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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시대
부족국가~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개화기 일제강점기 광복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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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축을 사다
생성시기_중국 춘추전국시대, 서기전 286년. 나이_약 2291살. 유래_못마땅하여 눈을 찡그리는 것이 ‘빈’이고, 옴을 움츠리거나 얼굴을 찌푸리는 것은 ‘축’인데, 이를 합친 빈축은 《장자》 <천운편>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춘추전국시대 월나라에 서시라는 아주 유명한 미녀가 있었다. 서시는 가끔 위장병으로 고통을 받았는데, 증세가 나타나기만 하면 손으로 심장 근처를 누르고 눈살을 찌푸리곤 했다. 그런데 서시가 아픔을 참으려고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까지도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러자 인근 마을에 동시라고 하는 아주 못생긴 여자가 살았는데, 어느 날 서시를 보고는 두 손으로 심장을 누르고 눈살을 찌푸린 채 마을을 돌아다녔다. 마을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놀라서 다들 달아나거나 숨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어휘의 생성시기는 장자(서기전 369-286년)의 사망 연도로 잡는다. --- p.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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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무지
생성시기_조선, 1860년(철종 11년). 나이_약 145살. 유래_도무지는 옛날 조선시대에 사사로이 행해졌던 형벌에서 비롯되었다. 도모지는 물을 묻힌 한지를 얼굴에 몇 겹으로 착착 발라놓으면 종이의 물기가 말라감에 따라 서서히 숨을 못 쉬어 죽게 되는 형벌이다. 1890년 경신박해 때 체포된 오치문이란 사람이 울산장대로 압송된 뒤 도무지형으로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천주교 기록에 “순교 당시 그는 얼굴을 한지로 덮은 채 물을 뿌림으로써 숨이 막혀 죽게 하는 백지사(일명 도모지) 형벌을 받았는데, 무의식중에 혀를 내밀어 물 묻은 한지를 뚫자 군사들이 그 구멍을 막아 질식시켰다고 전한다”고 되어 있다. 이보다 늦은 기록으로는 1866년 12월 8일 남한산성에서 순교한 천주교인들에게 당시 남한산성의 광주 유수가 도배형 또는 도모지라고 부르던 백지사형을 집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대원군 시대에 포도청의 형졸들이 살인하기에 염증을 느껴 백지 한 장을 죄수의 얼굴에 붙이고 물을 뿌리면 죄수의 숨이 막혀 죽곤 했는데 이를 ‘도모지’라고 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매천야록》은 황현이 고종 원년(1864년부터 융희 4년(1910년)까지 47년간의 한말 역사를 적은 책인데, 대략 이 시기에 사사로이 행해진 형벌인 듯하다. 다만 형벌의 성격상 가문에서 사형으로 집행될 수 있는 것이어서 이 말의 발생이 꼭 1860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끔찍한 형벌인 ‘도모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도무지’는 그 형벌만큼이나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 p.1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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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야스
생성시기_조선 후기, 1830년경(순조 30년). 나이_약 175살. 유래_요즈음 입는 내의의 보통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는 ‘메리야스’는 개화기 때만 해도 양말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 메리야스의 특징은 그것을 신거나 입은 사람의 대소에 따라 늘어나고 줄어든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메리야스를 한역할 때 크건 작건 아랑곳없다는 뜻으로 ‘막대소’라 했다. 메리야스의 원어는 스페인어 메디아스(Medias)로 추측된다. ‘디’와 ‘리’는 서로 곧잘 바뀌는 음이어서 메디아스가 메리야스로 전화된 것 같다. 메디아스는 스페인 말로도 양말을 뜻했다. 그러나 현재는 그 뜻이 확대되어 면사나 모사로 신축성 있고 촘촘히 짠 직물을 말한다. --- p.1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