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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 5
봄 당신의 달콤한 고백을 듣는 감자전 … 14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한가 머위꽃된장 … 20 어머니 품속처럼 깊은 맛이 나는 보말미역국 … 26 따뜻함으로 품어 주는 취나물국수 … 32 오랜 기억의 봄 향기가 날아드네 냉이된장국 … 37 나른한 봄날 생기 찾고 싶으면 시래기영양밥 … 42 먹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애탕국 … 47 대접해 주고 싶은 날엔 탕평채 … 52 삶의 짭조름한 문장 같은 미역국 … 59 여름 어머니가 걸어온 길 마농지 … 66 여름날의 어우렁더우렁 호박잎수제비 … 71 그리움은 왜 뒤늦게 오는가 자리돔구이 … 76 얼큰했던 아픔과 사랑의 그 냉면 … 82 달아오른 얼굴과 등판을 식혀 준 쉰다리 … 87 땀도 눈물도 보리꽃처럼 보리개역 … 92 조급하던 마음도 느릿느릿 서늘하게 초계탕 … 97 놓칠 수 없는 여름의 맛 상추쌈 … 103 열아홉 살 청무꽃이 핀 열무김치 … 109 어른의 맛으로 깨닫는 가지덮밥 … 114 가을 너럭바위에 핀 소금꽃의 경전 소금빌레 … 122 그날은 빙떡도 웃었다 빙떡 … 128 까칠하게 살아도 괜찮아 비빔밥 … 135 쉼표가 필요한 날엔 는쟁이범벅 … 142 결국 어머니의 맛으로 되돌아오는 토란조림 … 147 먹어서 즐겁고 불러서 즐거운 매작과 … 153 기다리는 법을 깨우치는 호박오가리짐너물 … 159 나의 소울푸드 양하버섯튀김 … 165 사바사바로 달랬던 감칠맛 고등어조림 … 172 겨울 주름처럼 여울진 그 맛 돗괴기엿 … 180 그리움만 드리워 놓고 떠난 국 … 185 겨울 냄새가 묻어나는 무밥 … 192 추억 없는 인생은 쓸쓸하잖아 고구마빼떼기 … 198 눅진한 정으로 죽을 쑤다 콩죽 … 204 이제는 찾을 수 없는 오합주 … 208 언제까지 그 맛을 기억할까 소복만둣국 … 214 반전의 빛날 날을 기다리며 치자단무지 … 221 리셋 인생을 꿈꾸며 삼겹살김치말이 … 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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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전 한 조각을 입에 넣는다. 바삭거리는 촉감과 찰진 맛이 혀끝에 달라붙는다. 남편도 입꼬리가 올라가며 배시시 웃더니 맛있다고 거든다. 막걸리 두어 잔 걸치고 나니 남편 얼굴에 홍조가 어린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내 손을 힘주어 잡으며 떨리듯 말문을 연다.
“남은 인생 선물이라 생각하자. 이젠 당신의 뜻대로 따르리라.” 느닷없이 그 말을 들으니 먹먹하다.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 속으로 외롭고 고단했던 시간이 도미노처럼 무너진다. 대답은 하지 못했지만 나도 존경과 사랑으로 감자꽃의 꽃말처럼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수줍은 새색시처럼 마음속으로 되뇌어 본다. --- p.17 「감자전」 중에서 머위쌈밥이 좋은 것은 겨울 언 땅을 뚫고 올라온 초록빛 생명으로 새 숨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머위쌈밥을 맛볼 수 있다면 봄은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물들 것이다. 머위 줄기를 삶아서 껍질을 벗긴 후 들깻가루를 넣고 볶아 주면 한 끼 반찬으로 봄 향기 가득한 식탁이 된다.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머윗대와 마늘과 간장, 육수 조금 넣고 볶다가 홍고추, 청고추, 양파를 넣어 조금 더 볶는다. 들깻가루와 대파를 넣고 섞어 국물이 걸쭉해지면 부족한 간을 소금으로 맞춘다. 머윗대의 쌉싸름한 매력적인 그 쓴맛은 이웃을 부르고 싶은 맛이다. --- p.23 「머위꽃된장」 중에서 오늘 저녁 메뉴는 애탕국이다. ‘나는 프로다’라고 생각하며 레인지 불을 켜고 애탕국을 끓인다. 간단한 음식이지만 마치 내가 대단한 음식 솜씨가 있는 것처럼 어깨가 으쓱해진다. 어쩌면 지금껏 맛보았던 수많은 맛뿐 아니라 추억 속의 뒤섞인 맛을 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어린 쑥을 헹궈 내고 치맛바람 날리듯 숭덩숭덩 썬다. 곱게 간 소고기에 다진 파, 다진 마늘, 참기름, 소금, 후추 양념을 한다. 여기에 두부를 으깨어 썰어 놓은 쑥과 함께 동글동글하게 완자를 빚는다. 급해지는 마음을 완자로 굴리면서 어떤 기억을 버무려 넣을까, 잠시 생각한다. 깊이 묻어 두었던 초록빛 기억을 가만가만 물들여 본다. 내 아이들도 나처럼 추억할 만한 음식 하나, 특별한 음식 하나 가지게 될까? 완자에 눈가루 날리듯 밀가루를 뿌려 옷을 입히고 달걀물에 담근다. 냄비에 육수를 넣고 끓으면 완자를 넣어 동동 떠오르면 완성이다. 그릇에 담고 마름모꼴 달걀지단을 고명으로 올린다. “애탕국 대령이오!” 하고 한 그 릇 대접하면 겨우내 움츠렸던 몸에 활기가 되살아나리라. --- pp.50-51 「애탕국」 중에서 텃밭에서 따 온 호박잎은 잘라 손빨래하듯 바락바락 비벼서 초록 풋물을 뺀다. 씻는다고 거칠던 그 아픔이 사라질까. 냄비에 다시마 우린 물과 비린내가 나지 않도록 타닥타닥하게 볶은 멸치를 넣고 끓인 구수한 육수를 만든다. 펄펄 끓는 육수에 감자를 숭숭 썰어 넣고 밀가루 반죽을 하늘하늘할 정도로 얄팍하게 늘려 가며 뚝뚝 떼어 넣는다. 감자가 익고 수제비가 구름처럼 떠오른다. 그 모양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구름을 물에 띄워 삶은 운두병雲頭餠이라 했을까. 낭화浪花는 또 어떠한가. 수행승의 공양 받는 사찰 음식으로 끓는 가마솥 장국에 반죽을 툭툭 던질 때의 모습이 ‘물결치는 파도’라니. 옛사람들의 은유적 감성이 멋들어지다. 애호박을 반달 모양으로 썬다. 칼날 지난 자리에 맺힌 이슬 같은 물방울이 방울방울 맺는다. 끓는 육수에 들어선 애호박이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땅에서 캐낸 감자와 수제비를 보니 어찌 애틋하지 않으랴. 연둣빛 색깔을 잃지 않고 생기를 더한다. 이게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이치가 아닐까. --- pp.73-74 「호박잎수제비」 중에서 소금빌레, 나직이 읊조려 본다. 오랜 세월을 속삭여 온 단어 같지 않은가. 그 이름 앞에 서니 겸손해진다. 밭에서 꽃이 피어 열매를 맺듯 돌염전에서 피워 낸 소금의 간간한 맛이 지나가는 바람처럼 달달하고 안온하게 다가온다. 단맛에 밀리고 감칠맛에 더 밀렸던 짠맛이 너른 바닷물에 녹아 낸 깊은 맛으로 살아난다. 마당 장독대의 장맛과 젓갈의 맛도 소금이 다독이며 군맛 방패막이 되어 주었다. 찌개나 국을 끓이고 장아찌를 만들어 맛있는 밥상을 누리는 것도 소금 덕이다. 생선 비린내도, 부패도 잡아 주는 것이 소금 아닌가. 항아리 속에서 기다림과 삭힘의 미학이 깃든 젓갈을 갓 지은 밥 위에 얹어 먹어 보라. 입안에 퍼지는 개운함으로 쌓인 스트레스가 허공으로 날아가리라. 힘든 삶에 소금의 힘으로 에너지가 생기고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살아 보니 소금은 혀끝의 간만 맞추는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에게 소금은 자식을 위한 희망이었다. 소금을 항아리에 담고 신주 모시듯 현관에 놓곤 했다. 정제된 소금이 외부의 액운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고 이사 때마다 구석구석 뿌리곤 했다. 비손으로 불운을 벗어난 삶을 바라던 어머니의 주름진 모습이 선연하다. --- pp.122-123 「소금빌레」 중에서 할머니가 차롱에서 터진 빙떡을 꺼내 내게 건네며 입안에 한 조각 넣는다. 씹으니 슴슴하다. 내가 무나물 있는 곳만 쏙 베어 먹어 가장자리는 할머니 몫이다. 할머니도 이 슴슴한 빙떡이 맛있었을까. 어쩌면 짭짤한 짠맛이거나 거칠고 떫은맛이어도 아들을 만난 듯 단맛처럼 느끼지 않았을까.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단조로운 나의 일상과는 다른 맛이었지 않나 싶다. 무채에 깻가루 뿌려 고소한 맛을 내듯, 고달픈 삶에서 할머니 빙떡처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그런 맛이 그리워진다. 비는 멈추고 살랑거리는 바람에 꽃잎이 흔들리며 가을을 끌어낸다. 지는 꽃잎 쓸어 주던 할머니 빙떡이 메밀꽃 향기에 젖어 흩날린다. 축제장을 빠져나가는 어린아이가 흥얼거리는 빙떡 송 ‘빙떡 먹으레 옵써’가 귓전을 두드린다. 옛날 할머니 빙떡이 웃으며 내게 말을 걸어온다. “나도 살아시메 빙떡 하영 먹고 으멍 웃으멍 살라.” --- p.133 「빙떡」 중에서 제주의 엿은 씹어 먹는 엿이 아니라 진액처럼 숟가락으로 떠먹는 건강식이자 보양식이다. 겨울철에는 해산물마저 충분하지 않아 단백질 섭취가 어려웠다. 그래서 추렴한 돼지고기를 엿으로 만들어 먹었다. 돗괴기엿(돼지고기엿)을 만드는 과정은 너무나 간단하다. 그렇지만 삶을 어루만지듯 하룻밤을 넘기는 인내의 시간을 지녀야 한다. 맨 처음 돼지고기를 삶는다. 돼지고기의 누린내를 없애기 위해 끓는 물에 마늘과 된장을 넣고 반쯤 익혀 건진다. 질게 지은 차조밥과 엿기름을 함지박에 넣고 미지근한 물을 부어 주물럭거린다. 고루 섞다 보면 엿기름물이 손가락 사이사이를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엿기름물을 방안 아랫목 따뜻한 곳에 이불을 덮고 대여섯 시간쯤 둔다. 그러고 나면 당화가 일어나며 뭉그러진다. 차조밥과 엿기름은 깊은 흔적 없이 삭혀져 엿물이 된다. 엿물을 바라보면 척박한 둥지의 힘들었던 시간도 삭으며 누그러진다. 엿물을 베주머니에 넣고 치대며 주물러 즙을 짠다. 그건 한여름 뙤약볕이 쏟아졌던 조밭 고랑의 시간이라고 할까.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 불로 지지듯 달군 등짝도, 쉴 새 없이 이마에 흘러내리던 땀도 쓰라리게 녹아내린다. --- pp.182-183 「돗괴기엿」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