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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엮으며 · 5
단파 제국· 13 01 복수의 제국, 파인애플 · 15 복수의 제국, 보뤄(·蘿)와 펑리(鳳梨) · 16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물, ‘세이반(生蕃)’ 상표 · 18 제국의 건설 영웅 ‘군인(軍人)’ 표 · 28 제국의 취향, 펑리 · 34 02 전쟁의 표상, 총후의 여성 · 45 일본의 남진(南進) 기지화와 황민화 정책 · 46 대만 미술 전람회와 원주민 표상 · 51 미술에 담긴 총후 여성의 서막, 〈산디먼사의 여인〉 · 54 남성 부재의 미디어, 총후의 미술 · 64 03 전람회 시대 『경성일보』(1906~1945)의 미술자료 · 79 『경성일보』의 전람회 기사 · 80 조선에서 열린 전람회와 지방색 · 82 『경성일보』의 전람회 기사 · 91 개혁의 꿈, 조선 화단 · 98 관전에 대항한 재야전 · 105 04 신문매체로 본 경성 화가들의 아틀리에 · 119 미술 전람회와 아틀리에의 등장 · 120 아틀리에 순례 · 122 식민지 수도 경성의 아틀리에 · 131 진동의 아시아· 149 05 아시아와 여성: 추상미술의 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 · 151 탈 서구 중심주의로서 추상미술의 글로벌화 · 152 누락된 아시아의 여성 추상미술 · 159 복수의 추상미술 : 1950, 1960년대 일본과 한국의 여성 미술가 · 163 서구 중심주의를 넘어 아시아 여성 추상의 지평 · 179 06 공생의 재구: 대만과 중국의 미술교류 · 181 중국과 대만과의 양안 관계 · 182 ‘양안’의 미술 교류 · 184 역사의 재구 ‘합벽(合壁)’ · 188 07 아시아의 미술시장과 수묵화의 당대성 · 201 서론 · 202 《선전 수묵 비엔날레》, 지역에서 국가로 · 206 현대 수묵의 대안 ‘실험수묵’의 당대성 · 212 홍콩 수묵 아트페어의 당대성 · 218 공명의 한국· 227 08 모더니즘 ‘서체추상’과 이응노 · 229 1950년대 파리, 아시아 화가들의 서체추상 · 230 앵포르멜 회화와 추상표현주의 서예성 · 239 모더니즘 광초(狂草)와 전서(篆書)의 추상 · 248 09 장욱진 회화의 표현과 신사실 그리고 초현실 · 263 사실에서 ‘표현’으로 · 265 주체적인 자아 ‘표현’ · 271 신사실과 초현실 · 277 초현실적 구성과 조형기법 · 281 10 196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화와 국제적 동시성 · 298 들어가는 말 · 299 한국 현대미술의 전조(轉調) 국제화 · 302 1960년대 국제적 ‘전위’의 동시성 · 309 백남준 전위 퍼포먼스의 동시성 · 317 아시아 현대미술을 넘어서(전시 기획) · 331 11 전후 70년 대만과 한국의 수묵 임계 · 333 수묵에서 드러난 수와 먹: ‘台水韓墨’ · 334 탈근대의 표상 ‘수묵’ · 338 수묵, 또 다른 먹의 세계 · 345 12 아시아의 또 다른 회화에 대하여 · 353 회화의 부정/회귀 · 354 고유한 문화적 매체로서 회화 · 357 회화의 전위(轉位) · 362 주 · 3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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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당시 대만의 총통 차이잉원은 중국 정부가 대만산 파인애플(鳳梨)1에 대해 일시적 수입 금지령을 내리자 페이스북에 “대대적으로 대만 파인애플을 먹자 챌린지(吃爆台灣鳳梨 challenge)”라는 글을 올려 대응한다. 이 글과 함께 차이 총통이 파인애플 한 조각을 들어 “파인애플을 구매해 농민을 지지하자, 타이완 파인애플(買鳳梨, 挺農民, Taiwan Pineapple)”이라는 슬로건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좋은 파인애플”이라며 대만 파인애플을 선전했다. 이 문구는 대만의 본토 내 인터넷 세계를 핫하게 달구며 중국의 공격에 맞서 자국민의 구입 열기를 만들어 냈다. 대만 농산물 중의 하나인 파인애플이 대만과 중국 양안(兩岸)의 정치적 이슈로 번지며 대만의 아이덴티티로 각인된 순간이었다. --- p.15 〈산디먼사의 여인〉 화면에서 원주민 여성은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로 묘사되며, 그 외 두 어린아이도 횡렬로 배치되었다. 이와 대칭된 화면 왼편에는 담뱃대를 들고 바닥에 쭈그리고 앉은 여성을 대칭으로 배치했다. 이 두 여성의 관계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같은 부락민 또는 가족원이라고 짐작된다. 천진은 작품 제작을 위해 직접 인물을 사생했다고 전해지나, 이는 현실적 인물의 중요성보다는 인물 표현의 사실적 묘사를 위해 작업을 선행했다고 생각된다. 또한 이 작품은 원래 화면의 배경이 간략화된 미인화의 구도나 섬세한 기법을 기초로 제작했다. 제작 기법에 있어서도 이전 작품과 상당히 다른 양식을 보인다. 원주민 본연의 인물상과 달리 각색된 이미지를 구현한 인물이라는 점도 천진의 과거 작품들과 크게 차이가 있다. 적어도 화면에서 육아의 여성을 중심으로 하되, 담뱃대를 쥔 연배 높은 원주민 여성을 대칭해 구성한 방식은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보여준다. (pp.62-63 냉전 상황이 와해된 1990년대 중국은 1989년 천안문 사태를 겪으며 세계를 향해 개방 정책을 펼치며 정치적 불안과 우려 속에서도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21세기를 맞아 급격한 경제 성장을 했다. 동시에 중국은 1997년 홍콩 반환을 통해 ‘일국가(一國家)’ 체제를 공표하며 대만의 민주화 정권을 향해서도 ‘하나의 중국’을 강조해 왔다. 이러한 정치 변화는 미술을 통한 교류라는 급류를 타고 전시 개최와 예술가들의 왕래를 통해 통일된 중국의 정체성을 하나로 모으려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중국과 대만의 정치적 갈등이 배태되었기 때문에 서로의 정치적 이익에 따라 매우 유동적인 변화의 미술 교류 양상을 드러냈다. --- p.181 《신사실파》 결성에 가장 중심이 되었던 김환기에 의해 명명되었을 것으로 보면, 친분이 두터워 『문장』 지의 활동을 함께한 이태준과 김용준의 영향도 생각할 수 있다. 일찍이 1930년대부터 김용준은 동양적 모더니즘을 ‘조선적인 것’의 고전색과 향토색을 찾아 의견을 내놓았다.15 광복 후에는 한국문단과 화단에서도 조선적인 고전색을 구체적으로 추구했다. 김용준은 1948년 한 해 전의 《신사실파》를 회고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사실파〉는 동인 3인 중 이규상, 유영국 양씨는 순수파 미술의 종기(마지막)를 답습하는 정도로 사실주의에서 찾는 객관성이 전연 결여하여 신사실과는 너무나 유리되었으며 김환기씨만이 새로운 시야에서 대상의 미를 감각하려는 노력이 보였다. --- p.279 수묵, 또 다른 먹의 세계 수묵화의 발생으로 거슬러 올라가 당나라 회화는 먼저 백화(白?혹은 백묘화白描?)의 개념에서 묵화(墨?)로 전개되었다고 볼 수 있고, 이때 묵화는 단색화(單色?)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단색화는 먹을 안료로 한 단일한 색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고대 묵화로서 단색화는 현대의 단색화와는 전혀 다른 개념을 갖는다. 특히 1970년대 한국의 ‘단색화’ 혹은 ‘단색조(單色調)’, 서구의 모노크롬, 모노하(物派) 등의 미술사조가 미술 화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이때 단색화는 동양정신의 내재적 요소를 개별화하고 이를 국제화된 현대성으로 환원하는 일종의 반관방의 자발적 운동으로 평가할 수 있다. (pp.345-346 사진이라는 매체를 회화의 조형성으로 드러낸 강홍구와 달리, 동남아시아에서 섬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며 작업해 온 이마즈 게이(今津慶, 1980~)는 다양한 만들어진 이미지를 가지 고 회화로 제작한다. 그녀는 2020년 회화를 지지하는 가장 중요한 프랑스의 “장 프랑수아 프라 상”에서 파이널리스트로 선출되면서 젊은 작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마즈의 작업에서 이미지는 후기 제작을 거쳐 최종의 회화를 탄생시키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도록과 같은 인쇄물 이외에도 SNS에서 공개된 사진 파편과 같은 무수한 미디어에 산재된 이미지를 채취한 것이다. 이렇게 선택된 이미지는 데이터화와 재편집을 거쳐 밑그림화되고 이를 바탕에 두고 유화로 그린다. 이는 그녀만의 오랜 시간 속에서 ‘회화 그 자체’에 대한 고군분투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 p.3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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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박사학위 취득 이후 제 연구의 관심은 점차 동아시아 미술로 향하게 되었고, 그 범위 또한 근대에서 현대를 거쳐 오늘날의 컨템포러리 미술을 넘어, 경계의 지점에 선 미술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특히 2018년부터 몸담은 타이완 국립타이난예술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아시아 미술을 보다 긴 호흡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단파 제국 이렇듯 명명에서 지역적 특수성에 따라 복수성(複數性)을 지닌 ‘펑리’가 또 다른 면에서도 주목된다. 펑리 이미지는 대만 차이잉원 총통의 슬로건이 보여준 폰트와 시각화된 도상에서 과거 일본 의 제국의 표상을 소환하면서 착시적이고 회고적인 기억을 준다. 진동의 아시아 결국 ‘현대수묵’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홍콩의 수묵화 시장에서 보여준 대만과 홍콩의 수묵화는 서구와 차별된 ‘중국화’의 또 다른 버전으로 오히려 ‘하나의 중국’에 대한 분열된 지역성(홍콩과 대만)을 강조하게 된다. 최근 미술시장에서 이러한 현실은 서구와 차별화된 수단으로서 ‘수묵화’가 더 이상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는 한계를 드러낸 것이며, 무엇보다도 한국에서조차 ‘수묵’을 사용한 비엔날레가 만들어진 만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대안이 절실히 필요하다. 공명의 한국 서구 근대미술에 대치되는 동양 전통으로 새롭게 표현함으로써 보편성을 추구했던 일본의 초현실주의 예술에 대해서 독학으로 충실하게 초현실주의를 추구했던 요네쿠라 히사히토(米倉壽仁)의 생각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는 “특수한 전통 위에서 운동이 아닌 개별적인 개화로 이어 가야 할 것이다”라고 한 만큼 독창적인 개인이 순수예술로서 시대를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러한 점에서 장욱진 역시 모더니즘 사조의 운동적 성향을 의식하기보다는 개별적인 창작의 세계에서 나름의 완성을 본 것이라 하겠다. 1964년이라는, 시점은 백남준이 독일에서 미국으로 활동무대를 바꾼 중요한 시기일 뿐만 아니라, 전위미술의 새로운 실험과 액션으로 동시적 예술을 펼친 시기이다. 이 시기 백남준은 일본 퍼포먼스 공연에서 ‘전위’의 선봉에서 동시성을 보여주었다. 그의 예술에서 액션으로 점철되는 활동은 바로 국제적인 네트워크 형성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시아 현대미술을 넘어서(전시 기획) 최근 전 세계가 동시대적으로 경험한 팬데믹은 현재를 끝내고 미래를 갈 수 있을지, 또 여기서 미술의 현재가 미래가 되는지, 과거의 아시아가 미래의 아시아인지 등의 질문 속에서 오늘날의 ‘회화’에 대해 미래를 고찰해 보았다. 20세기에 들어와 회화라는 장르의 고유한 문화적 매체로서 구분은 내부의 질과 외부의 양적 측면에서 곤경과 극복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외부적 관습적인 회화가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전위성에 묻혀서 부정되었다고 한다면, 1980년대는 이를 회복시켜 회화의 권리를 찾으려 했던 일련의 움직임이 아시아 회화의 또 다른 ‘뉴 웨이브’ 현상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가운데 아시아의 미술은 서구에 대해 응대하고 도전하는 과정 속에서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 나온 것은 아닌가 생각될 정도이다. 이러한 역사적 회화의 위상이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함께 이미지가 범람하는 가운데 위기를 맞고 있는지 아니면 상생 관계에 있는지를 생각해 볼 때, 이는 회화적인 방법과 기법에서 ‘또 다른’ 회화의 미래를 예측하게 해줄 수 있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