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들어가는 글
1장 교육은 어디에 서야 할까 특수학교라면 당연히 환영합니다 / 조금 손해 보더라도 좋은 삶 살기 / 일당 5만 원과 5억 원의 차이 / 언제까지 기울게 내버려둘 것인가 / 보편성을 품은 다양함 / 마디가 생겨야 온전히 자라듯 / 배우는 사람과 가르치는 삶 2장 저마다 꽃으로 피어나듯 그의 마음으로 생각한다 / 보편성과 개별성 사이에서 / 이처럼 많은 별이 빛나듯 / 멀리서 보면 3장 사람은 홀로 설 수 없다 무엇으로 어떻게 관계 맺을까 /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이후 / 더불어 살아가는 10명 / 사유하고 성찰하는 나로부터 4장 사유하는 사람 산다는 것은 묻고 답하는 과정 / 향기를 보여주는 삶 / 말과 개념으로 짓는 세상 / 관계 맺기란 삶의 에너지 나누기 5장 자기 이유가 있는 삶이어야 그럼에도 자신을 살아야 하는 이유 / 나 아닌 것이 나를 대체한다 / 소극적인 삶과 적극적인 삶 / 자유함으로 온전히 사는 삶 / 자기 이유를 품고 사는가 / 스승의 말씀을 다시 생각한다 6장 아름다운 소풍 마치고 늙음과 나이듦의 차이 / 나이 감각과 나이 관념 /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 7장 좋은 죽음을 위한 채비 죽음 곁에서 휘게한 삶 / 좋은 죽음 채비 교육 / 무연하지 않았던 삶에 대하여 8장 존재가 존재에 이르는 길 우리는 모두 다르지 않다 / 사표(師表)와 사표(死表) / 함께하는 모든 존재에게 부록 참고문헌 |
고병헌의 다른 상품
|
여러분은 ‘지금, 이 순간’의 삶을 나 대신 다른 누군가가 그어 놓은 선을 따라 살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생각을 하기 위해, 걸어보지 않은 삶의 길에 첫발을 내딛기 위해 여러분은 지금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세상과 실존적 삶이 여러분에게 던지는 중요한 질문을 포착해내고 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외롭고도 힘든 ‘안간힘’을 공부, 배움이라고 한다면, 여러분에게 배우려는 사람보다 여러분이 먼저 앞서서 그 삶을 배우고 체험해야 합니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모든 사람은 어제와 오늘이, 아침과 저녁이 달라지는, 한순간도 멈춤 없이 변화하고, 또 변화하는 생명체입니다. 사실 이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사실이 아닙니다. 올해 우리가 경험한 봄(spring)은 이 세상이 생겨난 이후 인류가 처음 맞이한 봄일 테고,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과 제가 만나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은 우리 각자가 경험하는 ‘최초의 순간’입니다. 사람은 물론 비인간의 모든 생명체나 비생명체 무엇이든 매 순간 변화하기 때문에 어느 것도 방금 전 자기와 같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 p.29 가르치는 사람이 가르치려는 내용은 적어도 가르치는 사람 자신의 삶에서 이미 경험되고 검증되어야 하며, 그때 비로소 그가 가르치는 ‘앎’이 그것을 배우는 사람의 ‘깨짐-깨우침’ 사이 여백에 스며들면서 비로소 배우는 사람의 삶을 성장시키는 마디나 진동의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보편교육에서의 앎은 삶의 성장에, 궁극적으로는 좋은 삶의 실현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삶을 성장시키는 앎이 되려면 가르치는 사람의 존재나 삶을 통하는 것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믿습니다. --- p.37 우리 아이들은 각기 서로 다른 모양의 꽃입니다. 방해받지만 않으면 각자의 개별성에 따라 그 본연의 모습을 꽃피울 생명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아이들은 각자의 개별성에 따라 서로 다르게 아파하면서 성장한다’라는 명제가 우리 교육계에서 공명을 일으켜야 하고, 그러려면 어린 생명체의 삶에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교사와 양육자, 보호자가 먼저 자기가 맡은 학생들을, 자녀를 존중하는 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배움은 사람이 영위해야 할 좋은 삶에 관한 보편적인 관점에서 우리 아이들의 개별성에 주목하고 섬세해지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 p.51 ‘학부모’와 ‘부모’, 그리고 ‘양육자, 보호자’라는 용어는 모두 각각 다른 ‘개념’이며, 그래서 당연히 서로 다른 결의 ‘에너지’를 담고 있습니다. ‘치매’와 ‘인지저하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단순히 같은 개념, 같은 성질의 에너지를 약간 다르게 이름 붙인 것 정도의 사소함이 아니라 ‘인지저하증’을 앓고 있는 당사자에게는 어떤 용어로 불리는가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경험된다는, 참으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에서 “말과 언어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라는 키팅 국어 선생님의 가르침에 참으로 크게 감동한 것입니다. --- p.99 어느 한 사상 혹은 정신이 시대를 초월해 전승될 수 있으려면 그 사상이나 정신 자체의 위대함 혹은 탁월함만으로는 부족하며, 그 정신이나 사상을 공감하는(혹은 만나는) 사람들의 삶에서 그것이 재생산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어떤 사상이든 그 사상이나 정신이 다른 사람의 삶에서 공명할 때 비로소 그 정신의 위대성은 사회적인 생명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의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 p.121 |
|
교육의 의미, 교육이 나아갈 길
세상과 실존이 삶에 던지는 중요한 질문 좋은 삶을 위한 교육은 가르치는 사람 ‘앞’이 아니라 ‘뒤’에서, 교실 안에서뿐만 아니라 교실 밖에서도, 가르치는 내용보다는 가르치는 사람이 삶 속에서 보여주는 언행을 통해 실현된다. 사람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삶으로 가르치고 가르친 대로 살아가는 교육이 전제되어야 한다. 흔히 교사는 학생을 가르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배운 것이 삶을 성장시키는 가치이자 목표가 되어야 하고, 그때 비로소 가르침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가르치는 존재가 배우는 존재에게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동등한 존재로서 상대의 존재에게 다가가는 것, 이를 통해 사람은 사람다워지고, 올바른 사람으로 설 수 있으며, 다음 사람과 더불어 나아갈 때 교육은 참된 의미를 지닌다. 우리의 삶은 교육을 통해 어떻게 성장할까? 우리 삶을 대나무의 마디에 비유하기도 하고, 나침판 바늘의 진동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미끈한 대나무 줄기가 자라려면 울퉁불퉁한 마디를 만드는 시간을 견뎌야 하고, 나침판의 바늘은 자기를 진동시키는 수고로움을 거친 후에 북쪽을 가리킨다. 바늘의 떨림 없이 나침판은 제 기능을 할 수 없으며, 마디가 생기지 않으면 대나무가 자라날 수 없듯이 사람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깨짐-깨우침’을 겪으며 성장한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우는 행위를 표현할 때나 그 과정을 거쳐 획득한 그 ‘무엇’을 일컬을 때 ‘앎’이라는 표현을 쓴다. 어떤 경우든 앎은 그 앎의 행위에 참여하는 사람의 삶과 연결되어야 교육적 의미를 지니며, 그 사람의 삶의 성장을 통해 앎은 자기 존재 이유를 실현한다. 그때 배우는 사람은 자신을 깨우치며, 매일매일 경험하는 ‘현실’ 그 자체인 교사와 부모, 주변 사람들의 삶에서 세상을 배운다. 삶으로 가르치고 가르친 대로 사는 교육 《존재가 존재에 이르는 길》 지금 우리 각자가 내딛는 한 걸음이 스스로 배우고 가르치는 길이 되며,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방향이 된다. 우리가 자신의 삶에 허용하는 한 뼘만큼의 성장이 다음 세대에게는 그만큼 넓어진 세상이 된다. 그러므로 무엇을 어떻게 배울지 스스로 고민하는 한편,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지금, 이 순간’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참된 교육의 시선이자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이다. 존재가 존재에 이르는 길은 결코 한 방향이 아니라 서로가 배우고 가르치는 양방향이어야 한다. 기술적인 진보로 교육의 방법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왜 배우고 가르치는지, 그로써 우리가 무엇을 얻고 깨우치는지를 더욱 고민해야 한다. 근본이 올바로 설 때 기술 역시 그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교육을 말하면서 사람을 이야기한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고 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그 외롭고도 힘든 ‘안간힘’을 통해 우리는 공부와 배움의 의미와 마주할 때, 사람이란 무엇이고 올바른 사람으로 사는 길은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지금 사람답게 살기 위해 절실한 교육의 의미와 우리 교육의 방향을 묻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