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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현의 삶과 문학
부활과 웃음의 미학
최진섭
도서출판말 2025.07.14.
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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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장. ‘부활’ 사건
2장. 월계다방과 결혼, 그리고 등단
3장. 1960년대-현실에 참패한 픽션, 픽션을 제압한 현실
4장. 홍만수가 향미산에서 태극 깃발을 만든 까닭은
5장. 1970년대-긴급조치와 한국의 아틀라스
6장. 1980년대-지하 독방에 갇혀 있다 1987년 풀려난 『분지』
7장. 1990년대-세상의 그 끝에서 싹 다 쓸어 버리자
8장. 2000년대-“세월이 갈수록 민족문제가 더 중요”
9장. 2010년대-시종일관 ‘민족주의자’이자 문학적 비전향 장기수
10장. 부활과 웃음의 미학
11장. 한평생 반공과 미제에 맞선 ‘불온’한 소설가
부록 . “증오의 눈초리, 따스한 손”

저자 소개 1

경기도 파주 태생. 월간 《말》 기자, 월간 《좋은엄마》 편집인, 오마이뉴스 교육사업팀(강화도) 본부장으로 일했다, 2021년 6월 15일, 강화도 북단 해안철책에서 가까운 동네에 평화책방을 열었고, 나 홀로 출판사를 운영하며 지내고 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1년 넘게 밤낮으로 기괴한 대남방송 소리에 시달리며 지내야 했다. 픽션을 제압한 현실, 그로테스크한 남북의 초현실적 상황이 일상이 된 곳이다. 소설가 남정현을 인터뷰했을 때 “작가란 최일선의 초소에서 민족의 이익을 지키는 초병, 시대의 맨 앞자리에 서서 정신의 영토를 지키는 초병의 역할을 해야 한다.”라는 말을 들은
경기도 파주 태생. 월간 《말》 기자, 월간 《좋은엄마》 편집인, 오마이뉴스 교육사업팀(강화도) 본부장으로 일했다, 2021년 6월 15일, 강화도 북단 해안철책에서 가까운 동네에 평화책방을 열었고, 나 홀로 출판사를 운영하며 지내고 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1년 넘게 밤낮으로 기괴한 대남방송 소리에 시달리며 지내야 했다. 픽션을 제압한 현실, 그로테스크한 남북의 초현실적 상황이 일상이 된 곳이다.

소설가 남정현을 인터뷰했을 때 “작가란 최일선의 초소에서 민족의 이익을 지키는 초병, 시대의 맨 앞자리에 서서 정신의 영토를 지키는 초병의 역할을 해야 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필자는 젊어서 동부전선의 최전방 초소를 지켰는데, 나이 들어 본의 아니게 서부전선의 ‘초병’이 된 느낌이다. 스무 살 시절 친구들과 청승맞게 부르던, 김민기의 <늙은 군인(투사)의 노래>가 떠오른다.

저서로는 《한총련을 위한 변명》, 《한국 언론의 미국관》, 《뼈로 누운 신화》, 《법정콘서트 무죄》, 《사진, 평화를 상상하다》. 《알을 깨고 나온 새는 철책 위로 날아가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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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7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904쪽 | 152*225*40mm
ISBN13
9791187342328

책 속으로

어릴 적 남정현은 죽었다 살아났다를 몇 번 반복했다. 스스로 부활한 건지 영험한 약발인지 어머니의 기도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거의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갔다가 여러 차례 살아난 건 분명하다. 남정현은 2000년에 발간한 4인 에세이집 《아름다운 시간의 나무》에 실린 〈엄마, 아 우리 엄마〉에서 자신의 ‘부활 사건’에 관해 몇 차례 언급한다.
--- p.41

이(광화문 네거리에 있던) 월계다방에 단골로 출입하는 문인 중에 가까이 어울린 이는 한무학, 박승훈, 박용숙, 최인훈, 신동한 등이었다. 자주 드나들던 작가는 하근찬, 신동엽, 오상원, 김수영, 김성환 등이었고 술만 취하면 김관식, 천상병, 이현우 시인도 자주 들이닥쳐 일장 연설을 하곤 했다고 한다. 남정현의 단편소설 〈누락 인종〉(1960)에는 ‘월계다방’이 나오는데, 소설의 주 무대이기도 하다.
--- p.90

단언컨대 남정현은 1960년대에 가장 재미있고 독창적인 소설을 썼던 작가다. 이때 그의 대표작으로 내세우고 싶은 것이 첫 창작집의 표제작 〈너는 뭐냐〉다.
--- p.129

소설가 장정일이 ‘독서일기’(《시사인》, 2017. 10. 18) ‘다시 《분지》를 생각하다’에 쓴 글이다. 그는 필화를 겪어 독자에게 각인된 〈분지〉가 아닌 〈너는 뭐냐〉를 남정현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았다.

한마디로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떠난다는 말일 것이다. 즉 ‘나’를 떠나 ‘남’과 함께 있는 나를 발견한다는 그런 경이스러운 작업을 의미할 것이다. 동시에 나를 발견한다는 것은 일종의 혁명을 뜻하는 것이며, 혁명이란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소위 그 인간의 ‘양심’을 사랑하는 방법으로서 최고의 수준일 것이다. 《서울을 사는 고독과 희열》(1969) 서문
--- p.250

“그때야 어디 요즘 같은가. 증인으로 나와 말 한마디 잘못하면 그 길로 법정구속 당하고 마는데. 속으로 오돌오돌 떨고 있는데 웬 고등학생들이 우 몰려 있는 게 눈에 띄어요. 라디오에서 “이어령이 증인 선다”는 뉴스를 듣고는 그걸 보겠다고 찾아온 거지. 그 아이들이 내게 용기를 줬어요. 쟤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지, 내 문학을 좋아하는 애들인데. 문학에도 순교자가 있다는 걸, 목숨과 가정을 바칠 수 있는 그런 인간이 있다는 걸, 인간에겐 그렇게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지…….”(이어령)
--- p.280

“74년 2월인가 3월에, 정보부에서 와서 잡아가더라고. 밤에 와서 딱 잡아 가지고 찝차에 태우는데, 눈 가리고 머리 콱 숙이라고. 잡혀갈 때 무슨 생각이 났느냐면 딱 한 가지 생각이 났는데, 아! 이제 내 손을 짜를라고 잡아가는구나. (‘분지 사건’ 때) 쓰기만 하면 또 손 짜른다 했는데, 쓰지 말라고 한 걸 내가 썼으니까. 〈허허선생〉 쓰고, 〈옛날이야기〉 쓰고 해서 틀림없이 나를 …… 그 손을 자꾸 쳐다봤다구.”(남정현)
--- p.328

“그러니까 소위 그 유신체제란 이름하에 군부독재가 이를 악물고 기승을 부리던 1973년에 〈허허선생 1〉을 쓰고 나서 이제 1992년에 〈허허선생 옷 벗을라〉로, 일단 이 허허선생 시리즈를 마감하기까지 장장 20여 년이란 세월이 흐른 셈이다. 생각하면 나에게 있어서 이 20여 년이란 세월은 한마디로 말해서 허허선생과의 피나는 대결 시대였다고 볼 수 있다.”
--- p.382

요즘도 여의도에 들어서서 KBS 쪽을 바라보면 떠오르는 풍경 하나가 있다. 흰 저고리, 검정 치마 차림에 앞가르마를 한 단발머리의 여자가 영화 대본을 끼고 방송국을 드나드는 모습이었다. ‘지조 있는 조선의 여인’이라 불렸던 신순남(남정현 부인)이 옷차림은 KBS 남산 시절부터 여의도로 옮긴 이후까지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 p.448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야. 사실 〈분지〉의 주제였던 외세문제와 〈분지〉를 유죄로 몰고 간 국보법(반공법)이 그때나 이때나 괴력을 발휘하기는 똑같아. 똥의 나라. 국보법이 여러 법률 중의 하나로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헌법 제 1조와 같은 위력을 발휘하고 있어. 대한민국은 아직도 국보법공화국이고, 국보법 위에 미국이 있지. 미국 측에서 보면 일종의 보검이기도 할 테지.”
--- p.548

임헌영 평론가는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 남정현 편에서는 “흔히들 홍만수가 스피드 상사의 부인을 겁탈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겁탈했으니 펜타곤의 핵 공격을 당하게 된다는 게 아니라 겁탈을 하지도 않았건만 펜타곤이 겁탈했다고 거짓 선전하면서 향미산(한반도)을 핵무기로 포위한다는 고발이 〈분지〉이다.”라고 썼다.
--- p.660

남정현은 저 서슬 푸르던 박정희 친미 군사정권 시절 미국을 한낱 추악한 강간범쯤으로 풍자했다가 된서리를 맞았던 소설 〈분지〉의 저자다. 그때의 충격과 울분을 그대로, 언뜻 날것으로 토로하는 이 글에서 놀라운 것은, 언뜻 구호처럼 완강해 보이는 대목에서조차 가여움의 미학이 정말 간절하게, 눈물빛 그 자체로 반짝인다는 점이다. 자신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인간 보편 존재의 가여움에 대한 연민. 감상적인 연민이 아니라 힘이 되는 연민. 아니 연민이 아니라, 상처받은 자의, 상처의, 상처로서의 사랑. 문학의 힘이 진정하게 와닿는 대목이다.(김정환)

--- p.880

출판사 리뷰

‘부활과 웃음의 미학’

《남정현의 삶과 문학》은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특히 풍자문학과 반미문학(민족문학)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소설가 남정현(1933~2020)의 생애와 문학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명한 책이다. 저자는 남정현 문학의 내적 동력이 되는 ‘부활과 웃음’의 미학에 주목하며, 시대의 금기와 억압에 맞선 작가의 치열한 삶과 예술적 실천을 생생하게 복원했다.

904쪽에 달하는 이 책에는 유소년 시절 여러 차례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깨어났던 작가의 투병 생활과 독서편력, 1958년 등단 직후 어울리던 문우, 지인과의 인터뷰를 담았다. 그리고 1958년 등단작 「경고구역」부터 78세에 쓴 마지막 작품「편지 한 통」(2011)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작품과 사건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꼼꼼하게 기록했다. 이와 함께 남정현 문학을 다른 석박사 논문과 평론 수십 편을 소개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고찰했다.

《남정현의 삶과 문학》에는 남정현 작가와 그의 작품에 대한 여러 평판이 실려 있는데, 오랫동안 친분을 나눈 김병걸 평론가는 반공과 친미가 국시와도 같았던 196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에 발표한 〈분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소설”이라 평했다. 임유경은 박사논문 〈1960년대 ‘불온’의 문화 정치와 문학의 불화〉(2013)에서 남정현은 ‘반미가 아니다’라는 사상의 바리케이드(금기의 선)를 넘어선 작가’이며, 필화소설 〈분지〉(1965) 이전에 쓴 「누락인종」, 「기상도」, 「자수민」, 「사회봉」 등도 이미 불온한 소설이며, 반정부, 반미성향을 띄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남정현의 소설이 단지 반미성향이고 불온하다는 점에서만 문학적으로 높게 평가한 것은 아니다. 소설가 장정일은 “단언컨대 남정현은 1960년대에 가장 재미있고 독창적인 소설을 썼던 작가다. 이때 그의 대표작으로 내세우고 싶은 것이 첫 창작집의 표제작 〈너는 뭐냐〉다.”라고 평했다. 《작가연구》는 2001년 하반기호에 남정현 작가를 특집으로 다뤘는데, 채호석 편집인은 머리말에서 “한국 문학사에서 앞도 없고, 뒤도 없는 자리가 바로 남정현 소설의 자리가 아닐까.”라고 썼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남정현의 삶과 문학》에서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주요한 사항 세 가지를 요약해서 정리했다. 그것은 첫째 부활과 웃음의 미학, 둘째 평생 반공법(국가보안법)과 미국에 맞서 대결한 작가, 셋째 남정현 작품 비평에 관한 분석(누가 제국의 논리를 그대로 반복하나?)이다.

첫째 부활과 웃음의 미학.


저자는 남정현의 풍자문학 속에 담긴 근본 정신으로 ‘부활과 웃음의 미학’을 꼽았다. 핵무기로 무장한 미군 엑스 사단의 공격을 10초 앞두고 〈분지〉의 주인공 홍만수가 어머니를 향해 외치는 호언장담 속에서도 부활의 미학을 찾을 수 있다. 만수(萬壽)라는 이름 자체가 부활을 연상시킨다.

“믿어주십시오. 어머니, 거짓말이 아닙니다. 아, 그래도 당신은 저를 못 믿으시고 몸을 떠시는군요. 참 딱도 하십니다. 자, 보십시오. 저의 이 툭 솟아나온 눈깔을 말입니다. 글쎄 이 자식이 그렇게 용이하게 죽을 것 같습니까, 하하하.”

남정현이 직접 작성한 ‘작가 연보’에도 ‘부활’을 거론하는 대목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그는 열두 살 되던 해인 1944년에는 “단원 중 저명한 마법사의 지도로 불에 타 완전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신기(神技)를 몸에 익히게 되어 부활의 명수(名手)가 됨.”이라고 적었다. 1945년에는 “8, 15 해방과 함께 ‘민족대부활전문학교(民族大復活專門學校)’ 설립 구상”에 들떠 지냈다. 그리고 1958년에는 “곡마단 시절의 부활의 신기가 그리워 우연히 〈경고구역〉이란 제목의 소설을 써본 것이 《자유문학》지에 추천됨”이라고 썼다. 쉽게 믿을 수 없는 이런 환상적인 약력은 1970년대 발간된 단행본 《허허선생》이나 문학전집 작가 연보에 실렸다.

남정현이 어릴 적 생사를 몇 차례 넘나든 경험도 부활의 미학과 무관하지 않다. 유년 시절 누나가 놀아주다 남정현을 바닥에 세게 떨어뜨린 적이 있는데 이때 뇌진탕으로 생사를 오간 적이 있다. 초등학교 때는 칡뿌리 캐는 것을 구경하다 곡괭이에 머리가 찍혀 여러 날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중학생 무렵부터는 폐결핵, 장결핵, 임파결핵 등 수많은 결핵균이 일시에 덮쳐서 뼈만 남은 가사 상태에서 만 삼 년인가를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만 지냈는데,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유소년 시절 여러 차례 죽었다가 살아난 남정현은 그 후유증으로 몸무게 40kg을 간신히 유지한 채 평생 살아야 했다. 그는 이 허약한 몸으로 중앙정보부에 두 차례나 끌려가 가혹행위를 당했고, 그런 고초를 겪으면서도 평생을 반외세 문학의 최전선에서 문학과 이데올로기의 초병으로 살았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 같다고 할 수 있는 남정현은 그의 삶과 문학, 말과 글,
몸 전체로 부활의 미학을 완성했다.

황도경은 〈역설의 미학, 풍자의 언어-‘분지’론〉(2001)에서 “홍만수의 비극적 종말로 처리된 이야기 끝에서 오히려 웃음으로 부활하는 홍만수를 만나게” 된다고 결론짓는다. 어머니에게 “글쎄 이 자식이 그렇게 용이하게 죽을것 같습니까. 하하하.” 웃는 홍만수, 그는 바로 이 웃음과 함께 부활했다.

둘째, 평생 반공법(국가보안법)과 미국에 맞서 대결한 작가.


남정현 작가가 평생 붙들고 씨름하던 화두는 미국(외세)과 국가보안법(반공법)이었다. 흔히 남정현 하면 〈분지〉의 작가, 반미소설의 대표적인 작가로 불리는데, 그가 집요하게 붙들고 늘어진 또 하나의 괴물은 반공(법)이었다. 남정현 작가가 보기에 미국과 반공법은 한 몸이다. 그 때문에 반공법을 넘어서야 미국을 물리칠 수 있고, 미국을 넘어서야 반공법을 잡을 수 있으며, 그래야 진정한 민족의 부활, 해방을 이룰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남정현이 초기 작품에서부터 보여준 주제나 표현은 ‘우리는 반미가 아니다’라는 타협의 선을 깬 것이었다. 작가는 국시가 친미반공인 시대에 글로 바늘만 한 틈새라도 내보려고 몸부림쳤다. 그는 《남정현대표소설선집》(2004)의 책머리에서 “나는 사실 그동안 소설을 썼다기보다는 어찌 보면 소설을 빙자하여 뭔가 가슴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그 갖가지 울분을 조금씩 토해내기 위해 내 이 만만한 펜대 하나만을 붙잡고 만날 캑캑하며 사뭇 몸부림을 친 격이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 같다.”라고 쓰기도 했다.

표현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된 이승만, 박정희 군사정권 치하에서 미국과 반공(법)을 비판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남정현은 78세 되던 해인 2011년에 그의 마지막 작품인 〈편지 한 통-미 제국주의 전상서〉를 발표한다. 1965년에 서른두 살의 젊은 남정현 작가는 “누구라도 한마디 해야지 견딜 수가 없어서,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고민하다가 〈분지〉를 썼다.”라고 했다. 그런데 노인이 된 소설가는 21세기에 들어선 뒤에도 여전히 국가보안법과 미국이 판을 치는 ‘가짜세상’에 답답해하며, “누구라도 한마디 해야지 견딜 수가 없어서, 고민하다가” 〈편지 한 통-미 제국주의 전상서〉를 썼다. 저자는 「편지 한 통」 발간 직후 남정현 작가와 이 작품에 관해 인터뷰했는데, 그 내용도 이 책에 실려 있다.

셋째, 작품비평 분석-누가 제국의 논리를 그대로 반복하나?


남정현의 작품에 대한 한국문학계의 평가는 반미, 민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충남 서산중앙고에 세워진 남정현 문학비에는 “민족자주를 열망한 ‘분지’의 작가”라고 적혀 있다. 남정현 관련 학술논문도 반미, 미국, 민족, 필화를 주제로 하거나 풍자 기법에 주목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에는 여성주의(페미니즘)가 확산하면서 〈분지〉를 ‘여성’ ‘젠더’의 관점에서 다루는 논문과 평론이 부쩍 늘어난 추세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다양한 관점에서 작가와 작품을 비평하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겠으나 이런 현상에서 저자는 한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남정현과 그의 소설(특히 〈분지〉)을 ‘여성혐오’의 대표작가, 남성 중심적 좌파민족주의 소설로 규정하는 논조였다.

젠더 입장에서 남정현 소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대표적인 논문은 여성학자 정희진의 〈반미문학을 통해 본 식민지 남성성의 형성〉(이화여대 여성학과 박사논문, 2019)이다. 정희진은 반미문학에 대해서 주된 구조가 “국가주의, 이항 대립 논리, 서구 중심의 근대성, 여성에 대한 폭력, 외세에 대한 피해의식, 배타성”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평하면서, 특히 남정현의 〈분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섹스(폭력) 스토리’이며, 반미가 아니라 음란물과 폭력물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는 섹스에 대한 작품이라고 혹평했다. 이와 유사한 논리에 기반한 논문이 여럿 제출되었는데, 이들 논문은 남성적 민족주의, 식민지 남성성 비판에 골똘하다 보니 식민지 남성과 제국주의 남성이 연대한다는 식으로 논리를 확장한다. 그들은 반미소설의 주인공인 식민지 남성(지배자인지 민중인지에 대한 구별도 없다)이 제국주의, 국가주의 논리를 모방했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오히려 이들 연구자들은 현실의 구체적인 상황에 맞는 학술적 개념을 찾지 못하다 보니 제국주의, 가해자의 논리를 모방하고, 본의 아니게 그 이념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역비판을 가한다.

반미소설, 민족주의 소설을 향해 ‘남성중심적 좌파 민족주의’라는 식으로 비판하는 경향은 뉴라이트 성향의 국문학자, 미국의 한국학 연구자들의 논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논리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저항적 민족주의를 추구하다가 제국주의 닮아가고, 모방하며, 그 과정에서 여성을 식민화, 타자화한다는 논리다. 이런 주장에 대해 저자는 당대의 정치적 상황을 외면한 매우 도식적이고 안이한 결론이거나 의도적 폄훼라고 비판한다.

남정현 작품 관련 연구논문을 분석한 장에서 저자는 1) 〈분지〉 주인공 홍만수의 ‘강간’ 논란과 오독 2) 여성학자 정희진의 〈반미문학을 통해 본 식민지 남성성의 형성〉(2019년)과 〈분지〉 비판 3) 인종적 민족주의의 병리적 증상-뉴라이트 계열 김철 교수의 〈분지〉 비판 4) ‘분지 사건’과 〈1960년대 ‘불온’의 문화 정치와 문학의 불화〉(임유경) 5) 남정현의 소설 개작과 초기 소설의 반미 성향 연구 검토 6) 남정현 문학의 그로테스크 기법과 허허선생 7) 〈반공주의와 검열 그리고 문학〉과 남정현의 화두 ‘반공’ 등의 주제를 다뤘다. “〈분지〉 주인공 홍만수의 ‘강간’ 논란과 오독”은 그동안 진보나 보수를 막론하고 대다수 연구자가 홍만수의 행위를 ‘강간’ ‘겁탈’로 단정하고 비평하는 평단에 대한 저자의 공세적인 문제 제기라 할 수 있다.

남정현은 시대의 금기와 억압 속에서도 ‘웃음과 부활’의 미학으로 민중의 비참을 전복하려 했던 문학적 모험가였다. 저자는 남정현의 소설과 생애, 주변 인물, 시대적 배경, 그리고 그의 작품을 다룬 주요 논문과 비평을 소개하면서, 남정현의 문학이 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지 증언한다. 이 책은 한국 문단 최초의 필화소설인 〈분지〉 발표 60주년을 맞이해 그가 남긴 외세에 관한 근본적 질문을 오늘의 시각으로 성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지침서다. 저자는 《남정현의 삶과 문학-부활과 웃음의 미학》 출간을 계기로 남정현 문학이 새롭게 읽히고 ‘부활’하기를 기대한다. 이 책의 맨 끝에 실린 ‘작가연보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2021년-모란공원 묘지에서 열린 1주기 모임에서 추모사를 읽은 전덕용 사월혁명회 상임 의장이 민족의 해방과 남정현의 부활을 기원하며 ‘홍만수 만세!’ 라고 외침.”

남정현 소개

남정현(1933~2020)

1933년 12월 13일 충남 서산(현 당진)에서 출생. 작가의 말로는 “곡마단 시절의 부활의 신기가 그리워 우연히 〈경고구역〉이란 제목의 소설을 써본 것”이 단편소설 〈경고 구역」인데, 안수길의 추천을 받아 《자유문학》(1958년 9월호)에 실리면서 등단했다. 중편소설 〈너는 뭐냐〉로 1961년 제6회 동인문학상(후보작)을 수상. 1965년 《현대문학》에 발표한 소설 〈분지〉가 북한의 〈통일전선〉과 〈조국통일〉에 연이어 실리면서 반공법을 위반했다 하여 재판을 받았고, 이후 대한민국 필화사건 1호 소설가라는 칭호를 얻음.

1970년대까지 본인의 ‘작가연보’에 “1942년 온양 도고소학교 3년 재학 시 자칭 신령이라는 노인의 꾐으로 가출, 유랑걸식하다 한만韓滿 국경 근처에서 붙들려 고아원에 수용됨. 1943년 고아원 탈출, 유랑생활 중 곡마단 단장에게 발탁되어 곡마단 단원이 됨. 1944년 단원 중 저명한 마법사의 지도로 불에 타 완전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신기神技를 몸에 익히게 되어 부활의 명수名手가 됨.”이라고 써넣곤 함.

필화사건 22년 만에 해금된 〈분지〉가 포함된 소설집 《분지》가 1987년 세상에 나왔고, 2002년에 소설, 산문, 연구논문을 엮은 《남정현문학전집》(3권)이 출간됐다. 창작집으로 《너는 뭐냐》(1965), 《굴뚝 밑의 유산》(1967), 《준이와의 삼 개월》(1977), 《허허선생》(1977), 《분지》(1987), 《허허선생 옷 벗을라》(1993), 《남정현대표소설선집》(2004), 《편지 한 통-미 제국주의 전상서》(2017)가 있다.

추천평

“우리 민족사의 모든 참담한 고통의 근원은 일본과 미국에서 비롯됐다는 게 남정현 문학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그의 문학은 온통 외세의 압박과 냉전 시대의 마취에서 깨어나게 만드는 기상나팔이었고, 남정현은 어찌 보면 이 시대의 문학적 비전향 장기수였다. 민족의 참 복음서와 같은 그의 소설이 국내외에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던 차에 최진섭의 《남정현의 삶과 문학-부활과 웃음의 미학》이 나오게 되었다. 민족의 가치가 갈수록 소중해지는 시대에 이 책 발간을 계기로 남정현 소설이 널리 읽히길 기대한다.” - 임현영 (문학평론가)
“이 책은 평생을 시대의 거대한 금기에 맞섰던 한 문학인의 고투를 복원하는 기록이며 그의 문학이 왜 끝내 굴복하지 않았는가를 증언하는 서술이다. 이 책에는 시대의 억압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한 인간의 치열한 사유와 '웃음과 부활'이라는 독특한 미학으로 민중의 비참을 강요한 민족 문제를 전복하려 했던 문학적 모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양진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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