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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염〉
반년 전 ‘나’는 우연히 A라는 여성을 만난다. 미신에 가까운 매력으로 사내의 마음을 온통 빼앗아버리는 A로 인해 점점 못난이가 되어버리는 ‘나’는 하루라도 A를 보지 못하면 못 견디게 되는데…… 〈악몽〉 ‘나’‘O’와 삼각연애 관계에 있던 ‘H’의 죽음. 평소 연인과의 정사를 꿈꾸던 지독한 염세주의자였던 ‘H’의 자살에 뭔가 심상치 않은 점이…… 〈악마의 사랑〉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자신에게 충실한 부인 정순이 점점 미워만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정순과는 달리 주근깨도 없고, 모발도 아름답고, 요부적인 기질을 가진 영희라는 여인을 만나게 된다. 충실한 부인과 매력적인 애인 사인에서 갈팡질팡하던 ‘나’는…… 〈지옥 찬미〉 정사(情死)를 결심한 두 연인이 사후세계를 상상하면서 천국과 지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위선자〉 어학의 천재로 인정받는 일본 유학생 창호는 순애라는 여성을 만나 열렬한 사랑에 빠지지만 그에게는 조혼한 부인이 있다. 순애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창호는 이혼을 단행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지만…… 〈춘희〉 경성여자미술학교 입학을 앞둔 재원 춘희. 순수하고 아름답고 총명한 춘희에게도 인생이란 대하(大河)에 흐르는 비애의 물결은 다가오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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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망스를 지향하는 인물들의 고통과 절망과 도피를 보여주는 임노월의 작품들에는 1920년대의 자유연애 경향, 조선의 현실에 대해 고민하는 신청년들의 거울상, 조혼한 처지와 새로운 여성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 등 당대 젊은이들이 직면해 있는 고민들이 잘 드러나 있다.
그 시대에 활동했던 어느 작가보다도 근본적이고 철저하게 개인성을 중시하면서 인간의 내면 깊은 곳을 탐색하며 인간 삶의 마성에 도전했던 그의 작품들은 그만큼 현대적이기도 하다. 현재 문학평론가이자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방민호 씨가 쉽게 읽어나갈 수 있도록, 원문을 훼손하지 않는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어려운 한자어나 옛말들을 현대역하였다.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한 애욕, 마성, 죽음, 그리고 팜므 파탈형 여주인공 임노월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실현할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완전하면서도 영원한, 이상적인 사랑을 얻고자 집요하게 욕망한다. 몽상과 꿈의 형태로, 죽음과 도피를 통해서 사랑을 실현하고자 하며 죽음으로서 사랑을 완성시키고자 한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남성 주인공의 이성적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팜므 파탈형 여성 주인공들이 있다. 그들은 신비스럽고 항거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숙명적인 여성이자 치명적인 여성들이다.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며, 거짓말로 남성을 속이고 중첩된 연애관계로 상대를 의심과 곤경과 타락에 빠트리는 “전설에서 흔히 보던 요부” “일찍이 역사에도 그런 여인이 드물다 하리만치 요염한 계집” “한번 그 계집의 품속에 빠지었던 남자일 것 같으면 제아무리 이성이 있어도 도저히 어찌하지 못할 절대적 매력을 가진 계집”들이다. 그리하여 남성들을 사회적 규범과 질서에서 일탈시키고, 윤리적 책임과 의무를 방기하도록 하며, 타락과 방종의 수렁에 빠져들도록 하여, 끝내는 파멸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사모하는 여인을 범하고 시름시름 앓게 되거나(처염), 연적(戀敵)(악몽) 또는 조강지처를 살해하거나(악마의 사랑), 연인과 정사(情死)하거나(지옥 찬미), 애인의 배신에 자살을 결심(위선자)하게 되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한 애욕과 마성(魔性), 죽음, 비애가 담겨 있는 《악마의 사랑》은 이처럼 한국문학 최초로 그리고 가장 전형적이고 본격적인 형태로 비밀스런 여성, 심연을 간직한 절대 존재로서 여성상 또한 보여주고 있다. |