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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감동시킨 과학자 황우석-머리글/강운정
누렁이와 무지개를 쫓던 시절 -파래골의 우석이 -소를 연구하고 싶어요 -어머니의 뒷모습 -꼭 열심히 공부 할게요 아름다운 약속 -언젠가는 크고 훌륭한 소를 만들어야지! -어머니의 소원 -나도 소처럼 살겠어! -꼭 수의학자가 될 거야 나는 멈추지 않는다 -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뜻하지 않는 위기 -실험 농장 -너는 책박사지 나는 소박사여 -더 높이 더 멀리 하늘을 감동시키자 -젖소 두 마리만 빌려 주세요 -내가 꺾이지 않는 한 -실험하고 또 실험하고 -빛을 발하는 찍소 정신 -하늘을 감동시키자 -대통령과의 만남 한국을 인류구원 세계의 중심으로 -한국인이 해냈다 -불가능을 뛰어넘는 손가락 기술 -인류의 희망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 -엠바고를 지켜라 생명에 대한 소중함 -시간은 단 3초 -동물들에 대한 애처로움 -참된 과학자 조국을 가슴에 -오직 대한민국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 사람이 최고의 재산 -아름다운 사람 -힘이 되는 사람들 -황우석 사단 -퀴리 부인을 따라서 안규리 교수 -피츠버그대학 섀튼 교수 내일을 꿈꾸는 새싹들에게 -나약함을 버려라 -미래는 도전하는 사람들의 것 -어린이들은 내일의 주역 새롬이와 함께하는 줄기세포 이야기 -새롬이와 함께하는 줄기세포 이야기 -황우석 교수의 그림으로 보는 배아줄기세포 연구 인류를 구한 현대의학 발명 발견 9가지 -제너의 종두(백신) -플레밍의 페니실린(항생물질) -멘델의 유전법칙 -데이비의 마취 -풍크의 비타민 -얀센의 현미경 -뢴트겐의 X선 -블룬델의 수혈 -황우석의 배아줄기세포 황우석의 꿈과 함께-이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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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으로 바위를 치자! 하늘을 감동시키자!
대통령이 된 후 이렇게 기쁜 일은 처음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세계가 경탄한 한국인 황우석의 찍소정신! 한국의 젓가락에 숨겨진 노하우! 한국을 인류구원 세계의 중심으로 짱! 짱! 짱! Ω 황우석 교수의 말말말! Ω ─ 소처럼 우직하고 일관되게 사람들을 위해 평생 봉사하며 살고 싶다. ─ 더 높이 날기 위해, 더 멀리 보기 위해 이를 악물자! ─ 계란으로 바위를 치자! ─ 하늘을 감동시키자! ─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씩 심어 보겠다는 심정으로! ─ 나는 그때 마치 고려시대의 문익점이 된 것 같았다. ─ 모든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때까지! ─ 내가 꺾이지 않는 한 아무도 나를 꺾을 수 없다. ─ 우리 한국인이 쇠 젓가락을 사용한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 ─ 자기 곁에 있는 사람부터 소중히 여겨라. 그것이 바로 사랑이고 생명에 대한 소중함이다. ─ 풍요 속에 나태가 온다. ─ 과학을 막을 국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 ─ 메이드 인 코리아의 기술로써 인류의 고마움을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받게 하고 싶다. ─ 역사에 ‘참 과학도’ 한 줄로 기록되고 싶다. ─ 흙에는 복권과 같은 행운이 없다. 하지만 땅은 일한 만큼 되돌려준다. ─ 젊은이들을 사하라 사막에 떨어뜨려도 끄떡없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 세상에 노력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미래는 도전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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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선생님에 대하여
황우석 선생님은 1953년 충남 부여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소기르고 농사짓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며, 일찍부터 수의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됩니다. 대전고등학교를 거쳐, 뜻하던대로 서울대학교 수의학과에 지원, 수석입학의 영광을 안게 됩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수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일본으로 건너가 인공임신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훗카이도 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연구에 전념합니다. 1986년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교수로 부임, 1999년 2월 한국 최초의 체세포 복제젖소 '영롱이'를 탄생시키고 그 해 3월에 복제한우 '진이'도 탄생시킵니다. 2004년 2월, 세계 최초로 '인간배아복제 치료용 유래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함으로써 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합니다. 2005년 5월, 면역거부반응을 극복할 수 있는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 생산' 논문을 세계최고권위의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발표함으로써 난치병 치료 사업에 획기적인 장을 열게 됩니다. 2004년에는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를 움직이는 100인'으로 꼽혔습니다. 2005년, 대한민국 제 1호 <최고과학자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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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도 황우석 박사님처럼 될래요.
아이들을 꿈과 희망의 세계로~!! 오잉? 그런데 정말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 있나요? * 방바닥에 등을 대지 않겠어! 황우석 박사는 1953년 충남 부여의 파래골이라는 마을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어려서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황우석 박사는 어머니를 도와 소를 보살폈다. 큰 눈에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황우석은 어려서부터 유난히 공부를 잘했다. 황우석은 당숙의 도움으로 대전 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한다. 어느 날, 고향 집을 찾은 황우석은 어머니 다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본다. 어머니는 논두렁에서 소 먹일 풀을 베다 거머리에게 피를 빨린 것이다. 황우석은 어머니가 고생하지 않고 살수 있는 방법, 힘들이지 않고 소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황우석은 등을 바닥에 대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공부에 매진한다. 그것이 바로 자신을 위해 고생하는 가족과 이웃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어려서부터 별명이 찍소였던 황우석은 우직하고 일관되게 자기 소신을 밀고 나갔다. 그것은 수의대에 가겠다는 꿈이었다. 우석은 드디어 서울대 수의대에 수석 합격하는 영광을 안게 된다. 그의 찍소 정신이, 어머니의 오랜 꿈이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우석은 합격통지서를 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 반드시 다시 학교에 들어갈 거야! 그러나 우석의 서울대 입학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체검사 결과에서 결핵 4기라는 판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석은 큰 절망감에 빠진다. 그리고 목에서 피가 토해져 나오는 날들이 이어진다. 우석의 옆에서 어머니가 하얗게 밤을 지새우는 날들이 계속된다. 우석은 자신을 위해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학교에 들어가서 소를 연구하기 위해서라도 꼭 병마와 싸워 이기겠다는 결심으로 하루하루 희망을 다져 나간다. 그리고 이듬해, 당당히 서울대에 들어가게 된다. * 소의 항문에 손넣기 5O만 번이나? 황우석은 진정한 소박사가 되기 위해서 소 항문에 50만 번 손을 집어넣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황우석은 1981년 당당히 서울대 임상수의학 박사학위를 받게 된다. 서울대 교수로 임용될 줄 알았던 황우석은 갑작스런 지도교수의 사망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학교 측으로부터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말라는 말과 함께 연구실을 비워달라는 통보가 이어진다. 황우석은 타 대학에 다니며 시간 강사로 3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황우석의 강의 실력을 인정한 모 대학에서 전임 교수직을 제의해온다. 황우석은 오랜 고심 끝에 그 제의를 거절한다. 그 자리에 안주한 채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더 넓은 세상으로 황우석은 자신이 결혼해서 살고 있는 열여섯 평짜리 아파트를 팔아 경기도 광주에 황무지 땅을 매입한다. 그리고 그곳에 실험 농장을 꾸민다. 황우석은 그곳에서 인공수정에 대한 꿈을 키워 나간다. 황우석은 얼마 뒤 서울대 수의대 학장님으로 전화를 한통 받게 된다. 일본의 훗카이도 대학에 가서 연구를 계속해 보라는 것이었다. 황우석은 그 즉시 일본의 훗카이도 대학으로 간다. 황우석은 그곳에서 복제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운다. *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서울로 돌아온 황우석은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로 재직하게 된다. 그러나 황우석은 다시 한 번 큰 절망과 맞서게 된다. 병원으로부터 6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것이다. 황우석은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절망감을 느낀다. 그 뒤 두 차례에 걸쳐, 여덟 시간이 넘는 대 수술이 이어진다. 황우석은 병마와 싸우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나는 절대 죽지 않는다. 나는 죽음과 맞서 싸워 이길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난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황우석은 생명공학 분야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다. 1년 365일, 하루에 네 시간씩 밖에 잠을 자지 않는 그, 월화수목금금금을 실천하는 황우석의 찍소 정신은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다. * 세계가 한국을 주목한다 황우석은 1988년 쌍둥이 젖소를 시작으로 1995년 슈퍼젖소의 수정란 복제에도 성공한다. 1999년 2월 드디어 황우석은 국내에서 첫 번째,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체세포 복제 송아지 ‘영롱이’를 탄생시킨다. 2003년 광우병 내성 소를 개발하는 데도 성공한 황우석의 꿈은 계속된다. 그리고 2004년 2월, 세계는 황우석과 대한민국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황우석 교수 연구팀, 세계최초 인간배아복제 치료용 줄기세포 연구 성공’ 황우석은 부수하게 터지는 플래시 불빛을 마주할 시간도 없었다. 연구하기에도 부족한 시간들이었다. 황우석은 실험하고 또 실험했다. * 과학은 과학으로 풀어야 한다 그러나 2004년 10월 황우석은 또 한번 위기에 부딪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유엔에서 ‘배아복제금지협약’에 관한 결의안 채택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결의안이 유엔에서 통과되면 황우석의 꿈은 점점 현실하고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황우석은 그 즉시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세계 언론에 치료목적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역시 과학은 과학으로 풀어야 합니다.” 코미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성공한 황우석은 유엔 참석자들의 마음을 조금씩 움직여가기 시작했다. * 모든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세상 2005년 5월 19일, 황우석은 다시 한 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다. 그것은 황우석 연구팀이 ‘난치병 환자의 체세포로부터 줄기세포를 배양하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이었다. 한국과 세계가 이 소식으로 온통 떠들썩했다. 난치병 환자들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희망의 밧줄을 잡을 수 있게 됐다. 황우석의 꿈은 ‘모든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그리고 미래를 위해, 생명의 불꽃을 잃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한 시도 쉬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 때문에 그가 써 내려갈 역사는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미래는 희망찰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