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2023 한국산악회 부회장. 종신회원 보성중 2년 때부터 산을 좋아했다. 보성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산악부 활동시기 사진을 전담하게 되었다. 동아일보 사진취재 중 군인들 폭행으로 필름을 빼앗기고 다쳐 수도병원(광화문우체국 자리)에 입원. 1965년 ‘한일협정비준무효’를 외치던 학생들 취재 중에 당한 봉변이었다.(1965.2~1975.5 동아일보 사진부기자) 한국 처음의 “북태평양 어업선단’(삼양수산)이 조업을 나섰다.(1967.8) 모두 10척으로 선단을 조직했다. 출항 닷새째 몰아친 태풍에 두 척 배가 침몰했다. 29명 목숨을 앗아간 참사였다. 알류샨열도 일대를 3개월간
1941~2023 한국산악회 부회장. 종신회원 보성중 2년 때부터 산을 좋아했다. 보성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산악부 활동시기 사진을 전담하게 되었다. 동아일보 사진취재 중 군인들 폭행으로 필름을 빼앗기고 다쳐 수도병원(광화문우체국 자리)에 입원. 1965년 ‘한일협정비준무효’를 외치던 학생들 취재 중에 당한 봉변이었다.(1965.2~1975.5 동아일보 사진부기자) 한국 처음의 “북태평양 어업선단’(삼양수산)이 조업을 나섰다.(1967.8) 모두 10척으로 선단을 조직했다. 출항 닷새째 몰아친 태풍에 두 척 배가 침몰했다. 29명 목숨을 앗아간 참사였다. 알류샨열도 일대를 3개월간 동행 취재하며 침몰 선박의 마지막 모습이 사진에 찍혔다.
대한항공 선전실 재직 때 기내지 모닝캄 제작을 담당했다. 33여 개국 100여 도시를 방문했다. (1977.8~1989.2) 시사저널 창간에 부국장으로 합류했다. 동아일보 논설 및 편집국장을 역임한 박권상 님의 권유로 시작된 일이었다.(1989.2~1998.7) 한세대학교와 한국산업기술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재직.(2001.9~2012.3) 퇴직 후에는 보성고와 고대산악부, 한국산악회 등과 함께 해외 고봉 산악 트래킹에 같이 했다.
이 사진집은 해외 산악 트래킹에서 얻는 것으로만 꾸몄다. 등정 과정과 베이스 캠프에서 정상등반 대원들을 망원렌즈로 지켜보았다. 1995년 에베레스트 초모랑마(8,848m)부터 2008년 히말라야 낭가 파르밧(8,125m) 까지이다. 일생에 걸친 조천용 선생의 사진 가운데 일부이다.(편집자) 요약.본문부분 거대한 낭가 파르밧 남벽은 지구상의 모든 산군 가운데 가장 높은 벽이다. 힌두교도들은 고된 경작일에 허리를 펴고 무시무시 한 빙벽을 보며 구름 위에 솟은 저 산의 꼭대기에는 악령들이 모여 앉아 그들의 가족과 가축에게 전염병을 퍼뜨리고 수확물에는 폭풍우를 보내고 있을거라 생각했던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헤르히코퍼 베이스캠프는 연녹색의 여린 풀들이 양탄자처럼 펼쳐진 아름다운 분지이다.
양귀비꽃이 바람에 살랑거려 시선을 멎게 하고 내려가는 길은 평화롭기만 했다.
훈자에는 살구가 무르익고 있었다.(조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