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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제1부 서론 제1장 한국고대 사회사상사의 연구 방법론 1. 한국고대사 관계 자료의 성격 2. 한국고대 사상사 연구의 성과 3. 사회사상사 연구 방법의 모색 4. 한국고대 사회사상사의 정립 제2장 한국고대 사회문화사론 1. 한국고대의 국가 발달과 삼국 2. 한국고대의 정치·사회 변천 3. 한국고대의 문화 발달 제2부 한국고대의 문화의식과 종교신앙 제1장 한국고대의 문화의식 1. 한국고대의 국가체제 정비와 문화 복합 2. 삼국문화의 공통적 기반과 특성 3. 한국고대의 국가의식 성립과 국사 편찬 제2장 한국고대의 지모신신앙 유풍과 여성 1. 여사제 유풍과 지모신신앙 2. 지모신의 생육과 한국고대의 관음신앙 3. 한국고대의 효 강조와 유교적 여성 덕목 요구 제3장 한국고대의 토착신앙과 불교 1. 한국고대의 토착신앙 2. 초기 불교의 성격 3. 삼국의 이론불교사상 제3부 한국고대의 연맹왕국 사회와 제의 제1장 삼한시대의 읍락과 그 성격 1. 삼한시대 읍락의 실체 2. 삼한의 읍락 구조 3. 삼한시대 읍락 내의 계층 분화 4. 삼한 읍락 사회의 성격 제2장 마한 소연맹국 사회와 귀신신앙 1. 마한의 소연맹국과 연맹왕권 2. 마한 종교사회의 발전 3. 마한 연맹왕국의 출현과 그 성격 제3장 부여 연맹왕국의 등장과 제천의례 1. 부여 연맹왕국의 성립 2. 부여 연맹왕실의 중앙집권체제 3. 부여의 건국신화와 제천의례 제4부 고구려의 중앙집권적 귀족국가체제와 삼론사상 제1장 동맹제의를 통해 본 고구려의 조상신신앙 1. 고구려의 조상신신앙 2. 고구려 동맹제의의 체계화 의미 제2장 고구려초기의 패자와 국가체제 1. 고구려초기의 관직 2. 고구려의 패자 설치와 운영 3. 패자의 소멸과 고구려 국가체제의 변화 제3장 고구려 소수림왕대의 체제 정비와 삼론사상 1. 고구려 소수림왕대의 체제 정비 2. 고구려 소수림왕대의 국가불교와 삼론사상 제5부 백제의 왕권중심 귀족국가 성립과 계율신앙 제1장 백제의 건국신화를 통해 본 조상숭배신앙 1. 한성시대 백제의 건국신화 속 영웅전승적 모습 2. 건국신화에 비친 백제의 조상숭배신앙 3. 주변 국가의 조상숭배신앙과의 차이 제2장 백제의 국가 형성과 지배층 변천 1. 백제의 국가 형성과 마한 2. 백제의 국호와 지배층 변천 제3장 백제 침류왕대의 체제 정비와 계율신앙 1. 백제 침류왕대의 체제 정비 2. 백제 침류왕대의 불교 공인과 계율사상 제6부 신라의 귀족연합 국가체제와 불교 대중화 제1장 신라 6촌장신화의 모습과 그 의미 1. 신라 건국신화 속의 6촌장신화 2. 신라 6촌장신화의 신앙 모습 3. 6촌장신화가 알려 주는 신라의 사회상 제2장 신라 법흥왕대의 국가체제 정비와 귀족연합 1. 신라 내물왕대의 김씨 왕실 세습 2. 신라 귀족연합 정권의 등장과 법흥왕 3. 신라 법흥왕대의 중앙집권적 귀족국가 정비 4. 신라 법흥왕대의 율령 운영 제3장 신라 불교의 대중화와 이론체계 성립 1. 신라 귀족불교의 성립 2. 신라 불교의 대중화와 정토신앙 3. 관음신앙과 신라 이론불교의 정착 제7부 결론 1. 한국고대 사회사상사 전개와 제천의례의 성립 2. 삼국의 중앙집권적 귀족국가체제 정비와 국가불교 참고문헌 찾아보기 |
金杜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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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맹왕국 내에는 부족을 이룬 다소의 성읍국가나 읍락공동체가 흡수되어 있다. 그들은 모두 조상신祖上神신앙을 가졌다. 그중 우세 부족인 연맹왕 부족이 중심이 되어 선민選民사상을 체계화한 시조신앙이 개국신화로 나타났다. 단군신화는 고조선 성읍국가가 연맹왕국으로 형성되었던 시기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그것을 구성하는 두 요소는 토템신앙과 우세 부족 중심의 선민사상이다. 토템신앙은 대개 신석기시대 이래의 씨족공동체 생활에서 나온 사유 방식이다.
--- p.101 「제2부 한국고대의 문화의식과 종교신앙」 중에서 한국고대 사회에는 지모신신앙이나 여사제의 유풍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토착 부족의 조상신을 받드는 지신족신앙은 농경이 정착되면서 지모신신앙으로 나타났다. 여사제가 지모신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다. 국가불교가 성행하는 속에 지모신신앙은 관음신앙과 연결되었고, 불교사원에서 여성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삼국시대 말이나 통일신라시대에 합리적 유교사상을 수용하면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낮아졌지만, 유교적 정치이념이 더 확고해진 고려나 조선 시대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높았다. --- p.166 「제2부 한국고대의 문화의식과 종교신앙」 중에서 초기 불교는 정복국가 이념에 합당하였다. 진흥왕 때의 거칠부居柒夫는 장군이 되기 이전에 승려였다. 일찍이 고구려에 갔을 때 승려 혜량惠亮이 그를 알아보고 부탁하기를, 장차 장수가 되어 병정을 이끌고 왔을 때는 나를 해치지 말라고 하였다. 불교와 정복왕조의 이념이 상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절을 창건하거나 원광이 걸사표乞師表를 작성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생각할 수 있다. 왕실은 불교를 받아들이고 중앙집권적 귀족국가를 성립시키면서 정복국가체제를 갖추어 갔다. (중략) 중앙집권적 귀족국가가 성립하면서 전제왕실은 이전 성읍국가나 연맹왕국의 부족장이었던 귀족보다 우월한 관념을 가지려 하였고, 이런 구미에 맞는 것이 왕즉불王卽佛신앙을 내세우는 불교였다. 당시 전제왕실이 중앙집권적 귀족국가체제를 정비하면서 각 부족을 통합하는 데 불교가 필요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법法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불교가 부족과 부족 사이의 통합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 p.184 「제2부 한국고대의 문화의식과 종교신앙」 중에서 소도신앙 역시 역사의 보편적 발전 방향에서 이해해야 한다. 마한 소연맹국 사회에서 영위한 소도신앙은 연맹왕국 사회로 이행하면서 의당히 제천의례祭天儀禮로 정립되어 갔다. 그러므로 마한 사회를 비슷한 시기의 고구려나 부여 및 변·진한 사회와 비교하여 소연맹국에서 연맹왕국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소도신앙을 밝히기 위해 중요하다. 읍락은 부락제部落祭를 행하였다. 부락공동체가 분해되어 소연맹국을 거쳐 연맹왕국으로 성장해 가면서 부락제는 점점 국가제의로 발전하여 제천의례로 성립된다. --- p.259 「제3부 한국고대의 연맹왕국 사회와 제의」 중에서 연맹왕국체제가 정립하면서 영웅전승적 건국신화가 등장하는데, 부여 건국신화는 그 효시를 이루었고 주몽신화인 고구려 건국신화가 그 전형적인 모습으로 형성되었다. 연맹왕국의 권역이 확대됨으로써 부여 건국신화는 복잡한 구조를 지녀, 결국에는 사실상 고구려 건국신화로 정착하였다. 『후한서』에는 색리국 개국신화가 부여 건국신화로 기록되었지만, 『삼국지』에는 고리국 개국신화가 부여전 끝에 부록으로 실려 있다. 곧 부여 건국신화에서 점차 벗어나는 인상을 준다. 색리국 개국신화는 처음 부여 건국신화로 등장하였지만 점차 고구려 건국신화로 정착되었던 사실을 추측하게 한다. --- p.288-289 「제3부 한국고대의 연맹왕국 사회와 제의」 중에서 성읍국가나 소연맹국의 지배자들을 귀족으로 편성되면서 중앙집권적 귀족국가체제가 이루어졌다. 행정구역으로 편입됨과 동시에 지방 군현은 중앙 군사제도의 설비와 동시에 정비되었다. 읍락이나 소국 영역을 주현으로 설정하면서 그 지배자의 군사력을 흡수하여 전국적인 군사조직이 갖추어졌다. 이런 국가체제 정비 모습은 삼국 등 고대사회에 공통으로 나타난다. 소수림왕대의 율령 반포는 중앙집권적 귀족국가체제의 완비를 의미한다. 고구려 왕실은 왕비족과 연합한 귀족연합 정권을 이루면서 여타의 귀족 세력을 누르고 왕권을 전제화하였다. 마치 신라 법흥왕대에 박씨 왕비족의 등장으로 귀족연합 정권이 들어서는 것과 비교된다. --- p.352 「제4부 고구려의 중앙집권적 귀족국가체제와 삼론사상」 중에서 고구려 국가불교에서 전륜성왕신앙은 미륵 이상세계의 건설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강한 정복 군주의 모습을 보여 준다. 요동성遼東城 육왕탑育王塔을 건립한 고구려 성왕聖王이 전륜성왕을 표방하였는데, 광개토대왕이라고 추정한다. 육왕탑은 아육왕阿育王이 통일한 염부제주閻浮提洲의 곳곳에 세운 탑 중의 하나라고 한다. 정복 군주로서의 전륜성왕을 강하게 표방한 셈이다. 고구려 국가불교는 왕실이나 귀족의 이해에 모두 부응하는데 신이神異신앙을 곁들인 윤회전생신앙을 포용하면서도 미륵신앙을 크게 부각하기보다 석가문불이나 전륜성왕신앙을 표방하였다. 그리하여 왕즉불신앙을 유지한 귀족불교가 이루어졌다. --- p.362-363 「제4부 고구려의 중앙집권적 귀족국가체제와 삼론사상」 중에서 백제초기 토착 부족의 조상신신앙은 토템 혈연의식의 흔적을 덜 보이는 신라 토착 부족의 조상신신앙보다 더 원초적이면서 투박한 모습을 간직하였다. 그러나 백제 토착 부족의 조상신들은 건국신화나 국가적 제사조직 속에 체계화되지 못하였다. 백제 건국신화 중 지신족 계통의 시조전승이 구체성을 띠지 못하면서 변질하거나 탈락할 수밖에 없었다.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백제초기 사회에 확고한 지역적 기반을 갖춘 토착 세력의 뿌리가 약하거나 적어도 백제를 대변할 수 있는 상징적 토착 부족 세력이 설정되지 않아 백제 건국신화 중 지신족 시조전승의 존재가 뚜렷하지 않다. --- p.399 「제5부 백제의 왕권중심 귀족국가 성립과 계율신앙」 중에서 백제에서는 연맹왕국 성립 이래 토착 부족인 귀족보다 연맹왕실의 세력이 강하였다. 율령 반포로 중앙집권적 귀족국가가 성립하였지만, 실제로 왕비족 세력이 약하여 귀족연합 정권을 이루지 못하였다. 한성시대에 해씨解氏와 진씨眞氏가 나오지만, 백제 왕비족에 대해서는 『삼국사기』 등 역사서에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근초왕대에 백제 건국신화가 정착되었는데 그 속에 빠져나간 지신계地神系 시조전승은 미미한 왕비족 존재를 생각하게 한다. --- p.440-441 「제5부 백제의 왕권중심 귀족국가 성립과 계율신앙」 중에서 신라 6촌장신화는 천강신화의 모습을 가졌고, 초기에는 성읍국가의 개국신화로 형성되었다. 6촌장신화가 개국신화로 성립하였을 때는 주위의 많은 성읍국가도 각자의 시조전승을 기반으로 개국신화를 갖추었다. 연맹왕국이 성립하면서 연맹왕실의 시조전승을 중심으로 한 개국신화가 주위 소국의 개국신화나 시조전승을 흡수하였다. 중앙집권적 귀족국가체제에 부응하여 제천의례가 갖추어지고 건국신화가 정착하면서 불교가 공인되었다. 신라 건국신화에서는 주몽신화나 온조신화와 같은 영웅전승신화를 찾기는 어렵지만, 탈해신화가 영웅전승신화라고 생각한다. 신라 건국신화는 사로국 개국신화를 중심으로 이웃의 많은 개국신화나 시조전승을 흡수하여 이루어졌지만, 영웅전승적 성격을 넘어선 신성족神聖族신화로 나타났다. --- p.463-464 「제6부 신라의 귀족연합 국가체제와 불교 대중화」 중에서 신라 6부 중 한기부는 천신과 지신에 대해 모두 제사할 정도로 연맹왕국에 가까운 국가체제를 갖춘 상태에서 사로국에 편입되었다. 나머지 5부는 한기부보다 못한 국가체제를 형성한 상태에서 사로국에 흡수되었다. 편입될 당시에 그들은 확실한 소연맹국 단계에서 소도신앙을 영위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6촌장신화가 신라 건국신화 속에 포함되어 그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6촌 각각이 성립시킨 소연맹국도 사로국 내에서 별읍別邑을 이루고 소도신앙을 고수하였다. 소연맹국을 이룬 6촌 사회 내에는 국읍과 함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소수의 별읍이 있었다. --- p.474 「제6부 신라의 귀족연합 국가체제와 불교 대중화」 중에서 고구려나 백제와 마찬가지로 신라의 불교 공인도 중앙집권적 귀족국가체제의 성립과 연관하여 이루어졌다. 다만 신라의 중앙집권적 귀족국가는 고구려나 백제와 비교하여 귀족 세력의 기반이 강함으로써 귀족연합 정권을 이루었다는 면에서 차이를 가졌다. 법흥왕 18년(531년)에 귀족 세력을 대변하는 상대등上大等 설치는 귀족연합 정권을 정착시켰으며, 그 결과 쉽게 불교를 공인할 수 있었다. 귀족회의(화백회의和白會議)를 조정할 수 있는 상대등은 왕권의 전제화를 도우면서도, 귀족 세력이 왕권에 상당한 제약을 가할 수 있게 하였다. 다만 법흥왕대 귀족연합 정권 내에서 강화된 왕권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알려 주는 중앙 관부가 실제로 다양하게 정비되지는 않았다. --- p.504 「제6부 신라의 귀족연합 국가체제와 불교 대중화」 중에서 이론불교의 원융사상, 특히 성기론적 화엄사상 성립과 불교 대중화는 무열왕대의 전제주의와 짝하여 이루어졌다. 당시 왕실이 서민 대중을 등에 업고 진골귀족 세력을 억압함으로써 전제왕권을 성립시켰다. 공인 이후 귀족불교에서는 귀족연합 국가체제에 부응하여 전륜성왕과 미륵 또는 석가와 미륵신앙이 조화를 이루었다. 법흥왕대 율령 반포 후 미륵신앙이 유행하였다. 신라중고기를 거치면서 왕실은 전륜성왕보다 석가나 제석신앙을 선호하였다. 진평왕대나 진덕여왕대의 국가체제 정비를 통해 전제왕권이 강화되어 갔기 때문이다. --- p.540 「제6부 신라의 귀족연합 국가체제와 불교 대중화」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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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 사회사상사 연구 방향
한국고대 사상사 연구의 가장 중요한 분야는 불교사상사이다. 한국고대 불교사상사 연구는 불교학자들에 의해 개척되었고, 역사학자들이 참가하면서 사회사상사로 심화되었다. 초기 불교학자들의 연구는 역사학적으로 접근하지 않아 불교사상이 당대 사회에서 갖는 독특한 의미를 부각시키지 못하였다. 불교사상이 당대 사회와 어떻게 연관되었느냐에 대한 관심은 역사학자들의 불교사상사 연구에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삼국시대 초기 토착 무교巫敎신앙 사회에 전래되어 수용된 불교가 철학적 논리체계를 구축하면서 불교사상이 한국고대의 정치·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고대 불교사상사는 고려나 조선시대보다 더 많이 연구되었고, 그 성과는 우리 민족의 문화 전통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불교가 수용되는 사회 기반에 관심을 가지면서 무교 사회의 토착신앙이나 제의祭儀 연구도 이루어졌다. 역사학자들은 한국고대의 건국신화나 토착신앙을 성읍국가에서 연맹왕국을 거쳐 중앙집권적 귀족국가로 정비되는 국가체제와의 관계에서 파악하였다. 특히 정치사 관점에서 시조묘始祖廟나 신궁神宮 및 종묘宗廟를 고찰하고 국가제의의 운영을 국가 통치 원리에서 검토하였다. 토착신앙을 통해 역사학자들은 무불巫佛관계사를 추구하는가 하면, 정치사회사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려 하였다. 또한 한국고대 제도사나 사회사 연구자들이 사상에 관심을 두면서 사회사상사 연구를 시도하였다. 저자는 한국고대 사회사상사의 정립은 민족사의 시대정신(특정 사회에 포용된 사상의 여러 사실적 모습이 모여 관념이나 이념을 형성시킨 것)을 비로소 성립시키고, 민족문화의 전승과 창달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런 목적의식을 반영한 저자의 한국고대사상사 연구를 집대성한 것이다. 한국고대의 신앙·사상과 정치·사회 변화의 관계 불교 수용 이전의 토착신앙 중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 무교(무격巫覡)신앙이다. 무교신앙은 제정일치 시대의 윤리가 체계를 이루면서 형성된 것이고, 무당은 부족공동체의 기반을 가진 부족장이었으며 제사장 기능을 가졌다. 부족장들은 시조신인 천신天神이나 지신地神 또는 수신水神 등을 독자적으로 숭배하였다. 연맹왕국이 성립되면서 부족장들은 연맹왕 아래의 신하(귀족)로 편제되었지만, 독자의 부족적 기반을 그대로 가졌으며 각자의 조상신에 대해 제사를 지냈다. 무교신앙은 연맹왕국이 성립하기까지 부족장의 윤리로서 유지될 수 있었지만, 중앙집권적 귀족국가가 성립한 후 왕실 중심의 강력한 전제왕권의 이념으로서는 부족하였다. 왕실이 부족장들을 중앙귀족으로 편제하면서 불교가 한국 고대문화를 건설하는 바탕이 되었다. 잡다한 신앙체계나 권역으로 나뉘어 있던 무교를 대신한 불교의 보편적 원리는 삼국시대의 정신문화를 통합하여 이전보다 높은 철학적 차원으로 승화되었다. 중앙집권적 귀족국가로 성립하면서 전제 왕실은 이전 성읍국가나 연맹왕국의 부족장이었던 귀족보다 우월한 관념을 가지려 하였고, 그런 구미에 맞는 것이 왕즉불王卽佛신앙을 내세우는 불교였다. 반면 귀족들은 불교 공인을 반대하였다. 그들은 무교신앙을 계속 포용함으로써 왕과는 같은 사제로서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귀족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힌 불교가 공인되는 데에는 왕실과 귀족 세력 사이에 일정한 타협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왕실과 토착귀족이 비슷한 세력을 형성한 고구려가 중앙집권적 귀족국가를 이루었다면, 왕실 세력이 강한 백제는 왕권중심 귀족국가체제를 갖추었으며, 토착귀족 세력이 강한 신라는 귀족연합 국가체제를 정비하였다. 국가체제 정비를 수반한 종교신앙은 융섭적 성향을 지니며, 귀족연합국가를 이룬 신라는 삼국통일을 완수하여 원융한 민족문화를 성립시켰다. 이 책의 구성 이 책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고 5개 부로 구성하였다. 제2부 「한국고대의 문화의식과 종교신앙」에서는 한국고대의 사회사상사 연구 방법론을 비롯해 사회와 종교신앙이 전개되는 사론史論과 문화복합 과정을 다루었다. 제3부 「한국고대의 연맹왕국 사회와 제의」에서는 연맹왕국시대인 삼한과 부여의 조상숭배신앙과 제의에 수반한 사회 체제를 밝혔다. 제4부 「고구려의 중앙집권적 귀족국가체제와 삼론사상」, 제5부 「백제의 왕권중심 귀족국가 성립과 계율신앙」, 제6부 「신라의 귀족연합 국가체제와 불교 대중화」에서는 각각 고구려, 백제, 신라의 종교신앙에 따른 국가체제 정비 과정을 서술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