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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코피에프 :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첼로 소나타
프로코피에프의 첼로를 위한 명작은 스탈린의 철권적 지배가 절정에 이르던 시절, 지적인 활동에 대한 규제와 창작 활동에 대한 억압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동안에 탄생하였다. 1945년 다섯 번째 교향곡의 성공적인 초연 직후 갑작스런 몰락은 이미 약해진 프로코피에프의 육체적인 상황을 악화시켰지만 그보다 스탈린의 문화담당 인민위원인 안드레이 알렉산드로비치 즈다노프(Andrei Alexandrovich Zhdanov)의 폭압적인 맹폭이 그를 더욱 파괴했음이 틀림없다. 즈다노프주의자들은 프로코피에프가 1948년 초반기에 새로이 작곡한 여섯 번째 교향곡에 대해 독설을 퍼부었다. 그 당시 쇼스타코비치, 하차투리안 그리고 미아스코프스키와 같이, 그는 대중에게 난해한 형식주의적인 음악을 작곡한다는 명목으로 고발 당했다.쇼스타코비치는 급박한 위험을 느꼈지만 프로코피에프는 더없이 즐겁게 생각하며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는 그를 '항상 위대한 아이와 같으며 놀라울 정도로 천진했다'고 묘사하였다. "즈다노프가 중앙 인민 회의에서 작곡가들을 공격하는 신랄한 연설을 했을 때 프로코피에프는 그 장소에 있었습니다. 죽음과도 같은 정적이 맴돌았으나 그는 그의 옆에 있던 그의 오페라 '전쟁과 평화'의 다음 지휘자와 담소를 그치지 않았지요." 정치적인 스펙트럼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지만 달갑지 않게도 스탈린과 프로코피에프는 같은 날인 1953년 3월 5일에 사망하였다. 프로코피에프의 첫 번째 부인인 리나는 날조된 스파이 혐의로 1948년 2월 20일 붙잡혔으며 노동자 캠프에 20년간 수용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깊은 분노를 뜻 모를 대중이라는 허울 뒤에 숨긴 채, 프로코피에프는 끓어오르는 적개심으로 불타는 상황에서 새로운 작품에 착수하기 보다는 수 많은 초기 작품을 면밀하게 검토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에는 1930년 작곡한 네 번째 교향곡, 다섯 번째 피아노 소나타 그리고 1938년 베레초프스키가 초연하여 비참하게 실패한 작품 58의 첼로 협주곡 E 단조를 포함한다. 9년 뒤 프로코피에프는 로스트로포비치가 그 작품을 열정과 확신을 가지고서 연주하는 것을 듣고서 새로운 의욕을 가지고 돌아왔다.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 첼로 연주자의 조언을 들어가며 프로코피에프는 1952년 개정판의 초고를 완성했고 이 작품을 '첼로 협주곡 제 2번'이라 명명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이 작품을 2월 18일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가 지휘하는 모스크바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함께 초연하였다. 이 위대한 피아노 연주자가 단 한번 지휘봉을 잡았던 순간이었다. 다시 개정된 협주곡에 대해서도 여전히 불만이 많았던 프로코피에프는 악보를 개정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판본은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라고 명명되었고 1954년 12월 토마스 젠센이 지휘하는 덴마크 왕립 오케스트라와 함께 로스트로포비치가 초연하였다. 자유분방한 개시의 안단테는 서정적인 정서가 지배적이다. 두 무리의 분명하게 구분이 되는 주제부가 교묘하게 병치되면서 대조와 극적인 긴장감의 극치를 보여준다. 장한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을 연주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육체와 정신의 에너지 모두를 현명하게 유지하면서 다루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자원을 불필요하게 많이 사용할 소지가 있는 열정적인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두 번째 악장에 있는 강력하면서도 정교한 스케르초에 있어서 특히 이것은 사실이다. 장한나가 설명을 한다. "그것은 이례적으로 길고 중간 지점에 긴 카덴차가 있습니다. 시종일관 프로코피에프는 첼로 연주자가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분을 감당하도록 합니다. 음악적으로도 역시 천상의 꿈결에서 격렬한 광기까지의 정신적인 여정을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것도 단 하나의 악장 안에!" 마지막 악장은 원곡의 '주제와 변주'를 확장시키는데, 부언이 되겠지만 이를 프로코피에프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사실상 출판된 악보(만약 독주자가 원했다면 그 악장을 관통하며 존재하던 부분을 대신할 수도 있었다)에서 대체해야 할 부분은 작곡가의 마음에 여전히 의심이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로스트로포비치는 프로코피에프가 모든 '형식주의' 작곡가를 비방했던 의 블라디미르 자카로프의 '스탈린 찬가'를 조롱하며 패러디한 부분을 위장하기를 바랬으며 보다 정상적인 시대가 돌아오면 이 부분을 삭제하려고 항상 마음먹고 있었다고 믿는다. 아울러 냉소적이고 아이러닉한 요소는 프로코피에프가 막심 고리키의 유명한 문장인 '인간-그는 자랑스런 소리를 지니고 있다'에 대해 그의 C 장조 첼로 소나타의 첫 페이지에 적은 비명 뒤에도 도사리고 있다. 1940년대 중반 그는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에 대해 예비 스케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비난을 터트리는 무리의 압력이 생길 조짐이 보이자 이것과 또 다른 초고를 구석으로 밀어놓았다. 그러나 로스트로포비치에게 영감을 받아 1949년에 완성된 새로운 소나타는 회개하고 '재교육된-교화된' 작곡가의 작품이 되었다!진정 첼로 소나타의 복잡하지 않은 재기와 젊은 에너지는 프로코피에프가 비난을 받았던 이유인 '복잡하고 정신적으로 산란하여 음악을 불협화음과 혼란스러운 소리의 축적으로 변화시키는 조합'에 대한 안티테제로 보였다. 소련의 평론가들은 교화된 '형식주의자'가 회개를 하며 내놓은 작품으로 지적하며 열광하였다. "새로운 삶의 모든 아름다움이 이 작품에 담겨있는 듯 하고 이것이 새로운 출발을 가능케한다."라고 프리드버트 스트렐러(Friedbert Streller)가 외쳤다. "어디를 보더라도 작곡가는 새롭게 건설된 소련의 평화로운 세계에 둘러싸여 있으며 이것이 그의 계획에 온건한 영향을 주도록 하였다." 첫 악장(안단테 그라브)은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피아노가 들어서기 전 첼로 연주자에게 무반주의 준열한 서막의 기회를 주고 있다. 뒤따르는 부분은 정서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서정적이다. 중심을 이루는 모데라토는 A-B-A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진정 스케르초의 정서(그러나 항상 일정한 박자는 아니다)를 가지고 있다. 그 다음 부분은 감동적인 트리오로 마무리하고 마지막(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은 소나타와 론도의 요소를 두루 갖고 있다. 장한나가 이야기한다. "이 소나타는 첼로와 피아노 간의 다양한 상호 관계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힘차면서도 간혹 내성적인 첫번째 악장은 해학적이며 가벼운 느낌의 두 번째 악장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역시 마지막은 삶으로 가득 차 있으며 중간 부분이 아름답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에 있어서 열정과 재치의 조합은 또 다른 섬광과 매력을 자아냅니다. 처음에 프로코피에프는 그의 음악이 재가를 받고 연주될 수 있도록 단순한 음악을 작곡하라는 공산당의 생각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마음 깊숙이 들어가보면 그는 진정 자신을 위해 작곡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누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것 말고 다른 것을 작곡할 수 있겠습니까?" --- Michael Jameson, 2002 金俊亨(音盤評論家) 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