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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의미의 불안
첫 번째 이야기 - 인간의 위대함과 비참함 1. 생각과 물질 2. 역설적인 이성 두 번째 이야기 - 도피와 출구 3. 쾌락 4. 해방 세 번째 이야기 - 마음과 일치 5. 사랑의 몸짓 6. “모든 것은 하나이며, 그 하나는 세 위격이 그러하듯이 타자 안에 존재한다” 맺음말 - 물거품 혹은 영원 옮긴이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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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삶에 대한 수녀님의 고백에는 잘못된 시대의 편견과 그 편견에 매여서 벗어날 수 없었던 좌절과 고통들이 담겨 있고, 수녀님은 그 원인들을 파스칼에 기대어 분석하고 있다. 파스칼의 《팡세》는〔……〕신앙과 이성이 대립하던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이성을 넘어서―이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끌어안으면서―하느님을 지향한다. 이성이 도달하지 못하는 곳을 향하여 신앙이 나아간다면 신앙은 우리 마음에 내려오시는 하느님을 만난다는 것을 가리킨다. 《팡세》는 지극히 이성을 중시하면서도 이성을 넘어서는 곳에 인간의 마음이 있다고 주장한다.
--- p.150~1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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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신비이다. 그것은 여기 있는 것도, 저기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움직임’이기에 신비이다. 사랑은 관계이기 때문에 움직임이다. 관계는 잡히는 것도 아니며, 통제할 수도 소유할 수도 없다. 관계는 너 혹은 나에게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이의 신비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에서 나와 이웃을 향하는 각자의 쌍방적 움직임이다. 〔……〕사랑은, 내가 상상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웃이 원하는 방식으로 주는 존재의 보어이다. 역으로 사랑이란 남이 나에게 주되 그의 방식으로 주는 존재의 보어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차이 속에 다르게 살아온 관계의 신비를 산다.
--- p.118~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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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백 년의 여정
검은 수녀복에 커다란 안경, 쓰레기 산을 뒤지고 다니느라 닳아빠진 운동화, 호탕한 웃음, 깊게 파인 주름살…… 에마뉘엘 수녀는 가난한 이들 속으로 뛰어들어 그들과 가난을 나누며 평생을 살아왔다. 삶 자체가 큰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을 사로잡은 수녀의 매력은 무엇보다 거침없고 솔직한 언행에 있었다. 누구든 보자마자 반말을 하고, 교회가 재산을 팔고 가난해져야 한다는 내용의 청원서를 교황에게 직접 전달했다는 이야기는 이러한 모습을 잘 전해 준다. 이 책 역시 그러한 에마뉘엘 수녀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수녀는 결코 우리에게 ‘삶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단정 짓지 않는다. 혹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설교하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이 겪었던 욕망과 유혹, 좌절 그리고 해방의 여정들을 덤덤히 우리에게 얘기할 뿐이다. 아흔다섯이라는 나이에 자신의 삶을 이렇듯 치열하고 솔직하게 되돌아볼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 자체로 수녀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지 모른다. “도대체 사는 게 뭔가.”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질문들이다. 논리적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는 이런 의문들……. 에마뉘엘 수녀는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과 공허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설명한다.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를 찾지 못하기에 끊임없이 공허감에 시달리고, 불안과 공허를 느낄수록 더욱더 자기 밖에서 탈출구를 찾으려고 몸부림친다는 것이다. 그런 고비마다 파스칼의 《팡세》는 에마뉘엘 수녀에게 삶의 여정을 이끄는 나침반이 되어 주었다. 파스칼에 따르면 인간의 실존 방식은 물질의 차원, 정신의 차원, 사랑의 차원으로 집약된다. 삶이 물질이나 정신의 차원을 필요로 할지라도 삶의 의미란 오직 마음의 차원에서만 발견된다는 것, 이것이 이 책을 통해서 에마뉘엘 수녀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열네 살의 소녀가 우연히 펼쳐 든 책의 한 구절. “인간은 한낱 갈대에 불과한 것, 자연에서 가장 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이다.” 이것은 그녀에게 놀라운 발견이었다. 생각하는 인간의 위대함을 깨달았고, 지겹게만 보였던 삶이 의미를 띠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소녀는 파스칼과 긴 모험을 시작했다. 가냘픈 갈대가 생각하는 힘을 가지고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싸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녀에게 인간은 자연 안에서 무한과 허무 사이의 존재였다. 인간은 무한한 영광에 도달하려는 열망과 자신이 지극히 작다는 사실을 부인하려는 도전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다.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존재, 천사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존재가 바로 인간인 것이다. 본질적인 연약함은 존재론적이기에 인간은 죽을 때까지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신의 차원으로도 이 연약함을 없앨 수 없는 까닭에, 인간은 물질의 차원에서 더욱 고통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이성의 권능과 자신 안의 공허에 직면한 인간은 자신의 욕망에 몸을 맡기고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은 유혹에 빠지는 것이다. 에마뉘엘 수녀는 살아오는 동안 자신이 어떠한 유혹들에 시달렸는지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젊은 시절 유행을 좇아 외모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기도 했고, 쾌락의 바닥까지 떨어져 길거리에서 남자를 찾아 헤매고 다니기도 했다. 이런 유혹만 찾아왔던 것은 아니다. 그녀를 더욱 괴롭혔던 것은 활동에의 탐닉과 지식욕이었다. 여러 가지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많은 일을 한다고 해도 인간의 가장 작은 부분조차 건드리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한편 수녀는 신앙과 이성을 조화시킬 수 없는 데서 오는 무력감에 짓눌려 있었다. 그럴수록 더욱 에마뉘엘 수녀는 지식의 탑을 쌓는 데 몰두했다. 지식의 탑을 쌓다 보면, 언젠가 불안이 해소되고 언젠가 진리에 도달하리라는 믿음으로 진실을 외면했던 것이다. 이러한 지식욕은 평생 동안 그녀를 괴롭혔던 것이기도 했다.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 여러 가지 유혹의 장들을 겪어 내면서 수녀는 점차 마음의 차원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예순두 살이 되던 해의 가을날, 가지고 있던 책들을 나누어 주고 공책을 모두 태워버린 뒤 빈민 구역으로 떠났다. 이러한 해방의 체험 다음에 에마뉘엘 수녀를 찾아온 것은 사랑의 신비였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희생만도 아니고, 쾌락과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에마뉘엘 수녀는 말한다. 수녀에게 참된 사랑은 이러저러한 행위 속에서 순수한 상태로 발견되는 무언가가 아니다. 사랑은 내면으로부터 자기를 초월하는 인간적 삶의 부분이다. 바로 이것이 인간에게 의미를 제공한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넘어서도록 이끄는 도약이고, 이런 의미에서 사랑은 우리들 삶의 신비라고 수녀는 말한다. 이것이 바로 백 년의 여정 끝에 에마뉘엘 수녀가 찾은 삶의 의미이다. 사랑의 도약은 물질과 정신의 차원과 맞서지 않으면서도 그것들을 넘어서 마음의 길, 행복과 평화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한 번 마음의 날개를 타고 날아오르면, 우리의 연약함은 더 이상 지기 어려운 짐은 아닐 거예요……”. 이렇게 나지막이 속삭이는 노수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다. 이 목소리를 쉽게 외면할 수 없는 것은 에마뉘엘 수녀 스스로가 삶을 통해 체험하고 확인한 것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