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EPUB
eBook 원서발췌 예술에 대한 글쓰기
EPUB
가격
11,840
11,840
YES포인트?
59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소개

목차

어떤 자살

나의 살롱

내 친구 폴 세잔에게

심사위원단 1

심사위원단 2

예술의 시점

마네

살롱의 사실주의자들

추락

어느 예술비평가의 고별사

에두아르 마네

전기 연구와 비평

1. 인간 마네와 예술가 마네

2. 작품 세계

3. 대중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저자 소개2

에밀 졸라

관심작가 알림신청
 

Emile Zola,Emile Edouard Charles Antoine Zola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자연주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 이탈리아 출신인 아버지와 프랑스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1840년 4월 2일 파리에서 태어나 1862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다. 청소년 시절을 프랑스의 남부 엑상프로방스에서 보낸다. 그곳의 중학교에서 만난 세잔과는 남부의 산과 들판을 같이 쏘다니며 목가적 시를 암송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심취하면서 돈독한 우정을 가꾼다. 1847년 아버지의 죽음 이후 파리로 올라와서 궁핍한 시절을 겪지만, 대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접하면서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을 키워나간다. 토목기사였던 아버지가 1847년 사망하자 홀어머니와 경제적으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자연주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 이탈리아 출신인 아버지와 프랑스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1840년 4월 2일 파리에서 태어나 1862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다. 청소년 시절을 프랑스의 남부 엑상프로방스에서 보낸다. 그곳의 중학교에서 만난 세잔과는 남부의 산과 들판을 같이 쏘다니며 목가적 시를 암송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심취하면서 돈독한 우정을 가꾼다. 1847년 아버지의 죽음 이후 파리로 올라와서 궁핍한 시절을 겪지만, 대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접하면서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을 키워나간다. 토목기사였던 아버지가 1847년 사망하자 홀어머니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간다. 대학교 입학 자격시험에 실패하고 나서 1862년부터 아셰트 출판사에서 일하며 여러 작가를 접한다. 1866년 아셰트 출판사를 사직하고 본격적인 글쓰기에 들어간다. 특히 아셰트 출판사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 진보적 사상가들과 문학계와 교류하게 되고, 신문에 글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기질을 통해 본 자연의 한 측면」이라는 글에서 자신의 예술관에 대해 밝힌다.

아셰트사를 떠나 전업 작가의 길을 택한 졸라는 여러 신문에 논평을 기고하는데, 특히 당시 마네와 조만간 인상주의자로 불릴 화가들을 옹호하면서 보수적인 아카데미 미술학파에 대항하는 젊은 논객으로서의 입지를 굳힌다. 졸라는 제2제정을 비판하는 공화파 신문들을 통해 점점 더 과격한 기사들을 발표하면서, 이 체제를 철저히 비판하는 『루공가의 운명』을 기점으로 『루 공 마카르 총서』의 연작을 시작한다. 20권으로 구성된 대하소설 ‘루공 마카르 총서’(1871~1893) 중 『목로주점』(1877)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경제적인 생활에도 큰 변화가 일어난다. 파리 근교 ‘메당’에 별장을 샀는데 그곳은 자연주의 소설가들의 아지트가 되었고 거기서 모임(메당의 저녁)을 가지면서 졸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자연주의 소설의 선두주자가 된다. 그의 소설과 논평들은 언제나 많은 스캔들을 동반하지만 다행히도 제2제정이 몰락하면서 법적인 제재를 모면하게 된다. 이후 졸라는 자연주의 문학파(위스망스, 모파상, 세아르 등)의 지도자로 인지되고, 1880년 이들과 함께 작업한 『메당의 야화』는 일종의 자연주의 선언서가 된다.

낭만주의 문학을 존중했지만 감정과 사실을 구별하며 당시 사회적 정치적 면모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사실주의 작가들을 칭찬하며 급기야 ‘자연주의 문학’의 이론을 정립하고 발전시킨다. 문학비평사에서 당시 작가들에게 금기시되던 요소인 돈, 섹스를 건드렸다고 평가된다. 첫 장편소설 『테레즈 라캥』(1867)이 출간부터 적나라한 묘사로 심한 비판을 듣자 소설 앞부분에 따로 서문을 보태기도 한다.

그러나 평론계의 격렬한 반발을 몰고 온 『대지』 이후 자연주의 문학가들의 해체적 글쓰기에 대립하는 새로운 저항의 글쓰기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자연주의 시대는 끝을 향해 간다. 『파스칼 박사』를 끝으로 총 스무 권의 『루공 마카르 총서』 연작이 완성된다. 이 총서의 완성 후 졸라는 자신의 시대의 심각한 문제들을 다룬 새로운 소설 연작을 시작한다. 『루르드』와 『로마』에서는 가톨릭교회의 실패를 다뤘으며, 『파리』(는 과학에 대한 신념과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의 유토피아적인 원리들로 인한 장밋빛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적 시각을 드러낸다. 『파리』를 막 완성한 직후 1898년 1월 ‘나는 고발한다!’라는 장문의 글을 신문에 실어 당시 한창 시끄러웠던 드레퓌스 사건에 목소리를 싣는다. 군대, 정치, 법의 권력을 지속시키기 위해 드레퓌스가 희생되었다는 입장을 펼쳐서 모독죄로 1년 구형을 받게 돼 영국에서 1년 동안 망명 생활을 한다. 문학가로서 최고의 명예와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얻고 있던 시점에서 드레퓌스를 옹호하는 것은 그의 모든 명예를 실추시킬 위험이 있었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드레퓌스 사건의 소송 재개를 위해 싸운다. 1899년 드레퓌스 사건은 재심에 회부되고 졸라는 프랑스로 돌아온다. 이 사건 동안 졸라는 조레스와 같은 사회주의자들과 접촉하게 되지만, 그의 마지막 작품들은 노동의 재구성과 부의 분배에 대한 푸리에의 순수한 무정부주의에 더 이끌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1888년부터 입문한 ‘사진’에 빠져서 현상까지 직접 했는데, 자화상 및 가족 친지들의 일상생활을 사진으로 남기고 1900년 프랑스 파리만국박람회에서 르포 형식의 사진을 많이 찍는다. 치밀한 자료 수집을 기반으로 집필 작업을 한 졸라의 성향과 부합되는 취미다.

『4복음서』는 새로운 혁명적 사회에 대한 비전을 담고 있다. 『풍요』, 『노동』, 『진실』이 출판되었으며, 후속 작품으로 『정의』가 쓰일 예정이었으나 1902년 9월 29일 막힌 굴뚝으로 인한 가스 중독으로 사망함으로써 그의 마지막 작품 『정의』는 미완성으로 남는다. 사고에 연루된 의문이 풀리지 않아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살해되었다는 추정이 여전히 남아 있다. 1908년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팡테옹으로 이장되어 현재 빅토르 위고, 알렉상드르 뒤마와 같은 공간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에밀 졸라의 다른 상품

인하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루앙대학교(Universite de Rouen)에서 프랑스 문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인하대학교 서양어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05년에는 프랑스 르아브르대학교(Universite du Havre)에서 교환교수를, 2009년에는 캐나다 오타와대학교(Universit d'Ottawa)에서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그리스 신화 패러다임≫, ≪프랑스 문학 속의 여성 그리고 사랑≫ 등이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으로 프랑스 파리의 라르마탕(L’Harmattan) 출판사와 메조뇌브 에 라로즈(Maisonneuve & Larose)
인하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루앙대학교(Universite de Rouen)에서 프랑스 문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인하대학교 서양어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05년에는 프랑스 르아브르대학교(Universite du Havre)에서 교환교수를, 2009년에는 캐나다 오타와대학교(Universit d'Ottawa)에서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그리스 신화 패러다임≫, ≪프랑스 문학 속의 여성 그리고 사랑≫ 등이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으로 프랑스 파리의 라르마탕(L’Harmattan) 출판사와 메조뇌브 에 라로즈(Maisonneuve & Larose) 출판사에서 각각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Le Front contre la fenetre)≫와 ≪사랑(Amour)≫ 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출판한 바 있다.

관련 분류

카테고리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8월 29일
이용안내
  •  배송 없이 구매 후 바로 읽기
  •  이용기간 제한없음
  •   TTS 가능 ?
  •  저작권 보호를 위해 인쇄 기능 제공 안함
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17.12MB ?
ISBN13
9791143011329

출판사 리뷰

19세기 자연주의 문학의 대가로 알려진 에밀 졸라는 미술비평가로도 활동했다. 무명이던 마네의 예술적 가치를 최초로 인정하고 지원해 주었으며, 당시의 화단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전폭적인 미학적 지지를 보냈던 인물이다. 또한 안이하고 관례적인 미술비평 방식에 안주하고 있던, 하지만 당대에는 그 권위를 인정받던 집단과 개인을 향해 단호하게 공격을 가했던 인물이다. 예술과 사회적 정의를 위해 거대한 조직과의 전쟁도 서슴지 않았던 용기 있는 인물이었다. 불의에 대항하기 위해 언론을 이용할 줄 알았던 그는, 그래서 표현의 자유를 몸소 실천하며 대중을 일깨워 준 영웅이기도 하다. 이 책에 소개하는 에밀 졸라의 글들은 그의 미술비평이 지니는 가치를 재평가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내용들이다.

에밀 졸라의 미술비평문은 대부분이 신문 기고용이었기 때문에 단편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미술비평에 대한 원칙과 방법론은 25세에서 30세 사이에 형성된 것이다. 미술비평에 대한 그의 지식은 생트뵈브(Sainte- Beuve), 에드몽 아부(Edmond About), 테오필 고티에(The?ophile Gautier), 보들레르(Baudelaire), 카스타냐리(J. A. Castagnary), 프루동(P. J. Proudhon), 텐(H. Taine) 등과 같은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발표한 저술과 이론을 접하면서 축적되기 시작했다. 특히 1864년에 읽게 되는 카스타냐리의 글은 졸라에게 깊은 감명과 함께 예술에 대한 몇 가지 원칙을 제공하게 된다. 그것은 예술가가 자신의 스승들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사실이란 점, 현대 예술에서 풍경은 각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 우리의 일상생활은 예술의 중요한 소재라는 점 등이다. 훗날 졸라는 이러한 원칙들을 자신의 미술비평의 이론적 토대로 활용하게 된다. 그렇다면 에밀 졸라 자신만의 독창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미술 작품의 주제에 대한 문제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하나의 작품이 반드시 하나의 주제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작품 속에서 주제를 확인하는 순간, 그 작품을 이해했다고 믿는다. 이것을 역설적으로 말하면 작품의 주제가 작품을 대변한다는 것인데, 에밀 졸라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주제 중심의 비평은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작품에 어떤 줄거리나 도덕성을 부과하기 때문이다. 작품의 주제에 대한 철학적 의미 부여 행위는 경우에 따라서 예술 창작의 진실과 무관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작품의 주제가 바로 작가의 철학이라는 사고방식은 예술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변명이라고 주장하면서, 대중이 예술 작품을 어떤 주제로만 이해하고, 또 그 작품의 가치를 주제의 철학적 가치로서 평가하려는 사실에 개탄했다.

“화가들에게 있어서 주제란 그림을 그리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마네가 작품 속에 몇몇 오브제와 인물을 조합시켜 놓았다면, 그것은 마네의 철학적 사고 때문이 아니라 아름다운 색채와 대비를 이루어내고 싶다는 그의 욕망이 표현된 것이라고 에밀 졸라는 설명한다. 마찬가지 논리에 의해, 티치아노(V. Tiziano)의 작품 〈우르비노의 비너스(Venus of Urbino)〉를 모사한 것으로 알려진 마네(E. Manet)의 〈올랭피아(Olympia)〉 역시 주제적 접근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작품이다. 그가 화폭에 담은 벌거벗은 여인과 꽃다발을 든 흑인 하녀, 그리고 검은 고양이, 이것들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란 말인가? 에밀 졸라의 설명에 따르면, 이 그림을 그린 마네도, 그리고 미술평론을 하는 졸라 자신도 이 그림의 철학적 의미를 모른다. 마네는 그저 하나의 예술 작품을 완성시켰을 뿐이며, 이 작품의 가치는 “미술은 색과 형태에 의해서만 흥미롭다”라는 보들레르의 말로써 충분히 설명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이렇게 에밀 졸라는 미술 작품을 하나의 주제로 인식하면서 그럴듯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그가 예술 작품의 주제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닌 만큼 그가 선호하는 주제들이 있었다.

에밀 졸라에게 있어서 가장 훌륭한 예술적 주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주제들, 말하자면 우리의 생활 속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발견되는 삶의 현장에 대한 주제들이다. 이런 테마를 통해 그는 삶의 에너지와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발견해 내려고 했다. 그는 작품이 제공하는 생명의 소리, 냄새, 느낌 등을 통해 세상의 진실을 포착했다. 이것은 졸라에게 있어서 미술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이 본다는 하나의 고립된 감각이 아니라 공감각적 교감으로서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부분이다.

자신을 순수하고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분석가로 자평했던 에밀 졸라는, 하지만 그의 미술비평에서만큼은 낭만주의적인 취향을 간직한 채 이원적 예술관을 유지해 왔다. 그의 이원적 예술관은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예술의 자율성에 관한 상반된 사고를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적으로 상쇄될 수 없는 내적 모순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 그의 사고와 기질의 차이로부터 유발된 이 이원적 모순성 때문에, 그의 미학은 지속적인 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정형화된 기존의 이론과 전통을 부정하던 그의 힘은 바로 이 이원적 미학이 제공하는 변증법적 힘이었으며, 그래서 그의 부정은 긍정이 되고, 그의 긍정은 다시 부정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원적 예술관 덕분에 과학적이면서도 초과학적인 그의 미학적 독창성, 즉 ‘하나의 예술 작품은 하나의 기질을 통해 드러나는 창조의 한 모퉁이’라는 그의 예술 작품에 대한 정의가 탄생하게 된다.

그의 미술비평은,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간에, 화가의 ‘개성’ 또는 ‘기질’을 중심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설명하려 했다는 특징을 지닌다. 졸라가 즐겨 사용한 ‘개성’이나 ‘기질’이란 용어는 그것이 미술 작품의 내재적 특성을 강조한다는 차원에서 미술의 자율성 인정에 대한 문제와 연결된다. 그리고 미술의 자율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졸라의 주장은 미술 작품의 미학적 가치를 작품의 내재적인 구조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관점이 되므로, 결국 그의 미술비평은 더 이상 미술 작품의 평가 기준 설정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그 평가 기준에 대한 인식론적 차원으로 발전해 나간다.

졸라가 주제 중심적 미술비평을 거부한 이유는 이러한 인식론적 방법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작품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후각, 청각, 촉각 등과 교감하면서 그것을 공감각적 차원에서 이해하려 하고 있다는 것도, 그리고 그가 미술비평에 관련된 모든 규범과 수사학을 거부했던 것도 동일한 이유에서였다. 물론 졸라 스스로가 인식론이란 용어를 사용했다거나 이와 관련된 어떤 구체적인 언급을 한 바는 없다. 그러나 그가 비평가를 의사에 비유하면서, 비평가는 자신이 검토한 작품과 작가에 대한 내용을 “결론을 내려고 하거나, 규범을 제기하려는 시도 없이” 있는 그대로 적어야 한다고 언급한 것 자체가 지극히 인식론적이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