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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Ⅰ. 하라하찌부(腹八分)와 나폴레옹의 무지개 1. 내가 만난 첫 시국사건 2. 하라하찌부(腹八分)와 나폴레옹의 무지개 3. 지각대장의 고등학교 재수(再受). 4. 한국전쟁 최전선(最前線)의 소년 노무자 5. “잘 했다. 참 잘 했어.” 6. 고학을 거듭한 대학생활 7. 사람 인연, 시절 인연 Ⅱ. 열정의 시, 분, 초 1. 한일회담이라는 코끼리ㅡ코끼리 사냥 2. 출세한 아들, 주미대사와의 공중 대담 3. 『경향신문』 강제 폐간과 필마단기 4. 혁명 취재 - 신익희와 조병옥의 급서 -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 부정선거의 풍경 - 1차 마산 사건 - 이강현 선배 - “이 사람 사상이 의심스럽네!” 5. 내가 만든 새로운 취재용어 ‘도꾸누끼(特?き)’ 6. 5.16과 재건운동본부 명단 사건 - 수녀원의 청일점 - ‘희망사’란 이름의 중정 분실 7. 기자협회 창립과 언론악법 저지 투쟁 8. 차지철과 멱살잡이 한판! 9. 울면서 취재한 민생기사, 「현실」 10. 국경일에 태극기 달기가 퍼진 내력 11. 신문사의 피처 & 캐처, 그리고 경기장 밖 그들의 행로 Ⅲ. 베테랑 기자의 감(感).감(敢).감(甘) 1. 김종필 총재와의 인연 - 4대 의혹 사건과 공화당 창당의 막전막후 - 풍운아에겐 미안한 특종상 - 장개석 총통과의 만남 - “각하, DJ를 이기려면 JP가 있어야 합니다.” - 이데올로그 역할 2. 한.미 정상회담의 백악관에서 스케이트를 타다 3. 『중앙일보』 창간 에피소드 4. 정치부 기자들이 신발로 치는 신년(新年) 점과 운수대통 5. 나는 새도 떨어뜨릴 사람을 떨어뜨린 격 6. 커티삭 술잔에 담아 건넨 쓴소리, “각하는 이제 멀게 느껴집니다.” 7. 도둑맞은 특종 Ⅳ. 내 인생의 특종 ㅡ 유학과 결혼 1. 만감 교차, 미국 가는 길 2. “놀자!” 하고서도 명강의만 찾아들은 사연 - 생전 처음 열등생이 되어 - 과학 석학 김완희 박사와 대통령의 친서 3. 1969, 미국의 스산한 풍경 4. 대도(大盜)의 특종, 아내 Ⅴ. MBC 보도국과 나, 아낌없는 상호 수혈(輸血) 1. 죄 : 바둑 잘 둠 & 벌 : 문화방송 보도국장 취임 2. 신문사 vs. 방송 보도국 ㅡ 양대 매체 비교 3. 죽은 내 모습을 보다 - 금연 4. 판문점 미루나무 사건과 보안사 조사실 5. MBC 단독 보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 - ‘바로 이거다’, 유일한 저격 장면 테이프 - 경호실장이 용감은 했지만 ㅡ 육 여사 죽음의 빌미 - 단상(壇上)에 인영(人影)이 불견(不見) - “모두 숨어!” - 청와대 반응 6. 소련 령, 무르만스크 호수 위의 KAL기 불시착 사건 7. 경찰 경비행기 추락사건 - “기영아, 마지막으로 녹음기 열어 놔라.” 08. “오늘만은 뉴스 빠뜨려도 문제 삼지 않겠다.” Ⅵ. 3등 국회의원 열하고 보도국장 하나를 안 바꾼다 1. “각하가 자네 잡아 오란다.” 2. 박 대통령과의 독대 아닌 독대 3. 3등 국회의원 열보다 보도국장 하나 4. 10?26 당일, 그리고 박 대통령과 김재규의 오랜 우정 5.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功過) 6. 격동의 1980’s - ‘나기브’가 아니라 군 후배에게 쫓겨난 ‘나세르’, JP - 정계 진출 제의를 거부하고 - 경향신문 노조와 파란의 경영사 - “노태우 저거…… 천학비재(淺學非才)야!” - MBC 사장 취임 - 한국방송개발원장 - “우리가, 남이가!” - 그래, 남이다 맺음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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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회담만한 국가적인 중대사, 관심사가 또 어디 있어. 그걸 어떻게 자기들끼리만 꽁꽁 숨겨놓고 말 한 마디 제대로 해주는 인간이 없냐. 다른 사람들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할 거 아냐. 자기들만 대한민국 국민이야? 안 그래?”
그러자 유심히 듣고 있던 최각규가 말했다. “야, 지금 우리 하숙집에 외무부 사무관도 있거든. 근데 가만히 보면 그 사람이 아무래도 한일회담 실무 담당인 것 같아. 그 사람을 한번 만나보면 어떨까.” “어떻긴 뭘 어때. 아, 당장이라도 만나봐야지.” --- p.75 당시 신문은 『동아일보』를 제일로 쳤다. 정치인이 기자회견할 때 『동아일보』 기자가 오지 않으면 그 기자가 도착할 때까지 시작 시간을 늦출 정도였다. 가판 판매부수에서 2등은 『경향신문』이었다. 그 다음이 『한국일보』. 지금 1등이라 자처하는 『조선일보』는 『한국일보』와 더불어 조간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석간이었다. 어느 신문사나 서로 간에 치열하게 취재 경쟁을 벌였다. 나름 탄탄한 야성을 보이며 정권에 경고를 날리던 『경향신문』은 가톨릭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한데 선거에서 이기붕을 꺾고 부통령직을 차지한 장면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경향신문』은 이래저래 이기붕에겐 눈엣가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 p.87 출국 전 정례모임을 갖는 기자들이 김종필 씨와 저녁식사를 할 때였다. 나는 그에게 은밀히 물었다. “이번에 월남 가시는 이유가, 사실은 돌아오는 길에 ‘그거’ 마무리 하려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김 총재가 흠칫하며 우선 “쉬잇!” 소리로 입막음부터 했다. “김 기자, 그거 노출되면 안 돼요. 절대 얘기하지 말아요.” 그러나 나는 기자다. 국민적 관심사를 알아냈는데 기사를 안 쓴다는 건 기자로서 직무유기가 아닌가. 그를 수행해 대만과 월남을 가는 기자단에 포함되었지만 나는 그에 관한 기사를 써서 편집국 데스크에 던져놓고 출국 비행기에 올랐다. 월남 갔다 오는 길에 김종필 씨가 무려 14년이나 끌어온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을 최종 매듭짓지 않겠느냐……. --- p.186 김 차장이 들어서는 내게 말했다. “청와대 경호실에서 필름 압수해 갔습니다. 타사도 마찬가집니다.” “도리 없군.” 저격현장을 내보내긴커녕 보도국장인 나도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내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취재 나갔나?” 그러자 김 차장이 내게 다가오며 목소리를 낮춰 말하였다. “저어, 국장님 그보다…… 압수 전에 제가 복사해 놓은 테이프가 하나 있습니다.” 순간 옳다! 싶었다. 복사본이든 뭐든 현재로선 이것이야말로 유일한 저격 장면 테이프 아닌가. --- p.2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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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사건’이 아니라 ‘삶’이었다!
현장 기자의 눈으로 본 대한민국 리얼 현대사 4.19, 5.16, 10.26, 12.12…… 영원한 숫자로 박힌 그날들은, 역사적 사건 이전에 사람과 사람이 엉킨 ‘삶’이었다. 『대한민국 기자』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기자의 몸으로 부대낀 현대사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겼다. 4.19혁명 당시 전국 지방지의 모든 기사를 도맡게 된 사연, JP김종필 2차 외유의 빌미를 제공했던 사연, 10.26 사건 뒤의 분위기 등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에, 날카로운 기자적 통찰은 물론 옆집 아저씨가 들려주듯 재미있는 입담이 묻어난다. 이승만부터 박정희 대통령까지, 또 보안사와 판문점부터 월남까지, 시공간을 넘나드는 그의 활약을 함께 하다보면 그 시절을 숨쉬고 있는 착각이 들 것이다. 특히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의 MBC 단독보도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이다. “김영수 기자도 가느냐. 그 사람이 가면 나도 간다.” - 기자란 이런 것임을 말하다 『중앙일보』 창간 당시 영입 제안을 받은 기자들의 첫 질문은 이것이었다고 한다. “김영수 기자도 가느냐. 그 사람이 가면 나도 간다.” 『연합신문』을 통해 처음 언론계에 발을 디딘 이래로, 기자 김영수는 우리네 정치사회 현실을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특출한 베테랑의 감과 촉으로 신명나게 특종을 쏟아냈다. 그 당시, 이름의 앞글자인 ‘榮’만 표기해도 김영수의 기사임을 알 사람은 다 알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무엇보다도, 끈끈한 기자 사회의 의리와 동지애, 죽음을 앞에 둔 순간에도 녹음기를 켜는 기자 정신의 일화는 지금의 기자들에게, 기자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엄중히 일깨울 것이다. 『대한민국 기자』는 1세대 기자가 후배들에게 남기는 자부심이 담긴 기록이자, 본인이 바라는 것처럼 현직 기자와 기자 꿈나무들을 위한 든든한 발판이 되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