

책소개

목차

빚 문서를 모두 태워 버리다
아낙네를 훔쳐보다
형과 벗을 잃고 슬픔에 빠지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72쪽 | 238g | 188*238*6mm
ISBN13
9788901166186

책 속으로

도령은 윤두서가 말을 보물단지처럼 바라만 보는 까닭을 알고 싶었어.
그 뒤로 도령은 틈만 나면 윤두서를 따라다녔어.
하루는 윤두서가 하인도 없이 혼자 나왔어. 도령은 잘됐다 싶어 바짝 따라붙었어. 윤두서는 나무 아래서 짚신을 삼는 노인을 보더니 발걸음을 멈췄어. 그러고는 짚신 삼는 걸 처음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넋 놓고 쳐다보지 뭐야. 노인이 인기척을 느끼고는 일어서려 하자 윤두서는 다시 휘적휘적 걸었지. 도령도 얼른 걸음을 뗐어. 얼마 뒤 윤두서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가파른 산비탈이었어. 윤두서는 나물 캐는 아낙들을 보더니 갓끈을 고쳐 매지 뭐야.
---「아낙네를 훔쳐보다」 중에서

그날 밤, 윤두서는 방에 촛불을 환하게 밝히고 앉아 종이를 펼쳤어. 그러고는 자신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지.
윤두서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지난 세월을 떠올렸어.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지냈던 행복한 시절과 혼례를 올리고 어른이 되었던 때, 과거에 급제해 온 가족이 좋아하던 모습이 마치 엊그제 일처럼 생생했지.
하지만 형과 친구가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죽은 일이며, 부모님을 여읜 일이 생각나자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어.
물론 즐거운 시절도 있었지. 친구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공부하면서 어찌 살아야 옳은지 침을 튀겨 가며 얘기하던 때가 떠오르자 심장이 두근거리지 뭐야. 윤두서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 같아 창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봤어. 달빛이 휘영청 밝았지.
“달빛이 세상을 비추듯 나도 세상의 빛이 되었을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중에서

줄거리

남쪽 끝자락에 있는 해남에 폭풍이 휘몰아쳤다. 산처럼 높이 치솟은 파도는 집을 죄다 무너뜨리고 논과 밭을 흔적도 없이 쓸어가 버렸다. 굶주림에 지친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다른 곳으로 떠날 궁리를 했다. 이때 윤두서가 마을 사람들한테 자신의 산에서 나무를 베어 염전을 만들라고 했다. 백성들이 기아에 허덕이자 선뜻 재산을 내놓아 구휼한 것이다.
서당의 훈장이 걸핏하면 윤두서를 칭송하자 도령은 윤두서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몰래 따라다닌다. 윤두서는 하루 종일 말을 바라보고, 짚신 삼는 노인을, 나물 캐는 아낙들을 바라본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자세히 관찰한 것이다. 선비라면 산수화를 그려야지 왜 천한 일을 하는 사람을 그리느냐는 도령의 말에 윤두서는 일하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서라고, 선비는 땀 흘리는 사람들을 보고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윤두서는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형과 벗을 잃었다. 그래서 과거에 급제했음에도 불구하고 벼슬자리에 나가지 않았고 학문을 연구하며, 그림을 그리며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출판사 리뷰

유명 가문의 종손 윤두서, 선비 화가가 되다!

1668년 5월 20일, 윤두서는 해남 윤씨 18대손 윤이후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가 어부사시사, 오우가로 유명한 고산 윤선도이다. 윤선도는 새로 태어난 아기의 점괘가 길하자, 이 아기를 18대 종손 윤이석에게 입적시켰다. 윤두서는 태어난 지 7일 만에 종손이 된 것이다.
해남 윤씨 집안은 막대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고, 여러 대에 걸쳐 과거에 합격한 사대부들이 연이어 나왔다. 남인 세력의 대표적 집안으로 재산도 학문도 남부러울 것 없는 가문의 종순이 어찌하여 화가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을까?
당파 싸움이 치열했던 숙종 시절, 남인은 서인과의 당쟁에서 패해 귀양을 가거나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윤두서의 형제, 친지들도 온갖 모함을 받았다. 셋째 형 윤종서는 고문을 받다가 감옥에서 죽고, 친한 벗 이잠은 끌려간 지 나흘 만에 곤장을 맞다 숨을 거두었다. 결국 윤두서는 벼슬자리에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은일한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윤두서는 학문과 예술에 전념하였고, 특히 예술에서 큰 성과를 남겼다.

끊임없는 관찰로 그림에 숨결을 불어넣다!

윤두서는 말을 좋아해서 말 그림을 자주 그렸는데, 말을 그릴 때면 마구간 앞에 서서 종일토록 주목해 보기를 몇 년 간 계속했다고 한다. 어린아이를 그릴 때면 머슴아이를 세워 놓고서 돌아보고 또 움직이게 하면서 참모습을 얻은 후에야 비로소 붓을 들었다고 전해진다. 승려 그림을 그릴 때면 성총이라는 스님을 앞에 앉혀 두고 오랫동안 관찰해서 그렸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윤두서는 끊임없는 관찰로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생동감 있는 표현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윤두서는 인물, 산수, 동물, 정물, 풍속 등 다양한 소재의 그림을 그렸다. 이전 회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서양의 명암법을 반영한 정물화를 그렸으며, 말을 아끼고 사랑하여 예리한 관찰력과 정확한 묘사가 돋보이는 말 그림을 그렸다. 윤두서는 특히 인물화에서 뛰어났는데,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깊이 있는 그림으로 표현했다.
윤두서는 선비 화가로는 최초로 풍속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윤두서에서 시작된 풍속화는 후에 김홍도, 신윤복에 이르러서 활짝 꽃피게 된다. 나물 캐는 여인은 사대부 선비가 노동하는 여성을 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윤두서는 일하는 백성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진지한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김홍도나 신윤복의 그림만큼 완성도가 높지는 않지만 풍속화의 시대를 연 선구적인 작품이다.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다!

민중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일상생활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큰 기근이 들자 염전을 만들어 백성들을 구휼하였다. 또 어려운 사람을 보면 재산을 나누어 주었고, 받아야 할 빚 문서는 스스로 불에 태워 버렸다는 내용도 전해진다.
그뿐만 아니라 노비에 대해서 부당하게 대하는 것에 분노하고, 인격적으로 잘 대해 주라고 자식들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예절전을 지으면서는 노비의 신분이 세습되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윤두서의 노비에 대한 생각은 시대를 앞서간 진보적인 생각이었고, 이후 실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훌륭한 인품의 학자요, 화가였던 윤두서는 불후의 명작 자화상을 남긴다. 윤두서의 자화상은 살아온 세월을 담은 일기와 같다. 윤두서의 슬픔과 번뇌, 고독과 절망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렇게 윤두서는 자화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마흔여덟의 젊은 나이에 감기를 앓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100여 년 뒤 외증손자인 다산 정약용은 윤두서의 덧없는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글을 남겼다. 해남의 종가에는 윤두서가 남긴 글씨와 그림, 서적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9,000
1 9,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