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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Martin Stadtfeld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 마르틴 슈타트펠트 (Bach : Goldberg Var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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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소개

디스크

CD 1

  • 01 Bach : Goldberg Variations

아티스트 소개 2

작곡Johann Sebastian B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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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세바스찬 바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독일어: Johann Sebastian Bach, 1685년 3월 21일 ~ 1750년 7월 28일)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이며, 개신교회의 교회 음악가이다. 교회 성기사와 오케스트라, 듀오 악기를 위한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음악을 창작했고, 그의 작품은 바로크 시대의 종말과 궁극적인 성숙을 동시에 가져왔다. 그는 바로크 시대의 최후에 위치하는 대가로서, 일반적인 작품은 독일음악의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위에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양식을 채택하고 그것들을 융합하여 독자적 개성적인 음악을 창조하였다. 종교적 작품은 기존 구교 음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독일어: Johann Sebastian Bach, 1685년 3월 21일 ~ 1750년 7월 28일)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이며, 개신교회의 교회 음악가이다.

교회 성기사와 오케스트라, 듀오 악기를 위한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음악을 창작했고, 그의 작품은 바로크 시대의 종말과 궁극적인 성숙을 동시에 가져왔다. 그는 바로크 시대의 최후에 위치하는 대가로서, 일반적인 작품은 독일음악의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위에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양식을 채택하고 그것들을 융합하여 독자적 개성적인 음악을 창조하였다. 종교적 작품은 기존 구교 음악과 차별화하여 새로운 음악을 통해 개신교회 예배에 기여하고자 노력하였다.

바흐의 집안은 200년에 걸쳐서 50명 이상의 음악가를 배출한 일대 음악가계였다. 바흐 집안의 음악가들은 대대로 개신교회인 루터교회의 경건한 신자들이었고, 교회음악가로도 활동하였다. 또한 그들의 일에 강한 장인(匠人)적인 긍지를 품고 있었다. 이 '신앙'과 '장인기질(匠人氣質)'은 요한 제바스티안에게도 계승되어서, 마치 2개의 정선율(定旋律)과 같이 그의 일생을 관통하게 된다. 제바스티안 이전에도 17세기 초엽 이래 많은 유명한 작곡가를 배출했고, 일족의 중심지이었던 중부독일의 튀링겐 지방에서는 '바흐'가 '거리의 악사'를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을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제바스티안의 큰할아버지 하인리히 바흐(1615-1692), 그 아들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1642-1703)와 요한 미하엘 바흐(1648-94)는 음악사(史)에도 이름을 남긴 뛰어난 작곡가들이었다.

바흐는 사후 고전주의 음악사의 흐름에 밀려 완전히 잊혔으나 1802년 독일의 음악사학자인 포르켈이 바흐에 대한 최초의 연구서인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Uber Johann Sebastian Bachs Leben, Kunst und Kunstwerke)을 1802년에 발표함으로써 전 유럽적 바흐 광풍을 몰고 오게 하였으며 또한 사후 바흐에 대한 재평가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였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온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아주 훌륭한 곡을 많이 작곡 하였다.

바로크 음악에 있어서 바흐는 대위법 기술의 정수를 다한 사람이나, 그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당시에 이미 궁정문화에 침투했던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양식을 스스로 받아들여 칸타타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도 했다. 거기에는 그가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배운 여러 나라의 온갖 요소가 모두 투입되어 그만이 지닐 수 있는 최고로 천재적이게 융화되어 일치미를 이루고 있다. 콘티누오(통주저음)만으로 반주되거나 또는 여러 개의 악기로 반주되는 독창이나 중창에 의한 이탈리아식 다 카포 아리아, 오페라적인 아리오소와 레치타티보, 가장 초기의 가브리엘 형태에서 바흐 시대의 프랑스식 서곡에 이르기까지의 관현악 신포니아, 협주곡, 트럼펫의 팡파르, 풍요한 장식성을 지니고 성악성부에 얽혀드는 기악의 오블리가토 성부, 복합창형식, 때로는 성악에까지 적용되는 프랑스의 리드미컬한 춤곡, 이러한 것이 독일의 오랜 전통인 코랄과 결부되고 있다. 대체로 바흐만큼 코랄을 훌륭하게 활용하고 또 코랄을 창작의 중심으로 삼기에 정당함을 느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 나라 양식의 혼합은 기악 분야에서도 볼 수 있다. 프로베르거의 전통, 쿠프랭의 프랑스 모음곡형식, 쿠나우에 의하여 전해진 이탈리아의 소나타 다 카메라양식,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의 건반 텍스처(鍵盤書法), 푸가에 있어서도 클라비어 푸가는 이탈리아 협주양식의 영향을 나타내나 오르간 푸가는 북독일 오르간 악파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협주곡 분야에서는 끊임없이 비발디가 모범으로 숭앙되며, 가장 이탈리아의 특징을 나타낸다. 이와 같이 바흐의 작품은 매우 많은 여러 가지 양식을 포함하고, 또한 작곡한 분야도 넓으며 바흐 개인으로서도 시대에 따라 기술적, 내용적으로 현저하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개인양식을 간단히 종합하기란 곤란하다고 하겠다.

바흐는 생전에도 동시대의 음악가였던 비발디나 텔레만과 같이 국제적 지명도를 가진 음악가는 아니었다. 사후에는 당시 음악가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작곡가로서는 완전히 잊혀진다. 바흐 생애 후반부에 이미 고전파 음악의 전조가 시작되었고 바흐 음악은 낡은 것으로 취급되었다. 바흐는 비발디나 헨델과 같이 음악가의 프리랜서화를 선도하는 인물도 아니었고 끝까지 교회 음악가로 남았다. 고전파 시대에 바흐는 고전파의 문을 연 아들들의 아버지로서 오히려 유명하였다. 유명인 중에는 모차르트가 바흐의 악보를 찾아서 탐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모차르트 음악에 가끔 훌륭한 푸가가 보이는 것이 바흐의 영향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베토벤 또한 바흐를 연구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영향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바흐를 극찬하는 말을 남겼다고하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아닌 아들 바흐에 대한 찬사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그러나 1802년 독일의 음악사학자인 포르켈이 사후 완전히 잊혔던 바흐에 대한 최초의 연구서인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Uber Johann Sebastian Bachs Leben, Kunst und Kunstwerke"(1802)를 발표함으로써 바흐에 대한 인식의 전환점을 제공하였다. 근대 인문학으로서의 음악사학의 발전은 낭만주의 시대에 이전 시대의 음악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고 이들의 작품을 출판,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바흐는 그 핵심 레파토리로 떠오른다. 바흐 생존 시기나 고전파 시대의 지명도와는 달리 낭만주의 시대에 바흐는 이전 시기 어떠한 음악가보다 높이 평가되기 시작하여 멘델스존 이후 음악가들 중 바흐를 연구하지 않은 작곡가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바흐에 대한 관심은 바흐가 많이 참고하고 편곡을 했던 다른 음악가들, 특히 비발디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켜서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바로크 음악의 부활을 이끌기도 하였다. 오늘 날에도 바흐는-그의 음악이 바로크 음악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도 없고, 바로크 시대 가장 유명한 음악가도 아니었지만-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추앙받고 있다.

서양 음악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바흐의 가문에서는 약 200년 동안에 걸쳐 저명한 음악가가 많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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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Martin Stadtf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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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슈타트펠트

마르틴 슈타트펠트는 1980년 코블렌츠에서 태어났다. 14세에 프랑크푸르트 음악 대학 시험을 통과했고, 이곳에서 레프 오보린의 제자인 레프 나토체니에게 배웠다. 이후에 그의 성장에 발판이 된 계기로는 메나햄 프레슬러(보자르 트리오), 비탈리 마르굴리스, 블라디미르 펠츠만, 이고르 라즈코, 페터 아이허 등의 마스터클래스와 토머스 브랜디스, 이다 빌러, 칼레 란달루와의 실내악 프로젝트가 있다. 1997년 슈타트펠트는 파리의 니콜라이 루빈스타인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베를린의 독일 음악 경연에서 다섯 개 장학금 중 하나를 수상했다. 2001년에는 볼차노의 부소니 콩쿠르에서 평단과 청중의
마르틴 슈타트펠트는 1980년 코블렌츠에서 태어났다. 14세에 프랑크푸르트 음악 대학 시험을 통과했고, 이곳에서 레프 오보린의 제자인 레프 나토체니에게 배웠다. 이후에 그의 성장에 발판이 된 계기로는 메나햄 프레슬러(보자르 트리오), 비탈리 마르굴리스, 블라디미르 펠츠만, 이고르 라즈코, 페터 아이허 등의 마스터클래스와 토머스 브랜디스, 이다 빌러, 칼레 란달루와의 실내악 프로젝트가 있다. 1997년 슈타트펠트는 파리의 니콜라이 루빈스타인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베를린의 독일 음악 경연에서 다섯 개 장학금 중 하나를 수상했다. 2001년에는 볼차노의 부소니 콩쿠르에서 평단과 청중의 갈채를 받으며 우승했다. '남독일 신문'은 그의 연주를 평하며 "메이저 음악 콩쿠르는 덜 알려진 재능 있는 연주자를 알기에 좋은 기회이다. 그들은 국제적인 음악 시장의 변두리에 있으나, 진정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개성 있는 표현력이 만국 통용어 에스페란토보다 더욱 중요하다"라고 썼다.
그러나 마르틴 슈타츠펠트가 최고의 성공을 거둔 것은 2002년 7월의 일이다. 라이프치히의 제13회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음악 콩쿠르에서 독일 연주자(옛 서독 출신)로는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1988년 이래 처음으로 배출된 1위 수상자였다. 마르틴 슈타트펠트는 9세의 나이에 처음 연주 무대에 섰고, 그 뒤 수없이 많은 연주를 가졌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알테 오퍼, 뒤셀도르프의 톤할레, 본의 베토벤 하우스에서 연주했고, 제네바, 베른, 상트페테르부르크, 빌뉴스, 포스타노, 바젤, 런던, 뉴욕에서 청중을 찾았다. 라인란트-팔츠 주립 오케스트라, 서독일 방송 교향악단, 뒤셀도르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 무대를 갖기도 했다
올해 슈타트펠트는 라트비아 국립 오케스트라,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 라인 필하모닉, 뷔르템베르크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연주를 앞두고 있다. 또 안스바흐의 바흐 주간, 라이프치히와 슈투트가르트의 바흐 페스티벌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독주 외에 마르틴 슈타트펠트는 실내악과 가곡 반주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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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매일
2005년 08월 11일
시간/무게/크기
크기확인중
KC인증

제작사 리뷰

바흐의 본질
"두 단의 건반을 가진 하프시코드를 위한 하나의 아리아와 여러 변주로 된 건반 연습곡." 바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가장 유명한 실용 음악에 대한 설명이이다. 다른 작품과는 달리 한숨에 작곡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위촉자의 가벼운 신경증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
많은 역사 기술에서 그렇듯이 이 음악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탄생사는 사실이기도 하고, 우연이기도 하며, 반쯤 거짓이기도 하다. 즉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드레스덴 궁정에 와 있던 러시아 공사 헤르만 폰 카이저를링 백작에게 헌정되었다. 니콜라우스 포르켈이 1802년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삶과 예술, 작품』이라는 전기에 쓴 이래, 이 이야기는 줄곧 사실로 받아 들여졌다. 그러나 이 음악은 결코 예외적인 목적으로 작곡된 것이 아니었다. 특히 궁정 하프시코드 연주자인 요한 고틀로프 골드베르크가 고용주인 카이저를링이 잠들 때 연주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바흐는 이미 1736년 경 작곡을 시작했다. 1741년에 완성되기까지 5년이 걸린 셈이다. 바흐가 재능 있는 젊은 골드베르크의 연습을 위해 작곡했다고 본다면, 당시 그의 나이가 겨우 10세에 불과했다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포르켈의 이야기는 바흐의 놀라운 면을 알리기 위한 단순한 전설 만들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놓고 보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작은 멜로디로 서른 개의 변주곡을 만든 이 곡은 푸가의 예술과 아름다운 멜로디로 가득하며, 고도의 기교를 요한다.
바흐가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노트북'(1725)에서 가져온 '사라방드'의 베이스음이 변주의 반복되는 요소를 이룬다. 1번 변주에서 그 추진력을 보여주고, 섬세한 시칠리아노의 인상(3번, 7번 변주)을 쏟아내기도 한다. 이 '기초 음'의 변형은 작품의 중심축에서 첫 번째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16번 변주의 묵직한 '서곡'은 프랑스 양식이다. 멋진 피날레로 가기에 앞서 3/8 박자의 춤곡(19번 변주)과 도메니코 스카를라티풍의 보석과 같은 테크닉(23번 변주), 서정적인 카프리치오(25번 변주), 두 개의 노래에서 따온 쿼들리벳이 나온다. 그 노래란 'Ich bin solange nicht bei dir gewest, ruck her, ruck her'(너무 오래 그대와 떨어져 있었네, 돌아오오, 돌아오오)와 'Kraut und Ruben haben mich vertrieben'(양배추와 순무가 나를 쫓아내네)이다. 전기작가 포르켈에 따르면 농담꾼 바흐의 흔적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일말의 진실이 묻어 있는 듯하다.
바흐가 '곧드베르크 변주곡'을 얼마나 진지하게 하프시코드를 위한 곡으로 생각했던지 간에, 이 곡은 이 악기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바흐의 작곡은 늘 새로운 것에 도전코자 했으며, 여러 악기를 다양하게 조합하는 것도 그 방식 중 하나였다. 베토벤조차 자신의 인본주의적인 기질을 19세기의 기술적인 토대와 결부하려 했던 반면, 바흐의 화성적이고 대위법적인 예술의 완결성은 이미 당시의 형식을 넘어선다. 바흐의 정신은 오늘날의 귀로나 각 시대의 양식을 통해서나 모두 다르게 해석된다. 바흐는 악기를 선택하는 데 유동적인 작곡가이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현악 삼중주부터 아코디언이나 오르간까지 다양한 악기로 연주된다. 모차르트의 편곡과 마찬가지로 스토코프스키의 멋진 바흐 푸가 편곡 전면에 있는 것은 그런 연주가 정당성이 있느냐 없느냐는 사실이 아닌 바흐의 아우라이다. 그런 점에서 캐나다 출신 거장 글렌 굴드는 바흐를 콘서트 피아노로 연주하는 전통을 그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23세의 마르틴 슈타트펠트는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이 변주곡을 자신의 데뷔 음반으로 내세웠다. 다른 어떤 작품도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슈타트펠트는 17세의 나이 때부터 이 작품의 마법에 매료되었다. 1997년 처음 깨달은 이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그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슈타트펠트를 바흐와 떼려야 뗄 수 없게 만든 가장 최근의 예는 2002년 7월의 일이다. 그는 13회를 맞는 라이프치히 바흐 콩쿠르의 최연소 결선 진출자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대회가 재구성된 이래 최초의 독일 우승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그는 많은 경험을 쌓은 뒤였다. 코블렌츠에서 태어난 슈타트펠트는 9세에 처음 피아노를 배웠고, 1997년 파리의 니콜라이 루빈스타인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2001년에는 볼차노의 부소니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1995년부터 프랑크푸르트에서 레프 나토체니에게 배우고 있는 그는 해마다 30∼40차례의 공연을 갖는다. 베토벤과 리스트도 연주하며, 실내악이나 리트 반주도 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나 결국에는 바흐로 돌아온다. 왜냐하면 슈타트펠트는 바흐와 현대 콘서트 피아노가 정말 궁합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가 나에게 바흐의 건반 음악을 연주할 악기를 고르라고 하면 당연히 피아노입니다. 풍부한 표현력으로 바흐의 정신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피아노의 소리는 아주 순수하기 때문에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내가 보기에 피아노 음악입니다. 이와 같은 높은 경지의 작품은 내면의 귀로만 들을 수 있습니다. 바흐는 직접적인 친밀함을 가진 클라비코드를 좋아했지만, 이 악기는 콘서트 홀에는 맞지 않습니다. 클라비코드는 곡을 은밀하게 만드는 악기입니다. 반면에 하프시코드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데 장애가 됩니다." 슈타트펠트는 18세기의 연주 실제에 도달하기 위해, 21세기의 교조적인 연주 철학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철저히 반대된 입장이다. 슈타트펠트는 지금 여기서 바흐가 연주되는 의미에 대해 곱씹어 생각한다. "하프시코드는 두 단의 건반을 가지고 있어, 각각 다른 음색으로 연주할 수 있습니다. 나는 바흐가 감각적인 실험가라고 생각합니다. 옥타브를 바꾸거나 손을 교차해서 하프시코드와 같은 효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다른 음전을 통해 새로운 구조를 탄생시키는 거지요. 이와 같은 새로운 소리의 발견과 경험은 감각적인 즐거움을 줍니다." 슈타트펠트의 연주는 모든 기대를 넘어서고, 종종 극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이 엄청난 음의 건축물은 전에 듣지 못한 대비감과 흥분되고 고무되는 음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아리아'의 시작부터 그는 멜로디를 대화로 만들며, 반복구의 데스칸트로 넘어간다. 이는 뮤직 박스와 같은 7번 변주 '지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음악적 심상을 펼쳐내는 것 외에 그는 엄청난 표현폭과 긴장감(9번 변주의 베이스를 보라)을 표출한다. 슈타트펠트는 비르투오소일 뿐만 아니라 멜링콜릭한 피아니스트로도 존경할 만하다. 1번 변주 '토카타'는 그로 하여금 피아노의 기교를 마음껏 보여주게 한다. 10번 변주('푸게타')도 마찬가지로 한껏 뽐내는 분위기이다. 이탈리아풍 변주(13번)와 프랑스풍 변주(16번)도 갈랑 양식과 귀족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26번 변주는 숨막히는 승리감이 고취된다. '아리아'로 돌아오면 바흐라는 우주가 가까운 시일 내에 슈타트펠트를 놓아주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글|귀도 피셔·번역|정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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