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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나방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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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소영이 옆에 항상 있으니까, 당연하다고 여긴 거지?”
소영의 말문이 막혔다. 엄마가 귀찮아졌다는 말은 명백히 오해였기 때문에 억울한 마음이 컸는데, 엄마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책은 마음을 찔렀다. 병원 밖의 세상을 모르는 소영을 항상 옆에서 보살펴준 것은 엄마였고, 어쩔 수 없이 소영에게 엄마는 당연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건 공기나 물과 같은 의미인 것이고 없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소영의 진심은 그랬지만 자신이 느끼는 차이를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p.22 엄마가 거짓말을 했다. 엄마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소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엄마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소영은 엄마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흡수하면서 살았다. 엄마가 알려준 온갖 사물의 이름과 사람의 호칭 중에 틀린 것은 없었다. 엄마는 젓가락을 쥐고 글씨를 쓰는 법부터 신발끈을 묶고 리본 매듭을 짓는 법까지 온갖 세세한 것을 알려주느라 늘 바빴다. 때로 엄마는 간호사들보다 소영의 상태에 대해 더 잘 알았다. ---p.56 “가족은 서로 사랑해야 돼.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아무리 잘못해도 서로 감싸주는 게 가족이야. 가족이 없으면 어떻게 살겠니? 혼자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엄마는 소영을 보면서 행복한 듯이 활짝 웃었다. “엄마는 정말 행운이야. 아빠랑 소영이가 있어서. 소영이도 그렇게 생각하지? 엄마가 있어서 좋지?” “응.” “이제 떨어지지 말고 행복하게 살자. 우리는 가족이니까.” ---p.64 “나는 말대꾸를 한 게 아니야.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 거야.” “지금도 하고 있잖니. 아까 그러지 않기로 약속해 놓고, 또 같은 잘못을 하면 안 되지.” 엄마의 표정이 조금씩 다시 굳어갔다. 언제 그런 약속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집에 온 이후부터 엄마의 생각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이 집에는 무언의 규칙, 무언의 약속, 무언의 함정이 숨어있었다. 엄마는 소영이 그것을 알아서 찾고 지켜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p.94 엄마가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말하기는 어렵다. 엄마는 나를 학대로 양육했다. 먹을 것을 주지 않거나 때리는 것 같은 행위를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건 단순한 폭력이다. 엄마가 딸에게 가하는 학대라는 것은 잠시 동안만 유지되는 몸의 상처나 굶주림보다 훨씬 길게 이어진다. 그래서 곧 한 사람의 인생이 된다. --- p.141 “혼자 일어나 봐.”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기는 싫었지만 어쨌든 일어나야 했기에 소영은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한쪽 팔에만 의지해 주저앉았던 몸을 추스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왜 못 일어나니?” “…….” “그건 네가 엄마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야. 너는 마음이 더러워서 몸이 불구가 된 거야. 엄마가 다 낫게 해준 몸을 네 스스로 망친 거야.” ---p.159 “나도 엄마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엄마가 나 때문에 희생한 것도 많거든? 나를 싫어하는 거 같지는 않아. 너무 좋아해서 그런 거 같기도 해. 아니면 엄마는 그냥…… 그냥 엄마인 게 좋은 걸지도 몰라.” ---p.233 나는 죄를 지었다. 엄마를 사랑할 수 없는 죄.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엄마를 사랑한다. 나는 엄마를 미워하는 죄를 저질렀다. 나는 엄마를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 죄를 인정할 때까지 나에게는 엄마가 될 자격이 주어져서는 안 됐다. 나는 영원히 참회해야 한다. ---p.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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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의 저주받은 소유물로 살아가고 있다.
결국 모든 게 엄마가 원하는 대로 됐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 집이 나를 죽이고 있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후 오랜 기간 혼수상태에 빠져있다가 깨어난 소영. 과거의 기억은커녕 사물의 쓰임새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뇌 손상을 입었다. 하지만 1년여 간의 엄마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기적적으로 걷고 읽고 생활할 수 있게 되며 퇴원한다. 하지만 엄마의 설명으로 상상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황량하고 지저분한 집과 시체처럼 휠체어에 앉아있는 아빠의 모습에 소영은 충격을 받는다. 집으로 돌아오니 생각과 다른 건 집뿐만이 아니었다. 병원에서 모든 걸 바쳐 소영을 케어하던 엄마는 온데간데없고 소영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질문도 못 하게 통제한다. 당연히 학교를 보낼 생각조차 없는 엄마는 ‘너는 불구야.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어.’라고 끊임없이 세뇌시킨다. 감옥처럼 느껴지는 집에서 갇혀 지내면서 병원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소영에게 늘 하던 말이 귀에 맴돈다. ‘너네 엄마 이상해……’ 그러는 와중에 침대 밑에 숨겨진 사진액자 뒤에서 발견된 수상한 쪽지와 소영 앞에 나타난 학교 친구였다는 민지. 민지는 소영 병문안을 여러 번 갔지만 엄마의 제지로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하며 충격적인 말을 건넨다. “사고당하기 전에 네가 그랬거든. 진짜 엄마를 만나러 간다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새롭게 채워야 하는 소영의 세상을 만들어준 엄마는 과연 소영을 위하는 것이었을까? 혹은 숨겨야 할 것들을 지키기 위해 딸의 인생을 재설계한 걸까? 무한한 자기희생으로 포장한 엄마의 기괴한 모성애는 과연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보여주기 위한 걸까. “가족이 없으면 어떻게 살겠니? 혼자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자연의 섭리라 규정되어 온 ‘모성’의 욕망화 우리는 흔히 ‘엄마’란 존재는 자기파괴적일 정도로 희생하며 아이만을 우선순위로 여겨지는 것을 대표적인 이미지로 떠올린다. 아이에게 있어 물과 공기 같은 존재인 엄마가 삐뚤어진 모성애를 가지고 있다면, 아이는 어떻게 자라게 될까? 『누에나방』은 사고당하고 모든 것을 잃은 아이에게 세상을 새로 만들어준 엄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렇게만 본다면 영락없는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전형적 엄마의 모습이다. 하지만 소영의 엄마는 ‘이상적인 가족’에 집착하며 본인이 ‘이상적인 모습’이라 여기는 엄마들을 따라 하며 종국에는 그 자리를 빼앗고 싶어 하며, 막상 가족의 감정 따위 안중에도 없이 이상적인 가족과 엄마의 모습에만 집착한다. 이는 대한민국에서 ‘모성애’가 한없이 숭고하고 고귀한 것으로 포장되어 ‘엄마’라는 사회적 테두리에 가두고 사회적 위치를 강요하는 것을 비틀어 보여준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엄마’를 일종의 필수불가결한 선택지로 만들었고, 이에 작가는 ‘모성’을 욕망하는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이 캐릭터를 통해 따듯하고 끈끈하다 인식되는 ‘엄마와 딸’의 연대를 공포스러운 스릴러로 풀어, 과연 딸을 잡아먹은 것이 어떤 존재인지 끊임없이 궁금하게 만들어 순식간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르게 한다. 작가는 ‘나방이 된 누에는 필요성을 상실하지만 또 다른 누에를 낳는다는 점에서 인간에게 유용하다’며 나방이 되기 위해 기다리는 누에의 고치를 삶아 먹고 껍질에서 실을 뽑아 실크를 만들어내는 인간들이 누에의 가치를 함부로 판단하는 모순에 대해 짚었다. 더 나아가 딸이 왜 엄마가 되기 위한 과정에서의 딸로서 존재하여야 하는지에 대해 부조리한 현실에 질문을 던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