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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서문 하나 하늘이 목숨을 내리지요(天命) 둘 모든 것은 때가 있지요(時中) 셋 '중용'을 행할 이 누가 있을까요(鮮能) 넷 행실로 옮기면 밝게 되겠지요(行明) 다섯 어째서 행실로 옮기지 못하는 걸까?(不行) 여섯 지혜를 크게 하라(大知) 일곱 나는 얼마나 지혜로운가?(予知) 여덟 가슴에 새겨 두어라(服膺) 아홉 고르게는 할 수 있어도(可均) 열 굳셈이란 무엇인가(問强) 열하나 까닭 없이 숨어 지내지 마라(素隱) 열둘 두루 하면서도 은밀하게(費隱) 열셋 멀리하지 마라(不遠) 열넷 처지대로 살지요(素位) 열다섯 먼 곳에 가렵니까(行遠) 열여섯 귀신에 대하여(鬼神) 열일곱 효성스러움을 크게 키워라(大孝) 열여덟 걱정을 없애라(無憂) 열아홉 효성(孝誠)이 그리운 시대 스물 정치란 무엇인가(問政) 스물하나 정성스러우면 밝아지겠지요(誠明) 스물둘 본성을 모조리 다 발휘하라(盡性) 스물셋 못난 곳까지도 나아가라(致曲) 스물넷 미리 깨달아야겠지요(前知) 스물다섯 주체적으로 이루어 나가야지요(自成) 스물여섯 쉼이 없으신 분은 누구실까(無息) 스물일곱 위대한 사람은 누구일까(大哉) 스물여덟 주체적으로 사용하지요(自用) 스물아홉 세 가지 중요한 것(三重) 서른 선조로 고백하다(祖述) 서른하나 성인에 이르러야겠지요?(至聖) 서른둘 경륜(經綸) 서른셋 홑옷을 걸쳐 입지요(尙絅) 후기 『중용』에 대한 단상(斷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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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부가 만난 진리의 놀이터!
천주교 안동교구 신대원(申大源 · 48) 신부는 유교 경전의 핵심인 사서오경 중 사서에 속하는 『중용(中庸)』 을 가톨릭의 시각으로 풀어낸 『중용(中庸) 속에서 놀다』를 최근 출간했다. 신대원(요셉) 신부는 1990년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수학하였다. 현재 경북 상주 가르멜 여자수도원 사제로 봉직하면서, 천주교 안동교구 교회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을 겸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하상(丁夏祥)의 「상재상서(上宰相書)」 연구: 이천유보(以天補儒) 혹은 이유호천(以儒護天)의 방법론을 중심으로』(2004)가 있다. 신대원 신부는 가톨릭의 시각으로 유교를 바라보면서 동양의 고전 속에서 복음을 즐기고, 복음 속에서 동양의 고전을 즐기고 있다. 또한 그 즐김의 방식도 편지 · 일기 · 묵상 등 무척 다채로워 일반 독자들도 부담없이 동양 고전과 복음 사이에 푹 빠져들 수 있다. 『중용(中庸)』은 유림(儒林)들이 유가의 가치관에 있어서 최고의 덕목으로 삼을 만한 것들의 보고(寶庫)요 정수(精髓)라 여겨진다. 유가의 요체가 쌓여 있는 『중용』을 통해 가톨릭과 대화를 시도해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유가의 성현들과 만나는 것이 되고, 동시에 복음정신을 한 단계 승화시켜나가는 계기가 된다. 사실 『중용』은 가톨릭의 입장에서 보기에, 하느님의 충만하고도 역동적인 은총을 소극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오히려 인간의 역동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중요한 점은 하느님의 뜻에 충실 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대화'를 시도한다는 점이다. 대화를 통해서 서로를 인정 · 이해하여 마침내 두 종교의 근원이 결국 하나라는 것을 확인해가는 과정으로 삼을 수도 있고, 세상이 하늘의 뜻에 좀 더 가까이 나아가는 데 서로가 협력할 수도 있다. '가톨릭(catholic)'이라는 말은 '보편적'이라는 뜻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것을 아우른다는 의미다. 이는 『중용』에서의 '과유불급(過猶不及)'과 맞닿아 있는 말로서, 유교와 가톨릭의 연결고리를 나타낸다. 이렇듯 이 책에서 신대원 신부는 『중용』 에서 끊임없이 가톨릭 교리를 찾고 성경 말씀을 발견해내고 있다. 중용과 가톨릭을 친구로 만들어 놀이터에서 뛰놀게 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