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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미국 북동부, 워싱턴DC, 버지니아주, 메릴랜드주 지도 1부 사랑꾼 주한미군 제프 붉고 푸른 청춘 이야기 첫사랑, 세상이 온통 빛나던 계절 어느 봄날 밤, 월든 호수의 풀벌레 소리 중요한 건 타이밍이야 소설처럼 다가온 운명의 장난 벚꽃 휘날리던 날, 재스민의 향기 비로소 의미를 알게 된 어린 시절의 가난 우리에게도 좋은 날이 오겠지? 아니, 올 거야! 미국 와서 마주친 아버지의 무기력 군대 가기 너무 이른 열일곱 살이었지만 아버지에게 보낸 첫 월급 미군 생활 중에 겪은 두 번의 주먹다짐 양미리 반찬과 바꾼 리바이스 양털 청재킷 데릴사위가 될 수는 없다 어머니의 반대로 실패한 첫 번째 연애 어머니에게 선물한 차마 버릴 수 없었던 반지 흑목련 여인에게 바친 열두 송이 분홍 장미 흑인 사회 속 한인 이민자의 눈물겨운 노력 주유소 털이 권총강도 신고 포상금 위기에 몰린 동네 양아치와의 대결 택시 드라이버, 워싱턴DC 뒷골목에서 잭나이프와 맞서다 2부 워싱턴DC의 경찰관 제프 속절없는 어느 계절의 이야기 택시 드라이버에서 알링턴 보안관으로 6킬로미터 눈길을 헤치고 들은 말, 두셋 다람 알링턴 보안관에서 워싱턴DC 경찰관으로 차이나 갱단 소굴에 언더커버로 잠입하다 모든 영웅은 죽었다 에이즈에 희생된 나의 파트너 스콧 삶과 죽음을 가르는 다리 위에서 영웅을 보여주면 비극을 보여주겠노라 주머니 속 케네디 은화에 담긴 빛바랜 슬픔 책상 속에 잠든 아버지의 브레게 모래시계는 저절로 뒤집어지지 않는다 자살의 순간에 떠오른 그 아버지의 말, 못난 놈 감옥에서 올려다본 크리스마스의 함박눈 3부 알링턴의 세탁 사업가 제프 뚜벅뚜벅 걷는 인생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 첫 와이프와의 이혼, 일과 사랑의 아이러니 잘못 탄 버스에서는 내려서 다음 버스를 기다리자 부업에서 본업으로 바뀐 세탁 사업 제프의 세탁업 노하우, 차곡차곡 돈을 벌다 사랑하는 타이밍은 바로 지금이다 모든 아내는 명품이며 진품이다 이제야 알게 된 여성들에게 빚 진 나의 삶 아내는 천재인 것이 분명하다 한인세탁협회장으로서 본 세탁업계 현실 유대인들의 사업 영역을 이은 한인 사업가들의 생명력 워싱턴DC에 내 땅 한 조각 얻기 위해 CDL 트럭운전학교를 시작하며 당신에게는 수면 아래 잠수함처럼 잠재력이 있다 내 심정을 대변했던 나의 18번 변천사 바둑과 인생을 이끌어 낸 신의 한 수 나가며 |
Jeff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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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쪽으로 대로의 중앙선 노란 두 줄을 밟으며 걸어오던 긴 코트를 입은 용의자가 포어 경관을 향해 산탄총(Double Barrel Shotgun)을 정조준하며 총을 쏘았다. 그가 탄 경찰차의 사이드 미러(Side Miror)가 박살이 나면서 공중에 파편이 날았다. 범인의 총구에서 흰 연기가 나오는 사이에 그는 다시 여유 있는 동작으로 탄알을 재장전했다. 영화에서 익히 보던 장면이었다.
머리털이 쭈뼛 솟고 심장은 가슴 밖으로 이미 나온 상태였다. 나는 권총 글록19(Glock19)를 오른손에 거머쥔 채 왼손으로는 나를 향해 달려오는 아이들을 경찰차 뒤로 피신시켰다. 포어 경관이 차 문 뒤에 숨어 나를 쳐다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 포어 경관은 좌우로 30여 미터 간격에 있었고 범인은 우리 앞 60여 미터 정도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범인은 산탄총에 탄알을 장전한 후 노란 중앙선 라인을 걸으며 좌우로 대치한 우리를 향해 총알을 한발씩 쏘아댔다. 고막을 찢는 듯한 총성에 내 차 뒤에 숨어있던 아이들은 괴성을 지르며 공포에 떨었다. 영화에서 총을 한 방 맞은 사람이 곧바로 쓰러지는 장면이 얼마나 새빨간 거짓말인지 알게 되었다. 나와 포어 경관이 쏜 탄알에 맞은 그의 가슴에서 작은 연기가 피어오름에도 불구하고 범인은 쓰러지거나 멈추지 않았다. 혹시 방탄조끼를 착용했나 싶어서 무릎 부위를 쏘기도 했다. 결국 범인은 검은 아스팔트 위로 쓰러졌다. 이 모든 과정이 단 1,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은 〈Alice in Wonderland〉에서 ‘순간이 얼마나 긴가?’라는 질문에 ‘영원’하다고 말했다. 죽고 사는 것은 순간인 동시에 영원한 것이다. 범인의 손에서 총을 걷어낸 후 그의 목에 손을 대어 생사를 확인했다. 그의 눈동자에서 마지막 빛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옆에 서 있던 포어에게 “괜찮아?”라고 물으니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파편에 맞은 오른쪽 이마에서 가느다란 핏물이 흐르고 있었고 목줄기까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그의 이마를 가리키자 포어 경관은 “It‘s nothing(아무렇지 않아요).”라며 손으로 피를 훔쳤다. 그렇게 정신없이 현장 수습을 하는 사이에 육중한 체구의 여인이 모여든 사람들의 말리는 손을 뿌리치며 도로에 누워 있는 범인에게로 달려왔다. 그녀는 바닥에 엎드려 오열했다. 죽은 자의 어머니였다. “니가 내 새낄 죽였구나.” 방망이질을 하듯 몇 번이고 내 가슴을 내려치던 그녀의 주먹이 왜 아프지 않았을까? 그렇게 여러 번 되풀이하던 손에서 점차 힘이 빠져나간 그녀는 내 품에 기대어 울었다. “마약하기 전까지는 착했던 아이였어.” ------------------------------------- 은행 뒷문 쪽에 도착했을 때는 범인 한 명은 아직 은행 내에, 다른 한 명은 도주 차량에, 또 한 명은 은행 입구에서 망을 보고 있었는데 나와 맞닥뜨린 것이었다. 6연발 38구경 스미스앤웨슨 리볼버(Smith and Wesson Revolver)를 뽑아든 나를 보자 차에 있던 범인이 동료들을 버리고 혼자 달아나 버렸다. 급히 무전기로 차량을 동료들에게 알리는데 은행 입구에서 망을 보던 녀석이 당황하며 말로가구(Marlo Furniture) 상점 쪽으로 달아났다. 그 역시 검은 리볼버 권총을 들고 있었다.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문 앞에서 도주용 차를 찾고 있는 순간 뒤에서 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경찰이다. 총을 놔.” 범죄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녀석은 내 명령에 전혀 개의치 않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도망자의 발은 추적자의 발보다 빠르다. “거기 있는 거 안다.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천천히 나와라.” 내가 소리쳤는데 거의 동시에 범인이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며 그의 장총이 불을 뿜었다. 당신은 총을 맞아본 경험이 있는가? 화상을 입는 기분이었다. 오른쪽 무릎이 뜨끈했다. 반자동적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방아쇠를 당겼지만 녀석은 구부러진 골목 귀퉁이를 돌고 난 후였다. 그러나 그가 골목 끝에서 마주친 것은 자유가 아닌 나의 용감한 동료들이었고 다리를 절면서 뒤따라간 나는 결국 현장에서 범인을 체포했다. 나는 근무 중에 모두 세 번 병원 신세를 졌는데 이 사건이 그중 첫 번째였고, 그나마 가장 경미한 부상이었다. 범인 세 명은 모두 체포되었고 그들은 법원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3개월 후 나는 동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경찰국장 최고 훈장을 받았다. 2개월 후에는 포상금 수표가 도착했다며 서장이 내게 건네주었다. 포상금 액수를 본 선배 힐레개스는 내 어깨를 툭 치면서 “영웅이 되면 안 된다고 말했잖아.” 하며 복도를 걸어갔다. 당시 정부로부터 받았던 포상금은 38달러50센트였다. ------------------------------------- 한 손으로 방어를 했지만 아버지의 편견에 찌든 분노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얻어맞는 것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아버지의 비이성적인 폭력도 마음 아팠지만, 크게 당황하는 재스민의 낙심에 더 크게 내 마음이 부서졌다. 그런데 아버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재스민의 머리 위로도 빗자루 세례를 퍼부었다. 당황을 넘어 황당한 순간이었다. 그냥 죽고 싶었다. 나는 분노가 치밀어 아버지 손에 든 빗자루를 빼앗으려 했다. 아버지 역시 순순히 빗자루를 내줄 마음이 없었다. 나는 재스민의 손목을 거머쥐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항상 순수하고 맑은 재스민의 눈동자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둑이 무너지듯 넘쳐흘렀다. 그녀는 온통 얼굴이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채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 처절했다. “제프, 내가 피부를 탈색할게. 나 한국 여자 될게.” 복받치는 감정에 그녀의 어깨는 좌우로 비틀댔고 그러는 그녀 몸을 강하게 부둥켜안고 같이 울었다. 수치심과 분노, 미안함과 자괴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특히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며칠을 차에서 잘 수밖에 없었다. = 중략 = 세월이 제법 흘러 그녀와 이별한 지 10년이 지난 1991년. 나는 이미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지하방을 썼는데 아침 일찍 출근하는 분이 그날따라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걱정돼서 방문을 여니 방바닥에 주저앉아 바닥에 있는 피를 훔치고 있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밤새 목에서 피가 올라왔다고 했다. 급히 휴가를 얻어 조지워싱턴 대학병원으로 달려갔다. 아침햇살이 병실로 스며들었다. 운명의 날답지 않게 고요하고 찬란했다. 혈액전문의 선생님은 아침이 다 가도록 병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간호사를 대동한 의사 한 명이 입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재스민…’ 깜짝 놀랐다.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의사 가운을 입은 혈액전문의가 바로 재스민이었다. 입원실 문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없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 같은 반에는 소아마비로 목발을 짚고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떡 벌어진 상체와 달리 항상 끌려다니는 두 다리는 맥없이 가늘었고, 두꺼운 신발창은 턱없이 무거워 보였다. 그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내가 반장에서 밀려난 후부터 왜 인지 그와 같이 하교하면서 버스 정류장까지 같이 걷게 되는 일이 잦았다. 골목길에 이층 탁구장이 있었는데, 내가 무심코 “너 탁구 칠래?” 하는 말을 하고는 속으로 ‘아차, 실수’ 했는데, 그 녀석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한번 해보자.” 하며 앞장섰다. 그 녀석은 한 목발에 온 힘을 싣고 한 손에 탁구채를 들고, 수없이 쓰러지면서도 또 일어나 나의 탁구 상대가 되어 주었다. 무수한 쓰러짐. 그러나 다시 일어남. 만약 일어나지 않았다면 또 다른 쓰러짐도 없었을 터. 나는 강력한 스매싱을 날리고 싶은 충동이 일 때마다 내가 겪었던 쪽팔림이 떠올랐고, 땀범벅이 된 친구 얼굴에서 인성을 배웠다. 45여 년이 지난 지금 딱 하나 보고 싶은 중학교 동창은 바로 그 녀석이다. -------------------------------------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알링턴 집으로 이사하면서 짐정리를 하는 중에 아주 오래된 사진 한 점을 발견했다. 아주 오래전 고급 사진관에서 찍은 듯한 단독 사진 속에는 포마드 바르고, 양복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사진관의 소품인 새장 옆에 서 있는 젊고 당당한 멋진 남자. 그 남자 소매 끝에 수줍은 듯 살짝 내비치는 사각의 시계! 브레게가 분명했다. 그 순간 살아생전 그토록 무능하다며 아버지를 원망만 하고 살았던 내가 너무나 불효했음을 또다시 후회하였다. 멍 같은 정맥 줄이 내 손등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저렇게 멋있던 한 남자는 미국에 와서 그저 작은 마트 점원으로, 그렇게 아끼던 고급 손목시계는 단 한 번 차고 다닐 기회도 갖지 못하고 양복 주머니 속에 고이 모셔놓아야만 했던 이민자의 사연. 불효했던 아들은 명품시계의 진가만 못 읽은 것이 아니었다. 브레게는 아직도 수리를 하지 못한 채 내 책상 속에 잠들어 있다. ------------------------------------- 첫 언덕길에 오른쪽 장화를, 두 번째 언덕에서 왼쪽 장화를 잃어버렸다.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밭 위를 허위적 춤추며 물레 타듯 또는 줄 놀이하듯 좌우로 물결치며 걷고 또 걸었다. 허리 골반이 욱신거리고 무릎과 발목이 아려왔다. 눈썹 위로 눈이 지붕을 세우고 양 귀와 코는 석류처럼 물들었다. 그럼에도 혼자 〈Love Story〉 주제곡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끊임없이 걸었다. 사랑에는 주저할 것 없고 막아설 그 무엇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실천하고 싶었다. 4킬로미터 정도 걸었을까? 문을 걸어 잠근 작은 상점들이 늘어선 쇼핑센터 유리창에 내 모습이 반사돼 보였다. 입고 있던 스웨터 어깨에서 무럭무럭 김이 솟아나고 있었다. 식당 종업원 하나가 주차장 눈을 치우다 손을 멈추고 정신 나간 사람 바라보듯 혼자 열심히 목적지를 향해 전진하는 나를 보며 머리를 저었다. 동상의 위험 속에 그녀의 콘도에 도착하니 그녀 식구 모두 깜짝 놀라며 따스한 담요로 덮어 주었다. 큰 눈의 여인은 어떻게 그 먼 거리를 걸어서 왔느냐며 창밖에서 계속 쏟아지는 눈발을 바라보며 내 시뻘건 얼굴을 그녀의 두 팔로 감쌌다. 나는 그녀에게 내 사랑을 증명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너무 지치고 피곤해서였을까 그만 그 담요 속에서 동화에 나오는 소년처럼 아무런 근심 없이 잠이 들고 말았다.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눈을 떠 보니 혼자 있어야 하는 어두운 처녀 방 안에 나와 그녀 둘이 있고 창밖에는 함박눈 내리는 소리뿐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눈을 바라보다 혼자 말하듯 속삭였다. “두셋 다람((Dooset Daram, 사랑해).” 페르시아어로 무슨 뜻인지도 모르며 나 역시 그 말을 따라 해 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겨울 월광에 비친 눈결보다 밝게 빛났다. ------------------------------------- 만물에는 중력이 서로 작용한다. 인간의 중력은 단지 물리적인 끌어당김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인간의 중력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 없는 관계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 버려진 시간과도 같다. 삶의 의미는 나를, 그리고 누구인가를 사랑한다는, 사랑했다는 데 있다. 사랑이 바로 힘이다. ------------------------------------- 어린 아들의 손을 놓고 땅바닥에 엎드려 울부짖는 젊은 미망인의 절규는 처절했다. 음산하리만큼 축축하게 내리는 겨울비를 맞으며 파헤쳐진 땅속으로 무심하게 내려지는 관(Coffin)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어느 법전을 뒤져보아도 ‘돈 없고 못 배운’이란 죄목은 없었다. 1984년 초겨울, 흑인 강도의 총탄에 절명한 젊은 한인 상인의 장례식은 내가 경찰로 재직하면서 참석했던 수많은 워싱턴DC 한인 상인들의 참담한 장례식 중 하나였다. 한밤의 별빛이 유독 찬란한 이유는 짙게 깔린 어둠 때문이다. 모닥불의 잔재(Ember) 곁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잔재가 따스해서라기보다 우리 가슴이 아직 서늘하기 때문이다. 7~80년대 우리의 미국 이민 역사는 고달팠다. 어쩌다 오게 된 미국 이민.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미국이라는 나라와 이민 생활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었기에 막상 도착해서는 빈손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기 이민자들은 모두 칠흑 같은 어둠을 헤쳐나가며 수많은 상처를 입은 채 살아냈다. 모르면 직접 부딪치라고 했던가. 그래서 짱돌이 콘크리트 벽에 부딪히듯 이리저리 들이받으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주위에는 수많은 비극이 있었다. ------------------------------------- 인생에서 겪었던 비극들은 소리가 없었다. 고통 어린 절규는 세상 곳곳에 널려 있는데도 그 누구 하나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았다. 비극의 정점에는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정적만이 존재했다. 비극의 중심에는 주로 왜곡된 믿음과 이기적 행동 그리고 개선의 여지가 없는 부조리들이 존재했다. 세계의 수도라 하는 워싱턴DC의 큰 거리에조차 홍등가가 있고, 골목마다 버젓이 마약을 거래하며, 도박이 일상이 되는 부조리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세상이었다. 당시 미국 사회는 강도의 총탄에 맞아 한순간 목숨을 빼앗기는 부조리에도 어느 누구 하나 항의하는 이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것들이 자유와 민주를 대변한다고 반론하는 부류도 있었다. ------------------------------------- 아버지는 모래시계와 같은 삶, 그리고 그런 사랑을 하고 돌아가셨다. 그의 모든 인간 관계는 슬픈 인연이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길이었던 장례식에서도 조문 온 친구는 달랑 한 명이었다. 꽉 차보였던 그 수많은 시간들, 그리고 사람 관계들은 유령같이, 아니 아침안개 걷히듯 사라졌다. 모래시계는 꽉 찬 상태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가느다랗고 비좁은 통로로 흘러내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단 한 톨의 모래 알갱이도 남지 않고 모두 사라진다. 그 순간 시간은 멈추고 종말을 알린다. ------------------------------------- 고장 난 것은 수리하고 고쳐야 한다. 사회 부조리를 고치고 살자며 몸부림쳤다가 그 풍랑에 나 또한 휩쓸리고 말았다. 삶이란 태생적으로 비극이며 다르다면 정도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이 고장 난 시계 같다면 어찌하겠는가? 인생이란 방랑의 여정에서 마주쳤던 가련한 신음과 처절했던 울음들. 그 가슴 저린 비극적 사연들이 내 영혼을 찾아온다. 떠도는 영혼은 본 모습을 상실한 채 어둠의 그림자로 남아 성운을 방황하다 깊은 밤 때때로 서럽게 찾아와 나를 깨운다. 1984년은 내 인생에 큰 획을 긋는 해였다. 이른 봄에 버지니아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청운의 꿈을 안고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보안관으로 왕성한 일을 하면서도 계속 NOVA에서의 공부도 쉬지 않았다. 그해 초여름, 친지들의 축복 아래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고 ‘속도위반’으로 10월에는 보배 같은 첫딸을 얻게 되었다. 원하던 직장, 인생을 같이할 아름다운 여인과의 결혼, 그리고 보배 같은 새 생명의 탄생. 모두 축복해야 하는 일들로 가득했던 1984년. 탄탄대로만 같던 내 인생은 그러나 그해 일어났던 한 비극적 사건으로 인하여 모두 바뀌게 된다. ------------------------------------- 1998년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한 뒤에 신에게 바쳤던 수많은 기도 또한 나를 위한 이기적 탄원에 불과했기에 미래의 빛은 기대할 수 없었다. 한번 빠져든 동굴은 어둠의 늪이었다. 밤잠을 설치며 이 밤이 마지막 밤이기를 간절히 탄원하던 날들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이 떠지면 또 다른 악몽이 시작되었다. 그 무수한 아침들이 새로운 부활의 시간이었음을 내게 깨우친 것은 그 악몽에서 깨어난 후였다. 매일 같은 꿈을 꿀 수 없듯이 우리는 단 하루도 같은 삶을 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부활은 죽어서 이루는 것이 아닌 살아서 현세에 이루어야 하는 기적이다. ------------------------------------- 인생이란 목표와 목적 그리고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믿고 살았다. 목숨의 귀중함을 몰랐던 나,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했던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생명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장 난 부분은 수리를 해서 쓰도록 노력해야 하고, 수리가 안 되면 그것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또한 삶이다. 그 사실을 고통의 나날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되었고, 가족 그리고 무언으로 믿어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본인이 가장 아프다고 느끼는 고통. 다른 이들도 짊어지고 살고 있다 이겨내며 극복하는 삶, 진정한 인생의 의미이다. 조금이라도 나의 불찰로 불편함을 안겨드렸던 분들에게는 심심한 사과의 메시지를 전한다. ------------------------------------- 희귀성(Rarity)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무엇인가 달라야 하지만 다르다는 것만으로는 결코 명품이 될 수 없다. 무엇이든 누구든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가 있다. 그 가치를 발견하여 절차탁마(切磋琢磨)하면 결국엔 명품이 될 수 있다. 내 자리가 무엇인지 내 가치가 무엇인지를 삶의 고난과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발견해야 한다. ------------------------------------- 내가 순간순간을 한 점 남김없이 살아온 바로 그 힘이, 결국엔 인생의 진리가 아닐까 싶다. 기차가 철로를 따라 움직이듯 다른 사람들이 정상 운행했다면, 나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지프 트럭 같은 삶을 살았다. 나이가 들어보니 이제는 “너. 미국에 왜 왔니?”가 아니라, “너, 아직 미국에서 왜 사니?”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되었다. 미국이 다문화 사회여서 소수 이민자에게 편하고, 열심히 일하면 미국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느 정도 그 꿈을 실현했다.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를 사랑해 준 사람들이 이곳에 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꿈을 세우고 실현하고 싶다. 지금처럼 한 점 남김없이 살아내고 싶다. -------------------------------------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 한국계 미군으로서 베를린에서 근무한 나의 경력도 특수했지만 한인 여성으로 동베를린을 방문한 경우는 아마 극소수였을 것이다. 우리는 평생 같은 행성 주위를 돌고 돌다 이제야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베를린 교회 시계탑 앞을 지나던 수많은 시민들처럼 우리도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면서 무심하게 지나치며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우리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이란 모두 우연이 아닌 필연의 결과가 아닐까? 사랑하는 타이밍은 바로 지금이다. ------------------------------------- 결혼은 한 사람에게 자신의 인생을 걸고 모든 운명을 맡기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결혼을 두 번 경험한 사람으로서 갖게 된 나름의 철학이다. 흔히 결혼에 실패했다고 말하는 분들은 과연 실패한 것일까? 나는 재혼 후의 인생이 행복하기에, 이혼이란 새 길을 찾기 위한 서로 유익한 방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싫으면 이혼하라고 부추기는 무책임한 말이 아니다. 결혼에는 책임이라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부부가 서로의 의사를 존중하면서 삶의 벽돌을 하나씩 쌓아 나가는 모습은 참으로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중간에 벽돌 아귀가 어긋난다면 튼튼하게 쌓은 건물이 될 수 없다. 어쩌면 결혼이라는 큰 공사 자체가 멈출 수 있다. 버스에 올라탔는데 아차 하는 실수로 내 행선지와 다른 목적지로 가는 버스임을 알았다면 빨리 내려서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의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전처는 그걸 깨닫고 내가 모는 버스에서 내리길 원했다.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본인만이 안다. 어쨌든 내가 모는 버스는 그녀를 행복한 곳으로 이끌 수 없었다. 그녀는 하차했고, 그것이 서로에게 유익했다. ------------------------------------- 내가 순간순간을 한 점 남김없이 살아온 바로 그 힘이, 결국엔 인생의 진리가 아닐까 싶다. 기차가 철로를 따라 움직이듯 다른 사람들이 정상 운행했다면, 나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지프 트럭 같은 삶을 살았다. 나이가 들어보니 이제는 “너. 미국에 왜 왔니?”가 아니라, “너, 아직 미국에서 왜 사니?”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되었다. 미국이 다문화 사회여서 소수 이민자에게 편하고, 열심히 일하면 미국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느 정도 그 꿈을 실현했다.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를 사랑해 준 사람들이 이곳에 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꿈을 세우고 실현하고 싶다. 지금처럼 한 점 남김없이 살아내고 싶다. ------------------------------------- 하지만 절대 판단력을 잃지 않고 삶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 절망의 늪에 오래 머물지 말아야 한다. 하루벌이 노가다도 좋고 친구를 찾아가서 기술 배우는 것도 좋다. 방구석에 처박혀 한탄만 하지 말고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말고 자기 학대도 하지 말고 슬퍼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생이 꼬이면 가까운 식구와 친구들을 멀리하게 된다. 그것이 본능이다. 과거의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것이 싫고 지인들도 부담스럽다. 대화에서는 의도치 않은 말이 나와 상처를 건드리면 곤혹스럽다. ------------------------------------- 공장 사이즈와 종업원 수는 변함이 없는데 일은 몇 배로 늘어나니 기계는 고장 나고 종업원은 연락 없이 그만두는 사례가 속출했다. 그러나 세탁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시간에 맞게 배달해야 했다. 군용 야전침대를 장만해서 자면서 밤새 세탁했다. 그렇게 4주 간 일하다 보니 돈도 좋지만 머리가 어지럽고 지옥이 따로 없었다. 저녁 11시에 집에 밥을 먹으로 들어오니 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밥상을 앞에 놓고 내가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이렇게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와이프가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이것이 인생 마지막 기회라 생각해, 자기 사장이야, 사장이면 사장답게 해결 방법을 연구해 봐.” 공무원 생활만 했지 세탁소 문안에 들어와 보지 않았던 와이프에게 위로를 좀 기대했던 나는 밥공기를 비우고 한밤중 다시 공장으로 향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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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 남김없이 불태우다”
인생에서 ‘왜?’라는 질문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자신의 삶의 무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이미 발생한 사건과 전개된 상황의 이유를 따지는 건 어쩌면 불필요한 절차다. 돌이킬 수 없을뿐더러 그 이유를 알았다고 해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이유는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며 여러 사연이 중첩되어 있어 본질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엄마, 왜 나를 낳았어?” 같은 물음은 잘 풀리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불평이거나 운명을 원망할 때 하는 질문일 뿐이다. 금수저라면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 나는 이미 세상에 태어나 되물릴 수 없고, 그 엄마가 내 엄마인 것은 그저 우연 내지 필연일 뿐이다. 태어나 보니 그가 내 엄마인 것뿐이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잘못은 없다. 그저 그런 것일 뿐. 그렇기에 ‘왜?’라는 질문을 할 바에야 ‘어떻게?’라는 질문을 하는 게 낫다. “엄마,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질문한다면, 어찌 되었든 상황을 타개할 작은 노력이라도 해보겠다는 의지를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우연의 반대말은 필연이 아니다. 우연과 필연은 같은 종류로 핑계의 언어들이다. 그것의 반대말은 ‘의지’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운명이든 삶을 기꺼이 받아 안고 기필코 살아내겠다는 다짐이 중요하다. 인생은 우연과 필연의 비겁한 언어들 뒤로 숨을 만큼 녹록하지 않다. 오디세우스처럼 고향으로 가고자 하는 지독한 열망 하나로 꾸역꾸역 버텨내며 걸어가는 상처투성이 영광의 길이다. 내가 지닌 모든 것, 순간순간을 한 점 남김없이 다 태워 사랑하고 고민하고 걸어가는 것, 그것이 삶이다. 호머의 서사시 〈오디세이〉는 신과 인간이 뒤엉켜 투쟁했던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에서 이타카로 모진 역경을 이겨내며 귀환하는 몰락한 영웅들의 끈질긴 생존을 다룬 이야기다. 오디세우스는 우연을 가장한 신의 장난을 왜냐고 물으며 무릎 꿇고 절망하는 대신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불굴의 의지로 극복해 간다. 워싱턴DC의 오디세우스, 워싱턴DC의 불굴의 경찰관 제프의 삶 역시 그러했다. 한인 1.5세대 이민자로서 맨땅에서 시작해 경찰 간부를 거쳐 훌륭한 사업가로 자리 잡기까지 그에겐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었다. 그 앞에 놓인 운명을 불평 없이 긍정하고, 머뭇거림 없이 온전히 받아내어 오늘을 일궈냈다. 순간순간 한 점 남김없이 불태워 살았다. 그에게 허락된 사랑을 순수한 열정으로 불태웠고, 굴곡과 고비에 굴하지 않고 맞섰다. 영웅이 아닌 이민자들이 아무것도 없이 낯선 타국인 미국 사회에서 살아남은 건, 자존심을 굽히며 차별과 혐오의 벽을 넘었기 때문이며, 안락과 요행을 버리고 그야말로 근면과 성실로 버텼기 때문이다. 범죄의 위험에 무방비한 채로 노출이 되어도 기어이 그곳에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살아남은 자가 결국 강한 자였다. 『워싱턴 오디세이』는 워싱턴DC 경찰관 제프가 197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한인 1.5세대로서 미국 이민사를 가로지르는 서사 속에 소설 같은 그의 삶의 속살들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사랑의 열정과 불굴의 의지를 담아낸 에세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인생이란 대동소이하다. 누구나 각자의 우주를 짓고 사는 것이다. 자신에게 닥친 운명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의 시간들. 그 가운데 피어나는 빛나는 순간. 제프는 한 점 남김없이 그 순간을 살아냈다. 세 줄기로 이어진 나의 역사는 시대의 큰 물줄기의 일원으로 때로는 급류를 타기도 하고 때로는 밑바닥으로 가라앉기도 하고, 정처 없이 표류하다 때로 바위들 사이에 끼어 멈추었다가 맴돌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엔 힘차게 부상하여 찬란한 햇빛에 눈부신 윤슬로 반짝이고 있다고 믿고 있다. 1부는 학창시절에서 청년시절까지 뜨거웠던 청춘에 관한 이야기다. 어릴 적 가족 이야기와 미국으로 건너와 내 생에 큰 깨달음을 준 첫사랑 재스민과의 이야기, 그리고 시민권을 얻기 위해 고등학생의 나이로 입대해 주한미군으로 복무하며 겪은 이야기로 구성했다. 2부는 나의 전성기 3~40대의 이야기다. 제대 후 생계를 위해 여러 업종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 워싱턴DC의 택시운전사로 일하게 되었고, 우연히 어떤 사건에 휘말린 끝에 공을 세워 알링턴 보안관이 되었다. 동양인 이민자들의 절박한 상황을 지켜보다 결국엔 워싱턴DC의 경찰관이 되었다. 이때 나는 이란계 여성과 결혼을 하여 두 딸을 얻었으나, 나의 과오로 인해 경찰관복을 벗게 되면서 결국 이혼하게 된다. 3부는 인생의 역경을 이겨내며 새로운 도전에 성공한 이야기다. 부업으로 시작한 세탁업을 주업으로 삼으며 마침내 한인세탁협회 회장 및 국제직물연구소(IFI) 이사에까지 오른 이야기를 담았다. 더불어 뒤늦었지만 반드시 해내고 싶었던 학업을 이었던 이야기, 그리고 인생의 반려자인 현재의 와이프와의 만남과 삶의 여정을 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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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일로 워싱턴DC를 방문할 때마다 늘 반갑게 맞아주던 안용호 회장님의 책을 읽다가 그의 지문 없는 손, 힘차고 단단했던 악수를 떠올려 본다. 그는 항상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로 사람들을 대한다. 워싱턴DC의 엘리트 경찰관으로 수많은 범죄자를 척결했던 영웅의 당당함과 사업가로 성공한 사람의 여유가 가득한 미소다. 『워싱턴 오디세이』에는 이민 1.5 세대로 살아온 그의 삶의 역경과 성공의 과정이 차곡차곡 담겨있다. 자신의 성공을 사회와 이웃들과 나누며 새로운 인생을 계획하는 회장님의 앞길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 김범수 (서울대학교 교수, 통일평화연구원 원장, 2025년 한국정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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