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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21세기 일본의 역사인식
아시아는 불안하다 / ‘통한’의 마음은 있지만 책임은 없다? / ‘한일공동성명서’는 열쇠가 될 수 있을까? / 역사 왜곡 속에 탄생할 한국과 일본의 불행한 미래 / 천황, 평화주의자 만들기 / N.H.K, 역사 왜곡에 동참하다 / 일본은 과거의 교훈을 잊었는가 제2장 메이지 시대의 일본과 조선 정한론 비판의 마지막 목소리 / 조선 침략은 문명국다운 행동이다? / 조선낙후론의 진실 / 누가 조선의 독립을 막았는가 / 조선의 중립화 구상과 러일전쟁 / 한일병합, 일본이 얻은 것과 잃은 것 제3장 교과서 재판, 전통적 편견과의 싸움 한국도, 역사도 모른다 / 교과서 재판의 쟁점 / 정체불명의 종교단체로 둔갑한 동학운동 / 조선의 항일운동에 대한 일본의 편견 / 학계에 소개도 되지 않은 일설일 뿐? / 교과서 검정의 부당성 제4장 민족해방운동과 제국주의 왜 민족해방운동인가 / 일본 제국주의의 군사지배 성립 과정 / 군사력에 의존한 식민지배 / 경계와 멸시가 부른 3.1운동 / 문화정치, 눈 가리고 아웅하기 / 일본 제국주의 붕괴의 길 제5장 제국주의 안의 민주주의 제국주의 안에 피어난 민주주의 / 민본주의는 제국주의를 극복했는가 / 무엇이 ‘연대’인가 / 3?1운동 이후 조선의 민족운동 / 이승만이든 이완용이든 민원식이든…… /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진정한 의미 제6장 광개토왕비문은 어떻게 해석되었나 학문에는 국경이 없다 / 일본 역사학계가 꼽은 최고의 사료, 광개토왕비문 / 광개토왕비문의 전문을 찾아서 / 일본인의 상식에 문제 제기한다 /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비문 연구 / 일본 역사학계의 근본적인 반성을 촉구하며 제7장 일본 근대사의 전개와 조선인식 강화도조약 이전의 조선인식 / 왜곡된 조선인식이 수정될 기회마저 잃어 / 참모본부와 역사 연구 / 닫혀버린 실증적 역사 연구의 길 / 교과서 속의 조선사상 저자후기를 대신하여_나는 왜 한일관계사를 연구하게 되었나 15년 전쟁과 군국소년으로의 성장 / 가치관의 전환을 불러온 패전 / 국민과 함께하는 역사학운동의 시기 / 한국과의 만남 / 한국어 공부와 광개토왕비의 진실 / 빈곤한 역사인식을 깨닫다 / 교과서 검정소송을 겪으며 / 역사 편찬 작업의 즐거운 기억 / 제국주의의 상징 무쓰 무네미쓰의 연구 / 함께하는 내일을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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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선 침략의 과정 중에 이른바 ‘근대 일본의 조선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 조선사와 조일관계사에 관한 연구가 구체적인 침략 과정과 병행하여 ― 아니, 침략 정책의 일환이라고 말하는 편이 맞는지도 모른다. ― 이루어졌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때의 그 ‘연구’라는 것이 종래에 있던 편견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었고, ‘연구’를 추진한 주체도 침략 정책에 가담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 연구 성과도 정착할 수 있었다. 메이지 초기부터 일본의 대외 정책은 기본적으로 조선 침략을 당면한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었다. 자유민권운동 등도 있었지만, 천황 정부의 대외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 서서 조직적이고 주체적으로 조선 침략을 반대하는 세력은 아직까지 없었다고 보아도 좋다.
--- p.209 '7장 일본 근대사의 전개와 조선인식'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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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히 일본인이 역사인식이 부족하다는 데 있지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사실을 사실로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역사를 위조’하고 있는 데 대해 아시아 각국의 비난이 쏟아지고 국제분쟁의 불씨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p.46 '1장 21세기 일본의 역사인식'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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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기』와 『일본서기』의 기술 그대로를 믿지는 않지만 “4세기 중반부터 야마토 조정을 중심축으로 한 일본이 한반도의 남부를 예속시켰던 것은 명확한 사실이고, 이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는 ‘확신’이 일본의 역사가뿐만 아니라 ‘국민적인 상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또 이와 관계없이 근대 일본의 제국주의, 군국주의가 조선을 침략하고 식민지배한 것과 관련해 일본은 “어느 시대나 한국보다 앞섰다”는 관념이 오늘날 일본에 더욱 널리 퍼져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으로 남북을 불문한 현대 한국 역사가들의 연구 성과가 일본인 역사가에게 적극적으로 수용, 검토되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사 연구에서도 일본의 학문 연구가 훨씬 치밀하고 선진적이므로 한국의 역사가들에게 배울 게 거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 p.166 '6장 광개토왕비문은 어떻게 해석되었'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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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신식민지주의적인 형태로 식민지배를 유지하려는 제국주의나, 전제지배의 성격을 군사적?관료적 제국주의에서 동화주의로 바꿔 언뜻 보기에는 ‘자치’ 상태로 지배를 지속하는 제국주의는 제국주의라고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군벌과 관료는 비판과 반대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독점자본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적인 제국주의는 허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오늘날 다이쇼 데모크라시에서 일본식 ‘민주주의’의 전통을 찾으려 하는 일본 근대사 연구자들에게 제국주의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주체적인 본연의 자세를 묻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 p.157~158 '5장 제국주의 안의 민주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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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조선을 지배한 것은 몇 년부터 몇 년까지인가?”라는 질문에 정답을 쓴 학생은 다섯 명 중 하나 정도였다. 또 “재일한국인은 대략 몇 명 정도인가?”라는 질문에 정답을 쓴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한편, “영국의 도시 이름 다섯 개를 쓰시오.”라는 질문에는 다섯 개 다 쓴 학생이 36%였던 것에 비해 “한국(남북한 합쳐서)의 도시 이름 다섯 개를 쓰시오.”라는 질문에 다섯 개를 다 쓴 학생은 지금까지 한 사람도 없었다.
--- p. 81 '3장 교과서 재판, 전통적 편견과의 싸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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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왜 역사를 왜곡하는가? 답은 ‘근대 일본의 조선인식’ 속에 있다.
일본인 역사학자가 밝혀낸 일본의 왜곡된 역사인식, 그 실체와 뿌리! 을사조약 100주년, 광복 60주년, 한일협정 체결 40주년이자 ‘한일 우정의 해’인 2005년.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2005년은, 3월 17일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과 함께 불붙은 독도 영유권 분쟁, ‘새역모’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등 한일간 갈등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도 극심한 해다. 이러한 일본의 태도에 분개하는 많은 한국인들이 정작 그들이 왜 역사를 왜곡하는지, 일본인들은 실제로 한국과 한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일본의 양심적 역사학자 나카쓰카 아키라의 저작 『근대 일본의 조선인식』은 일본 역사왜곡 문제의 본질을 그 뿌리에서부터 파헤치고 있어,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이 책에서 근대 시기에 형성되어 오늘날까지 일본인들의 의식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조선인식의 실체를 밝혀내고자 했다. 특히 제국주의 일본이 왜곡한 조선인식이, 역사교육을 통해 대중의 인식 속에 자리 잡게 되고, 오늘날 일본의 국민적 ‘상식’으로 거듭나는 메커니즘을 상세히 분석했다. 일본의 우경화 경향을 우려하는 일본의 노사학자가 역사왜곡 문제의 본질을 정밀한 사료 분석으로 밝혀낸 이 책은, 한일관계사 관련 서적 중에서도 비교적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서술이 돋보이는 책으로, 한일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객관적인 시각을 갖도록 돕고 있다. 전쟁을 위해 날조된 역사, 오늘날 일본의 국민적 ‘상식’으로 지난 5월 31일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발표한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 간에 근현대사에 대한 인식차가 극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역사학자들은 “을사조약과 한일병합조약이 국제법적으로 합법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유효”한 것으로 보았고, 조선의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항일운동이 활발했다면 왜 한반도가 스스로 독립하지 못했느냐”는 지적을 하면서 “한국의 민족주의는 국가, 국민의식이 희박하고 리더십이 결여돼 있는”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나카쓰카 아키라는 이러한 역사인식의 차이가 단지 자국의 입장을 옹호하는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이루어진 역사인식의 차이로만 볼 수는 없다고 말한다(166쪽). 저자는 다양한 외교문서, 그리고 『참모연혁지』와 같은 육군 참모본부의 기록 등 1차 사료를 중심으로 일본의 역사인식이 왜곡되어 있음을 실증하고 있다. 그리고 그 뿌리를 메이지 시대를 전후한 일본의 근대 시기에 천황 정부와 군부가 조선 침략 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찾고 있다. 즉, 일본의 왜곡된 역사인식의 근원은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일본 지배층이 조선사상(朝鮮史像)을 조작한 결과라는 것. 제국주의 일본이 널리 퍼뜨렸던 ‘조선낙후론, 조선정체론’은 그 한 예다(2장). 그리고 일본 고대사에 관한 최고의 사료로 평가받는 광개토왕비문의 탁본이 육군 참모본부의 스파이였던 사코 가게노부에 의해 처음 일본에 들어왔던 점과 그것이 청일전쟁이 일어난 1884년이라는 점, 그리고 그 해석이 참모본부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해석이 오늘날까지 수정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문헌사료를 통해 조목조목 열거하고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이렇게 왜곡된 역사인식이 역사교과서 왜곡을 통해 일본의 국민적 ‘상식’으로 자리 잡으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는 주장이다. 1982년 교과서 재판을 겪으며 역사교과서 검정에 따른 역사 왜곡 실태를 정면으로 맞부딪힌 바 있는 저자이기에 그의 문제의식은 매우 날카롭다. “역사연구가 전쟁에 종사할 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저자는, 참모본부의 역사 사료 수집, 편찬, 출판 활동을 분석하면서(7장) ‘근대 일본의 조선인식’의 형성 과정을 밝혀내고, 이로써 오늘날 일본의 역사인식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조선 침략의 과정 중에 이른바 ‘근대 일본의 조선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 조선사와 조일관계사에 관한 연구가 구체적인 침략 과정과 병행하여 ― 아니, 침략 정책의 일환이라고 말하는 편이 맞는지도 모른다. ― 이루어졌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때의 그 ‘연구’라는 것이 종래에 있던 편견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었고, ‘연구’를 추진한 주체도 침략 정책에 가담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 연구 성과도 정착할 수 있었다. 메이지 초기부터 일본의 대외 정책은 기본적으로 조선 침략을 당면한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었다. 자유민권운동 등도 있었지만, 천황 정부의 대외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 서서 조직적이고 주체적으로 조선 침략을 반대하는 세력은 아직까지 없었다고 보아도 좋다. ― 7장 일본 근대사의 전개와 조선인식(209쪽) 노사학자의 일본 역사학계를 향한 심도 깊은 문제제기 돋보여 『근대 일본의 조선인식』은 무엇보다 일본 우익의 역사왜곡을 우려하는 저자의 날선 역사의식이 돋보이는 책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히 일본인이 역사인식이 부족하다는 데 있지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사실을 사실로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역사를 위조’하고 있는 데 대해 아시아 각국의 비난이 쏟아지고 국제분쟁의 불씨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1장 21세기 일본의 역사인식(46쪽) 이 책의 저자인 나카쓰카 아키라는, 2001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 때 한중일 3개국 학자들을 대표하여 반대성명을 발표하고,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을 철저히 추궁하는 등 일본 내에서도 대표적인 양심적 역사학자다. 또한 일본 측 사료로 일본의 조선 침략을 실증하는 작업을 해온 실증주의 사학자이자 한일관계사에 정통한 지한파 역사학자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실린 광개토왕비문의 탁본이라고 알려져 있던 사진이 신묘년의 기록만을 빼내 원본의 자순을 바꿔 나열한 사진석판임을 밝혀내 이 도판을 교과서에서 삭제하게 한 바 있다(192쪽). 또한 1982년 이에나가 사부로의 교과서 재판 당시 원고 측의 증인으로 재판에 참석하여 청일전쟁 중 일어났던 조선의 항일운동의 중요성을 증언하기도 하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역사 왜곡이 분명한 내용이 역사교과서에 버젓이 실리는 상황을 지적하며 일본 역사학계의 무관심과 방조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임나일본부설, 야마토 정권의 일본 통일설 등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담긴 역사의식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일본 역사학계의 실태를 고발하고(6장), 또한 제국주의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다이쇼 시대의 민주주의(‘다이쇼 데모크라시’)에서 일본 민주주의의 뿌리를 찾은 역사학자들의 안일한 연구자세에도 문제를 제기했다(5장).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기술 그대로를 믿지는 않지만 “4세기 중반부터 야마토 조정을 중심축으로 한 일본이 한반도의 남부를 예속시켰던 것은 명확한 사실이고, 이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는 ‘확신’이 일본의 역사가뿐만 아니라 ‘국민적인 상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또 이와 관계없이 근대 일본의 제국주의, 군국주의가 조선을 침략하고 식민지배한 것과 관련해 일본은 “어느 시대나 한국보다 앞섰다”는 관념이 오늘날 일본에 더욱 널리 퍼져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으로 남북을 불문한 현대 한국 역사가들의 연구 성과가 일본인 역사가에게 적극적으로 수용, 검토되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사 연구에서도 일본의 학문 연구가 훨씬 치밀하고 선진적이므로 한국의 역사가들에게 배울 게 거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 6장 광개토왕비문은 어떻게 해석되었나(166쪽) 이른바 신식민지주의적인 형태로 식민지배를 유지하려는 제국주의나, 전제지배의 성격을 군사적?관료적 제국주의에서 동화주의로 바꿔 언뜻 보기에는 ‘자치’ 상태로 지배를 지속하는 제국주의는 제국주의라고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군벌과 관료는 비판과 반대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독점자본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적인 제국주의는 허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오늘날 다이쇼 데모크라시에서 일본식 ‘민주주의’의 전통을 찾으려 하는 일본 근대사 연구자들에게 제국주의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주체적인 본연의 자세를 묻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 5장 제국주의 안의 민주주의(157~158쪽) 서문에서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1차 사료를 기초로 역사를 서술하려고 했다”고 밝혔듯이 저자는 기존에 일본 역사학계에서 연구된 주장들을 면밀한 사료 분석을 통해 조목조목 반박해 실증주의 사학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와 같은 실증적 연구방식은 저자의 객관적 역사의식과 함께 글의 내용에 신뢰를 더해주고 있다. 일본 역사왜곡의 실체를 파헤친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역사비평서 역사왜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태도에 분개하여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 감정적 대응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근대 일본의 조선인식』은 일본의 역사인식 중 어느 부분이 왜곡되어 있는지 사료 분석을 통해 꼼꼼히 점검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인에게는 올바른 역사인식을 정립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일본이 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지 그 실체를 이해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한국인에게도 중요한 책이다. 저자의 정년퇴임을 기념하며 일본에서 1993년에 출간된 책이지만 10년이 지난 오늘 읽어도 일본의 현재를 이해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지난 10년간 일본의 역사인식에는 커다란 변화가 없었던 까닭이다. 일본인의 눈에 비친 한국과 한국사를 일본인 역사학자가 분석하고 있어, 최근 극심한 갈등을 이루고 있는 한일문제의 핵심을 이해하려는 독자에게 좀 더 객관적인 정보를 전해주고 있다. 『근대 일본의 조선인식』은 학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책으로, 깊이 있는 분석을 쉽게 써내려가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와 한일관계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저자의 논리적인 서술과 객관적인 시각은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미덕이다. 또한 책의 말미에 실은 50년간의 연구 생활을 회고한 저자 후기는, 군국주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저자가 어떻게 일본의 양심적 역사학자가 될 수 있었는지 읽는 이의 궁금증을 풀어줄 뿐만 아니라 전전과 전후 일본의 사회상도 생생하게 전해준다. 일본인의 인식 속의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일본의 한국인식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조감도 이 책은 오늘날 일본인들에게 한국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책이다. “일본이 조선을 지배한 것은 몇 년부터 몇 년까지인가?”라는 질문에 정답을 쓴 학생은 다섯 명 중 하나 정도였다. 또 “재일한국인은 대략 몇 명 정도인가?”라는 질문에 정답을 쓴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한편, “영국의 도시 이름 다섯 개를 쓰시오.”라는 질문에는 다섯 개 다 쓴 학생이 36%였던 것에 비해 “한국(남북한 합쳐서)의 도시 이름 다섯 개를 쓰시오.”라는 질문에 다섯 개를 다 쓴 학생은 지금까지 한 사람도 없었다. ― 3장 교과서 재판, 전통적 편견과의 싸움(81쪽) 저자가 대학의 역사학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실시했던 설문조사의 결과에 대해, 저자는 조선 침략 과정에서 형성된 조선인에 대한 멸시와 편견이, 식민지 조선이 독립하면서 무관심으로 변해버린 것으로 분석했다. 한편, 과거 왜곡된 채로 답습되는 일본의 조선인식이 오늘날 일본인들의 의식세계를 어떻게 지배하는지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조선 침략 과정에서 만들어진 ‘조선낙후론’의 논리는 현대에 와서 다음과 같이 전화된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80년 한국은 광주항쟁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군사재판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해 일본에서도 조선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전개되었다. (중략) “한국은 상당히 낙후되고 정체된 나라다. 그러므로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성립할 수 없다. 조선조 500년간 화폐경제란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폐경제로 양성되는 합리적인 사고도 발달하지 못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해될 뻔한 것도 그런 역사적?정치적 배경 때문이다”라는 주장도 있었다. ― 2장 메이지 시대의 일본과 조선(60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