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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름의 바람을 찾아
+ 30대의 나에게 미안하긴 싫어 + 좋은 집의 조건 + 불편해도 괜찮아 + 이러지 맙서 + 외로울 땐 한라산 야간등반 너른 들판의 낮은 돌담처럼 + 감귤 따던 초짜의 줄행랑 + 도민이세요? + 우리 아들이 서른아홉인데 + 잠수 타고 싶을 때 + 살자, 여기서, 살아보자 + 아름다운 곳에 널려 있는 슬픔들 + 무명천에 남겨진 고통 제주의 푸른 밤, 그 별 아래 + 곶자왈 트라우마 + 고사리에 취하다 + 와흘리의 그녀 + 가끔은 뺄셈 + 같이 살아볼래요? + 셰어하우스 ‘오월이네 집’ + 막무가내로 찾아온 ‘조남희’들 + 시골 마을에 산다는 것 + 따뜻했던 너의 온기 푸른 섬 길 위에 삶은 이어지고 + 대문이 무너진 날 + 그녀들의 엄마가 떴다 + 겨울 난로의 추억 + 가진 건 진심뿐이란 걸 + 이주민을 슬프게 하는 것들 + 낮게, 허리를 숙이는 마음 + 제주 것 다 됐네 + 밴드 ‘문제’ + 여기가 끝은 아니야 + 고마웠어, 나도 + 통시와 귤나무 + 텔레비전에 나왔는데 + 내가 가진 자유의 크기 에필로그 : 인생의 결론을 묻지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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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으로 볼 때 나는 안정적인 회사에서 적지 않은 연봉을 받으며 잘 살아가는 서울 여자였다. 하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홍대 부근 어느 술집에서 소주 한잔을 앞에 두고 똑같은 대사를 외치고 있었다.
“선배, 출근하기 싫어서 정말 미치겠어요.” 반복되는 생활 속에 그냥저냥 ‘살아지게’ 되리라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했다. 그 시간을 견디면 직급은 올라가고 연봉도 더 많아지겠지만 그렇게 40대를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30대의 나에게 미안하지 않겠느냐고, 후회는 없겠느냐고 스스로 물었을 때도 내 답은 분명했다. --- p.15-16 직장에 사표를 내고 무작정 내려온 제주에서 처음 두 달 동안은 대평리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냈다. 하지만 장기로 묵으면(이런 손님은 ‘장기수’로 불린다) 서울에서의 한 달 월세와 맞먹는 돈이 든다. 살 집을 구해야 했다. 어떤 집이 좋을까? 월급도 끊겼고 모아 놓은 돈도 많지 않았다. 내가 가진 ‘총알’을 따져본 뒤 마음속으로 정한 금액은 연세 100만~300만 원. 문제는 연세로 구할 수 있는 집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연세는 계약금이 적다 보니 현지 부동산에서도 거래를 잘 하지 않는다. 그런데 마침 연말에 계약이 끝나는 집이 한 곳 있다는 정보가 게스트하우스 주인 언니로부터 입수됐다. --- p.21 운동화를 빨다가 울어본 적이 있는지? 빈집에 돌아와서 토사를 치우느라 엉망이 된 신발을 빨다 말고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제주에서 또 하나의 섬이었다. 제주에서 살겠다고 다짐할 때 이미 예상했던 쓸쓸함이다. 하지만 막상 대면하니, 견디고 받아들이는 일이 버겁기도 하다. 아름다운 제주에 사는 건 무척 좋지만 홀로 눈물을 훔치는 외로움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 p.43 예상은 빗나갔다. 할머니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오셨다. 손에 한라봉을 들고, 떡을 들고. “우리 아들 언제 만날 거야?” “아, 할머니, 그게요…….” 정작 본인들은 제대로 얼굴 한번 마주하지도 못했는데 할머니의 아들 장가 보내기 프로젝트는 꾸준하고 성실하다. 결혼 생각이 아직 없으니 불발로 끝난다 해도 할머니의 좋은 말벗으로는 남고 싶은데, 어찌 해야 좋을까. 쾅쾅쾅, 오늘도 할머니의 문 두드리는 소리를 기다리는 밤이다. --- p.74 제주에서 집을 구하려면 무턱대고 빈집부터 보러 다니지 말고 어느 지역에 살고 싶은지, 어느 마을이 낫겠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단기간이라도 좋으니 그곳에 살면서 마을 어르신들과 안면을 트는 것도 좋다. 괜찮아 보이는 빈집을 찾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어떤 이웃이 사는지, 마을의 인심은 어떤지를 살펴야 한다. 체력에 자신이 있다면 동네 어르신에게 부탁해 며칠 밭일이라도 나가보길 권한다. ‘합격점’을 받는다면 마을에 숨겨진 빈집 목록이 줄줄이 나올지 모른다(주변에 이런 사람이 실제로 있었다). 더욱이 마을 사정에 밝은 어르신들이 문제 있는 집을 알아서 걸러줄 것이다. --- p.132 모두들 저마다 인생 산수를 하며 살 것이다. 나는 제주에서의 좋은 환경과 마음의 여유를 더하기 위해 도시에서의 안정된 직장과 수입, 편리한 생활을 뺐다. 물론 어느 것이 덧셈이고 어느 것이 뺄셈이 되는지는 지극히 개인의 선택이다. 그렇다 보니 제주에 살러 오겠다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특별히 들려줄 말이 뭐가 있겠나. 각자 자기 인생의 산수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나와 같은 산수를 해서 제주도에 내려온다 해도 모든 것이 덧셈이 되지는 않는다. 1년 살 집 한 칸 구하는 일도 쉽지 않고 외로움 같은 지독한 복병이 늘 도사리고 있으니 말이다. --- p.135 제주도에 아는 사람이 있지 않으면 연세로 내놓는 집이 어디 있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운 좋게 집을 구한다고 해도 육지와는 여러 가지로 다른 제주도의 생활에 지쳐 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 결국 몇 달이 되었든 우선 살아보고 스스로 판단을 내리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럼 어디서 살아보냐고? “나하고 삽시다!” --- p.137 “언니, 요강을 사야겠어요.” “언니, 여기 집게벌레 있어요.” 농가 주택을 임대해 몇 주에 걸쳐 공사를 마치고 방 네 칸짜리 집이 완성됐을 무렵, 여자 1호 유라가 들어왔다. 그녀를 기다린 것은 언제든 집을 나서면 만날 수 있는 제주의 막힘없는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만은 아니었다. 오래된 농가 주택이라 화장실이 집 밖에 있는 불편함, 집 뒤편 밭에서 날아드는 온갖 벌레들, 버스가 많지 않고 일찍 끊겨서 외출할 때마다 신경을 더 써야 하는 일 등등. 이 모든 것은 도시에서는 겪어보지 않은 생경한 불편함이다. --- p.149 겨울 추위를 대비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정작 우리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마을 이웃들이다. 대강 수습해놓았던 무너진 대문은 근처에서 공방을 하는 제주 토박이 어른이 자재비만 받고 멋지게 새로 달아주셨다. 대문이 단단하게 버티고 있으니 왠지 덜 추운 느낌이다. 이웃 어르신들이 갖다주신 달콤한 감귤도 훈훈함을 더한다. --- p.182 여자 3호 경희 언니의 어머니도 셰어하우스에 오셨다. 마을의 한 식당에서 어머니가 사주신 근고기를 배불리 먹은 다음 날, 경희 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갑자기 미안한데…… 나 내일 서울 올라가.” 경희 언니가 우리 집에 산 지 한 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언니는 우리 집에서 반년을 살 예정이었다. 우리 집이 마음에 들어서 집 앞 빈 창고에 국수집을 차릴 계획으로 부푼 꿈을 키우던 언니였다. 마침 주인집 할아버지와 5년 장기계약을 협의하던 중이었는데, 엄마에게 그 계획을 털어놓자마자 눈물로 호소를 하신 모양이었다. 황망히 짐을 싸는 언니를 떠나보내고 나는 며칠 헛헛한 마음에 시달렸다. --- p.174 “제주도 인맥은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가 연결돼. 그러니까 뭐든 조심해야 해. 사람들 체면을 세워주고 거기서 실리를 찾아야 해.” 육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체득한 눈치, 밀당(밀고 당기기), 체면치레, 협상 등 각종 인간관계론을 다 가져다가 잔뜩 ‘썰’을 풀고 있는 나. 답답해서 복장 터지는 내게 그녀는 강아지 같은 눈망울로 이렇게 말했다. “언니는 내가 못 보는 걸 보는구나. 어쨌든 그냥 천천히, 진심을 갖고 하면 될 거라 믿어요. 난 그것밖에는 가진 게 없으니까.” --- p.185-186 한라산소주를 앞에 두고 한창 달리던 어느 날 밤, 신원 오빠가 불쑥 제안을 했다. “밴드 하자.” 마이크라곤 노래방에서밖에 잡아본 적 없는 나랑 밴드를? 심지어 다룰 줄 아는 악기도 하나 없는데? 아, 그렇지만 밴드! 밴드라니! 이 얼마나 멋진 단어란 말인가. 노래방에서 노래 좀 한다는 소리는 들어봤기에 그만 “오케이”를 외쳐버렸다. --- p.206 제주의 가을이 다시 왔구나, 느끼며 차로 달리다 보니 새삼 처음 제주의 하늘과 바다에 푹 빠졌던 그 가을이 떠오른다. 제주는 이제 내가 처음 생각했던 그 제주가 아님을 안다. 가끔씩 팍팍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도 말없이 위로가 되어주는 것은 처음 발을 들인 그때나 지금이나 제주의 하늘과 바다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제주에서의 하루를 이어간다. --- p.242-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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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같이 살아볼래요?”
셰어하우스 ‘오월이네 집’으로 초대합니다! 한라산소주를 벗 삼아 외로움을 달래고, ‘무관심 농법’으로 세숫대야만 해진 브로콜리를 만나고, 이웃 할멍의 집요한 ‘아들 장가 보내기’ 프로젝트에 당황하기도 하고,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며 고양이 오월이, 구월이와 씩씩하게 살아가는 서울 촌년의 농가 주택 제주살이는 웃기고 슬픈 일상의 연속이다. 천천히 제주살이에 녹아든 지 1년 만에 작가는 또다시 멋진 시도에 나섰다. “제주에서 살고 싶다”며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내려오라”는 장밋빛 답변 대신 현실적인 체험을 선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두 달이라도 먼저 제주살이를 직접 경험해보고, ‘개념 있는’ 정착을 함께 모색하는 공간! 일명 셰어하우스! 방 하나씩 내어줄테니 일단 살아보고 결정하라는 뜻이다. 반복되는 무기력한 일상에 지쳤지만 새로운 도전과 떠남이 매번 두려운 당신, 에메랄드 빛 바다와 탁 트인 오름이 늘 그리운 당신, 감귤 따기와 고사리 꺾기에 취해보고 싶은 당신, 농가 주택과 벌레, 텃밭과 검질을 미리 경험해보고 싶은 당신이라면? 조남희가 들려주는 제주 생활기와 셰어하우스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인생의 결론을 앞서 묻지 말았으면 해.” 제주에서의 나의 삶이 더는 특별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정해진 답도 없는 것이 인생이니까. 30대, 젊은 그들은 왜 도시를 떠날까? 새로운 삶, 나만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 가고 있을까?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부러워할 만한 특별함이나 거창한 이유, 근사한 조건들이 있는지, 인생의 낙오자가 되어 있는 건 아닌지, 실패에 눈물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정작 떠난 자들은 묻는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무엇이냐고. 과연 그러한 것이 있기는 하냐고. “사납게 몰아치는 비바람을 정신없이 맞고 서 있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섬은 그냥 여기에 있었고, 나도 그냥 여기 잠시 있었을 뿐이라고.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 어디에 살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곳이 어디든 나는 길 위에 있고, 그 길 위에서 때로 울고 때로 웃으며 내가 가진 자유의 크기를 조금씩 늘려가려고 노력할 뿐이다.” (본문 242쪽) 작가 조남희는 말한다. 인생의 결론을 앞서 묻지 말아달라고.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삶의 변화란 단지 막연한 이상만으로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천천히 들여다볼 것, 그리고 포기하지 않도록 나를 지지해줄 좋은 이웃과 친구를 만들 것, 내 인생의 덧셈과 뺄셈을 찾을 것, 먹고사는 문제를 안정적으로 스스로 해결할 것(그래서 작가는 제주의 한 협동조합에 취직을 했다!), 밴드를 만들거나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는 등 재미있는 일을 여럿이 도모할 것! 이렇게 현실의 조건들을 꾸준히 조금씩 바꾸고 이것이 차근차근 쌓여 나를 지탱할 때 비로소 내가 가진 자유의 크기를 넓힐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