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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물짜솜다리꽃랑탕 계곡에서 생긴 일하인들나에게 피를 다오옥수수 식빵앙코르와트 소녀화장터희망 찾기네팔 소녀 돌마시가 밥이 되던 날만줄라나는 살고 싶은데슬픈 노래를 듣는 사람들제2부의사는 참 내앵정하데의사의 업적 1의사의 업적 2의사의 업적 3의사의 업적 4의사의 업적 5의사의 업적 6메시지로 남겨주세요부치지 못한 편지장기이식 윤리위원회‘죽을 사(死)’ 자물어야 할 질문또다른 독립운동이세용생활지도 교사의 걱정거리그만의 방식불필요한 놈때 묻은 추억제3부유부도아이가 준 선물겨울, 한탄강새가 떠난 자리도요새정발산 박새 말씀이전기톱새를 잡지 않는 아이들기러기새그물그 가느다란 다리로덕유산 뻐꾸기비행금지구역제4부우표한가로운 구름 아래이상설발리 도라가자제시의 탄생최초의 인간평안에 대한 사랑스피노자의 유산고흐 형제손글씨 편지양떼냐, 늑대냐?민달팽이제5부석양전원교향곡산마르코 광장은방울꽃2월지리산 반달곰사회성 훈련화엄계곡밤바다 사진새 발자국달랑게임 오시는 날외로움별을 기다리며해설|방민호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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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어머니 알통』(문학동네 2010) 이후 10년 만의 신작 시집입니다. 간단히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제가 살아온 60년의 세월도 그랬지만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에 벌어졌던 일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2008년 이명박 대통령,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2016년 촛불혁명을 통해 평화적인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지요. 그 많은 사건을 겪고도 빈약한 시집 원고를 십년이나 걸려서 들고 왔다는 것은 시인으로서 게으르다고 자책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숱한 격동의 세월 동안 잠자고 있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변명으로 세워봅니다. 2016년 11월 26일은 촛불집회 중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 날이었어요. 저는 그 장면을 기록하고 싶어서 언론사 사진기자들만이 찾아가는 광화문의 건물 옥상에 잠입해 그 어마어마한 광경을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사진이 중요했던 게 아니라 그 숨 막히는 역사의 현장을 가슴으로 느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가 시대를 증언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치열하게 문학활동을 해야 한다는 자책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의사이자 시인인 독특한 이력을 갖고 계시지요. 이번 시집에 실린 ‘의사의 업적’ 연작 시편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에 계실 텐데도 세계에 대한 깊은 사랑을 담보하는 시선이 가슴에 와닿기도 했습니다. 진료를 하며 시를 쓰는 생활이나 일상은 어떠신지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갑자기 시인으로 등단했을 때 저 스스로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의사의 길과 시인의 길은 완전히 상반된 세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지요. 의사는 많은 지식이 필요해서 다른 분야에 눈 돌릴 시간이 없을 뿐 아니라, 감정을 배제한 냉정한 과학이 지배하는 세상처럼 느껴졌고, 시는 가끔 무모하거나 비이성적인 것도 용납하는 감정의 세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실제로 의사가 되어 환자를 진료하다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질병을 제대로 치료하려면 그 질병을 가진 인간을 이해해야만 했습니다. 결국 좋은 의사가 되는 과정이 바로 휴머니즘을 간직하는 과정인 것이고, 휴머니즘이야말로 좋은 시를 쓰는 근본 아니겠습니까? 의사로 37년을 살다보니, 이제는 의사와 시인의 경계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번 시집이 5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2부는 의사로서의 삶을 표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특히 ‘의사의 업적’ 연작 여섯편은 제가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들 이야기를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의사-시인들이 마종기 시인을 필두로 존재합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진료실 이야기를 가장 많이 시로 표현한 의사-시인일 것입니다. 사실 질병이나 고통, 죽음은 인생의 가장 절박한 순간 아니겠습니까? 이 대목이 바로 문학과 의학이 만나는, 또는 만나야 하는 접점이라고 생각하고 평론계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대학 시절 시를 읽고 등단을 권유하셨던 신경림 시인이 이번 시집에 추천사를 써주셨습니다. 남다른 의미가 되었을 듯합니다.신경림 선생님은 시에 있어서 저에게 은사와도 같은 분입니다. 신경림 시인을 처음 뵌 건 제가 1981년 당시 서울의대 본과 3학년 때였습니다. 의대 문예부에서 문학의 밤 행사를 하게 되었는데, 문학의 밤은 우리들이 돌아가면서 자기가 쓴 시를 낭송하면 초대받은 시인이 그 시에 대해서 강평해주는 행사였습니다. 어떤 시인을 초청할지 투표를 했는데, 신경림 시인으로 정해졌어요. 문학의 밤에 오신 신경림 시인께서 제 시를 칭찬해주시면서 집으로 놀러 오라고 하셨어요. 의대 졸업할 때 제가 쓴 시 27편을 인쇄해서 친구들에게 나누어준 일이 있었는데, 신경림 선생님 댁에 졸업한다고 인사하러 가면서 그 시 묶음을 들고 갔더니 제 시를 한편도 빼지 않고 다 읽으시더군요. 그러더니 갑자기 “홍관이도 이제 등단하지?” 하시는 겁니다. 저는 당시까지 등단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어쨌든 신경림 선생님은 창비를 통해 저를 시인으로 추천해주셨고, 첫번째 시집에 발문을 써주셨고, 세번째 시집에 추천사를 써주셨고, 이번에도 추천사를 써주셨어요. 그리고 문학적인 인연을 떠나 신경림 선생님은 삶에 있어서도 인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시는 분입니다. 제 결혼 주례도 해주셨고요. 신경림 선생님을 통해 문단의 어른들도 뵐 수 있었고요. 팔순 잔치에도 초대받았는데, 그 자리에서 술 한잔 하시고 발그레해지신 선생님 얼굴을 뵈면서 믿고 따르는 인생 선배님이 계셔서 참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시집을 묶으면서 각별히 집중했던 주제나 이야기가 있으셨는지요? 또한 이번 시집에서 특별히 애착을 느끼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와 이유를 부탁드립니다.이번 시집에서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인 김동협 군의 동영상 목소리를 받아적은 「나는 살고 싶은데」라는 시를 쓰는 게 참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시를 실어도 되는지 김동협 군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어요. 한번 뵙고 시를 보여드리고 허락을 받고 싶었는데, (아들을) 기억해줘서 고맙다, 뭐든 좋다고 하시면서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원래 안산에 사셨는데 일 때문에 온양에 부부가 내려가 계신다고 해요. 시집이 나오면 뵙고 싶습니다. 그리고 「슬픈 노래를 듣는 사람들」에 나오는 사람들 목소리에도 아픔들이 배어 있잖아요. “나만 없었으면 행복했을 가정에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접하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거든요. 왜 우리들은 이렇게 고통이 많은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고통은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지요. 「나에게 피를 다오」에서 1두카트를 받고 피를 뽑힌 채 죽어간 소년들도 안타깝고, 학교도 못 가고 앙코르와트에서 팔찌를 파는 어린 소녀들, 같은 처지의 네팔 소녀 돌마도 안타깝고,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책 뒤에 적어놓았던 초등학교 때 친구 홍현식도 안타깝고, 희귀암에 걸려 죽어가던 한상인 군과 그의 어머니도 안타깝고, 아버지 체취가 그리워 우표를 뜯어 맛보는 김구 선생 아드님도 안타깝고, 나라를 빼앗기고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돌아가신 이상설 선생님도 안타깝지요. 이런 고통과 불평등, 정의가 쉽게 구현되지 않는 세상에서 어떻게 희망과 위안을 구하고 행복을 찾아나갈지가 저의 남은 생애에도 과제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의 활동 방향이나 삶의 계획이 궁금합니다.저는 의사로 살아왔고, 시인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의료운동가로 살아왔지요 흔히 저는 금연운동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금연운동은 건강운동의 한 일환일 뿐입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우리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우리나라 의료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평생을 두고 모색하면서 살아온 셈입니다. 제가 의사로서 인의협을 창설하는 데 앞장서고 보건의료연합에서도 일하고, 북한에 기근과 영양결핍 사태가 벌어졌을 때 북한의료를 지원하기 위해 어린이의약품 지원본부를 만들어서 상임이사로 일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또한 우리나라가 인권과 평등과 자유가 살아 숨 쉬는 나라가 되기를 희망하고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기여하려고 생각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로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일에 뛰어든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저는 만 스물다섯살 의과대학을 졸업하던 시절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를 깨닫는 것이라 믿었고(당시 저는 그것을 편의상 ‘해탈(解脫)’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광대한 우주와 장구한 우주의 역사를 생각하면 우리가 먼지처럼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작고 비천한 인간들이 어떻게 허무를 이겨내느냐도 저의 또다른 관심이기도 합니다. 저의 시 「솜다리꽃」의 마지막 대목 “그렇게 살아서 안 될 것도 없었다”라는 시구도 우리의 삶에 대한 저의 자세를 한마디로 보여주었는지도 모릅니다.시인의 말지구라는 별에서 살아온 지 60년이 넘었다. 왜 그런지 구석기시대 인간들을 자주 생각한다. 몇만년 전 풀뿌리와 나무 열매를 따 먹고 살던 그들은 지금의 나보다 행복했을까? 그들의 배고픔과 추위, 맹수의 위협 대신에 나는 무엇을 겪고 사는 것일까. 우리 인간이 앞으로 가야 하는 먼 길을 우주 속에서 상상해본다.십년 만에 엮는 시집 원고를 보내고 밤에 홀로 산길을 걸었다. 차가운 입김 속에 반짝이는 별들을 오랜만에 우러렀다. 칸트는 “생각하면 할수록 놀라움과 경건함을 주는 두가지가 있으니, 머리 위에서 별이 반짝이는 하늘과 나를 항상 지켜주는 마음속의 도덕률”이라고 했다. 그가 죽는 순간 남긴 말은 “좋아!(Es ist gut!)”였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다.“좋아”라고.2020년 12월서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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