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말_ 7
Ⅰ. 과학의 빛과 종교의 심연, 포스트휴먼 시대를 맞이하며 우희종 1. 사물의 질서와 생명의 질서_ 16 1) 빛과 심연_ 17 2) 종교적 생명의 재해석_ 21 3) 종교의 합리성과 매저키즘_ 23 2. 과학의 지식과 종교의 지혜_ 26 1) 과학과 종교 차이_ 26 2) 지식과 지혜_ 29 3) 과학과 종교의 믿음_ 32 3. 미래 과학기술과 종교_ 34 1) 포스트휴먼 사회_ 35 2) 포스트휴먼 사회와 종교_ 41 Ⅱ. A. N. 화이트헤드가 바라본 종교와 과학 박수영_ 51 Ⅲ. 불교의학의 정체성과 전개 과정 고찰 박종식 1. 들어가는 말; 종교와 과학은 충돌하는가?_ 69 2. 불교의학은 무엇인가_ 71 3. 아유르베다와 불전의 태아학_ 81 4. 부정관의 수행법과 불교의학_ 94 5. 아유르베다와 불교의 호흡 생리학_ 106 6. 나가는 말 : 불교의학의 흐름_ 123 Ⅳ. 불교의 생명론과 바람직한 과학의 미래 민태영 1. 서론_ 129 2. 불교의 생명, 생명론_ 131 3. 다르지만 같은 존재, 식물_ 136 4. 식물의 존재론적, 도덕적 지위_ 140 5. 소비하는 불교 시대의 과학_ 150 6. 결론_ 152 Ⅴ. 인공지능 과학 시대의 노자 철학 이명권 1. 서론_ 159 2. 인공지능 시대의 철학적 문제들_ 161 3. 인공지능 시대의 노자 철학_ 172 4. 결론_ 190 Ⅵ. 초연결·초지능 사회에서 현대 명상의 확장된 가치 최현성 1. 서론_ 196 2. 초연결·초지능 사회와 현대 명상_ 198 3. 초연결·초지능 사회에서 명상의 활용_ 212 4. 결론_ 232 Ⅶ. 정신분석의 충동과 과학자의 욕망: 라캉의 에크리 제32장을 중심으로 강응섭 1. 글을 시작하면서_ 243 2. 시대적 배경과 사상적 배경_ 244 3. 에크리 32번 글 “Du 《Trieb》 de Freud et du desir du psychanalyste” 의 번역과 해설_ 249 4. 글을 종결하면서_ 277 Ⅷ. 로버트 쿠버 소설의 메타픽션적 방법론: 「프릭쏭 앤 데스컨트」 중심으로 양윤희 1. 들어가며_ 283 2. 메타픽션이란 무엇인가?_ 285 3. 로버트 쿠버의 문학 세계_ 287 4. ‘틀깨기’로 본 메타픽션 -「매직 포커」와 「모자 마술」_ 293 5. ‘파스티슈’로 본 메타픽션 - 종교 서사 「형」과 「요셉의 결혼」_ 296 6. ‘현실의 중첩’인 다층적 서사의 메타픽션-「베이비시터」_ 301 7. 나아가며: 쿠버가 생각한 메타픽션의 의미-시뮬라크르의 세계_ 306 IX. 음양오행의 현대적 재해석 김영주 1. 서론_ 315 2. 본론_ 317 1) 음양과 오행에 대한 사회의 인식_ 317 2) 주역(周易) 팔괘(八卦)와 오행(五行)_ 321 3) 백서(帛書) 및 죽간(竹簡) 오행과 사행(四行)_ 326 4) 전통오행(傳統五行)과 자사오행(子思五行)_ 330 3. 결론_ 334 |
|
과학의 빛과 종교의 심연 포스트휴먼 시대를 맞이하며
-우희종(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과학은 계속 발전하지만, 종교는 발전하지 않는다. 과학이 다루는 사물의 질서는 빛이고, 종교가 다루는 생명의 질서는 심연이다. 포스트휴먼 시대를 맞이하는 과학과 종교의 합리성을 묻는다. 우리가 맞이한 21세기는 근대 이성에 의한 과학기술문명과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로 규정된다. 그러한 우리 삶의 현장은 생태계 위기를 불러 온인류세anthropocene를 만들어 내었고, 이제는 인공지능(AI)으로 인한 4차 산업혁명을 맞이했다. 도구적 인공지능(AI)은 물론 자율적 인공지능(SI)의 출현이 예상되는 또 다른 도약을 통한 포스트휴먼 사회는 코앞에 왔다. 이렇게 맹위를 떨치는 과학 발전으로 인해 과학은 더 이상 자연과학만이 아니라, 사회과학, 인문과학으로 확장되어 근대학문 전반의 위치로 격상되었다. 근대 사회에 있어서 과학의 권위, 신뢰, 제도화는 기존 종교의 역할을 대체하게 되었다. 이미 오랫동안 영성이나 초월성을 말하는 종교와 근대 이성의 과학의 관계를 논해 왔듯이 우리가 직면한 미래 기술사회인 포스트휴먼 사회와 종교를 검토하는 것은 필요 하다. 근대과학의 최첨단은 포스트휴먼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종교적 통찰이 없는 과학은 위험한가라는 클리셰적인 흔한 질문과 함께 종교의 사회 역할과 탈이념화된 영성/초월성의 가능성을 묻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 사회만이 아니라 지구적 생태 위기를 불러일으킨, 현재 진행형인 근대과학이다 보니 인류 이래 늘 함께 해온 종교 활동도 과학과의 관계에 있어서 늘 새롭게 점검될 필요가 있다. 한편, 합리성에 있어서 근대과학의 합리성은 이성에 근간한다. 종종 합리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과 동일시 된다. 하지만 이성적인 것이 합리적이기는 하나, 그 반대인 합리적인 것이 늘 이성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성과 감성, 영성 그리고 무의식을 지닌 인간에게는 일반적으로 과학은 이성에 의한 객관성, 논리, 검증 가능한 경험 등에 바탕을 두고, 종교는 영성에 근간해 주관적 신앙, 상징, 신비 체험을 중시한다. 사람은 이성과 감성, 무의식, 그리고 종교적 내면의 영성/초월성을 지니지만, 과학 기술의 토대는 이성이다보니, 과학은 이성적 ‘사물의 질서’인 코스모스의 세계, 종교는 ‘생명의 질서’인 카오스의 세계를 다룬다. 과학의 합리성은 이성에서, 종교의 합리성은 생명에서 온다. 이성과 영성이라는 서로 다른 층위에 기반한 과학과 종교의 단순 비교는 바람직하지 않다. 과학과 종교가 어우러진 인간의 삶과 삶의 현장은 여러 층위가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중층구조기에, 여러 층위layer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과학과 종교 간의 만남은 이성이 작동하는 과학 층위와 감성과 무의식과 초월성이 주로 작동하는 종교 층위라는, ‘서로 다른 층위’ 간의 만남이자 소통이다. ‘서로 다른’ 개체/층위/세상/영역이 각자의 고유성을 지닌 채 ‘함께 만나는’ 것이고, 만나야 할 이유는 지금 여기에서 인간 ‘삶에서 통합’되기 때문이다. 인간 삶의 현장에서 과학과 종교는 화이부동이 되어야 하건만, 서로 다른 층위의 사안을 동일 층위에 올려놓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어리석고 소모적인 상황이 있다.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과학이란 무엇이며, 종교는 무엇인가에서 출발해 21세기 들어 과학의 시녀처럼 보이게 된 철학과 과학 기술 및 종교적 사유 간의 경계와 관계에 주목한다. 특히 과학의 존재론적 기반과 종교의 실천적 접점을 살펴봄에 있어 ‘확장성을 지닌 근대적 사유’와 ‘수렴성의 종교적 사유’의 관계에주목한다. 무엇보다 과학과 종교가 각자 절대화된 ‘진리’ 개념에 집착할 경우, 양자의 소통은 불가능하다. 빛으로 은유되는 근대 이성의 확장성과 진리로서의 생명성 및 비움과 절대적 수용이라는 종교적 매저키즘 Masochism의 자세를 살펴볼 때 더욱 분명해진다. 첨단 과학의 산물인 포스트휴먼 시대에서 논의되고 있는 신유물론(New Materialism)은 종우월주의적 인간 중심 사고를 넘어, 존재의 얽힘과 물질의 능동성을 강조하며 새로운 윤리적 지형을 제시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사유는 인격신을 부정하고 ‘공(空)’과 ‘무아(無我)’를 중심으로 세계를 파악해 온 불교와 일정 부분 철학적 연계성을 보인다. 종교와 과학 일반, 불교의 연기론 및 수행론, 신유물론의 관계론적 존재론, 반본질주의, 윤리적 실천성과의 만남이 요구되는 셈이다. 논의의 편의상 근대과학의 자연과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며, 자연과학 전공이자 포스트휴먼 시대의 함의를 생각하고 있는 글쓴이의 관점은 과학상대주의자로 불리는 페이어라벤트(Paul Feyerabend),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의 라투르(Bruno Latour), 탈식민적 인식론의 하딩(Sandra Harding) 및 수행적 과학을 강조하는 피커링 (Andrew Pickering) 입장에 공감하며 쓰고 있다는 점을 밝혀둔다. --- p.13-14 A. N. 화이트헤드가 바라본 종교와 과학 -박수영(동국대학교 연구초빙교수) 종교와 과학의 관계라는 문제에 접근하는 데 있어 어려운 점은, 이 문제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종교'와 '과학'이라는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나는 가능한 한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과학적이든 종교적이든 특정 신조(creed)에 대한 비교는 배제하고자 한다. 우리는 두 영역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 유형을 이해해야 하며, 그런 다음 현재 세계가 직면한 현 상황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종교와 과학 사이의 ‘갈등(conflict)’은 우리가 이 주제를 생각할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과학의 성과와 종교의 신념은 노골적인 불일치의 위치에 놓인 것처럼 보이며, 과학의 명확한 가르침이나 종교의 명확한 가르침 중 하나를 포기하는 것 외에는 이 갈등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어 보인다. 이러한 결론은 양측의 논쟁가들에 의해 주장되어왔다. 물론 모든 논쟁가들이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개적으로 제기되는 모든 논쟁에서 통찰력 있는 예리한 지성인들이 주장했던 것이다. 감성이 예민한 사람들의 고민, 진리에 대한 열정, 그리고 문제들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우리의 진심 어린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종교가 인류에게 무엇이고 과학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 역사의 미래는 이 세대가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내리는 결정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감각의 단 순한 충동과는 별개인) 가장 강력한 두 가지 일반적인 힘을 볼 수 있는데, 이 두 힘은 서로 대립하는 듯하다. 그 하나는 종교적 직관의 힘이고, 다른 하나는 정확한 관찰과 논리적 추론에 대한 충동의 힘이다. 영국의 한 위대한 정치가는 한때 국민들에게 국가 간의 현실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긴장, 공포, 그리고 전반적인 오해를 막기 위한 조치로써 대형 지도를 사용하라고 조언했다. 마찬가지로, 인간 본성의 영구적인 요소들 사이의 충돌을 다룰 때에도, 우리 역사를 큰 스케일로 조망하고 현재의 갈등에 대한 즉각적인 몰입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곧바로 발견하게 된다. 첫째, 종교와 과학 사이에는 항상 갈등이 존재해 왔다는 것이고, 둘째, 종교와 과학은 항상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당시 사람들이 살아 있는 동안 세상의 종말이 온다는 믿음이 기독교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이 믿음이 얼마나 권위 있게 선포되었는지는 간접적인 추론만 가능하다. 하지만 이 믿음이 널리 받아들여졌고, 대중적인 종교 교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 믿음은 오류로 판명되었고, 기독교 교리는 이러한 변화에 적응했다. --- p.51-52 불교의학의 정체성과 전개과정 고찰 -박종식(동국대학교 겸임교수) 종교의 영역이 과학적 논증에 의하여 검증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 깨달음이나 구원이 과학적 사실로 규명되어야만 하는가? 이 문제는 역으로 다음과 같이 질문될 수 있다. 과학이 믿음의 대상이 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과학적 사실이 믿음보다 우위에 있게 될 때 그 사실은 과학이라는 이름의 도그마로 작용하는 것이지, 사실 규명에 대한 문제로 남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는 이미 정답이 나와 있는 듯 보인다. 종교는 이 때까지 누려온 권위를 정직하게 내려놓아야 한다고! 과학이 종교와 다투는 영역은 창조의 문제로 귀결된다. 창조는 최종적으로 멸망이나 심판의 개념으로 마무리될 수 있는데, 최초 창조자의 의지가 심판에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논의에서는 현상의 문제로 접근하고자 한다. 과학적 방법이 현실을 가장 설득력 있게 마주치는 부분은 의료현장이다. 추상적 이론으로 질병을 다룰 수는없다. 실효성이 바탕이 되는 의료만이 의학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그만큼 의료현장은 생사의 문제를 비롯하여 실질적 효능을 장점으로 여기는 부문이다. 질병을 다루며 죽음을 최대 극복대상으로 여기는 의학은 노화조차도 질병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생로병사를 다루는 불교적 입장은 이점에서 의학과 견주기에 여러모로 용이한 입장을 보여준다. 이러한 논의를 받아들이고 다시금 눈여겨 볼 일은 불교의 교리적 입장이다. 불교는 인간 현상을 번뇌로 정의하며, 이 번뇌로 인한 고통을 제거하고자 한다. 이때 번뇌를 질병으로 파악하는 시선이 있다. 그러므로 번뇌와 고통이라는 질병에 대한 처방으로 불교의 다양한 수행법을 제시한다. 종교와 과학은 수레의 양쪽 바퀴와 같은 관계라고 여겨진다. 과학에 의하여 보충되는 종교는 과학적 사실의 세계 너머의 문제를 다루며 심오한 가치를 제시한다. 또 과학은 주술적 사고를 파헤치며 종교가 주술이나 미신의 나락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가이드를 설정해준다. 그리하여 종교는 종교답고 과학은 과학의 영역을 지키며 학문이라는 전문성을 두드러지게 발휘한다. 이제 다시금 과학과 종교의 고유영역과 역할은 무엇인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과학은 믿음의 문제와 무관하게 사실의 문제를 검토하는 영역이다. 종교는 의미와 상징으로 조감되며 논리적 검증보다는 그 너머의 의미체계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들어 종교의 폐단이 노출되면서 의혹의 시선으로 관찰되고 있다. 그리하여 종교의 영역은 더욱 왜소하게 위축되고 있다. 각 종교의 신도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이러한 시선을 기본적으로 인정하면서 이 글에서는 불교의 영역으로 국한하여 불교의 시선이 과학적이라는 점을 검토하고자 한다. --- p.69-70 불교의 생명론과 바람직한 과학의 미래 -민태영(동국대학교 연구교수) 불교의 생명 이론은 모든 생명체의 평등성과 존엄성을 강조하며 자비와 연기로 대표되는 일련의 생명 존중 사상에 기반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인류에게 많은 편익을 제공하고 있는 과학의 발전이 생명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고 발전해 나가기 위한 가치 기준의 설정에서 불교의 관련 논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특히 인간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로 인한 전 인류적 위기감 속에서 환경 생태학을 아우르는 환경과학의 긍정적인 방향성에 대해 논할 때도 불교의 연기 개념, 불살생의 개념은 유용하다. 왜냐하면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하여 환경과 연기하면서 변화해 나가는 생명체도 결국 기본적으로는 본질을 결여해서 공(空)한 존재이고 생명체 사이에서 나타나는 제현상을 구분 짓고 그들에게 속성을 부여하며 생명체들을 종(種)에 따라 나누는 행위란 것도 결국 고정불변한 본질은 없이 우리의 편의에 따라 만들어 낸 허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생명체의 발달 과정과 변이도 생명체 안에 있는 요소로만 진행되는 현상만으로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주변 환경 등과의 상호작용을 고려했을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설명이 가능하다. 이런 생명체의 원리는 마치 연기의 법칙으로 이해하고 변화의 요인이 되는 환경과 그 생명체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의 법칙과 유사성을 갖는다. 결국 불교의 그것은 단순한 철학적 원리로서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공할 수 있으며 과학의 오남용으로 인간의 공간이 회생 불능의 상태가 되었을 때 혹은 그러한 상태가 되기 전에 불교가 이에 대한 방어 내지 제어의 논리로서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논의의 범위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요소인 식물에 국한시켜 보면 식물의 불교적 생명성과 식물학적 관점의 확장을 통해 영향을 주고 받는 대상으로서 자연과의 동행을 가능하게 하는 논지로 전개시키는 것도 가능해진다. 기후 변화로 인해 모든 생명체가 고통받고 일부 멸종해 가고 있는 이 시대에 생태계를 이루는 모든 생명의 조력자인 식물들이 그 존재 자체로 존엄하게 공존할 수 있는 논의가 구체적인 실천으로서 논의되어야할 상황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더해진다. 인간과 동물과 환경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물론 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존엄까지 논의되어야만 그들에 대한 재인식을 통해 생태 환경의 많은 부분을 되살릴 수 있을 뿐 아니라 과학이 추구하는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을 완성하기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 p.129-130 인공지능 과학 시대의 노자 철학 -이명권(비교종교학자·동양철학자) 지금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시대다. 인간이 과학을 지배하는 시대를 넘어서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전도(顚倒)된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기술 지능의 확장은 단순한 기능의 진보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와 주체성 그리고 가치 판단과 사회 질서까지 흔드는 철학적 혁명이다. 따라서 이러한 확장을 무조건 ‘진보’로 간주하기보다, 그 본질과 한계를 묻는 성찰적 관점이 절실히 요구된다. 인간 정체성의 위기와 주체의 재구성을 위해서라도, 혹은 기술문명의 윤리적?형이상학적 과제를 검토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노자 철학의 현대적 의의를 물을 필요가 있다. 그 질문 가운데는 인공지능(AI)과 무위의 철학, 인간 중심주의의 해체와 도(道)의 개념에 대한 재성찰, 알고리즘 사회에서 ‘도’의 흐름을 따른다는 것, 그리고 비인격적 질서와 도의 윤리를 비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따라서 인공지능 시대의 노자적 삶은 무엇이며, 기술 사회속에서 비움(虛)과 고요(靜)의 미학을 묻고 실천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노자 철학의 기존 연구들은 대개 노자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그 시대의 철학적 주제들을 다루는 내용이 많았다. 이른바 약 2천5백 년 전의 춘추전국 시대에 나타난 노자의 철학이 유교적 사상의 기초를 이루는 공자의 사상과 대비되면서, 혹은 불교 사상과의 접촉점이 되면서 노자철학은 중국 사상과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하였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이른바 유불도 사상의 주축을 이루면서 동아시아 사상사에 뿌리 깊은 기둥을 형성하였다. 이는 서양 철학사에서 헤브라이즘 전통과 그리스도교 사상이 그리스 사상과 뼈대를 이루면서 서양 정신을 유도해 온 것과 유사하다. 그런 점에서 도가 사상의 원류인 노자 도덕경에 담긴 사상은 동서양의 고전 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하는 고전 중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2장에서 인공지능 시대의 제반 철학적 문제들을 고찰해 보고, 인공지능과 그 기술 지능의 확장이 가져오는 문제와 결과는 무엇이며, 그 철학적 쟁점에 대해서 고찰하면서 인간 고유의 지능을 강화할 몇 가지 필요성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3장에서는 인공지능 시대 의 노자 철학을 논한다. 기술문명의 전환기에 철학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묻고, 노자 철학의 무위와 자연, 그리고 존재의 새 지평에 대해 고찰할 것이다. 또한 인공(人工)에 대한 경계와 소박(素朴)의 미학, 상선약수(上善若水)와 인공지능 시대의 비경쟁부쟁(不爭)의 윤리, 지혜(智)와 어리석음(愚)의 대비를 통해 유식(有識)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것이다. 4장 결론에서는 이러한 논의를 종합하여 AI 과학 시대에 노자 철학이 줄 수 있는 교훈과 그 한계를 논하고자 한다. --- p.159-160 초연결·초지능 사회에서 현대 명상의 확장된 가치 -최현성(인도학자·명상가) 이 논문은 초연결·초지능 사회에서 현대 명상의 확장된 가치를 탐구한다. 전통적인 종교 및 영적 가치에서 발전해온 명상은 현대 사회의 스트레스, 불안, 우울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심리적 웰빙을 증진하는 실용적인 가치에 중점을 두며 대중화되었다. 신경과학의 발전은 명상이 뇌의 기능적, 구조적 변화(신경가소성)를 유도하고, 뇌 활동성 변화를 통해 긍정적인 감정 상태와 인지 기능 향상에 기여함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며 신뢰성을 강화했다. 마음챙김 명상은 이러한 연구와 활용의 대표적인 사례이며, 자비 명상도 이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명상의 효과가 검증되면서 의학 및 심리학 분야는 물론, 기업, 학교, 병원 등 다양한 환경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어 직원들의 정신 건강 개선과 업무 능력 계발, 그리고 전반적인 생산성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메타버스와 같은 최신 기술 발전은 새로운 윤리적, 철학적 질문을 제기하며, 명상이 이러한 문제에 대한 통찰력과 윤리적 사유를 심화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VR/AR 기술은 몰입형 명상 환경을 제공하여 집중력을 높이고 스트레스, 불안, 우울증 완화 등 정신 건강 문제 해결에 효과적이며 , AI 기반 명상 앱은 개인 맞춤형 지도를 제공하고 신경 피드백을 통합하여 명상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든다. 장기간의 명상 수행은 정신적, 육체적 능력 유지와 비범한 인지 능력 확장에도 기여할 수 있음이 연구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치유를 넘어 인간성 함양과 지속 가능한 사회적 웰빙을 위한 명상의 깊은 잠재력을 시사한다. 신경과학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의 한계를 지니지만, 명상의 실용성은 미래 사회로 갈수록 더욱 증대될 것이며, AI 개발자가 직접 명상을 통해 철학적 사유를 함양하는 것이 ‘착한 인공지능’ 개발에 기여할 수 있음이 강조된다. --- p.195-196 정신분석의 충동과 과학자의 욕망: 라캉의 에크리제32장을 중심으로 -강응섭(예명대학원대학교 교수) 본 글은 1964년 1월 로마대학교 철학과에서 주최한 ‘Colloque ≪Techniqueet Casuistique(기술과 결의론 또는 과학과 도덕신학/윤리학에 관한 콜로키움)≫’에서 발표한 자크 라캉의 발표문 “Du 《Trieb》 de Freud et du desir du psychanalyste”를 검토한다. 이 콜로키움이 개최되던 당시, 제21차 보편공의회(1962.10.11.-1965.12.8.)가 로마 바티칸에서 개최되고 있었다. 이 두 기관이 논의하는 의제 가운데 주요한 것은 과학의 ‘실천’이었다. 여기서 ‘실천’은 종교와 과학의 영역에 속한다. 이 콜로키움에 참석한 라캉은 정신분석학을 ‘실천’의 영역에 자리매기고자 한다. ‘실천’은 ‘욕망’에 관계된다. 라캉은 한편으로 ‘학’(學)으로서 과학-종교학 정신분석학의 욕망을 말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기술’(技術)로서 과학자-종교학자-정신분석가의 욕망을 말한다. 전자가 후자를 이끌어야 하는데, 1964년 당시 전자가 욕망하지 않음으로337) 후자가 작동하지(operer) 않는다고 라캉은 말한다. 그래서 욕망을 작동시켜야 되는데, 욕망을 다루는 것은 정신분석학 영역의 임무로 보았다. K-종교인문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인문연구 제8집의 주제 “종교와 과학”과 관련하여, 연구자는 1964년의 정황을 고찰하면서, 60년이 지난 오늘(2025년)의 상황과 연결하여, ‘정신분석의 충동(衝動, Trieb)과 과학자의 욕망’에 관하여 논하고자 한다 --- p.243-244 로버트 쿠버 소설의 메타픽션적 방법론: ?프릭쏭 앤 데스컨트? 중심으로 -양윤희(영문학 박사) 현실은 무겁다. 단단하고 냉정하며, 인간의 상상력을 압도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너무 인과적이고 구체적이어서 틈을 허용치는다. 그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숨을 쉴 수 있을까? 종교와 픽션은 그 숨을 돌리게 하는 숨구멍이다. 그것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감당하고, 해석하고, 재구성하게 해주는 창이다. 우리는 종교 속에서 진실을 찾고, 픽션을 통해 현실을 새롭게 보는 눈을 얻는다. 로버트 쿠버의 메타픽션은 이 숨구멍의 구조를 정교하게 보여준다. 그의 단편들??매직 포커?, ?모자 마술?, ?요셉의 결혼?, ?형?, ?베이비시 터? 등?은 모두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해체하고, 그 틈새에 새로운 시선이 가능함을 증명한다. 쿠버는 여러 실험 소설과 종교적 패러디로 우리에게 숙제를 던지고 있다. "이 현실은 진짜인가? 혹시 이것도 누군가의 이야기 속 일부가 아닌가?" 그는 이야기의 마법을 빌어, 우리가 사는 현실이라는 공간에 균열을 낸다. 그가 하나의 사건을 여러 가능성과 상상, 욕망과 현실의 층위로 나열하는 방식은 단지 서사의 파괴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이 하나의 고정된 이야기로는 결코 정리될 수 없다는 통찰이며, 그 복잡성과 다층성 속에서 우리에게 진실을 재구성하라는 요청이다. 이러한 쿠버의 서사 방식은 철학적으로 데리다의 '차연(differance)' 개념과 깊이 맞닿아 있다. 의미는 언제나 미뤄지고, 뒤섞이고, 고정되지 않으며, 현실 또한 그러하다는 사유. 쿠버는 이를 문학적으로 실천하고, 우리는 그것을 읽으며 이렇게 다시 묻는다. "현실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그것을 어떻게 믿고 있는가?" 픽션은 만들어진 이야기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현실이라는 규명되지 않은 환자를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서사라는 메스로 그 내부를 해부하고 재배열하려는 시도다. 픽션은 진짜보다 더 진실된 방식으로 현실을 말할 수 있을까? 쿠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우리도, 그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낯선 숨을 쉬고자 한다. 허구는 도피가 아니라 돌파다. 그것은 상처 입은 현실에 놓인 작고도 환한 통풍구다. 우리는 그 구멍을 통해 빛을 본다. 그래서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다. 다시 살아갈 수 있다. 허구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당신이 감당하지 못한 진실을, 내가 잠시 품고 있어 줄게.” --- p.283-284 ‘음양오행(陰陽五行)’의 현대적 재해석 -김영주(동국대 동서사상연구소 연구원) 현대 사회에서 ‘음양오행(陰陽五行)’이라는 용어는 하나의 거대한 사상 체계라기보다는 주로 개인의 운명과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실용적 도구로 소비되는 경향이 짙다. 사주(四柱), 궁합(宮合), 작명(作名), 풍수(風水) 등은 음양오행이 대중과 만나는 가장 보편적인 통로이며, 이 과정에서 음양오행은 소위 술수(術數)의 영역에 국한되거나, 종종 비과학적이고 모호한 동양적 신비주의의 잔재로 치부되는 경향이 짙다. 심지어 ‘점술’ 혹은 ‘미신’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한다. 이러한 통속적 인식은 음양오행이 동아시아 사상사 속에서 형성되고 변모해 온 복합적인 지성사적 맥락을 간과하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특히, 음양오행을 하나의 단일하고 균질적인 사상 체계로 간주하는 것은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다. 본래 음양설과 오행설은 독립적으로 발생하여 각기 다른 길을 걸어오다 전국시대에 이르러서야 결합되기 시작했다. ‘음양’은 본래 ‘그늘’과 ‘볕’을 의미하는 기상 용어에서 출발하여, 만물의 대립·보완·전화(轉化)를 설명하는 보편적 ‘관계의 철학’으로 발전했다. 반면 ‘오행’은 초기에는 인간 생활에 필수적인 다섯 가지 물질[五材]을 지칭하는 소박한 개념이었으나, 전국시대의 사상가 추연(鄒衍)에 의해 왕조 교체의 필연성을 정당화하는 정치 이데올로기이자 결정론적 우주론으로 변모했다. 이처럼 서로 다른 궤적을 그려온 두 사상이 결합하고, 특히 오행론이점술과 결합하면서 주역(周易)의 본래 철학적 의미마저 혼탁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적 시각이 존재한다. 주역의 핵심은 음양의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의 원리를 탐구하고 인간의 주체적 수양을 강조하는 의리역(義理易)에 있으나, 후대에 오행설이 인위적으로 결합되면서 운명을 예측하고 길흉을 점치는 술수역(術數易)으로서의 성격이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본고에서 핵심적으로 다룰 문제는 ‘오행’ 개념 그 자체의 내부에 존재하는 두 가지 상이한 전통을 구분하는 것이다. 첫째는 추연을 필두로 한 우주론적 ‘전통오행’이며, 둘째는 20세기 후반 곽점초간(郭店楚簡)과 마왕퇴백서(馬王堆帛書) 등 출토 문헌의 발견으로 새롭게 조명된 윤리적 ‘자사오행(子思五行)’이다. 전통오행이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라는 외부 세계의 법칙을 탐구하는 우주론이라면, 자사오행은 인(仁)·의(義)·예(禮)·지(智)·성(聖)이라는 인간 내면의 덕목 완성을 추구하는 윤리학이자 수양론이다. 따라서 현대 사회에 만연한 음양오행에 대한 통속적 인식을 교정하고, 그 안에 담긴 합리적 사유와 철학적 가치를 복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첫째, ‘음양’과 ‘오행’의 개념을 역사적으로 분리하고, 둘째, ‘오행’ 내부에 존재하는 ‘전통오행’과 ‘자사오행’이라는 두 개의 길을 명확히 구분하여 비교 분석하고자 한다. --- p.315-316 |
|
초연결 시대, 종교와 과학의 새로운 공진화
-종교와 과학을 펴내며 21세기 중반으로 향하는 지금,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복합적인 문명 전환기의 문턱에 서 있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양자컴퓨팅, 우주탐사, 초연결 네트워크 등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삶의 방식은 물론, 존재에 대한 이해와 의미의 지평마저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 과학은 더이상 물질세계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의 감정·의식·삶의 목적에까지 깊숙이 관여하며 종교가 전통적으로 다루던 영역과 교차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종교와 과학』의 성찰적 대화는 단순한 논쟁이나 타협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공동체 전체의 미래와 인간성의 방향을 모색하는 공동 작업이어야 한다는 절박한 자각이 일어나고 있다. 바로 그 접점에서 본 학술지 종교와 과학이 단행본으로 태어났다. K-종교인문연구소의 전문 연구가들과 코리안아쉬람 인문연구진이 함께하는 이번 제8집에서는 불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 전통의 학자와 과학, 철학, 윤리, 심리학 분야 연구자들이 함께 참여하여, 인공지능과 인간 의식, 기술과 영성, 생명과 존재론, 자연과 인간의 공감 문제 등을 다층적으로 조명하고자 하였다. 특히 불교의 연기(緣起), 무아(無我), 자비(慈悲) 사상은 초지능의 도전 앞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다시 묻는데 있어 풍부한 통찰을 제공한다. 아울러 기독교, 유교, 도교 등 여러 종교의 관점에서도, 포스트휴먼의 기술 시대 윤리와 가치 및 자연에 대한 심층적 논의가 이루어졌다. 우희종 교수는 『과학의 빛과 종교의 심연, 포스트휴먼 시대를 맞이하며』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이렇게 말한다. “과학은 계속 발전하지만, 종교는 발전하지 않는다. 과학이 다루는 사물의 질서는 빛이고, 종교가 다루는 생명의 질서는 심연이다. 포스트휴먼 시대를 맞이하는 과학과 종교의 합리성을 묻는다.” 박수영 박사는 『A. N. 화이트헤드가 바라본 종교와 과학』이라는 주제의 글을 번역하면서 화이트헤드의 다음과 같은말을 들려준다. “어떤 종교든 물리적 사실과 접촉하는 한, 과학적 지식이 발전함에 따라 그러한 사실들에 대한 관점은 끊임없이 수정되어야할 것으로 예상되어야 한다. ... 과학의 발전은 종교 사상의 끊임없는 체계화로 이어져야 하며, 이는 종교에 큰 이로움이 될 것이다.” 박종식 박사는 『불교의학의 정체성과 전개과정 고찰』이라는 논문을 통해, “불교의 수행 공동체에서 필요했던 의학 지식과 기술은 승원 내부에서 발생한 환자에 대한 보살핌을 넘어서서, 일반 대중들을 위한 의술로서 자리잡게 되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대승 불교가 표방하는 자비행의 실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질환과 선병 등에 대한 관심은 자비행의 한 방편으로 전환하여 불교의학의 입장을 설정하는 단초가 된다.”고 주장한다. 민태영 박사는 『불교의 생명론과 바람직한 과학의 미래』라는 논제의 글을 통해, “종교 특히 인간의 성찰과 수행을 기본으로 하는 불교의 경우 과학이 제시하는 지식을 수용하면서 가치 판단의 기준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하며, 우리가 실현해야 할 삶의 설계와 행동 기준까지 제시해야 할 책임이 더욱 크다.”라고 했다.이명권 박사는 『인공지능(AI) 과학 시대의 노자 철학』을 통해 “노자 도의 개념과 속성이 지니는 역할이 현대 사회에 던져줄 수 있는 물었다. 그리고 도(道)와 무위(無爲)의 개념은 자율성과 자연스러움을 강조하고 있고, 인공(人工)에 대한 경계로 노자 소박(素朴)의 미학적 가치를 논했다. 또한 노자 도의 사상을 가장 잘 말해주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개념으로는 비경쟁과 부쟁(不爭)의 윤리를 제시했고, 세속적이고 기술 시대의 지혜에 대해서는 노자가 말하는 ‘어리석음’의 역설적 가치를 들어 ‘유식(有識)’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했다. 노자 철학의 현대적 전환을 시도한 것으로 인공지능과 무위의 철학은 물론, 인간 중심주의의 해체와 도의 재사유를 고찰했고, 알고리즘 사회에서 ‘도’의 흐름을 따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논했다.”라고 했다. 최현성 박사는 『초연결·초지능 사회에서 현대 명상의 확장된 가치』를 논하는 글에서 “궁극적으로 초연결·초지능 사회에서 ‘착한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한 여정은 기술적 발전과 함께 인간의 윤리적, 철학적 성찰이 병행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AI와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직접 명상을 통해 철학적 사유를 함양하고 정신을 직접 관찰하는 것은, 인간 중심의 합리적 윤리를 고찰하고, 기술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인간 중심의 가치를 잃지 않도록 끊임없이 고민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정신분석학자인 강응섭 교수는 『정신분석의 충동과 과학자의 욕망: 라캉의 에크리 제32장을 중심으로』라는 주제의 글에서, “라캉은 과학에 대하여 그리고 종교에 대해서도 동일한 질문을 던졌다. 즉, 오늘날의 종교와 종교가가 지녀야 할 종교가의 욕망에 관해 질문을 던졌다. 정신분석가 라캉이 종교와 과학에 대하여 던진 욕망에 관한 질문은 60년이 지난 오늘 K-종교인문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인문연구 제8집 종교와 과학을 통해 다시 제기된다.”라고 했다. 그리고 양윤희 박사는 “로버트 쿠버(Robert Coover) 소설의 메타픽션적 방법론-요술 부지깽이(Pricksongs and Descants)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글에서, 쿠버의 소설로 본다면 ‘사건’이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다. 쿠버는 이야기의 내용(what happened)보다는, ‘이야기가 구성되는 방식(how it is told)’에 관심을 두고 서술을 한다. 하나의 ‘사건’은 객관성을 띠지 않고, 누가, 어떤 관점으로, 어떤 욕망을 가지고 구성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메타픽션은 현실을 해체하는 동시에 다시 짜맞추는 재구성의 기술이고 현실은 허구의 틈 속에서 자신의 뼈대를 드러낸다.”라고 했다. 김영주 박사는 『음양오행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주제의 글은 동양사상의 핵심 개념인 음양오행을 둘러싼 통속적 오해를 걷어내고, 그 안에 잠재된 합리적 사유와 현대적 가치를 성공적으로 복원해 낸 수작(秀作)이다. 본 논문은 사주, 궁합 등 술수(術數)의 영역에 갇혀 미신으로 치부되던 오행 사상의 지성사적 맥락을 치밀하게 추적하고, 특히 20세기 후반 고고학적 발견에 힘입어 새롭게 조명된 ‘자사오행(子思五行)’이라는 윤리적 전통을 부각시킴으로써 음양오행론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강력하게 제안한다. 이처럼 『종교와 과학』은 종교 간 대화와 학제 간 성찰을 잇는 플랫폼이자, 사유의 다양성과 공동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열린 마당이다. 공저자이자 발행인으로서, 이 책을 세상에 내놓으며, 이 학술지의 탄생을 함께 이끈 모든 공동 저자들 그리고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준 동시대의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