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공지] 사무실 이전 공사로 인한 판매 일시 중단 안내
안녕하세요. 사무실 이전 공사로 인해 10월 19일부터 11월 중순까지 판매를 일시 중단할 예정입니다. 해당 기간에는 신규 주문을 자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
|
택배비 및 박스 포장 문제로 11권 이상 대량 주문 시 합배송이 어렵거나 주문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
택배비 및 박스 포장 문제로 11권 이상 대량 주문 시 합배송이 어렵거나 주문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
여러 권을 함께 주문하시는 경우 재고 변동으로 인해 누락 또는 분리배송이 발생할 수 있어 부득이하게 취소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
|
☎현재 문의량이 많아 전화 연결이 지연될 수 있습니다. 신속한 처리를 위해 주문번호를 반드시 기재하여 ‘판매자 문의하기’로 남겨주시면 확인 후 최대한 빠르게 안내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들의 많은 관심과 문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최근 유선 상담 문의가 급증하여 연결이 다소 지연될 수 있습니다.
전화 연결이 어려우실 경우, 보다 원활한 상담을 위해 게시판에 문의글을 남겨주시면 빠르게 순차 대응해드리겠습니다.
항상 따뜻한 관심과 믿고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나은 서비스로 보답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양해해주셔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변함없는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
|
들어가는 글_알레르기와 한바탕 전쟁을 치르며 _3
Part 1. 우리 가족의 알레르기 잔혹사 1. 피부만큼이나 커진 상처 _12 2. 모든 식품에 알레르기가 있다면 _16 3. 먹일 수 있는 음식을 찾아서 _20 4. 알레르기는 먹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_24 5. 도대체 식품 알레르기는 왜 생기는 걸까? _28 6. 우리 가족의 알레르기 처치 3단계 _36 7. 들어는 봤나? 아나필락시스 _42 8. 새로운 가능성, 경구면역 치료법 _46 9. 첫 번째 도전, 달걀 _50 10. 잘해 왔고, 잘하고 있어 _57 11. 좌충우돌 어린이집 적응기 _62 12. 1년 동안 17번의 생일파티 _67 13. 아이의 첫 번째 거짓말 _75 14. 던져 버리고 싶은 도시락 가방 _79 Part 2. 알레르기가 있는 일상 1. 학교 갈 때 챙겨야 할 목록들 _84 2. 알레르기 교육? 현장에선 달나라 이야기 _90 3. 학교 운영위원이 될 결심 _96 4. 첫 번째 급식은 순조로웠을까? _100 5. 이게 진짜 도시락이야 _105 6. 급식 모니터링 참관 _108 7. 알레르기 필수 아이템, 핸드폰 _113 8. 매일 아침, 알레르기 가족의 일상 _118 9. 학습으로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을까? _122 10. 흔들리는 아내의 엄마표 학습 _128 11. 넌 어떤 친구야? _133 12. 밀가루를 정복하니 세상이 달라보인다 _137 13. 새로운 세상을 맛보다 _141 14. 우유 거부반응을 줄이는 방법 _145 15. 조금 느리더라도 건강을 챙기면서 간다 _149 Part 3. 땡돌이 아빠의 육아 비법 1. 나를 아빠라고 불러 준 존재 _154 2.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가 꿈 _163 3. 아빠, 나 왜 낳았어? _169 4. 알레르기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_172 5. 육아휴직을 사용하겠습니다 _176 6. 어떤 상황이라도 아빠라면 _181 7. 요리학원에 등록했다 _186 8. 공부 자립을 위한 아빠의 역할 _190 9. 아이의 재능을 찾아서 _194 10. 공짜로 아이를 똑똑하게 만드는 법 _198 11. 사교육보다 더 훌륭한 자녀 교육법 _202 12. 독서 습관을 물려준 네 가지 방법 _207 13. 한 가지 정도는 직접 가르친다 _213 14. 출장길에 얻은 깨달음 _217 15. 좋은 아빠는 있어도 완벽한 아빠는 없다 _221 Part 4. 알레르기 아이의 부모로 사는 법 1. 알레르기지만 훈육은 필요해! _226 2. 하늘은 감당할 만큼의 씨를 세상에 뿌린다 _230 3. 아빠의 경험만큼 좋은 스승은 없다 _233 4. 시간과 노력이 모여 기적을 이루다 _238 5. ‘요리사’는 절대 안 돼 _242 6. 감정을 다스려야 하는 이유 _248 7. 여행하듯 살고 싶다 _252 8. 사진첩을 정리하는 세 가지 이유 _256 9.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 _259 10. 알레르기가 있는 손님을 위한 배려 _263 11. 드디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_269 13. 비교보다는 위로와 공감 _273 13. 같이 먹으니까 더 맛있다, 그렇지? _277 14. 알레르기 환자가 감내해야 하는 것들 _282 나가는 글_길고 길었던 터널의 끝에서 _286 |
|
음식 알레르기를 진단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검사방법은 식품 ‘유발검사’라고 한다. 말 그대로 음식을 먹고 증상이 생기는지 전문가가 확인하는 검사다. 일반 가정에서는 위험할 수 있으니 전문 의료인이 상주하고 응급 의료시설이 갖추어진 병원에서 음식을 먹고 반응을 관찰해야 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시간이 많이 들고, 여러 음식을 한 번에 검사하기도 어려워 보통 병원에선 ‘피부단자시험’이라는 걸 한다.
--- p.16 한 가지 음식에만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도 먹을 수 없는 음식은 많았다. 가령 우유의 경우에는 버터, 치즈, 요구르트, 초콜릿, 아이스크림, 빵, 과자는 모두 피해야 하고. 시중에 파는 갈비탕에도 우유를 넣는 경우도 있어 꼼꼼히 확인해야 했다. 달걀의 경우에는 달걀찜이나 스크램블처럼 달걀 자체만 제한해야 할 뿐 아니라 마요네즈, 빵, 과자, 어묵, 튀김 등 다른 음식에 첨가된 달걀 성분까지 같이 제한해야 했다. 또 밀가루에 알레르기가 있다면 만두, 부침가루, 빵가루, 국수 등도 같이 피해야만 했다. --- p.21 보습제를 바르는 일은 가려움이나 붉어짐 등의 피부염 증상이 있기 전에 사용한다는 점에서 치료라기보다는 예방에 더 가깝다. 보습제는 피부 치료의 필수 아이템으로, 항상 피부를 촉촉하고 부드럽게 만들고 피부 장벽을 튼튼하게 한다. 실제로 보습제만 잘 발라줘도 아이는 훨씬 덜 가려워했고, 당연히 부작용 논란 때문에 불안한 스테로이드 사용량도 줄일 수 있었다. 아내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보습제와 함께 할 정도로 아이의 보습에 신경을 많이 썼다. 계절에 따라 시간 간격을 달리 해서 발라주었고, 외출이나 목욕 후에도 반드시 발랐다. 하지만 보습제는 약이 아니기 때문에, 특정 반응이 시작되면 의사의 처방을 받은 약으로 치료해야 했다. --- p.38 ‘아나필락시스’란 심각하고 치명적인 전신적 알레르기 반응을 말하는데, 피부나 위장에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몸 전체에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호흡기, 심혈관, 피부, 소화기 등 여러 기관에 동시에 증상이 발생하거나 한 기관에 나타나더라도 위험한 증상이 동반된다, 전신에 두드러기가 생기고 가려우면서 호흡기 증상이 나타나거나 구토, 설사, 복통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가슴에 통증이 느껴지며 혈압이 떨어지고, 목이 조여와 호흡이 어려워지며 실신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 증상은 대부분 알레르기의 원인에 노출된 지 수 분 이내에 나타나기 때문에 재빨리 응급처치를 하지 못하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 p.44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보건실이었다. 보건교사에게 아이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응급상황에 대비해야 했다. 비상시 사용할 상비약이나 응급주사(젝스트)는 아이 편으로 따로 보내서 학교에 비치하고, 유통기간이 지나지 않게 관리했다. 혹시나 주사를 맞을 상황이 되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서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응급실의 동선까지 미리 알려두었다. 급식실과 보건실에 다녀온 후 선생님들이 모두 너무 좋은 분들이라 한결 마음이 놓인다는 아내의 말에 나도 덩달아 마음이 가벼워졌다. --- p.88 소풍 가는 당일 아침, 일찍부터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부엌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음식 솜씨는 영 없는 아내지만(다른 장점이 훨씬 많은 아내) 새벽부터 일어나 도시락에 과자와 젤리를 색색이 종류별로 골라 이쁘게 담고, 스마일 감자를 튀겼다. 문어 다리 소시지에는 검은깨로 눈을 만들고, 치즈로 입까지 붙여놓았다. 드디어 아이의 첫 번째 특별한 소풍 도시락이 완성되었다. 맛과 영양에 엄마의 정성까지 듬뿍 담긴 이쁜 도시락이었다. “아들아, 도시락이란 평소와 다르게 집 밖으로 소풍이나 나들이 가서 맛있게 먹는 설레는 음식이란다. 이게 바로 진짜 도시락이야.” --- p.107 두 손으로 얼굴만 한 햄버거를 잡아들더니 입으로 가져가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나와 아내는 그 순간을 영원히 담으려고 카메라까지 꺼내 들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입에 넣고 씹기 시작하더니 한입 먹고는 다시 내려놓는다. 그리곤 옆에 같이 나온 감자튀김만 만지작거린다. “왜 그래, 맛이 없어?”라고 물으니 햄버거 안에 고기 패티가 맛이 이상하단다. 생각했던 맛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참 속상했다. 먹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는데, 힘들게 찾아낸 음식이라도 잘 먹으면 좋으련만, 성질 급한 나는 이 상황이 또 화부터 난다. 제일 속상한 건 분명 그동안 못 먹던 햄버거를 기대하고 처음 맛본 아이일 텐데, 화는 오히려 내가 냈다. 비록 첫 번째 햄버거는 실패했지만, 아직 우리에겐 짜장면과 라면 그리고 치킨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가깝다.” 리처드 포플러의 명언처럼 우리 가족에게도 세상 밝은 빛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 p.140 육아란 시시각각 변하는 한 생명이 자라는 것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경이로운 일이다. 그런 육아의 최대 수혜자인 아빠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아이와의 시간도 나중에 여유가 생길 때 함께 보내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빨리 자란다. 놀이동산에 가자고, 아빠랑 축구를 하자고, 공룡공원에 가자고 해도 다음 달이면 아이의 관심은 이미 다른 데로 가고 없을 수도 있다. 놀이동산은 시시하고 축구는 친구들과 하는 게 훨씬 재미있고, 공룡 따위는 포켓몬스터에게 밀려 관심이 사라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이가 원하는 걸 원할 때 바로바로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는 아이들의 관심을 끌지 못할 수도 있었다. --- p.167 주말을 이용하거나 아이와 여행할 때마다 지역의 도서관 투어를 했다. 가까운 집 근처 도서관에서부터 시작해서 영화 해리포터에 나올 법한 호주 멜버른의 세계적인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서관을 보여줬다. 도서관을 친근하게 느낀다면 그 속에 전시된 수많은 책은 아이들의 무한한 호기심을 자극하며 책을 더 가까운 친구처럼 느낄 수 있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동안 아빠의 노력에 결과였을까? 9살이 된 아이는 말한다. “아빠 나는 책읽는 게 노는 거야. 책을 읽고 있으면 책 속에 세상이 마치 현실이 되는 것 같아.” --- p.211 생각해 보면 아이에 대한 공감 능력은 아이를 낳기 전, 부모 출산 교육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산모의 진통을 완화하는 호흡법부터 시작해서 출산 당일 가족분만실에서 아이를 낳는 모든 과정을 지켜본 것은 배워 본 적 없는 육아에서 자연스럽게 아빠의 역할을 찾기 위해 책을 집어 들게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알게 된 ‘모아모’(모두의 아빠 모임)라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함께 육아하는 아빠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병원 예약과 접수를 돕는 사이트에서부터 열이 날 때 아이의 체온에 따라 알맞은 대처방안을 찾는 ‘열나요’, 0세에서 7세까지 육아 정보 및 맞춤 놀이법을 찾아보는 ‘차이의 놀이’까지 다양한 육아 관련 정보도 알게 되었다. --- p.237 한번은 현지에서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말레이시아는 1년 365일이 더운 나라라 에어컨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묵었던 레지던스형 숙소는 따로 창문이 없어서 환기할 수 없었고, 덕분에 지독한 비염 환자였던 아이와 나는 한 달 내내 목감기와 인후통을 달고 살아야 했다. 게다가 나는 여행지로 출발하기 며칠 전 설거지를 하다가 유리 조각에 손가락을 베었는데 환부가 퉁퉁 부으며 말썽을 부렸다. 그래서 우리는 원치 않게 낯선 땅에서 생전 처음으로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우리는 번역기까지 써가면서 무사히 진료받았고, 덕분에 낯선 땅에서의 막연한 두려움도 떨쳐낼 수 있었다. 또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싱가포르에 다녀오다가 입국심사서를 미리 작성하지 않아 심사대에 발이 묶여 기차를 놓칠까 봐 발을 동동 구른 일, 쇼핑몰에 있는 자판기에 아이가 직접 결제하겠다며 하나뿐인 신용카드를 자판기 틈새 사이로 넣는 바람에 막막했던 일, 한국으로 돌아오는 연결편 항공기를 놓쳐 타이베이에서 강제로 1박을 하게 된 일 등 수없이 많은 추억은 학교나 학원에서 배울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며 성장의 시간이었다. --- p.261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시드니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텀바롱 공원’이라는 야외 놀이 시설이었다. 아주 어린 유아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과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야외 놀이 시설로 대자연의 나라처럼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공원에서 인간과 함께 어울리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크기도 크지만 시설도 다양하고 알차게 갖추어져 있어 하루 종일 놀아도 질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 모든 시설은 1년 365일 하루 종일 무료였다. 아이들을 안심하고 맡길 때가 없어, 비싼 돈을 주고 키즈카페나 유료 놀이시설을 찾아야 하는 우리나라 엄빠로서 부러울 수 밖에 없었다. --- p.268 실제로 겪었던 식품 알레르기로 인한 고통은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없는 음식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고, 치료는 언제 시작하고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외출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아이의 첫 번째 사회생활인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부터 학교 급식에 이르기까지 보통 아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선택지를 받게 된다. 하지만 주저하는 알레르기 가족들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신뢰할 수 없는 무분별한 정보와 사회적 관심 부족이었다. --- p.284 |
|
소아 알레르기 자녀를 둔 가족의 좌충우돌 육아일기
우리 아이가 식품 알레르기라니… 모유를 떼고 이유식을 시작할 무렵부터 점점 거칠고 붉어지면서 진물까지 나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처음에는 식품 알레르기라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동네 병원에서부터 시작해서 종합 병원을 돌고 돌아 마지막으로 상급병원에서 최종 병명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식품 알레르기, 음식만 피하면 된다고? 사람들은 흔히 음식 알레르기가 있다고 하면 달걀이나 우유 등 일부 음식만 피하면 되는 간단한 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음식 자체를 제한하는 것 말고도 신경 쓰고, 감내해야 할 것들이 차고 넘쳤다.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없는 음식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고, 치료는 언제 시작하고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집밖으로 나와 외출했을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매 순간 고민해야 했다. 게다가 아이의 첫 번째 사회생활인 어린이집부터 학교 급식에 이르기까지 보통 아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하지만 알레르기보다 우리 가족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신뢰할 수 없는 정보와 사회적 관심 부족이었다. 누군가의 위로와 공감이 있다면… 그렇게 한 가족은 지긋지긋한 알레르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했다. 아이의 알레르기를 치료하고 돌보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손에 잡히는 대로 끌어당겼다. 그런 노력이 모이고 시간이 더해져 기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고스란히 책에 담았다. 걷다 보면 언젠가 끝에 다다르겠지만 혼자 걷기에는 너무나도 외로운 길이었다. 올해로 아이가 식품 알레르기 진단을 받은 지 10년이 되었다. 우리 가족에게는 참으로 힘든 10년이었다. 죽어도 지나가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을 보내고 지금 아이는 뽀얀 피부를 가진 초등학교 2학년의 어린이가 되었다. 매년 국가에서 시행하는 영유아 검진을 통해 평균적으로 잘 성장하고 있다는 결과도 받았고, 알레르기 3종 세트인 달걀, 우유, 밀가루부터 갑각류와 조개류, 땅콩 등 견과류를 거쳐 참치 같은 붉은 계열의 생선까지 이제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걷는 한 그냥 길일 뿐이다. 상비약은 지금도 챙겨 다니지만, 책가방을 보다 더 큰 도시락 가방은 이미 벗어 던진 지 오래되었고, 소망하던 뷔페 먹는 아이를 보는 꿈을 이루었다. 그리고 가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피자나 파스타를 먹거나 여행 중 맛집 탐방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식품 알레르기 사실을 부끄러워 않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며 배려받는 자존감 높은 아이로 성장하게 되었다. ‘비록 길이 험하고 어렵더라도 우리가 걷는 한 그 길은 그냥 길일 뿐이다.’ 이 말은 자석처럼 힘들 때마다 우리 가족을 다시 힘차게 끌어당기는 힘이 되었다.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알레르기와의 전쟁에서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걷다 보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는 것이다. 절대로 걸음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상상했던 모든 순간이 현실이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의 소중한 경험이 음식 알레르기라는 큰 절벽 앞에서 좌절하는 많은 부모에게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