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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란 꽃잎이 다 어디 갔지? / 2. 넌 참 좋겠다 / 3. 어부바 / 4. 정말? 진짜로? / 5. 여우야, 안녕! / 6. 바보멍텅구리들 / 7. 오미나토항 / 8.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 9. 배가 출발할 거래요 / 10. 우키시마호 / 11. 콩나물시루 같아 / 12. 배가 움직여요! / 13. 해야 해야 붉은 해야 / 14. 고개를 고개를 넘어간다 / 15. 눈깔사탕 / 16. 에라, 이 후레자식들아 / 17.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18. 굼벵이 만세! / 19. 마이즈루항 / 20. 내 동생들이면 얼마나 좋을까 / 21. 부엉 걱정마라 붓! / 22. 못찾겠다 꾀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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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부치지 못한 편지 순이야. 일본 왕이 연합국 측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는 소식에 징용노동자 합숙소에 있던 사람들 모두 만세를 불렀어. 전쟁이 끝났다고, 드디어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지.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다가 웃다가 또 울다가 하면서.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또……. 합숙소에서 태어나 이 합숙소, 저 합숙소를 옮겨 다니며 자란 너는 드디어 집에 가게 되었다며 널 부둥켜안고 기뻐하는 엄마가 많이 낯설었지. 솔직히 너야 고향이나 집에 가게 되었다는 것보다는 철조망이 겹겹이 둘러쳐진 합숙소를 나가게 되었다는 기대가 백배 천배는 더 컸을 거야. 그러면서도 집이라는 말에, 고향이라는 말에 가슴 한 구석에 설렘이랄까, 그리움 같은 게 밀물처럼 밀려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지. 너는 합숙소철조망을 넘어 하늘로 날아오르는 민들레홀씨를 향해 가만가만 손을 흔들어주었어. 고향에 가면 제일 먼저 전차를 타보고 싶다 그랬지. 경성시내 구경도 하고, 아버지가 다니던 대학에도 가보고. 엄마고향에도 가보고 싶댔지. 아우라지 구경도 하고, 바세나루에서 줄배도 타보고. 엄마가 등하교 때마다 걸어 넘었다는 물레재도 가보고, 장군봉과 투구봉도 올라가보고. 돌꽝으로 잡은 꺽지와 미유기를 모닥불에 구워먹으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라지. 석구야. 할머니하고 누나를 따라 서커스구경을 갔다가 붙잡혀왔다지. 할머니와 누나가 어디로 끌려갔는지 몰라 밤새 훌쩍거리다가 들켜 일주일을 꼬박 굶기도 했고. 오천 명? 만 명? 이만 명? 오미나토항에 도착해, 부두에 모여든 사람들을 보고 얼마나 놀랬을까.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일본 땅에 끌려와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거야. 22일에 되어서야 널 아들처럼 챙겨주는 여주댁 아줌마를 따라, 향분언니와 뻘쭉이 아저씨를 따라,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우키시마호에 탈 수 있었지. 할머니가 너무너무 그리워서. 누나도 보고 싶었고. 인수야, 인정아. 고향의 시장사람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던 아버지가 일본경찰한테 붙잡히셨다고. 포승줄에 묶인 아버지를 앞세우고 들이닥친 경찰이 다짜고짜 어머니와 너희들까지 끌어냈고. 그리고 몇 날 며칠을 배 짐칸에 실려 홋카이도 벌목장으로 끌려갔고, 감시원들이 시키는 대로 죽어라 일을 했어. 그런데 나뭇짐을 지고 산비탈을 내려가던 어머니가 발을 헛디뎌 비탈을 굴렀지. 감시원들이 떼로 덤벼들더니 발길질에, 몽둥이에……. 아버지가 달려갔을 땐 어머니는 이미 이세상사람이 아니었어. 해방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렸어. 아버지는 뼛가루나마 고향땅에 뿌려줘야겠다며 어머니의 유골상자를 품에 안은 채 귀국선에 탔어. 창하나가 없었어. 발 뻗고 누울 틈도 없었어. 한여름 찜통더위에다, 사람들이 내쉬는 숨조차 이내 땀으로 변할 만큼 후끈거렸지. 땀 냄새, 배설물 썩는 냄새까지 뒤섞여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어. 쥐 여러 마리가 굵고 가는 관들을 오르락내리락 거리고 있었고. 그런데도 고향에 간다는 설렘에 모두들 흥겨운 노래를 불렀고, 서로에게 기대 잠을 청할 수 있었어. 달래, 냉이야. 언니오빠들과 갑판에서 숨바꼭질놀이를 하고 있었지. 그러다 느닷없는 고함과 호루라기소리에 떠밀려 화물칸으로 쫓겨 들어갔어. 얼마쯤 지났을까. 폭음과 함께 배가 두 동강이 났어. 바닥이 벽이 되고 벽이 천장이 되고, 천장은 바닥이 되었어. 갈라지고 터진 벽 틈새로 파란하늘이, 비릿한 바닷물이 새어들었어. 시커먼 기름덩이가 뱅뱅 돌며 사람들을 뻘건 불바다로 떠다밀었지. 저만치, 구명보트 여러 대가 해안가를 향하고 있었어. 보트마다 일본인승무원이 가득가득 실려 있었어. 백 아니, 이백 명도 훨씬 넘을 것 같았지. 아무리 음료수가 급하대도 배가 폭파돼 침몰하든 말든, 사람들이 죽든 말든,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자기네들끼리만 가버리는 건지 알 수가 없었어. 어렴풋한 폭음이 바다 속을 집어삼키며 소용돌이쳤어. 뱃머리난간을 향해 기어오르던 사람들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어. 찢기고 터진 철판과 관들이 잡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을 덮쳤고. 살려달란 소리조차 지를 수가 없었어. 인정이의 구슬팔찌가 물에 둥둥 떠 있었어. 색색의 구슬이 햇살에 부딪치며 오색찬란한 꽃잎을 게워냈지. 순이야. 석구야. 인수야, 인정아. 달래, 냉이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너희들을 갑판에 불러 모아 숨바꼭질을 하며 놀게 했어. “못찾겠다 꾀꼬리.” “못찾겠다 꾀꼬리 항아리 쓰고 나와라.” 너희들이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려니 가슴이 먹먹해지는 게, 어쩜 그리도 눈물이 나던지. 몇 번을 펜을 놓은 채 펑펑 울었는지 몰라. 순이야, 미안해. 석구야, 인수야, 미안해. 인정아, 달래, 냉이야, 정말 정말 미안해. 부치지 못한 편지를 쓰며 나는 마음을 다해 빌고 또 빌어. 아직도 식민지 바다를 떠다니고 있는 너희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손 내밀 수 있기를. 너희들 모두 집으로, 고향으로 데려다줄 수 있기를. 약속할게. 2008년 여름에 김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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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시마호 사건은 뼈아픈 우리 민족의 수난사이다. 민족의 수난이야 오래전에 있었던 이야기이고, 민족의 수난이야 많고도 많은데 하필 우키시마호 사건인가 의구심이 드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일본이 독도문제에서 보여주듯이, 일본은 1945년 이전으로 회귀하려는 몸부림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그 중 하나가 우키시마호 사건이며, 절대 잊어버려서는 안 될 우리 민족의 수난사이자 크나큰 아픔이다. 사망자에 대한 보상은 물론, 사건 진상에 대한 조사도 없다. 이는 1945년 8월 24일 시모사바가 앞바다에서 죽어간 많은 동포들을 반백년이 넘은 오늘날까지 수중에 묻어두면서 과거사를 철저하게 덮어버리는 속셈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쓴 김영주 선생님은 1년 전에 소설 『떠다니는 사람들』을 출간한 바 있다. 결코 유쾌하지 않는 역사적 기록을 지상(紙上)으로 인양하기 위한 혼신의 노력이 소설 전편에 흐르는 수작이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독자들이 이러한 사건을 우리 청소년들에게도 읽혀야 한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민족의 수난사. 민족의 고행사가 이 뿐이겠는가 마는, 소설가 김영주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조망하는데 있어 우선 되어야 할 게 바로 우키시마호 사건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다시 『떠다니는 사람들』의 청소년 판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다에 수장된 많은 동포들 중, ‘순이’라는 아이를 소설 전면에 내세워 비극의 서사를 완성한다. 순이는 철부지 소녀이다. 이 소설에서 철부지 소녀의 눈은 역사의 질곡을 쫒는 카메라이다. 일본에서 태어난 순이는 징용으로 끌려 많은 조선인들의 삶을 조망하고 있다. 조선에서 끌려 온 동포들은 왜 광부가 되어야 하며, 철도 공사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해야 하는지 순이는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일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순이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궁금해진다. 그 조선이라는 나라가 단지 부모님의 나라가 아니라 이 모든 불행을 덜어줄 해방구라는 걸 체득하게 된다. 그래서 귀국선이 왔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는 누구보다 기뻐한다. 이제 가족의 행복을 실어다줄 배가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이가 탄 배는 부산항으로 가지 않는다. 일본 근해를 따라 내려간 우키시마호는 마침내 순이의 꿈을 한순간 폭파해 버린다. 『순이』는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면서도 전혀 무겁지 않다. 책장을 넘기면서 웃음을, 때로는 눈물을 자아내는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건하는 것은 미래를 살찌우기 위해 과거를 돌이켜 교훈으로 삼아 달라는 뜻에서 이다.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 될 역사의 증언들. 이 속에 우리가 살아갈 이유와 명제들이 숨어 있다. 한낱 과거의 슬픈 이야기가 아님을 책갈피 속 언듯언듯 보이는 순이는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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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시마호 사건에 대해
일본 왕이 패전을 선언한 사흘 뒤인 1945년 8월 18일. 해군 경비사령부는 아오모리(靑森)에서 하코다테(函館)로의 화객수송 임무를 마치고 오미나토(大湊)항으로 귀항한 우키시마호 함장에게 조선인 징용노동자들을 태우고 부산으로 가라는 출항대기 명령을 내렸다. 우키시마호(浮島丸)는 1937년 건조된 오사카 상선 소속의 4730톤급 민간여객선으로 주로 태평양 항로와 오키나와 항로를 운행하던 여객화물선이었다. 태평양전쟁 중이던 1941년 9월 3일 해군에 징발되어 포함으로 개조된 후 제22전대 1감시대 감시선으로 배치되었으며, 1945년 4월 해군 경비사령부의 특설 운송함으로 배속되어 쓰가루해협(津經海峽) 일대의 수송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1945년 8월 18일 우키시마호 함장에게 출항대기 명령을 내린 해군 경비사령부는 우키시마호의 운항을 허가해달라는 내용의 제181439호 전보를 해군성 운수본부에 보냈으며, 그 다음 날인 8월 19일 해군성 운수본부로부터 운항을 허가한다는 답전을 받았다. 대해령(大海令) 52호 6항은 1945년 8월 21일, 일본 왕이 해군지휘관들에게 지시한 명령서(천황칙서)를 기록한 문서로 ‘8월 24일 오후 6시 이후로는 정찰임무외의 일체의 항해를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연합군 측이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 징용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일본 왕으로 하여금 각 군 지휘관들에게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조선인들을 귀국시키지 말라고 지시한 것이다. 그러나 우키시마호는 8월 22일 오후 10시경, 오미나토항을 출발하였다. 출항하기 전 함장 도리우미 긴고(鳥海金吾) 중좌는 조선으로 가는 송환선은 이 배뿐이라고, 배를 타지 않는 사람에게는 배급을 주지 않을 거라며 조선인 징용노동자들을 회유하였다. 처음에는 명단확인을 거쳐 배에 태웠지만 귀국자들이 몰려들면서 명부는커녕 신원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1945년 8월 22일 오후 10시경, 오미나토항을 출발해 니카타(新瀉) 앞바다를 거쳐 항해하던 우키시마호는 8월 24일 오후 음료수보급을 위한 기항이라며 마이즈루항으로 뱃머리를 돌렸고, 승무원들이 모두 빠져나간 오후 5시 20분, 수심 16미터 정도인 시모사바가 앞바다에서 요란한 굉음과 함께 침몰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