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서문 김이랑. 문운의 햇살이 이어지길 / 4
경향신문 박상현. 사랑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 12 -박선우론 동아일보 박지민. 나-나 연대기: 멸망 이후에도 살아남는 세 가지 시적 방법 36 -고선경, 신이인, 변혜지의 첫 시집을 중심으로 문화일보 오웅진. 문학을 초과하는 언어로서, 음악 64 -김기태론 서울신문 배민정. 도망치지 않는 시 90 -황유원의 시 세계일보 오경진. 쓰이지 못한, 쓰인 적 없는 118 -김숨, 《간단후쿠》 조선일보 오경진. 무無의 정치, 혀의 신학 142 -김혜순론 동아일보 최우정. 믿을 수 없음을 미적분하기 172 : 탈진실 시대의 영화론 -〈괴물〉,〈추락의 해부〉,〈괴인〉을 중심으로 부산일보 김형식. 실존의 침묵에 맞서는 재현의 윤리 194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관하여 광남일보 최류빈. 몸 언어가 자신만의 인도仁道를 관철할 때 220 -광주시립발레단 〈DIVINE〉 조선일보 강희구. AI시대의 공간형 설치미술이 제기하는 ‘지각의 정치성’ 242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적군의 언어』전을 중심으로 |
|
오늘날 사랑의 세계는 낭만적이지도 그다지 아름답지도 않다. 사랑에 허우적대는 이들을 보며 청춘의 호시절이라며 그저 남부러워하기에 사랑은 혐오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그 힘을 내어주기도 한다. 소설이 남긴 것은 ‘어쩌면’, ‘혹시’, ‘만약’으로 일컬어지는 망설임과 불확실한 느낌투성이지만 나는 이상하게 그로부터 안도감을 느끼곤 한다. 이것이야말로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채로 받아들”(〈겨울의 끝〉, 101쪽)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앎을 추구하기보다 서로에 대해 모른대도 우리는 여전히 손을 맞잡을 수 있다고 말하는 이 지극한 서사에 대해 퀴어하다고 아니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속는 셈 치고 하루만, 오늘 하루만 더, 하면서”(221쪽) 타자를 향해 나아가는 이 모습은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박상현, 〈사랑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박선우론〉」 중에서 우리 모두 마음 한쪽에는 무언가를 혐오하는 내가 있고 한쪽에는 사랑하는 내가 있다. 고선경식으로 바꾸면, 한쪽에는 “돌연사!”를 꿈꾸는 내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살아남아 / 시인이 됐다”는 내가 있다. 이 두 가지의 선택지에서 우리는 자주 널을 뛰며 갈팡질팡하게 되겠지만 고선경의 시집은 우리가 이 둘을 왕복하며 조금씩 단단해진다고, 또 이왕이면 사랑 쪽으로 기울어질 거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 「박지민,〈나-나 연대기: 멸망 이후에도 살아남는 세 가지 시적 방법〉」 중에서 현대인에게 퇴근이란, 복합기 소리로부터 아기가 꺄르륵 웃는 소리로 되돌아오는 과정이다. 출근이란, 그 웃는 소리를 나날 성장시키는 과정이다. 김기태는 제 소설의 연주 가능성을 거듭하여 타진한다. 그것은 다성 음악의 떼창과 흡사한 모습으로, 낭독이나 합평과 같은 수준의 문학적 모둠 활동을 초과하는 일이다. 최근 있었던 뉴욕의 추수감사절 행렬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전 세계가 우리를 안다. 이제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의 ‘노래’를 따라 불렀기 때문이다. 공통선은 어렵지 않다. 어렵다면 어쩌면 그것은 선善에서 요원한 것일지도 모른다. --- 「오웅진,〈문학을 초과하는 언어로서, 음악-김기태론〉」 중에서 ‘나’는 극에서 극을 오가면서 넓어지고, 또 깊어진다. 그러나 이렇게 한층 넓어지고, 깊어진 ‘나’는 역설적이게도 더 큰 아픔과 대적해야 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가령 야심찬 꿈과 다짐들은 사실상 냉혹한 현실 논리에 강력히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혹은 성스러운 약속들은 때로 세속적인 삶의 회한보다도 생명력이 희미하다는 사실을, 혹은 타인은 ‘나’ 같지 않고 ‘나’ 역시 타인과 결코 같아질 수 없다는 사실을 남김없이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렇게 넓어지고 깊어진 ‘나’는 어떠한 삶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또 다른 극점을 만나리라는 여지를 항상 남겨둘 줄 아는 넉넉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러한 ‘나’는 간절히 바라던 끝이 허무하게 사라진 장소에서도 ‘과정’으로서 자신의 생을 충분히 살아갈 수가 있다. --- 「배민정,〈도망치지 않는 시-황유원의 시〉」 중에서 불가능한 운명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끝끝내 고통에 다가가려는 문학이 있다. 거기서 언어는 처참한 잔해의 조각이 된다. 하지만 거기서 빛이 나기 시작한다. 깨어진 거울이 사방으로 빛을 발산하는 ‘크리스탈’이 되는 것처럼. 반짝이는 수정은 일견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날카로운 ‘칼날’이 되기도 한다. 살짝이라도 스치면 깊숙한 파열을 남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그 문학은 고통의 심연으로 발을 내디딘다. --- 「오경진,〈쓰이지 못한, 쓰인 적 없는-김숨,『간단후쿠』〉」 중에서 영원 속에서 한없이 가라앉는 것. 세계의 중력을 음미하고 낮은 데로 향하는 것. 몰락과 죽음을 끌어안는 것. 어쩌면 무너져 내리는 것만이, 완고한 저 적대의 성을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힘일지도 모른다. --- 「오경진,〈무無의 정치, 혀의 신학-김혜순론〉」 중에서 왜 영화인가? 아니, 왜 영화여야 하는가? 결국 이 물음은 왜 허구를 통해 현실을 수선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로 바꾸어 적을 수 있다. 나는 ‘fiction(픽션)’의 철자를 하나 비틀어 ‘fixtion’이라 부르고 싶다. 이야기의 그물망을 새롭게 짜는 일이 손상된 세계를 수리하는 바늘땀을 뜨는 것과 같다는 의미에서다. --- 「최우정,〈믿을 수 없음을 미적분하기: 탈진실 시대의 영화론〉」 중에서 전쟁의 실재는 추상적인 기호 체계, 이를테면 사망자 숫자, 경제적 피해액, 간접적인 목격담, 혹은 단편적인 정보와 이미지 몇 장만으로 재현 불가능한 무엇이다. (195쪽) 하지만 라캉이 말했듯 상징계가 억압한 실재는 상징화되지 않는 오점으로서, 현실의 한계를 가리키고 그 너머의 이면을 드러내는 구멍으로서 영속한다. 스크린은 그러한 오점을, 다시 말해 현실이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배제한 것의 흔적을 포함하고 있다. (199쪽) 그는 마치 종교적 헌신에 가까운 태도로 정교하게 임무에 관해 사유하고 고도화하여 악을 실현한다. 문제의 관건은 루돌프의 태도와 행동에서 무사유와 아둔함의 증거를 찾기는 힘들다는 점이다. (207쪽) 이는 희생자를 침묵시키고 무로 만들려는 시도에 맞서, 그들의 실존을 강경하게 상연하는 영화적 리얼리티와 재현의 윤리를 보여준다. (210) --- 「김형식,〈실존의 침묵에 맞서는 재현의 윤리-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관하여〉」 중에서 무용수의 감정이 투영된 듯 객석 앞에 흩날리는 분진은 공연자들의 팔과 다리가 늘어난 것 같은 환상통을 자아낸다. “정신적인 것은 몸의 기호로서 확정되어야 한다”는 니체의 말을 현대무용으로 재현하는 ‘잿가루’는 길이와 너비 등 고전무용의 제한적 물성을 넘어 피와 영혼을 지닌 신성무구의 아티팩트artefact로 현신한다. 5·18 앞에서 그리고 광주 관객들 목전에서 간신히 가능한 〈DIVINE〉의 의지다. 객석과 무대는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지만 총탄이나 포신에 묻은 화약 냄새가 좌석에 스미는 듯한 기분이 든 건 연출자의 의도일까? --- 「최류빈,〈몸 언어가 자신만의 인도仁道를 관철할 때 -광주시립발레단〈DIVINE〉」 중에서 감각은 인간의 마지막 언어이며, 예술은 그 언어가 아직 남아 있음을 시험하는 공간이다. 기술이 인간을 넘어서는 시대일수록, 예술은 감각을 다시 정치화하고, 인간 존재의 자리를 묻는, 질문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AI 시대의 예술은 기술을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감각이 아직 여전히 인간의 것임을 확인하는 장치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전시는 단순한 전시가 아니다. 그것은 감각의 조건이 뒤바뀐 시대에서, 예술이 무엇을 다시 수행해야 하는지를 묻는 하나의 선언이다. 우리는 이 선언 앞에서 다시 질문하게 된다. --- 「강희구,〈AI 시대의 공간형 설치미술이 제기하는 ‘지각의 정치성’〉」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