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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의 「술집에 있는 두 어릿광대」에서 피카소는 이미 제르멘과 자신을 어릿광대로 동일시한 바 있다. 1905년에 그린 「원숭이와 함께 있는 어릿광대 가족」에서 피카소는 어릿광대를 통해 자신의 꿈을 구경하는 관객이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몽마르크르 언덕 발치에 있는 메드라노 서커스 극장에 단골로 드나들게 된다. “피카소는 구역질나는 지독한 마구간 냄새가 희미하게 배어 있는 바에서 어릿광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녁을 보내곤 했다. 피카소는 그들을 보며 감탄했고 그들에게 진정으로 공감했다”고 페르낭드는 말한다.
--- p.115 '<세탁선>의 사랑'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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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는 자신의 붓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표현하는 사명을 타고난 것 같다. 이 젊은 신은 세계를 다시 만들고 싶은 모양이다.” 샤를 모리스 20세기 슈퍼스타 피카소 살아 있는 동안 루브르 박물관에 자신의 그림을 건 최초의 화가. 열두 살 때 이미 라파엘로처럼 그렸던, 아이 때도 아동미술전에 참가하는 게 불가능했던 천재 화가. 친구 졸라에게 마저 작품성을 이해받지 못했던 세잔이나 살아 있는 동안 한 점의 작품도 제대로 팔지 못했던 고흐나 타히티의 원시림 속에서조차 가난을 떨치지 못했던 고갱과 달리, 정물화 한 점으로 집 한 채를 사들이고, 왕들의 자동차 히스파노 수이사를 타고 스케치 여행을 다니며 식사값 대신 냅킨에 이름을 휘갈겨 쓰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인기화가. 무수한 여자들을 삶과 작품으로 소유하고도 아무런 죄의식 없었던 화가. 그가 바로 파블로 피카소이다. 미술, 특히 현대미술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라도 피카소라는 화가와 그가 그린 이상하게 생긴 여자 초상화 한두 점 정도는 알고 있을 정도로 피카소는 20세기 최고의 슈퍼스타이다. 피카소가 열렬하게 환영한, 25년 지기가 쓴 전기 피카소에 대해서 우리는 여자관계만 보고 그를 채플린 못지않은 정력가라고 수군댄다. 하지만, 그의 그림 앞에 서면 할 말을 잃는다. 피카소의 그림이 너무나 천재적이고 창조적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동안 화가 피카소를 연예인 피카소처럼 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에르 덱스가 1963년에 처음 이 책을 쓴다고 했을 때 피카소는 열렬하게 환영했다. 피카소는 분명히 해야 할 것들과 기존에 잘못 알려진 많은 부분들을 바로잡기 위해 덱스에게 협력한다. 피카소는 덱스에게 당시 그 어떤 외부인도 본 적 없는 카사헤마스의 자살을 다룬 그림과 몇 점의 청색 시대 작품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에는 카사헤마스의 자살과 피카소의 청색 시대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25년 지기의 애정 어린 시선과 미술사가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씌어져, 전기라기보다는 작품에 대한 꼼꼼한 해설서 같다. 이 해설서는 피카소의 작품뿐만 아니라 20세기의 대부분을 살았던 피카소와 그와 관계한 예술가들의 이야기와 작품을 함께 다룸으로써 현대미술을 읽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피카소를 제시한다. 피카소의 청색 시대를 읽는 키워드, 카사헤마스 일반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과 예술가의 고독을 표현했다고 보는 청색 시대를 덱스는 카사헤마스라는 피카소의 친구를 중심으로 해석한다. 카사헤마스는 피카소의 첫 번째 프랑스 시절 함께했던 에스파냐 친구로, 사랑하는 여인 제르멘과의 다툼 끝에 권총으로 자살한다. 덱스는 이 사건이 피카소의 청색 시대를 예고하는 「카사헤마스의 죽음」과 청색 시대 대표작이면서 마지막 작품인「삶」에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삶」의 화면 왼쪽에 서 있는 남녀는 제르멘과 카사헤마스이다. 이 그림에 대한 기존의 평가는 일반적으로 제르멘과 잠깐 관계를 맺었던 피카소의 죄의식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덱스는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친구가 죽은 뒤에도 여전히 남자를 유혹하며 살고 있는 여자에 대한 분노가 드러나 있다고 말한다. 이는 피카소의 친구였던 덱스가 철저하게 화가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다. 만약 이 책의 대부분이 이런 식이라면 편파적인 입장에서 기술된 페르낭드 올리비에나 프랑수아즈 질로의 회고록과 다른 점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덱스는 피카소의 사적인 이야기에 친구처럼 귀 기울이면서 동시에 당시 그림을 완성하면서 피카소가 어떤 그림을 보았으며, 누구와 만났는지를 추적해 이 전기를 완성한다. 「삶」을 그리던 당시 피카소는 샤를 모리스와 만나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감명을 받았고, 그 영향으로 ‘삶’에 대해 성찰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화가와 오랜 대화를 통해 얻은 정보와 미술사학자만의 시각으로 청색 시대를 카사헤마스라는 키워드로 설명하는 부분은 이 책에서 가장 신선한 부분 가운데 하나이다. 「아비뇽의 아가씨들」 사건일지 “드랭은 내게, 피카소가 어느 날 그 대형 그림 뒤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될 것이라고 했다.” 칸바일러 피카소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아폴리네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가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스타인 남매도 별다른 주목을 하지 않았다. “나를 가장 사랑한 여자”라고 할 정도로 피카소가 믿었던 예술동지 브라크마저도 “헝겊을 입에 가득 물고 석유를 마신 사람들” 같다는 비난을 퍼부었던 작품 「아비뇽의 아가씨들」. 이 그림으로 덱스는 다시 한 번 이 책의 힘을 보여준다. 화가의 작품 변화는 오직 화가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여인들과의 관계, 어느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이유로 발생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전제로 한다. 덱스는 이 작품을 각각 미술사적인 사건, 피카소 개인사적인 불행과 사회 전반적인 흐름을 통해 입체적으로 해석한다. 우선 마티스와 드랭이 참가한 앵데팡당전에서의 소동을 첫 번째로 든다. 분노한 비평가 루이 보셀이 마티스의 「푸른 누드」와 드랭의 「목욕하는 여자들」을 각각 수준 미달에 야만적인 단순화라고 폄하하고, 1913년 아모리 전시회 이후 시카고의 학생들이 마티스의 그림 모형을 제작해 불태운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으로 자신의 얌전한 매음굴 그림에 불만을 품은 피카소가 원시주의를 극단까지 밀어붙인 것으로 본다. 그러나 덱스는 진짜 이유가 피카소의 공식적인 첫 번째 여인 페르낭드와의 불화에 있다고 말한다. 당시 얼음판에서 넘어진 사고로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된 페르낭드는 피카소라는 어릿광대에게 부정(父情)이 필요함을 간파하고 아이를 입양하나, 아이에 대한 피카소의 지나친 집착으로 관계는 깨지고 만다. 관계의 불안함으로 인한 화폭의 격렬함, 그리고 주도적인 거친 여성성에 대한 두려움이 표현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반정부 시위와 같은 사회적인 불안감도 변화를 거든 요인으로 해석한다. 한편 「아비뇽의 아가씨들」 초안에서 보인 의대생의 해골이 매음굴에서 발생할 법한, 당시에는 심각한 질병이었던 매독으로 인한 죽음을 경고하는 상징물이라는 해석과 달리 덱스는 라틴계 국가에서 두개골은 죽음을 상기시키기에 남은 인생을 즐기라는 의미로 여겨지고 있음을 이야기하며 또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그림은 나보다 강하다” 피카소는 생전에 자신이 작품으로 평가받길 바랐고, 실제로 작품이 자신보다 더 강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렇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은 피카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전기집이고, 피카소에게는 너무나도 고마운 책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페르낭드, 에바, 올가, 마리 테레스, 도라 마르, 프랑수아즈, 자클린을 비롯한 무수한 여자들의 이야기마저도 피카소의 작품 속에서만 등장하기 때문이다. 나이 어린 여자들이 피카소의 육체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그리고 그녀들이 남성성 강한 한 에스파냐 사내의 창작 활동에 어떤 방식의 뮤즈로 존재했는가보다, 「게르니카」가 도라 마르에게 얼마나 빚지고 있는지, 마리 테레스와의 관계로 『미노타우로스』 연작이 얼마나 아름답게 빛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나는 에바를 사랑해」가 어찌하여 가장 눈부신 개념초상화인지 알게 되면, 인간 피카소를 둘러싼 온갖 루머는 사라지고 화가 피카소와 마주 앉아 진정으로 작품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화가들의 평전 대부분은 ‘인간’이기도 한 화가의 진솔한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피카소에게는 정반대의 평전이 필요했다. 이미 발가벗겨진 인간 피카소는 화가 피카소로 다시 태어나야 했고, 그것을 덱스는 훌륭하게 완성했다. 이 책은 작품으로만 화가를 이야기하는 아주 새로운 평전이다. 이 책에서 피카소는 진정 작품의 ‘창조자’로 존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