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박제가
조선 후기의 실학자. 한성에서 태어남. 1765년 시. 서. 화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으며, 69년 북학론자 박지원, 이덕무, 유득공 등과 교유했다. 78년에는 사은사 채제공을 따라 청나라에 가서 그곳 학자들과도 교유했다. 이듬해 규장각이 설치되어 검서관으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13년간 규장각 내.외직에 근무했다. 90년 두 번째 연행길에 오르고, 돌아오는 길에 압록강에서 왕명을 받고 원자(순조)의 탄생을 축하한 청나라 황제의 호의에 보답키위해 군기시정으로 연경에 파견되었다. 1801년 네 번째 연행길에서 돌아오자마자 동남성문 흉서사건에 연루돼 유배되었다가 1805년 풀려났으나 곧 사망했다.
저자 : 정약용
조선 말기의 실학자. 호는 다산(茶山)이다. 1789년 문과에 급제하여 부승지 등 벼슬을 지냈다. 그는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지리·과학 등에도 밝아 진보적인 신학풍을 총괄 정리하여 집대성한 실학파의 대표자가 되었다. 그는 당시 금지한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좌천되어 귀양을 갔으나,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에도 『목민심서』를 비롯한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40년 동안을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주요 저서에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 심서』 등이 있다.
저자 : 박지원
1737년에 나서 1805년까지 살았다. 반남 박씨로 좋은 가문이었으나, 벼슬에 뜻이 없고 과거를 좋지 않게 보아, 신분을 벗어나 사람을 사귀며 공부를 하여 자신의 학문을 닦았다. 홍국영을 피해 황해도 금천의 연암골로 들어가 살며, ‘연암’이라는 호를 가지게 되었다. 쉰 살 넘어 정조의 부름을 받고 선공감역, 안의현감 들을 지냈다. 홍대용과 깊이 사귀었고,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들의 스승이자 벗이었다. 문학, 철학, 사회 사상, 행정, 과학, 음악 따위 두루 학식이 깊어 뛰어난 글을 많이 써 당대 사람들뿐 아니라 후대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양반전’, ‘범의 꾸중’을 비롯한 단편 소설 십여 편, 시 사십여 수, 농업과 토지 문제를 개혁하려는 사상을 쓴 ‘과농소초’, 여러 가지 문학론과 사회 개혁 사상, 편지글 들이 《열하일기》와 《연암집》에 담겨 있다.
저자 : 이덕무
조선 후기 실학자 · 문인이며, 특히 박학으로 널리 알려진 탁월한 학자이다. 자는 무관(懋官), 호는 청장관(靑莊館), 아정(雅亭), 형암(炯菴)이다. 서울에서 성장했고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등과 교유했으며, 중국 여행을 통해 그곳의 많은 문인들과도 친분을 맺었다. 규장각 검서관이 되어 『국조보감國朝寶鑑』『갱장록羹墻錄』『문원보불』『대전통편大典通編』 등 많은 서적을 교감했으며, 사옹원주부(司饔院主簿)를 거쳐 적성현감(積城縣監)을 지냈다. 1793년 질병으로 사망했다. 사후 정조의 명으로 그의 문집 『아정유고』가 간행되었다.
저서로는 문학 분야의 『영처고』『아정유고雅亭遺稿』『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청비록淸脾錄』『입연기入燕記』『한죽당섭필寒竹堂涉筆』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편서잡고編書雜稿』 『뇌뢰낙락서磊磊落落書』 『앙엽기?葉記』 『사소절士小節』 『기년아람紀年兒覽』 등이 있다. 이 모든 저술은 아들 광규(光葵)에 의해 망라되어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로 집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