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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곁으로
임회숙
산지니 202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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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햇살 한 줌
그들 곁으로
Lucky
저 너머
밤산책
캔 이야기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2021년 동아대학교에서 「박경리 『토지』 창작방법론 연구」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의대학교 강의전담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현재는 동아대학교와 목포해양대학교에서 글쓰기와 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200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난쟁이의 꿈」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부산소설가협회 사무국장을 지냈고 현재는 부산작가회의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길 위에서 부산을 보다』, 『감천문화마을 산책』 등이 있으며, 『소설 부산』의 작가로 참여해 단편소설 「흔들리다」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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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125*205*13mm
ISBN13
9791168615540

책 속으로

좁은 틈으로 빛이 들기 시작하더니 어둑했던 실내가 환해졌다. 환해진 실내는 먼지로 자욱했다. 빛을 받은 먼지는 매캐하고 알싸한 냄새를 풍기며 코안을 간지럽혔다. 그러자 호흡이 흐트러지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곧이어 엇박자를 내던 들숨이 한 번의 날숨으로 쏟아져 나왔다.
--- p.9 「햇살 한 줌」 중에서

저곳의 바람을 맞을 수 있다면 살아갈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빨래를, 전선을, 나뭇가지를 흔들며 달려온 바람을 온몸으로 맞을 수 있다면 막힌 듯 갑갑한 가슴이 열리고 숨이 쉬어질 것 같았다. 품 안의 윤이 몸을 뒤척였다. 그래, 너도 저곳이라면 살아보고 싶다는 뜻일 테지. 바람은 TV 화면 안에서 쉬지 않고 불었다.
--- p.44 「그들 곁으로」 중에서

종섭이 놀라 눈을 떴을 땐 이미 사위가 어두워진 뒤였다. 잠시 눈을 붙이려 했던 것인데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벚꽃이 피기 시작했지만 기온은 찼다. 아침저녁으로는 코끝이 시릴 정도였다. 바람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불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태풍급의 강도로 골짜기를 흔들었다. 산에서 시작된 바람이 골을 타고 불어대는 통에 산벚꽃이 마른 종이처럼 흩날렸다.
--- p.75 「Lucky」 중에서

종숙이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 줄 때 분순은 흙 속에서 불상을 파내던 그때로 가 있었다. 낡고 볼품없는 불상이었지만 그것을 발견했던 순간 분순은 소중한 무엇이 생긴 것 같아 흐뭇했다. 분순은 묵은 흙을 털어낸 불상 위로 햇살이 쏟아지던 순간과 머리를 누르던 항아리 무게까지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 p.111 「저 너머」 중에서

그‘오늘부터’를 쓰다 말고 ‘그립습니다’를 쓸까 망설이다 ‘오늘부터’를 먼저 마무리하기로 했다. 늘 죽은 사람을 기리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죽음이란 미리 대비할 수도, 뒤로 미룰 수도 없는 시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인의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아침마다 추념 문구를 써 왔다. 하지만 오늘은 죽음의 시간을 잠시 미루고 싶어졌다. ‘오늘부터’라는 글자가 품고 있는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글자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 p.136 「밤산책」 중에서

캔의 할아버지는 잠시 말을 멈춘 채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죽는다는 건 잊힌다는 뜻이었다. 죽어 잊힌 자들이 산 자를 살게 한 것이라는 할아버지의 말은 모순처럼 들렸다. 그렇다면 살아 있지만 잊힌 인디언은 어떤 존재일까. 세상은 억압과 차별에 맞서 싸워온 흑인들의 삶을 기억했다. 그리고 그들은 흑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보호구역 안에서 삶을 이어가는 인디언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캔은 가끔 기억된 채 삶을 이어가고 있는 흑인의 후손들이 부러웠다.

--- p.180 「캔 이야기」 중에서

출판사 리뷰

서로에게 건네는 작은 연대의 순간들

표제작 「그들 곁으로」에서 보육원에서 자라 미혼모가 된 수진은 임대주택을 전전하다 바닷가 마을에 자리 잡는다. 주인집 여자가 일하는 동안 아이를 돌봐주겠다고 말하자, 수진은 직장을 구하며 삶의 의지를 다진다. 어느 날, 아픈 아이를 맡기고 출근한 수진은 아이가 걱정되어 일찍 퇴근한다. 그런데 아이가 혼자 남겨져 있었다. 배신감을 느끼던 수진은 그날 밤 주인집 여자로부터 시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고, 연락처가 없어 알리지 못했다는 말을 듣는다. 주인집 여자는 자신이 잘하는 게 없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불안하다고 털어놓는다. 수진은 그녀를 위로하고 두 사람 사이에는 이해와 연민이 싹튼다.

「한 줄기의 햇살」에서 현수의 아버지는 빛이 들지 않는 집이 동생을 열여섯 살에 천식으로 죽게 만들었고, 현수의 고관절을 부정교합으로 붙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아버지는 공사 현장에서 일하며 창문을 내야 한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현수는 아버지와 더는 함께 일하지 않지만 공사 중인 집에 무리를 해서라도 천창을 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상처를 가진 이들이 서로를 향해 건네는 사소한 행동이 고립을 끊고 연대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불안정한 삶 속에서 자신을 다시 바라보다

「Lucky」의 종섭은 집 앞으로 다가온 산불을 보며 과거 철거 농성장의 불길을 떠올린다. 떠돌던 삶의 끝에 겨우 마련한 집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는 필사적으로 집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캔 이야기」의 인디언 캔은 자신을 미국에 수입된 한국산 바위다람쥐에 비유한다. ‘사막에 던져진 나바호족’이나 ‘한국이 아닌 곳에 던져진 바위다람쥐’는 모두 기억되지 않는 존재이다. 도토리를 구할 수 없어 사람들이 던져주는 초콜릿을 받아먹는 바위다람쥐처럼,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는 자신 역시 스스로 살아갈 힘을 잃은 존재가 아닌지 자문한다. 두 편의 소설은 삶의 기반을 잃은 인물들이 자신의 존재를 재인식하는 과정을 그린다. 터전을 갖지 못한 삶은 위태롭고 흔들리지만, 오히려 그 경계에서 자신의 생을 가장 선명하게 이해한다.

기억과 관계가 뒤늦게 의미를 되찾는 순간

「저 너머」는 임종을 앞둔 분순이 막내아들 종길을 기다리며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남편의 추락사, 빨치산의 방문, 종길의 신체적 특징 같은 굵직한 기억들을 한 겹씩 떠올리며 자신에게 닥쳤던 불운들이 완전한 불행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 순간 분순은 비로소 자신의 삶 전체를 온전히 받아들인다.

「밤산책」에서는 꽃도매시장에서 추념 문구를 쓰는 화자가 ‘오늘부터,,,1’이라는 의뢰 문구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의뢰인은 오래전 100개의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던 펜팔 상대가 민주화운동으로 복역 중이었단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를 찾은 의뢰인은 이제 그가 입원한 병원으로 100개의 꽃다발을 보낼 예정이라 고백한다. 기억과 관계가 뒤늦게 새로운 의미를 찾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다시 이해하게 된다. 기억을 통한 재해석과 관계 회복은 과거와의 화해이자 현재를 살아갈 힘을 되찾는 계기가 된다.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고립과 결핍 속에서도 연대, 자기 이해, 기억 회복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임회숙의 서사는 거창한 기적 대신 삶의 균열 사이에서 피어나는 작고 단단한 변화를 비춘다. 그리고 그 변화는 다른 사람의 존재와 나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된다. 『그들 곁으로』는 이 과정을 가장 조용하면서도 뚜렷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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