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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현대음악의 지형도 현대음악의 두 가지 의미 〈봄의 제전〉을 즐기는 일곱 가지 방법 -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그가 잃은 건 조성이었을까, 아내였을까 - 아르놀트 쇤베르크 〈달에 홀린 피에로〉 스탈린에 대한 굴종인가, 은밀한 저항인가?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두 천재 세르게이의 만남 -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알렉산드르 넵스키〉 히틀러와 스탈린이 모두 미워한 불온한 오페라 - 알반 베르크 〈보체크〉 인생의 황혼, 낭만주의의 종착점에서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 인상주의에 대한 예술적 이중 전선 - 클로드 드뷔시 〈바다〉 정답을 알 수 없기에 더욱 매력적인 수수께끼 - 에드워드 엘가 〈수수께끼 변주곡〉 20세기 미국 음악의 독립선언서_찰스 아이브스 〈콩코드 소나타〉 체코 음악의 위대한 예외 - 레오시 야나체크 〈글라골 미사〉 클래식에도 토털 사커가 존재할까? - 벨러 버르토크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세기말 빈의 모차르트 -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 바이올린 협주곡 베를린의 바일과 브로드웨이의 바일 - 쿠르트 바일 〈서푼짜리 오페라〉 냉전 시대 음악으로 맞잡은 손 - 벤저민 브리튼 〈전쟁 레퀴엠〉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화려한 불꽃놀이 - 조지 거슈윈 〈랩소디 인 블루〉 미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울려 퍼진 선율 - 에런 코플런드 〈애팔래치아의 봄〉 사랑의 환희를 노래한 현대음악의 성자 - 올리비에 메시앙 〈투랑갈릴라 교향곡〉 스승을 넘어선 전후 세대의 혁명가 - 피에르 불레즈 〈주인 없는 망치〉 서양의 펜 대신 동양의 붓으로 그린 현대음악 - 윤이상 〈예악〉 짙은 소리의 구름 속에서 - 죄르지 리게티 〈아트모스페르〉 “제 꿈에서 저는 언제나 앨리스지요” - 진은숙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소련의 포스트모더니스트 - 알프레트 시닛케 합주협주곡 1번 침묵을 거쳐 탄생한 슬픔과 위안의 노래 - 아르보 패르트 〈타불라 라사〉 “작곡가의 길은 장미로 뒤덮인 화단이 아니다” - 소피아 구바이둘리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공포 영화와 록 스타들을 사로잡은 음향적 상상력 -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히로시마 희생자들을 위한 애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현대적 변주 - 레너드 번스타인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모든 음악의 시작과 끝은 침묵 - 존 케이지 〈4분 33초〉 CNN 오페라의 탄생 - 존 애덤스 〈닉슨 인 차이나〉 뉴욕의 택시 운전사에서 현대음악의 스타로 - 필립 글래스 〈해변의 아인슈타인〉 타악기, 미니멀리즘의 주인공이 되다 - 스티브 라이시 〈드러밍〉 현대음악 연표 참고문헌 인명 찾아보기 도판 정보 |
Kim Sung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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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의 너른 바다를 항해하는 도면을 마련하는 일
지금껏 누구도 보거나 들은 적이 없던 작품의 리뷰를 쓰는 일은 낯설고도 묘한 경험으로 남았다. 그 뒤로 20~21세기 현대음악의 너른 바다를 무사히 항해할 수 있는 도면을 마련하는 일은 개인적인 과제이자 소망이 됐다. --- p.10 우리와 동시대의 예술적 사건들 현대음악은 출발점으로 꼽히는 스트라빈스키와 쇤베르크의 작품들조차 고작 100년이 지났을 뿐이다. 사실상 우리와 동시대의 예술적 사건들이라는 뜻이다. 역사를 공부할 때 반드시 선사시대와 고조선부터 펼쳐야 할 필요가 없듯이, 클래식 음악 역시 얼마든지 연표를 뒤집어서 볼 수 있다. 음악사에서도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시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책 역시 그런 작업 가운데 하나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 p.11 이 모든 이야기는 지금 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 20세기 후반에 이르면 현대음악 역시 성별과 지역, 인종까지 다양성이 화두로 떠올랐다. 유럽 백인 남성 중심의 작곡가 연구에서 탈피해서 여성이나 유색 인종 작곡가와 연주자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지역적으로도 유럽과 미국뿐 아니라 남미와 아시아, 아프리카 음악까지 ‘지역 균형 발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현대음악의 역사 역시 현대사 일반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이 모든 이야기는 지금 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 p.20 급진적 문제작에서 현대의 고전으로 거듭나기까지 간혹 신화는 작품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가로막는 역설을 초래한다. 어떤 작품이든 평가는 초연 당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마찬가지로 서서히 생로병사의 과정을 밟기 때문이다. 〈봄의 제전〉 역시 한 세기 동안 시간의 담금질을 견디면서 급진적 문제작에서 현대의 고전으로 거듭난 경우에 해당한다. --- p.30 인생의 황혼, 낭만주의의 종착점에서 〈네 개의 마지막 노래〉는 서서히 저물어가는 독일 후기 낭만주의 전통에 대한 마지막 작별 인사가 됐다. 동시에 무조와 12음 기법을 넘어서 총렬주의로 치닫는 현대음악의 격랑 속에서도 온전하게 복고적 정서를 간직한 모순적 걸작으로 남았다. --- p.124 기존의 낡은 미학관을 뒤흔들고 새로운 취향의 변화로 21세기의 우리는 더 이상 오르세 미술관의 인상주의 미술을 보면서 파격적이거나 급진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드뷔시의 작품에서 바다가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도 않는다. 작품 초연 이후 한 세기가 흐르면서 우리의 미학적 기준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이처럼 기존의 낡은 미학관을 뒤흔들고 새로운 취향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이야말로 드뷔시의 으뜸가는 공로일지도 모른다. --- p.137 엘가. 퍼셀 이후 진정한 영국 작곡가 엘가의 삶에는 지극히 아이로니컬한 구석이 있다. 지금은 영국의 국민 작곡가처럼 보이지만, 작곡가 생전에는 오히려 아웃사이더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국교회 중심의 영국에서 그는 소수인 가톨릭 교도였고, 런던이 아니라 우스터 근교 출신이었다. 또 음악 서적과 악기 판매상의 아들로 태어나 사실상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다. 종교, 지역, 계층적으로도 주류의 조건에 들어맞는 점이 없었던 셈이다. --- p.143 미국 음악의 '독립선언서' 서문이 보여주듯이 아이브스는 쇤베르크만큼 급진적인 음악적 아웃사이더로만 이해하기 쉽다. 아이브스가 4년간 작곡에 매달렸던 이 소나타 역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음표와 빠르기 때문에 기교적 어려움으로 가득한 난곡으로 꼽힌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이 곡을 녹음한 음반들이 쏟아지면서 이런 혹평은 훌륭하게 반증反證되기에 이르렀다. (...) 1954년 세상을 떠난 뒤 아이브스는 ‘미국 현대음악의 선구자’로 불렸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브스의 소나타는 20세기 미국 음악의 ‘독립선언서’와도 같았다. --- p.156 위대한 예외, 야나체크 〈글라골 미사〉는 1927년 초연된 야나체크 만년의 걸작 가운데 하나다. 이미 작곡가의 나이는 칠순을 넘었지만, 야나체크는 말년에 이를수록 오페라와 관현악곡, 실내악까지 왕성한 창작력을 불태우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 우리는 자칫 시대적 흐름에 뒤처지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살지만 야나체크 같은 ‘위대한 예외’는 넌지시 일러준다. 삶이나 예술에서 순간의 평가보다 중요한 것은 고유의 독창성이라는 것을. --- p.163 코른골트와 쇤베르크의 스승, 쳄린스키 빈 최고의 음악 신동 코른골트와 대기만성형 작곡가 쇤베르크가 모두 쳄린스키의 제자였던 셈이다. 코른골트는 이후 할리우드 영화음악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쇤베르크는 알반 베르크와 베베른 같은 제자들을 길러내면서 20세기 현대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결과적으로 쳄린스키는 제자들을 통해서 영화음악과 현대음악에 모두 간접적 영향을 미친 셈이 됐다. 빈 최고의 음악 신동 코른골트와 대기만성형 작곡가 쇤베르크가 모두 쳄린스키의 제자였던 셈이다. 코른골트는 이후 할리우드 영화음악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쇤베르크는 알반 베르크와 베베른 같은 제자들을 길러내면서 20세기 현대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결과적으로 쳄린스키는 제자들을 통해서 영화음악과 현대음악에 모두 간접적 영향을 미친 셈이 됐다. --- p.193 시대의 격변과 의미를 담은 〈애팔래치아의 봄〉 〈애팔래치아의 봄〉에는 구약 창세기의 이상향과 미국 건국 초기의 개척 정신, 전시 미국의 낙관주의라는 삼중의 의미가 중첩되어 있었다. 〈애팔래치아의 봄〉은 사실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배경을 지닌 예술가들의 만남이 낳은 융합의 산물이다. 작품의 초연에 참여한 일본계 미국 무용수인 유리코 기쿠치는 진주만 공습 직후 애리조나의 이주민 센터에 2년간 억류됐다. 무대 디자인을 맡은 노구치 이사무(1904~1988) 역시 스파이 혐의로 미 연방수사국FBI의 수사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일본인 혈통이 섞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심과 감시의 대상이 됐던 시대에도 그레이엄은 스스럼없이 이들을 무용단에 받아들였다. 따지고 보면 코플런드 역시 리투아니아계 유대인이자 정치적 좌파, 동성애자라는 비주류적 정체성을 지닌 작곡가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초연 이듬해인 1945년 코플런드는 이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하면서 미국 현대음악의 ‘주임 사제Dean’라는 위치를 확고하게 다졌다. --- p.236 시대의 편협을 넘어 경계를 확장해가는 음악가, 리게티 뿌리 뽑힌 자의 자의식은 평생 작곡가를 괴롭혔지만, 거꾸로 현대음악의 법칙이나 경향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었던 동력이기도 했다. 서방 망명 이후에도 리게티는 현대음악계의 편협하고 교조적인 분위기와 일정한 거리를 두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1957년부터 현대음악의 요람인 다름슈타트 음악제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좁은 현대음악계 내부에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알력과 다툼을 벌이는 작곡가들을 보면서 나치나 스탈린 체제의 권력 투쟁에 비유하기도 했다. 훗날 그는 “나는 구루(정신적 지도자)가 아니다. 설교하거나 세상을 개선시키고 싶은 마음도 없다. 이 모든 유토피아는 내게 낯설기만 하다”고 고백했다. 이 때문에 리게티는 평생 자신의 악파樂派를 만들지 않은건 물론, 이미 확립된 자신의 스타일에서도 끊임없이 탈피하고자 했다. 1993년 리게티는 이렇게 고백했다. “내게는 미래의 확정된 비전도, 총체적인 계획도 없다. 그저 미로 속의 시각장애인처럼 다양한 길을 더듬거리며 나아갈 뿐이다. 한 걸음 내딛는 데 성공하는 순간, 곧바로 과거가 되며 다음 발걸음을 위한 많은 갈림길이 존재한다.” 어쩌면 단절과 연속은 그의 삶과 음악을 관통하는 키워드였을지도 모른다. --- p.266-267 성숙과 발전, 꿈과 무의식을 담은 자아상, 진은숙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도대체 나는 누구지Who in the world am I?”라는 앨리스의 노랫말처럼, 오페라는 계속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앨리스의 아리아 가사처럼 “오늘 아침에 일어난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인가”라는 물음이다. 이 같은 질문은 물론 원작자 캐럴의 것이지만, 진은숙이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다. 2011년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열린 작곡가와의 대담에서 관객들은 진은숙의 작곡 습관과 오페라 초연 준비 과정까지 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가끔은 캐럴 원작의 주인공 앨리스와 동일시하느냐”는 마지막 질문에 진은숙은 이렇게 답했다. “제 꿈에서 저는 언제나 앨리스지요.” 결과적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작곡가 진은숙의 성숙과 발전, 꿈과 무의식까지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 됐다. --- p.276-277 저항과 견딤의 여정 시닛케는 건강이 회복되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날 적마다 어김없이 펜을 잡았다. 1980년대 후반 런던과 베를린, 스톡홀름 등에서 그의 작품들을 조명하는 음악회들이 잇따라 열렸고, 잘츠부르크와 올드러버 페스티벌의 상주 작곡가도 맡았다. 평생 그를 탄압하고 괴롭혔던 소련 음악계의 권력자들은 1991년 연방 해체 이후 힘을 잃었다. 반면 1994년 전 세계에서 시닛케의 작품을 조명하는 음악제가 열렸다. 그 도시 가운데 하나가 모스크바였다. 평생 시닛케가 음악을 배우고 가르치고 작곡했던 도시가 마침내 그의 음악을 ‘공식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 p.294-295 침묵을 거쳐 탄생한 미니멀리즘과 영적인 세계 1976년 오랜 침묵을 깨고 복귀했을 때 패르트는 전혀 다른 작곡가로 변모해 있었다. 패르트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자신의 음악적 스타일을 ‘틴티나불리tintinnabuli’라고 명명했다. ‘작은 종’이라는 뜻의 라틴어인 ‘틴티나불룸tintinnabulum’은 교회 예배나 교황의 행렬 같은 행사에서 사용했던 종이나 종소리를 뜻한다. 실제로 패르트는 작품에서 차임벨 같은 종소리를 즐겨 사용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음악 언어 자체의 변화였다. 작곡가는 “틴티나불리는 내 삶과 음악, 작품에서 해답을 찾던 시기에 맞닥뜨린 영역”이라며 “내가 어두운 시기를 보낼 때 단 하나의 해답 이외의 모든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기나긴 암중모색 끝에 도달했던 결론이 틴 티나불리였던 셈이었다. 결과적으로 초기의 난해한 불협화음은 자취를 감췄고, 고요하고 명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주선율과 으뜸 3화음이 두드러졌다. --- p.303-304 새장 밖으로 탈출하라 케이지는 평생 ‘무정부주의자’를 자처했지만, 현실 정치에는 대체로 무관심했다. (...) 하지만 존 레넌과 오노 요코, 기타리스트 프랭크 자파, 록 밴드 소닉 유스까지 팝과 록 음악인들 역시 케이지를 통해서 소음과 침묵, 우연성 같은 화두를 껴안은 것 역시 사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을 감금하고 있는 새장bird cage 밖으로 탈출하라”라는 케이지의 말은 지금도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과연 새장을 벗어난 현대음악은 어디로 날아가려는 것일까. --- p.3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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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은 반드시 들어야 하나요?"
클래식 음악을 담당하는 저자가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다. 그는 '현대음악 연주회에 가고 음반을 듣고 그것만으로 모자라 책까지 펴냈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의 '본업'과 연결된다.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이자 음악회 해설자로, 블로그 '클래식 네버랜드'와 유튜브 '클래식톡'을 통해 음악을 소개해온 저자는 직업 특성상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클래식 공연을 접한 사람 중 하나다. 그런 그에게도 현대음악과의 만남은 결코 쉽지 않았다. 미술이나 문학과 달리 클래식 음악은 여전히 ‘서양 고전음악’의 틀에 갇혀 있고 특히 현대음악은 그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영역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19세기까지 조성이라는 공통 문법을 공유했던 음악이 쇤베르크의 무조, 12음 기법, 이후 총렬주의 같은 방법론이 등장하면서 그 문법 자체가 무너졌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음악처럼 익숙한 구조는 사라지고, 반복을 지우거나 시간과 소리를 파편화하며, 심지어 침묵까지 작품의 일부로 삼는 방식으로 형식이 해체된 것이다. 그러나 까다롭고 난해해 보이는 현대음악도 시대와 음악가들의 관계 속에서 들여다보면 의외로 흥미롭고 매력적인 항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저자에게 현대음악을 소개한다는 것은, 결국 ‘너른 바다를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지도를 건네는 일’이다. 다이제스트 형식의 현대음악의 지도 저자는 '역사를 공부할 때 반드시 선사시대와 고조선부터 펼쳐야 할 필요가 없듯, 클래식 음악 역시 얼마든지 연표를 뒤집어서 볼 수 있다. 음악사에서도 '콜롬버스의 달걀'과 같은 시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11쪽)'고 말한다. 이는 곧 모든 것을 순차적으로 익히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흥미롭고 생생한 지점을 먼저 짚으며 다이제스트 형식으로 음악사를 탐색하는 것, 바로 그 방식이 현대음악의 낯섦을 친근한 이야기로 바꿔준다. 그렇게 이어가는 과정에서 '현대음악의 지도'는 흩어진 점들을 하나의 지도로 엮어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네 개의 지형도에 담은 일곱 좌표 이 책은 네 개의 지형도를 축으로 현대음악을 펼쳐낸다. ‘스트라빈스키와 쇤베르크’, ‘히틀러와 스탈린’, ‘현대음악의 제3지대’, ‘구대륙 유럽과 신대륙 미국’이 그것이다. 여기에 ‘19세기와 20세기 중간에서’, ‘러시아와 동유럽의 아방가르드’, ‘미국의 목소리’를 더해 총 일곱 갈래의 좌표로 지형을 확장했다. 이것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경계가 겹치고 흐르기도 하지만, 바로 그 점이 현대음악의 역동성과 혼재성을 드러낸다. 책의 서문 뒤에는 글과 이미지로 된 현대음악의 지형도가 실려 있어 독자에게 입체적인 안내서가 된다. 인물과 사건, 시대적 배경이 점을 찍듯 이어지고, 음악가들의 관계와 에피소드가 작은 이야기 단위로 펼쳐진다. 덕분에 책은 가볍게 읽히면서도, 좌표를 따라가며 현대음악의 지형도를 엮어가는 독서경험이 될 수 있다. 스트라빈스키와 쇤베르크 현대음악의 탄생은 두 번의 충격으로 시작되었다. 1913년 파리에서 초연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경찰이 출동할 만큼 격렬한 파문을 일으켰고, 같은 해 빈에서 열린 쇤베르크와 제자들의 연주회는 ‘스캔들 콘서트’라 불리며 음악사의 또 다른 폭발을 일으켰다. '화려한 스타로 군림한 스트라빈스키'와 '고독한 선지자 쇤베르크'의 평행과 균열은 20세기 현대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한 세기를 거치며 그들의 음악은 급진적 문제작에서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히틀러와 스탈린 1930~40년대, 히틀러와 스탈린은 예술을 이념에 종속시켰다.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예프는 그 안에서 고통스럽게 몸부림쳤고, 수많은 예술가들은 망명과 추방의 길을 걸었다. 쇤베르크 역시 나치 집권 후 프랑스와 미국으로 망명했고, 쿠르트 바일 역시 나치의 박해로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처럼 정치 권력의 폭력은 예술사의 국면을 바꾸었고, 2차 세계대전은 현대음악의 결정적 분기점이 되었다. 현대음악의 제3지대 19세기 후반 유럽 전역을 휩쓴 바그너 열풍은 음악사의 거대한 쟁점이었다. 그 계승과 단절은 곧 19세기와 20세기를 가르는 핵심 문제로 떠올랐다. 스트라빈스키와 쇤베르크라는 두 거장이 맞선 가운데, 드뷔시와 이후 프랑스 작곡가들은 그 사이의 틈새를 파고들며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했다. 얼핏 불가능해 보이는 경계 위에서 그들이 열어낸 길을 '현대음악의 제3지대' 속에 담았다. 동시에 이 흐름은 '19세기와 20세기 중간에서'라는 좌표와도 맞닿아 있으며, 엘가·아이브스·야나체크 같은 작곡가들의 궤적과 교차한다. 구대륙 유럽과 신대륙 미국 전후 유럽에서는 다름슈타트 세대가 쇤베르크의 방법론을 확장해 새로운 음악을 실험했다. 반면 미국에서는 코플런드와 번스타인의 대중적 흐름, 케이지와 카터의 실험적 흐름이 공존하며 전혀 다른 지형을 펼쳤다. 이 대립은 결국 ‘미국의 목소리’라는 좌표로 확장된다. 나아가 1960년대 미니멀리즘은 글래스와 라이시로 이어져 대중음악까지 흔들었고, 이후에는 성별·인종·지역의 다양성을 포괄하며 ‘러시아와 동유럽의 아방가르드’까지 함께 현대음악의 지도를 입체적으로 채워갔다. 서른 편의 본문과 스물 일곱 편의 에세이가 이끄는 현대음악 이야기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테러리스트 피아니스트 굴다」, 「빵집과 화살들」, 「비틀스와 슈톡하우젠」, 「소련의 황희 정승과 살리에리 사이」, 「우리 시대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영화관과 결혼식 알바」 등 스물 일곱 편의 에세이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제목만 보아도 재치와 호기심이 넘치는 이 에세이들은 현대음악이라는 낯선 세계를 친근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이끌어주는 작은 다리처럼 놓여있다. 본격적인 본문에서는 인물과 사건, 시대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음악가들의 관계와 에피소드가 재밌게 흘러간다. 저자는 그 이야기들을 통해 현대음악을 ‘멀고 어려운 세계’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 우리 곁의 음악’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래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낯선 이름들이 친숙한 얼굴로 바뀌고, 복잡하게만 느껴졌던 소리가 우리의 일상과 이어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낯섦 너머의 친밀하고 생생한 감각 현대음악의 역사는 곧 개척의 역사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과 쇤베르크의 문제작은 한 세기를 거쳐 ‘현대의 고전’이 되었고, 진은숙은 유럽에서의 정체성 위기를 넘어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확장했다. 시닛케는 검열을 피해 쓴 60여 편의 영화음악을 교향곡과 협주곡의 토대로 삼았고, 패르트는 침묵의 시간을 거쳐 ‘틴티나불리’라는 독창적 음향 세계를 열었다. 이들의 여정은 시대의 압박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창조와 저항의 기록이다. 이처럼 음악가들은 저항과 개척의 역사 속에서 시대를 증언하는 동시에 각기 다른 문화와 음악적 상상력으로 현대음악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펼쳐 보인다. 『너무 일찍 온 미래의 음악』은 그 모든 스펙트럼을 독자가 친근하게 탐험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지도이자, 시대와 맞선 예술가들의 증언을 생생히 전하는 기록이다. 가볍게 펼쳐 읽을 수 있는 소챕터들로 구성되어 부담 없이 다가오지만, 다 읽고 나면 저자의 수년간의 노력과 헌신이 얼마나 깊고 지난했는지도 실감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