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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와 더불어
시인 구상 추모문집 양장
시인구상추모문집 간행위원회 편
나무와숲 200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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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간행의 말씀

1부 이 땅의 큰 시인
한국 유학생들 사이에 우뚝 선 ‘큰 어른’ _ 김태길
영원히 살아 계시는 한국의 시인 _ 전숙희
서대문호텔의 후배 _ 한운사
이 땅의 큰 시인이 가시던 날에 _ 홍윤숙
한국 가톨릭 제4수도회와 구상 선생-변규용
무량한 평화 안에 _ 김남조
못 만들고 가신 우리들의 모임 _ 김시철
마음이 크고 넓은 구상 형 _ 최서면
나와 선비 구상 _ 공국진
화안애어(和顔愛語)·외유내강의 시인 _ 박희진
빛나던 영성(靈性)의 별 _ 김상훈
풍류 시인 구상 선생님 _ 송원희
구상 선생의 진실 _ 여동찬
마지막 선비 _ 정연희
갈수록 따뜻해지시는 선생님 모습 _ 성찬경
바탕골 시낭송회와 구상 선생 _ 김동호
순수한 시혼(詩魂)의 선생님 _ 손장순
운성 선생의 신앙 세계 _ 정양모
구상 시인과 이중섭 화백 _ 김광림
성자와 같으신 모습으로 _ 김소엽
‘꽃자리’의 시인 _ 나카하라 미치오
내 안의 구상 시인 _ 미나미 쿠니카즈
깜박 속아넘어간 선생님 익살과 연기 _ 최영호
구상 선생의 하와이 인연 _ 이동재
구상 시인의 정 넘치는 성품 _ 윤장근
청정하고 고고한 구도자의 삶으로 _ 김대규
늘 내 신변을 걱정해 주시던 선생님 _ 유경환
홀로 가셨지만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_ 신중신
올곧은 지성, 타고난 시인 _ 성기조
‘구상론’을 대신하여 _ 문덕수
나의 스승은 _ 송예경
웃음 띤 얼굴의 원로 시인 _ 김규화
성자(聖者)와도 같은 구상 시인 _ 변창헌
천상에 계실 아저씨 구상 선생님께 올립니다 _ 문스테파나
난(蘭)의 은은한 향기로 선생을 회상합니다 _ 강선영
신령한 새싹을 키워 오신 분 _ 강영훈
성자와 가장 가까이 있는 분 _ 이수성
예수님같이 포근했던 선생님 _ 이원홍

2부 위대한 휴머니스트
시인 구상과 단산학회(檀山學會) _ 강신표
삼학소주와 만오암(晩悟菴) _ 이상우
구상 선생님 그 깊으신 뜻과 굳은 결의와 넘치는 정 _ 김년균
풋것과 어린것들의 세상을 살다 간 구상 대형을 그리며 _ 김종규
구상 보살 _ 김동현
예언자적 지성과 참회의 큰 시인 _ 김봉군
아버지 같았던 선생님 _ 김원석
구상유상(具常有常) _ 김해석
자유의 구속자 구상 선생님 _ 김형영
환한 미소의 구상 선생님 _ 목순옥
내 가슴에 남아 있는 구상 도인 _ 박삼중
대부님, 우리 예수님 _ 신재용
구상 시인과 왜관, 그리고 낙동강 _ 배상도
부드러우면서도 근엄한 충고 _ 변규백
위대한 휴머니스트 _ 이운룡
그리운 선생님께 _ 이해인
구도자의 미학을 실현한 시인 _ 임헌영
거인이 계시던 매우 큰 빈자리 _ 호영송
구상의 ‘파우스트’ _ 홍혜랑
구상 선생님께 드린 마지막 부탁 _ 박병도
석양배 같이 나누던 구상 선생님 _ 김현
구도자의 삶을 산 구상 선생 _ 송항룡
다가설 수 없는 까마득한 별 _ 유자효
고전읽기를 통해 맺은 인연 _ 이은봉
그저 앉아 있사옵니다 _ 박찬응
그래, 그래, 잘했군 _ 방귀희
잃어버린 길 _ 최정자
구상 시인과 유달영 교수의 우정 _ 유인걸
타고난 반골은 아니었을까 _ 이부영
인연 이야기 _ 이길상

3부 참다운 자유인
건너지 못하는 강 _ 이일향
만남은 은총이다 _ 최선영
참다운 자유인 _ 이단원
영원의 동산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_ 김산춘
아, 구상 선생님! _ 이진훈
백부 같았던 스승 _ 오정국
이제 눈이 내리면 _ 정종배
나는 마지막 제자였다 _ 오사라
구상 큰 스승님 _ 구준회
시인과 인간이 일치된 큰 어른 _ 이승하
구상 선생을 그리고 추억하며 _ 장원상
밝은 거울과 무간지옥(無間地獄) _ 박수진
종교적 인생관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킨 구도적 시인 _ 정근옥

4부 영원한 구도자
나의 거울이 되어 준 멋진 아저씨 _ 강대영
보편과 영원을 향하여 _ 구상 시의 세계 _ 구중서
나의 정신적 지주였던 아저씨 구상 _ 구현서
구상 시인의 모자 _ 구활
지사적 풍모의 구상 선생님 _ 김병권
구상 이름 빌려 쓰기 _ 백진앙
더없이 따뜻했던 선생님 사랑을 그리며 _ 이경자
지금도 말씀하시는 분 _ 남정도
최대의 유산 _ 채규철
오늘도 강에는 시가 흐르고 있다 _ 박승배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그날까지 _ 조광호
주치의로 그분과 함께 한 30년 _ 맹광호
선생님 선생님 구상 선생님 _ 권정신
구상 교주 _ 이만근
염화의 미소 _ 김인근
영혼의 구원과 동경, 그리고 향수 _ 구혜영

5부 외면 보살
뒤늦은 만남 : 아버지의 문학적 여성관 _ 구자명
황홀한 그 정경이 무엇이던가요? _ 김의규
나의 형부 구상 시인 _ 서영자
할아버지, 훗날 다시 만나요 _ 구향나
할아버지께 자랑스런 손녀가 되고파 _ 김향지

구상의 생애
추모문집을 편집하고

품목정보

발행일
2005년 05월 12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543쪽 | 971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8138588

관련 자료

구상 具常
본명은 상준(常浚)으로 1919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4년 세상을 떠났다.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중도에 포기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41년 니혼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1946년 원산문학가동맹에서 펴낸 동인시집 『응향(凝香)』에 서정시 「길」·「여명도(黎明圖)」·「밤」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 동인지에 실린 시로 인해 북조선예술총동맹으로부터 반동 시인으로 비판받으면서 1947년 월남하였다. 6·25 전쟁 때 종군작가단 부단장, 승리일보 주간으로 있다가 영남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후 경향신문사 동경지국장과 논설위원을 지냈다. 자유당 정권 때 반공법 위반 혐의로 투옥되어 1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무죄로 풀려난 후 문학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이후 시쓰기와 함께 후학들을 가르치며 한평생을 보냈다. 하와이대학교 극동어문학과 교수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대우교수와 예술원 회원 등을 지냈다.
시집으로는 『초토의 시』,『까마귀』,『구상』,『모과 옹두리에도 사연이』,『구상 시전집』『홀로와 더불어』등이 있고, 사회평론집 『민주고발』과 수필집『삶의 보람과 기쁨』,『영원 속의 오늘』 등이 있다. 노벨문학상 본선 심사에도 두 번이나 올랐으며, 그의 시는 프랑스·영국·독일·스웨덴·일본·이탈리어로도 번역·출판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1955년 금성화랑무공훈장, 1957년 서울시문화상, 1970년 국민훈장동백장, 1980년 대한민국문학상 본상, 1993년 대한민국예술원상 등을 수상했으며, 사후 국민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출판사 리뷰

많은 사람들의 정신적 스승이자 아버지
노벨문학상 본선 심사에 두 차례나 오르고 세계 200대 시인의 반열에 올랐던 구상 시인이 남긴 발자취는 크고도 또렷하다. 그의 시는 프랑스ㆍ영국ㆍ독일ㆍ스웨덴ㆍ일본ㆍ이탈리아어로 번역?출판돼 널리 읽히고 있으며, 1997년에는 영국 옥스퍼드 출판부에서 펴낸 『신성한 영감-예수의 삶을 그린 세계의 시』에 그의 신앙시 4편이 실렸을 정도로 가톨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한강변에는 서울 정도(定都) 6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그의 시비(詩碑)가 지금도 의연히 서 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것은 단지 시(詩)만이 아니다. 정계 입문 등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오로지 시인의 길을 꿋꿋이 걸었던 그의 올곧은 삶과 구도자적 자세, 그리고 따뜻한 성품으로 인해 그는 많은 이들의 정신적 스승이자 아버지였다.


가슴 저리고 재미있는 일화 수두룩

그의 올곧은 삶을 알 수 있는 일화 하나.
한국 현대사의 암흑기였던 1974년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문인들에게 족쇄를 채우기 위해 문학평론가 임헌영을 비롯해 이호철ㆍ김우종 등을 엮어 이른바 ‘문학인 간첩단’이란 조작 사건을 터뜨렸을 때, 박정희와의 개인적 친분 때문에 증언을 해줄까 우려했던 후배 문인들의 걱정과 달리 구상은 당국의 눈을 따돌리고 재판정에 증인으로 전격적으로 출두해 이들의 무죄를 묵직한 어조로 설득력 있게 증언해 주어 후배 문인들을 감격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정계 입문 제의는 물론이고 좀 ‘높아’ 보인다 싶은 감투는 아예 무 잘라 버리듯 거절해 버렸다. 5?16 직후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상임고문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을 때도 거절하고 경향신문 동경지국장으로 떠난 일은 유명하다.

또한 그의 따뜻하면서도 속 깊은 마음을 알 수 있는 일화들은 수없이 많다.
박삼중 스님과 함께 사형수 돕기에도 적극적이었던 구상 시인은 그 중 한 명을 양아들로 삼고 그의 구명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한 끝에 마침내 자유로의 몸이 되게 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신의 공을 내세우는 법이 없었다. 그런가 하면 천재 화가 이중섭의 후견인 역할을 하며 그의 작품을 세상에 알린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했던 걸레스님 중광을 보듬어 마침내 그의 천재적 기질을 세상에 알리기도 했다. 삼중 스님이 중광이 한창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자 안타까워 선생에게 찾아가 중광을 그만 거들어 주라고 했을 때, 선생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스님, 이미 저는 중광이라는 한 사람을 알았습니다. 한번 알았으면 참고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기다릴 겁니다. 누가 그에게 돌팔매질을 하여도 나는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의 성자다운 모습이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선생의 성품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예 한 가지. 큰 어른이므로 식사 대접을 받을 만도 하건만 그는 좀체 그러지를 않았다. 박삼중 스님과 식사하던 때의 일이다. 맨날 식사 대접만 받던 스님이 벼르고 별러 어느 날 ‘오늘은 제가 냅니다’하면서 식사를 했다. 그러나 선생은 우리 나라에서 제일 부자인 정주영 회장도 한턱낸다고 왔다가 자기 밥 얻어먹고 간다면서 “스님이 왕 회장보다 돈이 많으면 계산하십시오”라고 했다고 한다. 그것은 제자들도 마찬가지여서 선생님에게 점심 식사 한번 대접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선생의 기발하면서도 위트 넘치는 모습을 알 수 있는 일화들도 많다. 어느 날 구상 선생은 동생처럼, 조카처럼 지내는 김시철 시인이 상처하고 혼자 되자, 좋은 배필을 소개해 주려는 등 애를 쓰다가 어느 날 혼자 된 문인들을 위해 ‘문인 홀아비 과부 클럽’을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독신자 문인들을 조사하고 여론까지 물어 마침내 모임을 만들기로 했으나, 안타깝게도 선생의 병이 악화되어 몸져눕고 김시철씨도 강원도 산골로 들어가 은둔 생활을 하게 되는 바람에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만약 성사되었더라면 우리 나라 문단 역사상 아주 해괴한 모임이 생겼을 것이다.

구상 시인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이중섭 화백의 그림을 판 돈 1억 원을 이웃을 위해 선뜻 내놓은 것을 비롯해 장애우 문학지 <솟대문학>에 돌아가시기 전 2억 원을 쾌척한 일 말고도 그가 소리 소문 없이 한 일이 아주 많다.

이처럼 『홀로와 더불어』에는 참다운 자유인이었으며 성자(聖者)와도 같은 삶을 살았던 구상 시인의 생생한 면모가 그를 여전히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들의 증언을 통해 오롯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의 따뜻하고 올곧은 삶을 통해 우리의 메마르고 이해 타산적인 삶을 되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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